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 시모닌의 원작소설이 처음 나온 것이 1953년의 일이니, 자크 베케르가 <현금에 손대지 마라>를 영화화한 것은 꽤 재빠른 시도였다. 갈리마르의 ‘세리 누아르’에 실렸던 이 소설은 초판 20만부가 팔리는 인기를 얻었고 유명한 문학상인 되 마고 상(Prix des Deux Magots)을 수상했다. 은퇴를 앞둔 노년의 갱스터가 주인공들이다. 오랜 친구인 막스와 리톤은 마지막 노후를 편하게 보내려 공항에서 금괴를 강탈하는데, 계획과는 달리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 우정을 너무 과신했던 탓이고, 금괴 강탈에 야심을 보인 눈치 빠른 신흥 갱 안젤로의 도전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베케르가 이 소설에 관심을 보였던 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두 사내들의 우정과 배신의 이야기가 흥미를 끌었다. 게다가 은퇴를 앞둔 그들의 나이가 중요했다.

트뤼포의 찬사를 빌자면, 이 영화는 쉰을 넘긴 사내들의 우정의 이야기다. 시모닌과 자크 베케르는 쉰을 앞두고 있었고, 주인공인 막스 역의 장 가뱅이나 리톤 역의 르네 다리는 이제 막 쉰을 넘긴 나이였다. 나이를 먹는 것은 그들 각자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사내들의 우정이라 말했지만, 막스와 리톤의 관계는 과장된 정념보다는 지극히 일상적인 행위들과 제스처들의 느슨한 연결로 묘사된다. 금괴의 강탈, 갱들 간에 벌어지는 폭력적 행동과 결과보다는 그들의 행위를 관찰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령, 위험에 처한 리톤이 막스의 아파트에 머무는 장면은 거의 10여 분간 지속되는데, 여기서 우리가 발견하는 놀라운 순간들이란 고작 그들이 포도주를 따서 잔에 따르고 빵에 치즈를 발라 먹거나 잠에 들기 위해 침대보를 정리하고 양치질을 하고 파자마를 갈아입는 장면들이다. 죽음의 리듬에 가까운 이 순간들은 참으로 아름답고 숭고할 지경이다. ‘곤충학자’처럼 인물의 행위와 제스처, 디테일에 편집광적인 집착을 보였던 베케르의 진면모가 이런 느슨한 장면들에서 엿보인다. ‘황혼의 프렌치 누아르’라 부르고 싶은 동시대 장 피에르 멜빌의 <도박꾼 밥>(1956)과 줄스 다신의 <리피피>(1955)와 미적 차이를 보이는 지점이기도 하다.


자크 베케르는 전후 프랑스 영화에서 가장 대중적인 장르였던 프렌치 누아르의 개척자였다. 1940년대 아메리칸 시네마에 명명된 ‘필름 누아르’란 프랑스식 표현은 정작 미국에서는 1950년대를 거치면서 소멸하기 시작하는데, 새롭게 베케르의 손을 거쳐 프랑스에서 생명력을 얻었다. <현금에 손대지 마라>는 미국식 필름 누아르를 차용하면서도 프랑스적 기원의 독특성을 체현한 작품이다. 장 가뱅이 연기한 막스는 1950년대 프랑스가 처한 상황을 떠올리게 하는데, 그는 낡은 세계와 새로운 세계, 전전과 전후 프랑스, 전후 프랑스와 미국의 격돌의 지대에서 고뇌한다. 그가 신흥 갱스터인 안젤로(이후 멜빌의 영화에서 두각을 보인 리노 벤투라가 이 영화로 처음 데뷔했다)와 다툼을 벌이는 것에서 팍스 아메리카로 대변되는 세계질서에의 프랑스식 저항의 흔적이 느껴진다. 장 가뱅은 레지스탕스의 적임자였다. 라스트에서 그가 보여준 몸짓은 친구를 떠나보내고 과거와 작별하는 숭고하고도 엄숙한 의례이다.

글/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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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범죄영화와 필름 누아르가 번영했던 1940년대 중반 이후의 미국 영화계에서, 줄스 다신은 그 장르를 대표하는 몇 편의 작품을 만들었다. 그런데 1950년대가 되자, 다신은 메카시 광풍에 휘말려 유럽으로 건너오게 되고, 프랑스에서 도시 범죄영화의 걸작 <리피피>(1955)를 만든다. 동시대의 어떤 영화보다도 파리라는 도시 공간과 그곳의 어두운 면을 잘 담아낸 영화였다. 감옥에서 막 출소한 주인공 토니 스페파노(장 세르베)는 다소 피로하고 무기력해 보이며, 친구의 범행 제의도 단번에 거절한다. 그러나 그는 곧 변심하여 동료들을 모아 더욱 큰 규모의 범행을 계획하게 되는데, 그 심리적 동기를 부여한 것은 옛 애인인 마도(마리 사보레)와 그녀의 새로운 정부인 갱단의 리더 루이(피에르 그라쎄)의 존재다.


<리피피>는 마치 비극의 구성처럼, 3막의 내적 구성을 취한다. 그 중간이자 변경점인 보석절도 시퀀스를 중심으로, 이 이전과 이후의 영화의 스타일과 템포가 확연이 달라진다. 즉, 이 시퀀스 이전에 토니를 중심으로 벌이는 범행의 준비과정은 느리고 무감각하게 진행되는데 반해, 이후에 벌어지는 다른 범죄 집단(루이의 패거리)과의 결투는 보다 빠르고 드라마틱하게 전개되는 것이다. 28분에 이르는 보석 절도 시퀀스는 어떠한 대사와 음악도 없이 그들의 행위와 그들이 발생시키는 소음만으로 이뤄진다. 절도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소리와 진동을 내지 않기 위한 싸움이며, 이것은 서스펜스를 만들어낸다. 절도의 과정은 밤부터 새벽까지 이어지는 매우 육체적인 작업이다. 영화는 이 과정을 매우 긴 시간동안 물리적으로 보여주면서, 범죄 행위에 대한 사실적인 체험의 느낌을 제공한다. 범죄 영화의 역사에서도 독보적으로 빛나는 이 시퀀스의 영향력은 프랑스 범죄 영화의 또 하나의 걸작인 장 피에르 멜빌의 <암흑가의 세 사람>(1970)에서 드러난다.


영화의 후반부에는, 토니와 그의 동료들과 루이의 패거리 간에 다툼이 벌어진다. 완벽한 것처럼 보였던 범죄행위는 일순간에 발각되어 무너져 내리는데, 이는 이태리인 금고털이 전문가 세자르(줄스 다신)가 클럽 여가수를 유혹하기 위해 준 선물인 반지 때문이다. 이 여가수와 토니의 옛 애인인 마도는 극적 비중이 별로 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남성들의 운명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이는 필름 누아르적 팜므 파탈이 갖는 치명성의 변주라 할 것이다. 토니와 루이 패거리들의 죽음은, 그 절멸은 마치 숙명적인 것처럼 보인다. 이와 함께, 느릿느릿하게 진행되던 영화의 서사는 후반부로 갈수록 단속적이고 급진적으로 변하는 몽타주를 통해 점점 빠르게 진행된다. 마치 그들이 이 숙명으로 빨려들어가는 것을 멈출 수 없음을 드러내기라도 하는 것처럼. 토니는 죽어가는 몸으로 친구의 아이를 집에 데려다 주기 위해 마지막 질주를 한다. 토니의 눈을 통해 바라본 세상의 풍경은 정신없이 뒤흔들리고 일그러진다. 토니의 이 마지막 시선에 담긴 이미지는, 그리고 <리피피> 전체에 담긴 운명론적이며 실존주의적인 어두움은, 메카시 광풍에 휘말린 줄스 다신이 바라본 그 당시 현실세계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박영석: 시네마테크 관객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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