시네토크

우습고, 비열하고, 진짜 사람 같은 사람들

- 윤종빈 감독이 말하는 마틴 스콜세지의 ‘좋은 친구들’

 

지난 1월 26일 오후, 서울아트시네마의 로비는 마틴 스콜세지의 <좋은 친구들>(1990)과 이 영화를 선택한 윤종빈 감독과의 시네토크를 찾아온 사람들로 가득했다. 윤종빈 감독은 <좋은 친구들>을 서른 번도 넘게 봤을 정도로 좋아한다며 영화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 흥미로웠던 현장을 전한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영화평론가): 마틴 스콜세지의 <좋은 친구들>을 여러 번 봤다고 했다. <좋은 친구들>에서 어떤 면들을 좋아하는지, 그리고 오늘 또다시 보면서 어떤 것들을 새로이 생각하게 됐는지.

윤종빈(영화감독): 23살 때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내가 마피아도 아니고 이탈리아 사람도 아니지만 왠지 그 세계는 진짜 그럴 것 같아서 충격을 받았다. 두세 번 보니까 영화에 플롯도 없고, 장르적인 면도 거의 없다는 게 들어왔다. 그런데도 두 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을 힘 있게 끌어갔던 게 신기했다. 그리고 계속 보다보니까 음악이 들어왔다. 이 영화는 사운드트랙이 굉장히 훌륭하다. 기존에 있던 곡들을 삽입한 건데, 그 장면의 정서에 맞거나 부딪히는 방식으로 많이 사용한 것 같다. 그리고 또 재밌는 건, 이 영화엔 어떠한 멜로드라마적인 순간도 존재하지 않고, 영화에 나오는 인물에게 이입할 수도 없고, 그 사람들의 내면을 보여주는 순간도 없는데 왠지 그 사람이 어딘가에 존재하는 진짜 인간인 것처럼 착각이 들게 하는 것이다. 그러한 점들이 이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들이다.

 

김성욱: 내면을 보여주지 않고 인물을 그려나간다는 점에서 보면 이 영화는 내레이션을 쓰고 있지만 전통적이지 않은 다른 방식으로 쓰는 것 같다. 짧긴 하지만 부인의 내레이션도 나온다. 내레이션보다 오히려 코멘터리 같은 느낌이 강하다. 방금 인물의 내면을 보여주지 않으면서 인물들이 그럴듯하게 느끼게 해준다고 말했는데, 정확하게 어떤 부분들이 그러한가?

윤종빈: 가령 이 영화와 비슷하다고들 하는 <대부>(1972)는 멜로드라마적인 면에 많이 기대고 있다. <대부>의 세계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멋있어 보이기도 하고, 착해 보이기도 하는 순간들이 존재한다. 그런데 이 영화엔 사람들이 시종일관 우스꽝스럽고, 비열해 보이고, 그런데도 사람 같다. 그런 것들이 배우들의 연기에서도 많이 드러난다. 헨리가 폴리의 식당을 찾아가서 잘못했다면서 우는 장면에서 헨리의 그 표정이 너무 불쌍하고 인간적으로 다가온다.

 

김성욱: 이 영화는 인상적인 촬영 방식을 보여준다. 이 영화를 얘기할 때 꼭 언급하는 장면, 헨리가 카렌과 데이트를 하면서 코파카바나 클럽으로 내려가면서 맨 앞자리까지 들어가는 장면이 하나의 컷으로 길게 촬영됐다. 마치 다큐멘터리적인 촬영 방식이다. 그런 식의 촬영이 내용과도 밀접한 관련을 맺는 것 같다.

윤종빈: 내용은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것 같지만 촬영은 매우 스타일리시하다. 무빙이 많고 테크닉이 굉장히 많이 들어간 영화다. 그런데 영화에 빠지게 되면 그런 스타일을 인지하기 힘든 것 같다.

 

 

김성욱: 어떤 장면을 인상적으로 기억하는가?

윤종빈: 대부분의 장면을 다 좋아하는데 에릭 클랩튼의 ‘Layla’ 후반부가 나오면서 사람들이 핑크색 차 안에 죽어 있는 게 드러나는 장면이다. 일순간 화면이 정지하고, 음악이 흐르고, 죽은 사람이 나오는, 굉장히 영화적인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영화는 니콜라스 필레지라는 마피아 갱단의 자서전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다. 그런데 영화 속에 나오는 에피소드들이 너무 리얼해서 어디까지가 진짜고 어디가 각색이 됐는지가 진짜 궁금하다. 가령 헨리, 지미, 타미가 마피아를 묻으러 가다가 칼 가지러 집에 들렀는데, 엄마한테 붙잡혀서 밥을 먹고, 엄마는 난데없이 그림을 보여준다. 머리로는 상상할 수 없는 에피소드인 것 같다. 끊임없이 봐도 이 영화가 참 좋은 게, 전형적인 씬들이 거의 없다. 항상 뭔가를 비틀어낸다. 지미가 새벽에 식당에서 나오면서 잠복하다가 잠든 FBI를 깨우는 장면도 참 재미있다.

 

김성욱: <대부>도 그렇고 <범죄와의 전쟁>도 일종의 범죄자의 공동체를 그리고 있다. 그런데 <좋은 친구들>의 조직은 좀 묘한 구석이 있다. 이 영화의 패밀리는 그렇게 인위적이지도 않고 인정으로 뭉쳐있다는 느낌도 별로 없고, 돈이라는 커넥션에 의해 뭉쳐져서 <대부> 1편에서 보이는 가족적인 느낌과는 굉장히 다르다. 게다가 주인공은 마피아로 보자면 일종의 진골이 아니기에 정통 시칠리 마피아의 세계에 들어갈 수 없다.

윤종빈: <대부>는 영화가 좋고 나쁜 것과 상관없이 리얼한 것과는 좀 거리가 먼 것 같다. <대부>의 패밀리는 약간 과장되고 판타지가 있는 패밀리 아닌가. 얼마 전 스콜세지 인터뷰집을 봤는데 <좋은 친구들>, <비열한 거리>(1994) 얘기 할 때는 그냥 자기가 살던 동네가 진짜 그랬다고 하더라. 이태리 이주민들이 모여서 정말 못사는데, 다 갱들이 있고, 갱이 없으면 생활에 불편함을 겪는다고 했다. <좋은 친구들>은 왜 마피아를 할 수밖에 없는지, 집단을 합리화시키는 명분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는다. 주인공이 자기가 갱스터 되고 싶은 이유는 줄을 서기 싫고 돈을 벌기 위해서라고 말하는데 쿨하고 재밌는 화법인 것 같다.

 

관객1: 영화 안에서 우스꽝스러운 장면들이 많은데 그럼에도 폭력성은 늘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이 영화에서 가장 심한 폭력이라고 보는 부분은 어디라고 생각하시는지.

윤종빈: 이 영화에서 가장 폭력적인 장면은 두 씬이 있다. 식당에 찾아온 헨리에게 폴리가 돈 몇 천 주고 관계를 끝내버리는 장면, 그리고 지미가 헨리를 불러서 누구를 죽이고 오라고 부탁하는 장면. 그 장면에선 배우들의 표정도 굉장히 서늘했던 것 같다. 물리적 폭력도 무섭겠지만 좋게 지내던 관계들이 한순간에 탁 끊어지는 게 싸늘하면서도 무서웠다.

 

관객2: 관객의 입장에서 이 영화엔 그렇게 폭력적인 장면이 많아 보이진 않았다. 그런데 <범죄와의 전쟁>은 보기에 약간 불편했다.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 영화가 묘사하는 폭력의 수준이 어느 정도가 적절하다고 보시는지 궁금하다.

윤종빈: 기본적으로 피나 신체가 절단되는 것들을 직접 보여주는 걸 좋아하진 않는다. 영화마다 다른데, 드라마가 있는 영화라면 표현하는 형식들이 주제를 뛰어넘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항상 한다. 담담하게 수위를 많이 줄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관객3: 스콜세지는 최근까지도 영화를 찍고 있는데, 스콜세지의 다른 영화들 중에 무슨 영화를 좋아하시는지 궁금하다.

윤종빈: 스콜세지 영화는 거의 대부분 다 좋아한다. 스콜세지가 만든 영화들 중에서 정말 좋아하는 영화는 <카지노>(1995)가 마지막인 것 같다. 그 이후보단 이전 영화들이 더 좋은 것 같다. 최근에 본 <휴고>는 좋았다.

 

정리: 송은경(시네마테크 관객에디터) | 사진: 김윤슬(시네마테크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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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치미노는 바로크적 스타일과 거침없는 직관에서 나온 솔직한 화술로 할리우드영화의 지평을 넓힌 감독이었다. 그의 대담한 표현은 현대의 할리우드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그는 너무 일찍 주류에서 추방당했다. 그의 성공과 좌절은 현대 할리우드의 행운이자 불행이었다.

1980년에 개봉한 마이클 치미노의 대작 서부극 <천국의 문>은 촬영 도중에 엄청난 제작비 때문에 많은 사람의 입방아에 올랐다. 애초에 1천1백만 달러의 예산이 책정된 이 영화는 촬영 기간 동안 위대한 스펙터클을 만들려는 치미노의 과욕 때문에 제작비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최종 제작비는 3천5백만 달러였고 당시 제작비 최고 기록이었다. 게다가 치미노가 마침내 내놓은 완성판의 길이는 자그마치 5시간 25분이었다. 제작사인 유나이티드 아티스트는 대경실색해서 수정판 편집을 요구했고 치미노는 영화를 3시간 45분 분량으로 줄였다. 그러나 시사회에서 이 영화를 대한 모든 평론가들은 누가 더 잘 빈정거리나 경쟁하듯이 <천국의 문>을 공격했다. 그들은 <디어 헌터>(1978)로 벼락출세한 풋내기 감독 치미노의 과욕을 결코 용서하지 않으리라는 태도였다. 그들의 눈에 <천국의 문>은 뉴할리우드 시대의 자랑할 만한 성과였던 ‘리틀 필름’, 곧 적은 자본으로 작가의 예술적 비전을 담는 영화의 흐름에 완전히 찬물을 끼얹는 것으로 보였다. <천국의 문>이 미국 서부 신화에 대한 총체적인 점검이자 해체라는 것보다는 <죠스>(1975)와 <스타워즈>(1977) 등의 팝콘 블록버스터에 무의미하게 맞서는 대작 콤플렉스의 산물로 비쳤던 것이다. 평론가 폴린 카엘은 <천국의 문>이 ‘멍하게 만들 만큼 갈지자걸음을 걷는 영화’라고 냉소했다. <천국의 문>은 명쾌한 이야기와 스펙터클을 기대하는 사람들에겐 예술적 과대망상으로 가득 찬 쓰레기처럼 보였다. 예매제를 실시하고 무제한 상영하기로 계약돼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뉴욕을 제외한 모든 도시에서 개봉하자마자 곧 바로 간판을 내렸다. 첫 개봉 후 일곱 달 만에 제작자의 지시를 받은 치미노가 2시간 29분으로 길이를 줄여 재개봉했지만 또다시 2주 만에 간판을 내렸다.

현대판 블랙리스트에 오른 감독

<천국의 문>은 할리우드의 역사를 다시 쓰게 만들었다. 이후로 누구도 예술적 비전으로 가득 찬, 감독의 이름값에 기댄 영화에 투자하지 않게 됐다. <천국의 문>의 제작사인 유나이티드 아티스트는 막대한 제작비를 투자하고도 고작 150만 달러의 수익을 거둠으로써 할리우드 역사상 최초로 영화 한 편 때문에 파산하고 MGM에 매각당하는 망신을 당했다. 유나이티드 아티스트는 한때 돌파구를 마련하고자 ‘버라이어티’의 충고를 받아들여 액션을 살리고 원판의 불행한 결말과는 달리 해피엔딩으로 영화를 재편집할 것을 고민했다. <천국의 문>이 <존슨 주의 전쟁>이란 제목을 다시 달고 재개봉할 것이라는 소문도 떠돌았으나 <존슨 주의 전쟁>은 세상에 나오지 않았고 마이클 치미노의 신작도 그 이후로 좀처럼 볼 수 없었다. <천국의 문> 이후 치미노는 고작 네 편의 영화를 더 만들었을 뿐이다. 치미노는 할리우드의 블랙리스트에 올랐고 아무도 그를 거들떠보지 않았다. <천국의 문> 제작자였던 스티븐 바흐는 <천국의 문>의 제작 후일담인 <파이널 커트>를 출판하면서 치미노를 과대망상증 환자라고 불렀다. 치미노는 자아 도취병 중증 환자에다 통제 불능의 말썽꾸러기였다. 그러나 바흐는 <파이널 커트>의 개정판에서 이런 말도 덧붙였다. '치미노도 벌써 50대에 접어들었다. 그는 시스템에 짓눌린 불운한 천재가 필연적으로 맞이한 비극의 주인공 역할에 신물이 났을 것이다. 이제 치미노도 말년의 반전을 꾀할 시점에 왔다.'
바흐의 예언은 아직 실현되지 못했고 아마 앞으로도 힘들 것이다. 치미노는 시대를 거역하는 위대한 걸물의 풍모를 갖고 있고 그것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기 때문이다. 평론가 로빈 우드에 따르면, 치미노는 "미국영화의 위대한 건축가이자 가장 멋진 형식의 혁신자다. 치미노가 만들어낸 구조를 비평가들이 전혀 알아보지 못한 것도 바로 이 혁신성 때문'이라고 평했다. 이를테면 치미노의 대표작인 <디어 헌터>의 초반부, 미국 펜실베이니아의 철강 도시 클레어튼에서 노동자로 일하는 젊은이들의 삶을 보여주는 단락은 치미노식 화술의 결정판이다. 베트남에 파병되기에 앞서 마이크, 닉, 스티븐을 축으로 한 젊은이들은 사슴 사냥을 가고 스티븐의 결혼식에서 한바탕 떠들썩한 잔치를 벌인다. <디어 헌터>의 시사회에서 관계자들은 스티븐의 결혼식 장면이 너무 길다고 줄일 것을 지시했다. 그러나 그 장면을 영화에서 많이 쳐내자 이상하게 영화의 힘이 떨어져버렸다. 별다른 이야기가 없어 보여도 이 장면은 러시아계 미국인들의 삶과 정서를 관객에게 이해시키는 데 꼭 필요한 부분이었던 것이다.
서구 문화에서 내러티브는 필요 불가결한 것이다. 이야기체 영화의 기념비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데이비드 워크 그리피스의 초기 무성영화 <국가의 탄생>(1915)은 남북 전쟁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다루면서 그것을 남녀 주인공의 사랑 이야기로 치환함으로써 개인적 내러티브가 관객의 흥미를 붙잡아둘 수 있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발견했다. 하지만 치미노는 이 장구한 이야기체 영화의 전통에 관심이 없다. <천국의 문>에서 두 남자 주인공과 한 명의 여자 주인공은 삼각관계에 놓여 있다. 그런데도 치미노는 영화의 반이 지날 때까지 그 삼각관계를 구축하지 않았다. 중반이 넘어서야 관객은 그들이 삼각관계를 겪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는 이야기 전개에 별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은 세부 묘사들을 마구잡이로 우겨넣고 역동적인 카메라 연출로 박력 있게 끌고 간다. 인물간의 관계, 상황의 소개, 갈등의 전개와 해결이라는 고전적 드라마의 정식에는 관심이 없다. 그보다는 이질적인 것처럼 보이는 세부들을 모아놓고 되풀이해 보여주면서 질서 정연한 내러티브가 아니라 많은 일이 우연히 일어나는 우리의 삶을 영화 속에 재현하기 위해 무진 애를 쓴다.

미국 신화에 비치는 도발적 만가


치미노는 내러티브보다는 영화의 주제적, 상징적 구조를 세우는 데 능하다. 로빈 우드에 따르면, 그것이 치미노가 영화 형식에서 이룬 혁신이다. <디어 헌터>는 클레어튼-베트남-클레어튼-베트남-클레어튼으로 공간이 이어지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 공간의 교체가 반복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각 이야기 단락의 길이는 점점 줄어든다. 이는 점차 이야기 단락이 점차 줄어드는 형식의 원칙으로 내용을 강조하는 뛰어난 수법이다. 영화 초반부에 그처럼 활기찬 젊은이들이었던 마이크, 닉, 스티븐이 베트남에 간 이후로, 닉은 목숨을 잃고 스티븐은 다리를 잃었으며 마이크는 카리스마적인 권위를 잃었다. 공간을 교차, 감축시키면서 치미노는 이야기보다는 장대한 역사와 인생의 비유를 직조해낸다. 사슴 사냥을 위해 조준하는 총 한 방과 베트콩에게 붙잡혀 러시안 룰렛 게임을 강요당할 때, 총 한 방이라는 모티프를 교차시키면서 치미노는 관례적인 이야기 수법 이상의 것을 보여준 것이다.
<디어 헌터>는 도덕적으로 선량한 미국의 젊은이들이 베트남에 가서 육체적, 정신적으로 망가지는 이야기를 보여줬기 때문에 베트남 전쟁을 정치적으로 분석하려는 시도는 아예 포기했다고 좌파 쪽으로부터 비난을 듣기도 했다. 클레어튼 단락이 끝난 후 갑작스럽게 베트남 전쟁 단락으로 넘어가면 방공호에 숨어 있는 베트남 사람들에게 수류탄을 던지는 베트남 병사의 모습이 보인다. 이를 보고 격분한 마이크는 화염 방사기로 그 베트남 병사를 죽여 버린다. 많은 관객들이 마이크가 죽인 베트남 병사를 베트콩으로 여겼다. 그러나 그 병사는 사실 미군과 같이 싸운 베트남군 병사였다. 이는 서구인의 눈으로 동양인을 낯선 야만인으로 묘사하는 전형적 수법이다. 게다가 주인공들을 그토록 피폐하게 만들었던, 베트콩들이 미군 포로를 데리고 러시안 룰렛 게임을 했다는 것도 사실이 아닌 허구적 조작이다. 이런 맥락을 따라가면 영화의 말미에 살아남은 주인공들이 친구의 장례식을 치르고 술집에서 미국 국가인 '성조기여 영원하라'를 부르는 것도 지극히 당연한 수순이다.
<디어 헌터>는 선량한 미국의 젊은이들, 문명화된 백인들이 야만의 땅에서 자신들의 휴머니즘에 상처를 입고 회복할 수 없는 절망에 빠진다는 백인 중심적 한계를 드러낸다. 뜻밖에도 평론가 로빈 우드는 다른 좌파 이론가들과는 달리 그런 치미노를 다르게 본다. ‘자기 드러내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치미노의 위대함’이고 그런 솔직한 태도 덕분에 치미노는 복합적으로 풍부하게 미국의 이미지를 연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포드의 고전영화가 이상적인 미국의 개념이 세워지는 순간에 놓인 미국의 신화에 관심을 가졌다면 치미노는 이상적인 미국의 개념이 해체되는 순간에 놓인 미국의 신화에 관심을 모은다. 이 영화에서 공동체의 결속을 보여주는 아름답고 따뜻한 순간들은 존 포드의 서부 영화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온기를 풍기지 않는다. 초반 결혼식 장면에서 신랑인 스티븐은 신부인 안젤라가 대변하는 가정의 세계와 사슴 사냥이 대변하는 남성 친구들과의 우정 사이에서 분열돼 있다. 심지어 그는 안젤라와 한 번도 동침하지 않았는데 안젤라는 임신한 상태다.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는 사이에 불길한 전조처럼 신랑 신부가 잔을 나눌 때 포도주가 한 방울 흘러 신부의 웨딩드레스를 붉은빛으로 적신다. 결혼식의 춤 파티 장면도 존 포드의 영화에서처럼 고도로 조직되고 정해진 패턴이 있는 것이 아니라 즉흥적이고 불확실한 질서로 넘쳐나는 듯한 느낌을 준다.
로버트 드 니로가 연기한 주인공 마이크는 그 거대한 붕괴의 순간을 목격하는 영웅이다. 마이크는 카리스마가 강하고 다른 사람에 비해 우월한 능력을 지녔지만 본질적으로는 고독한 인물이다. 그는 미국 문명에 모호한 태도를 취하지만 결국에는 미국 문명의 가치를 보호하려고 애쓴다. 그러나 그는 성공하지 못한다. 영화 말미에 마이크는 러시안 룰렛 게임에 중독돼 함락 직전의 사이공에서 돈을 걸고 룰렛 게임을 하고 있는 닉을 구하려 사이공에 가지만 닉은 허망하게 죽는다. 마이크는 삶에 대한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지 못한다. 친구들은 고인이 되거나 폐인이 됐고 고향은 풍비박산 났다. 귀향한 마이크는 다시 사슴 사냥을 나가지만 방아쇠를 당기지 못한다. 사슴의 맑은 눈을 보고 총구를 내리는 이 장면을 두고 뻔한 휴머니즘의 감상으로 폄하할 수도 있겠지만 이야기의 맥락에서 보면 마이크는 이미 인생에서 방아쇠를 당길 시기를 놓쳐버린 것이다. 단 한번 승부하는 것이 인생이다. 흘러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디어 헌터>는 미국 신화의 만가이자 청춘의 만가이기도 하다.

<천국의 문>, 거장이 될 뻔한 감독의 원죄

마이클 치미노가 데뷔 당시부터 꿈꾼 프로젝트였던 <천국의 문>은 미국 서부극 신화의 장대한 붕괴라는 치미노 특유의 비전을 만천하에 보여줄 만한 위대한 업적일 수도 있었다. ‘존슨 주의 전쟁’이라는 실제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한 <천국의 문>은 일찍이 미국에 도착해 기득권을 가진 농장주들과 뒤에 도착한 이민 농부들 사이에서 일어난 백인들끼리의 학살을 다루면서 아메리칸드림의 원죄 의식을 장쾌하게 묘사했다. 유럽의 평단은 절찬했지만 미국 내에서는 악의적 비난을 산 이 영화는 그대로 치미노의 원죄가 돼버렸다. 치미노는 5시간 25분 분량의 감독 편집판을 자신의 집에 소중히 보관해두었으며 그 오리지널 영화는 칸에서 상영돼 대단한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비슷한 수모와 복권 절차를 밟았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1984)와는 달리 <천국의 문>은 아직까지 미국에서 명예 복권을 이루지 못했다. 미국인들에게 서부 시대의 역사를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처절한 유혈극으로 묘사한 이 영화는 치욕의 얼굴인 것이다.
<천국의 문> 이후 치미노는 계속 비틀거렸다. 1985년 올리버 스톤의 각본으로 만든 <이어 오브 드래곤>(1985)은 뛰어난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인종 차별주의라는 비난을 또 들으면서 극장 흥행에서 참패했다. 미키 루크가 주연한 이 영화는 <프렌치 커넥션>(1971)이 그랬던 것처럼, 이념적 지평과 상관없이, 차이나타운에서 벌어지는 범죄의 현장과 그에 맞서는 백인 우월주의자 형사의 모습을 가감 없이 제시한다. 유럽에선 절찬했지만 미국에선 냉대 받은 이 영화 이후로 미국에 발붙이기 어렵게 된 치미노는 유럽 시장을 노리고 디노 드 로렌티스의 제작으로 1987년 <시실리안>(1987)을 찍었다. 그러나 1백46분 분량의 감독판 편집본 대신 다시 1백 15분 분량의 축약판으로 공개된 이 영화는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도적 살바토르 줄리아노의 성격을 밋밋한 포커페이스로 연기한 주연 크리스토퍼 램버트의 우스꽝스런 연기만큼이나 작품성이 형편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마이클 콜린스>를 연출하겠다는 일련의 기획이 계속 거절당하면서 치미노가 마지못해 만든 1991년 작품 <광란의 시간>(1990)은 윌리엄 와일러의 영화를 리메이크한 것이었으나 원작과 비교당하면서 조소만 샀다. 1996년 칸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작 <선체이서>가 공개될 때 사람들은 더 이상 치미노의 신작을 기대하지 않게 됐다. 실제로 <디어 헌터>와 <천국의 문>을 그토록 그럴듯하게 만들어줬던 혼란스럽고 풍부한 이미지가 <선체이서>에는 보이지 않았다.

조숙한 대가, 시대의 희생양


시대를 잘못 타고난 치미노는 불운했다. <천국의 문>은 시대착오적 스펙터클이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에는 그런 영화를 만드는 게 유행이었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슬랩스틱 코미디의 감성으로 전쟁 영화를 연출해 마치 미치광이가 찍은 것 같은 해방감을 줬던 <1941>(1979)을 만들었고 마틴 스콜세지는 재즈 시대에 대한 향수를 담은 153분짜리 대작 <뉴욕, 뉴욕>(1977)을 만들었다. 코폴라는 한술 더 떴다. 자신의 조에트로프 스튜디오에서 찍은 초호화 뮤지컬 <원 프럼 더 하트>(1982)는 <천국의 문> 못지않게 흥행에 참패했다.
뉴할리우드 시대의 감독들은 그렇게 몰락했다. 스필버그와 루카스가 할리우드의 제왕으로 떠오르는 순간에 그들과 동시대를 살았던 다른 감독들은, 스콜세지와 드 팔마를 빼면, 대다수가 몰락했다. 아메리칸 뉴시네마가 종언을 고하는 시점에서 위대한 할리우드의 부활을 꿈꿨던 패기만만한 감독들의 '표현 과잉' 시대는 짧게 끝났다. 그들은 자기 세대의 존 포드, 하워드 혹스, 윌리엄 와일러가 되고자 했으나 그것으로 종말이었다. 특히 마이클 치미노의 몰락은 할리우드 르네상스의 몰락을 알리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그의 몰락으로 할리우드는 새로운 표현법과 이상주의 정신을 이식받을 뻔한 기회를 놓쳤다. 로빈 우드의 표현대로, “치미노는 좋건 나쁘건 간에 이상주의와 그것을 믿고자 하는 의지를 갖고 있다. 치미노의 이상주의는 현대문명이 폐기 처분해 버렸지만 여전히 숭고함과 순수함을 가지고 있는 인물에 대한 탄식을 만들어낸다”.

글/
김영진(영화평론가, 명지대 영화․뮤지컬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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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6~18일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리는 엘리아 카잔 특별전

엘리아 카잔(1909~2003)에 대한 언급 가운데 아마도 가장 흔하게 접할 수 있는 것이 새로운 연기 스타일을 스크린에 도입한 영화감독이라는 평가일 것이다. 배우가 극중 인물에 몰입할 것을 요구하는 메소드 연기를 중심 원리로 삼아 배우들로부터 뛰어난 연기를 끌어낸 그와 함께 본격적인 리얼리즘 연기가 미국 영화사에 등장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카잔이 영화 카메라를 단순히 자연주의적인 ‘기록’의 도구로 간주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카메라는 오히려 현미경에 더 가깝다고 생각했고 사람들의 외양 너머로 더 들어갈 수 있다고 보았다. 실제로 카잔의 영화 속에 포착된 인물들은 내면에서 타오르는 어떤 ‘불꽃’을 보여주었다. 대개 그들은 그 원인이 내적인 불안에 의한 것이든 아니면 사회적 억압에 의한 것이든 여하튼 고뇌에 찬 이들이었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1951)나 <워터프론트>(1954)가 예증하듯, 그런 인물들을 그린 카잔의 영화들은 진지하고 어른스러운 면을 갖추면서 당대 영화의 한계를 넓히는 것들이었다. 그런 면에서 마틴 스코세지 같은 이는 카잔을 두고 이후의 우상파괴주의자들을 위한 길을 닦아놓은 영화감독이라고 평가하기까지 한다. 4월 6일부터 18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리는 ‘엘리아 카잔 특별전’은 지난해 탄생 100주년을 맞이한 이 대가의 작품들을 되돌아볼 수 있는 자리이다.

상영작 가운데 가장 먼저 시선이 가는 것은 카잔의 대표작인 <워터프론트>이다. 영화는 폭력과 배신이 난무하는 뉴욕의 한 부두를 배경으로 조합을 지배하는 불량배들 밑에서 일하던 테리 말로이의 도덕적 각성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탄탄하게 짜여 있는 극적 구조 안에서 앙상블 메소드 연기가 빛을 발하며 정의롭지 못한 사회에 대한 단호한 시선마저 돋보인다는 점에서 <워터프론트>는 빼어난 작품임에 틀림없다. 이에 동의하는 많은 평자들도 한낱 ‘밀고자’가 고통 받는 그리스도와 같은 인물로 격상되는 후반부에 대해서는 의문을 표했다. 누군가는 극적 논리의 허술함을 이야기하는가 하면 또 다른 이는 파시스트적 구실이라고 혹평하기도 했다. 사실 많은 이들은 후반부에서 테리의 울부짖음은 카잔 자신의 외침이라고 보았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이 영화를 만들기 전 카잔이 반미활동위원회의 청문회에 참석해 공산주의에 동조한 동료들의 이름을 불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런 사실을 감안하면 <워터프론트>는 ‘밀고자’ 카잔 자신에 대한 영화적 변명처럼 들린다(시나리오를 쓴 버드 슐버그 역시 카잔과 같은 행동을 한 인물이었다). 여하튼 카잔의 이런 전력은 그의 경력 내내 따라다녔고, 특히 1999년 아카데미 평생공로상을 수상할 때 많은 논란을 낳았다. 이 ‘우호적’ 증언의 행위와 관련해 흥미로운 사실은, 카잔은 오히려 그 일 이후에 좀 더 뛰어나게 된 유일한 영화감독이었다는 점이다.

사실 영화가 만들어진 당시의 사정을 무시하고 영화를 보면 말론 브랜도가 연기한 테리는 빼어나게 그려진 반항아로 보일 수도 있다. <에덴의 동쪽>(1955)은 또 다른 스크린의 반항아 제임스 딘의 존재가 그야말로 불타오르는 영화이다. 현대판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에서 그는 사랑을 갈구하는 젊은이를 특유의 무너질 듯 과민한 모습 안에 담아 당대 젊은이들에게 거대한 반향을 일으켰다. 다른 한편으로 <에덴의 동쪽>은 와이드 스크린 화면 안에다가 인물들의 심리와 관계를 표현하려는 카잔의 시도가 돋보이는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평론가 데이비드 톰슨은 이 영화를 카잔의 최고작으로 꼽은 바 있다. 그 자리를 조너던 로젠봄은 <대하를 삼키는 여인>(1960)에 넘겨줬다. 영화는 댐이 건설되면 침수될 지역에 남아 있길 원하는 완고한 부인에게 땅을 팔라고 설득하러 온 정부 관계자의 이야기를 그린다. 이제 전통과 발전, 완고한 개인주의와 공공을 위한 선(善), 낭만주의와 실용주의 사이에 전선이 형성되는 것을 알 수 있을 텐데, 여기서 카잔은 어느 한편에 편향된 시선을 주지 않는 사려 깊음을 보여준다. 물론 미묘하게 그려진 러브 스토리도 주목을 요한다. ‘엘리아 카잔 특별전’에서는 언급한 작품들 외에 <신사협정>(1947), <거리의 공황>(1950),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초원의 빛>(1961) 같은 영화들이 카잔의 세계를 조망할 기회를 줄 예정이다. (홍성남_영화평론가)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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