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조금 특별했다. 이상했다고 말하는 것이 더 맞을지 모른다. 공립 대안학교였는데, 갓 한국에서 온 열여섯의 영어가 느린 동양인 여자아이에게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가지고 한 단어, 한 단어, 한 문장, 한 문장 토론하는 수업시간은 신세계였다. 매번 문학시간은 공포였고 두려움이었다. 나는 ‘일리야드’를 읽지도 플라톤의 ‘국가론’ 전문을 읽어본 적도 없었는데, 그곳의 아이들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미식축구 감독 욕을 하며 인용했고 세익스피어와 찰스 디킨슨 작품들을 학교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드라마에 비유하곤 했다. 그곳의 똘똘한 아이들은 나에겐 거대한 충격이었다. 난 거기서 살아남고 싶었고 말하고 싶었고 함께하고 싶었다. 

우리 학년에서 유행했던 고급 영국식유머를 배우고 즐기기 위해 <몬티 파이튼의 성배>를 보았다. 그 이후 ‘몬티 파이튼’ 시리즈를 섭렵했고, 아이들의 농담에 같이 웃을 수 있었다. 문학시간에 조셉 콘래드의 ‘암흑의 핵심’에 관해 토론할 때 미리 준비하려고 <지옥의 묵시록>을 보았다. 영화 속에서 커츠 대령이 낭독했던 ‘텅 빈 인간들’을 마치 영미문학에 조예가 깊은 듯 수업시간에 읽어보았다. 미국문화사를 배울 때 <록키>를 보고 그 시대의 미국을 느껴보려 했다. 운이 좋아 맞게 된 학교 연극반 연출을 할 때 뮤지컬 ‘지붕위의 바이올린’을 했는데 그때 난 영화판 <지붕위의 바이올린>을 수백 번도 넘게 보았던 것 같다. 외국인으로서 대사를 줄줄 외우려면 그 수밖에 없었다.

미국 아이들은 뮤지컬 노래를 잘도 외워 부른다. <마이 페어 레이디>의 ‘오늘밤은 춤이라도 추겠어요’는 성악을 공부하던 내 친구의 애창곡이었다. 도통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어 영화를 보았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는 미국 현대사 수업을 이해하기 위해 보았는데, 단순한 영화 감상평을 적어냈던 역사시간 주관식 시험에서 A를 받았다. 존 포드의 <분노의 포도>나 <황야의 결투>는 홈스테이 아저씨가 제일 좋아하던 영화였다. 무뚝뚝했던 아저씨와 단둘이 어색한 가운데 영화를 보며 미국의 개척자 정신이 어떤 것인가 감을 잡아 보려했다. 아저씨는 나의 영화 감상태도가 자기 딸들보다 좋다며 감동받으셨다. <7년 만의 외출>은 할로윈에 마릴린 먼로로 분장하겠다는 친구 때문에 수도 없이 보았다. 그렇지만 할로윈 파티에서 내 친구는 먼로만큼 섹시한 아우라를 뿜을 순 없었다. <대부>를 보지 못하고도 미국 남자아이들과 대화를 하겠다는 것은 그저 문화적으로 결핍된 사내들만 사귀겠다는 태도라고 봐도 무방하다. <대부>를 보았기에 난 미국 남자아이들의 대화에 끼어들어서 알 카포네 흉내 내는 그 아이들과 함께 웃을 수 있었다. 

단순히 서울 아트시네마의 작년 하반기와 올해 친구들 영화제 프로그램만 훑어도 나의 미국 고등학교 생존기를 설명할 수 있다는 점에 놀라며 이 글을 쓴다. 미국은 집이 크고 주거지와 상업지역이 나뉘어져 있어 여가를 즐기려는 다수의 미국인들은 홈시어터 세팅을 집에 가지고 있다. 부모님, 조부모님 때부터 모아온 방대한 양의 VHS와 DVD들은 과거부터 현재를 아우르는 그 집안만의 시네마테크, 시네마 아카이브를 만들고 있었다. 그들과 어울리면서 자연스럽게 고전영화들을 접했고 영화를 여가활동, 취미활동, 교양교육의 목적으로 보며 즐기는 사이에서 흑백영화의 매력을 발견하게 되었고 영미문화학습을 제대로 할 수 있었다.



시네마테크에서 주로 상영되는 고전영화와 예술영화는 미학적이고 예술적인 영화적 메시지를 지녔다. 멀티플렉스 극장에서 카라멜 팝콘을 먹으며 보는 영화와 달리 이 영화들은 옛 고전 문학을 읽는 듯한 영화적 소통의 느낌을 준다. 각 영화마다, 감독마다, 배우마다, 장면마다 여러 가지 의미가 부여될 수 있고 다양한 감흥들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그 여러 가지 부여된 의미 중 하나는 나의 미국 고등학교 시절 즐거웠던 서바이벌 학습법이다. 영화는 단순히 즐기기 위한 여가의 수단을 뛰어 넘어 복합 문화 예술의 창조물로서 역사, 문화, 풍토, 감성, 정치, 철학 등을 담고 있다. 오늘도 나는 세상을 배우기 위해 영화를 보고 서울 아트시네마를 찾는다.   

(배준영,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 관객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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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클럽] 정가형제 감독이 생각하는 ‘좋은 영화’ 보기

지난 26일 오후에 열린 두 번째 시네클럽 행사는 <기담>의 정가형제 감독과 함께했다. "요즘 어떤 영화 보세요?"라는 주제로 열린 이날 행사에서는 유년 시절을 영화광으로 보낸 정범식, 정식 감독이 ‘좋은 영화’에 대한 생각들을 이야기하고 데뷔작 <기담>의 작업 과정에 대해서도 들려주었다. 소탈하고 내밀했던 현장의 분위기를 전한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요즘 어떤 영화를 보는지?
정식(영화감독): 영화감독을 하게 되니까 영화를 더 못 보게 된다. (웃음) 작업을 하면 시간이 많지 않게 돼서.
정범식(영화감독): 중2 때부터 영화를 많이 봤다. 영화를 안 보면 입에 뭐가 돋을 것 같았다. 그런데 <기담>을 만들고 나서 느낀 것이지만 보는 영화와 만드는 영화가 다르더라. 볼 때는 미학적인 면으로 보지만 만들 때는 산업적인 측면으로 보게 된다. 만들어지는 과정을 많이 알게 되니까 작년부터 영화를 보는 것에 소원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동안 본 영화가 많아져서 그렇기도 한데, 요새 뜨겁게 다가오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이번 영화제에 <록키>를 추천하기도 했다.

김성욱:
어떤 영화를 좋은 영화라고 생각하고, 어떤 영화를 나쁜 영화라고 생각하는지?
정범식: 미술 하는 분들은 문외한들이 보면 '저런 걸 어떻게 좋다고 할 수 있지?' 싶은 작품도 좋게 평가할 수 있다. 영화도 그런 게 있는 것 같다. 꼭 이야기를 중심으로 보지는 않는다. 시나리오에 중점을 둔 영화라고 하면 드라마투르기를 보지만, 그런 것이 아니고 형식을 추구하는 영화라면 형식을 본다. 나는 오손 웰스의 영화 같은 형식미 있는 영화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어눌한 화법을 취하든 기막힌 형식미를 갖추고 있든 내용을 담는데 얼마나 충실한가에 초점을 맞춘다. <기담> 만들 때는 우리가 갖고 있는 내용은 별 것 아닌데 포장이 지나친가 하는 내적 고민도 했다.
정식: 솔직하지 않은 느낌이 나는 영화가 제일 싫다. 주제를 포장하기 위한 형식적인 가식들로 채워졌거나 '상을 타기 위해 만들어내는 장면이구나' 하는 것이 느껴지는 영화가 가장 싫은 영화다. 우리만의 편견일 수 있는데 그런 생각을 하는 이유는 같은 의견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 영화가 왜 가식인가' 하는 의견을 나눌 때 몇몇 사람들과는 의견이 너무나도 잘 일치한다.
정범식: 영화도 사람 만나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인간관계에서도 진심과 가식이 느껴지지 않나. 이건 영화니까 하고 다른 잣대를 갖고 보시는 분도 있을 것 같은데 사람들 만나는 것, 뭔가를 접하는 것과 다른 게 없다.

관객:
<기담>에서 배우와의 작업를 위해 준비하셨던 게 있으신지 또 실제 작업하면서 ‘다음엔 이렇게 하겠다’는 교훈을 얻으셨는지 궁금하다.
정범식: 생각보다 영화 찍기 전에 연기 연습들을 많이 안 한다. 대중 영화라면 앉아서 몇 번 리딩하는 정도? <다크 나이트>의 히스 레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하비에르 바르뎀 같은 연기가 그냥 나오지는 않는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두 달 동안 캐릭터 만들고 말투 만들고 몸짓 만드는 분들도 있지만 전체적 환경이 그렇지 못하다. 우리는 작업실을 구해서 씬 연습을 많이 했다. 동선을 다 긋고 동선에 따른 자세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기반으로 콘티를 짰다. 배우들 중에서도 연극작업에서부터 연기를 전통적으로 공부한 분들은 '이런 것에 목말라했었는데 너무 좋다'고 했고 그냥 편하게 그날그날 하는 배우는 '왜 이렇게 해야 하지' 하는 당혹감을 표현하더라. <기담>의 연기에 대해 한 평론가 분이 말투가 어눌하다고 했는데 그건 사실 그렇게 만들어놓고 간 거였다. 시대색으로. 물론 자의식이 강한 배우는 이런 연습을 반기지 않을 수도 있어서 사람마다 잘 조절해야 할 것 같다.
정식: 무엇을 준비했는지 안 보여주고 있다가 즉석에서 딱 보여줬을 때 모두에게 찬사 받을 수 있는 순간이 있지 않나. 현장에서 그런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을 선호하는 배우가 있다. 그런데 <기담>에서는 어느 한 순간 재치를 보여주는 연기가 거의 없다. 웃겨야 한다거나 기막힌 동선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고 영화 프레임 안에 가둬놓는 형식을 취했기 때문에 연습이 꼭 필요했다.


정범식: 그리고 배우가 이전에 있었던 모습을 씻어내지 않은 상태에서 똑같이 반복하는 게 싫었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것을 정확히 얘기하고 그 안에 들어올 수 있는지를 먼저 물었다. 이런 저런 훈련을 제안하기도 하고, 의견을 듣고 변형시키기도 하고. 촬영 준비를 하고 콘티를 짜는 와중에도 어떤 훈련을 했으면 좋겠는지 얘기한다. 그게 되는 분들이 있고 ‘왜 날 가둬두느냐’ 하는 분도 있다. 그런 걸 해줄 수 있는 사람을 주로 만난다. 봤던 걸 또 보는 건 관객의 입장에서 재미없지 않나.

(정리: 최용혁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 관객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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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토크] 정가형제가 추천한 존 G.아빌드슨의 <록키>

지난 26일 저녁, <록키>의 상영이 끝나고 이 영화를 추천한 형제 영화감독 정가형제(정범식, 정식)와 함께한 시네토크가 있었다. 유쾌한 웃음과 순수한 감동이 감돌던 상영 때의 분위기가 그대로 이어진 시간이었다. 오랜 추억과 재회한 이들의 기쁨과 새로운 영화를 만난 이들의 가벼운 흥분이 교차하던 그 현장을 전한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록키>는 두 분이 같이 추천하신 것인지?
정범식(영화감독): 작년 친구들 영화제 때 일정이 맞지 않아서 참여하지 못했는데, 그때부터 동생이랑 ‘<록키> 보고 싶지 않냐’고 얘기 하다가 추천하게 되었다.
김성욱: 왜 갑자기 이 영화를 떠올리게 되셨나?
정범식: 잘 모르겠다. <록키>가 76년 작이니까 우리도 개봉 당시에 극장에서 보지 못했다. 나는 중학교 때 <록키3>를 동시 상영관에서 보았고, 친구가 구해온 <록키4> 불법 비디오를 보면서 열광했었다. <록키>는 TV에서 봤었는데, 그때 더빙된 실베스터 스탤론의 목소리도 상당히 멋있었다. (웃음) 요새 순수한 정서로 사람의 마음을 울렁이게 하고 움직이게 하는 영화들을 많이 못 봤다는 생각이 무의식적으로 들었기 때문인지, <록키>같은 영화를 보고 싶었다. 차갑게 식어버리는 것 같은 마음에 뜨거운 감동을 받고 싶다는 내적 갈망이 있었던 것 같다.
정식(영화감독): 내 기억에는 아주 어릴 때 형이랑 할머니 댁에서 주말의 영화로 <록키>를 봤다. 그 이후에 오늘 처음 봤는데, 기억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편하고 쉽게 볼 수 있는 영화를 오랜만에 봤다는 생각이 든다.

김성욱:
나도 <록키>를 중고등학교 때 TV를 통해서 봤었다. 오늘 오랜만에 보니 느낌이 굉장히 다르다. 시간이 지난 뒤에 다시 보신 느낌은 어떤지?
정범식: 어렸을 때 본 영화들을 잘 기억하는 편이다. 오히려 가까운 과거의 영화들은 잘 기억나지 않는데, 예전에 보고 감동을 받았던 영화들은 굉장히 명징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사실 <록키>도 모든 것들이 다 기억이 났다. 세세한 대사 디테일만 좀 달랐을 뿐이지 그때 그 시절의 느낌이 다 그대로 있는데, 거기에 더해서 각본이나 연출에 있어서 꼼꼼한 부분들을 보게 되었다. 또 큰 화면으로 보니까 더 뭉클한 감동을 받은 것 같다.
김성욱: 그 시절의 느낌이라면?
정범식: 그 당시에는 이런 단어로 표현할 수 없었겠지만, 록키가 굉장히 어눌하고 루저 같은 삶을 살지 않나. 그런데 그런 것들을 극복하면서 인간승리로 다가가려고 했던 지점, 그리고 애드리언의 마음을 열려고 하는 모습들, 그리고 폴리가 심술궂게 구는 장면들을 보면서 어떻게 이렇게 캐릭터들이 잘 조합되어 나를 움직여가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또한 모두가 공감하시겠지만, 음악을 이렇게 활용해서 큰 울림을 준다는 것에도 감동받았다.

김성욱:
오늘 보면서 두 가지 장면이 특히 기억에 남았다. 하나는 스케이트 장에서 시작되는 첫 데이트 장면이었고, 뭉클하게 느껴지는 것은 역시 코치와 이야기하는 순간의 실내장면이었다. 두 분은 어떤 장면이 인상적이었는지?
정식: 원래 유명한 장면들도 인상적으로 봤지만, 록키가 애드리언을 집으로 들이려고 하는 장면에서 애드리언이 약간의 기다림을 주고 있는 느낌이 좋았다. 그리고 애드리언의 마음이 열리는 순간 흘러나오는 피아노 음악도 굉장히 감미로웠다.
정범식: 문이라는 모티브를 굉장히 잘 활용하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애드리언이 일하는 가게에 있던 개도 개장 안에 갇혀있었고, 록키가 애드리언에게 농담을 걸 때도 새장에 갇힌 새가 계속 나온다. 그리고 코치가 록키의 집으로 찾아왔을 때도 계속 문밖에서 이야기를 하고, 애드리언의 방문을 열기 위해서 록키가 계속 그 앞에 서서 두드리며 말을 거는 장면도 있다. 록키가 애드리언을 집으로 들이려고 할 때도 농담을 던지던 록키가 먼저 건물 속으로 사라지고, 손만 나와서 문을 살짝 열어준다. 그런 장면들을 보면서, <록키>는 인물들이 새장 밖으로, 집 밖으로 나오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크리스마스에 폴리가 난동을 부리는 장면에서 애드리언 앞에는 빈 새장이 있다. 거기에는 더 이상 새가 갇혀있지 않은 것이다. 이 영화에서는 록키의 집요함이나 고집스러움을 조금씩 드러낸다. 예를 들어 록키가 훈계하던 꼬마 여자아이가 자신에게 욕을 할 때, 루저 같은 모습으로 쓸쓸한 뒷모습을 보이지만, ‘저런 모습으로 돌아서지만 다음에 저 여자애를 봐도 또 똑같은 이야기를 할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되는 캐릭터의 느낌을 계속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 동반되는 것은 음악인데, 오늘 재보니 ‘Gonna Fly Now'의 완곡이 나오는 것은 영화가 시작되고 한 시간 반이 지난 지점이었다. 그런데 그 전에 계속 발라드로 편곡된 버전의 곡을 삽입해서 관객들이 멜로디를 익힐 수 있게 해준다. 그러나 그 곡 전체의 정체는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 나중에 록키가 훈련하며 필라델피아의 거리를 뛰어다니다가 필라델피아 미술관의 계단에서 두 손을 치켜드는 장면에서 그것을 확 터트려준다. 거기서도 이 영화가 엄청나게 디테일하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어떻게 보면 전형적인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사실적인 촬영과 잘 세공된 시나리오, 연기, 미장센이 있다.


김성욱: “재 시합은 없다”는 대사를 좋아한다(웃음) '재 시합이 없다'곤 했지만 <록키 발보아>에 이르는 시리즈가 이어지며 수많은 재 시합을 벌이게 된다. 이 뒤의 시리즈도 보셨는지?
정범식: 어렸을 때 스탤론을 워낙 좋아했기 때문에 다 봤었다.
김성욱: 실베스터 스탤론을 좋아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정범식: 다른 애들이 스탤론을 좋아하는 데는 B급 액션영화를 좋아하는, 약간 마초적인 감성이 있었다.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스탤론의 면모는 약간 루저 같은 부분들이다. 사실 스탤론이 최악의 배우로 많이 뽑히지 않았나. 그러나 스탤론이 몇몇 영화에서 보여준 연기는 탁월한 면들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정식: 축 처진 눈이 너무 멋있었다. 그리고 어렸을 때 누구나 하나씩 책받침으로 갖고 있었던 <코브라> 포스터에서의 스탤론의 사진은 정말 나를 압도했었다. (웃음) <록키> 이후에 <람보2>라는 어마어마한 히트작이 있긴 했지만, 지금에 와서 대표작을 꼽자면 <록키>가 마지막으로 남는 것이 아닌가 한다. 옛 생각이 나서 <람보4>가 개봉했을 때 극장에서 돈을 내고 본 몇 안 되는 사람 중에 하나인데 가슴이 아프더라. 영화도 너무 구시대적인 영화였고, 그 안의 스탤론도 이미 너무 늙어버렸더라.

관객1: 아폴로는 흑인이고, 나올 때도 조지 워싱턴의 제스처를 하며, 성조기 복장을 하고 나온다. 그런데 록키는 이름도 ‘이탈리아 종마’고 영화의 대사 중에서도 "미 대륙을 발견한 것은 이탈리아인이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일종의 대결 구도를 설정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정범식: 애초에 어떤 회사에서 기획해서 만들어진 영화라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스탤론 스스로가 쓴 시나리오로 만들어진 영화기 때문에 조금 다를 것 같다. 시나리오를 쓸 때 백인 대 백인의 대결구도보다는 흑인을 상위에 둔 흑인 대 백인의 구도가 더 재미있겠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 그리고 이왕이면 그 흑인이 백인이 가지고 있었던 전유물 같은, 이를테면 조지 워싱턴의 이미지 같은 것을 갖고 오면 재미있지 않을까 하는 발상의 전환을 했을 것이다.


관객2: 오늘 <록키>를 처음 보았는데,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막연하게 권투영화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실제로는 차라리 멜로영화에 가깝다고 느꼈고, 그런 표현들이 굉장히 섬세하게 느껴졌다. 이렇게 다양한 부분이 있는데 왜 단순히 권투영화로만 비춰지는지?
정식: 그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록키라는 인물이 인간승리를 해야 한다면 구조상 어떤 것을 쟁취해야하는데, 그 당시에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권투에서 이겨나가는 것이 가장 손쉽게 인간승리를 보여줄 수 있었던 방법이고, 소재 자체도 재미있으니까. 또한 록키가 권투를 했기 때문에 지금 같은 캐릭터도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동물적이고 인간들이 모두 갖고 있는 본성에 가까운 느낌을 건드려주는 부분도 있다. 그래서 당연히 스포츠라는 소재를 택한 것 같다.

관객3: 남자로서 록키라는 인물을 어떻게 보셨는지?
정범식: 일단 지금 시대에 비춰볼 때 명확히 짐승남이다. (웃음) 물론 사람마다 취향이 있으니까 저런 것보다는 학자 스타일의 초식남을 좋아하시는 분도 있겠지만, 저 정도의 순수함이라면 많이 어필할 수 있을 것 같다.
정식: 록키 같은 캐릭터는 현실에 없을 것 같고, 다른 남자를 찾아보시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웃음) 너무 매력적이고 순진하면서도 싸움도 잘하고, 착하기도 하고. 록키를 찾는 게 정말 아메리칸 드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김성욱: 두 감독님이 <록키>를 추천해주시면서 ‘우리 힘을 내자’는 메시지를 전해주셨다. 두 분도 힘을 내서 올해 영화 작업을 하시게 될 것 같은데, 앞으로의 계획은?
정범식: 이번에는 따로 작업을 하게 된다. 내가 준비하고 있는 것은 여자가 주인공인 로맨틱 액션 코미디이고, 기존의 대중들이 좋아할 요소가 많이 있는 가운데 아주 조금 다르게 찍어볼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정식: 지금 소설을 각색하고 있고, 계획대로라면 올 가을에는 촬영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 또 다시 시대극이 될 것 같다.
김성욱: 영화를 만드는 것도 일종의 싸움을 벌이는 것 같은데, 링 위에서 끝까지 버텨서 승리를 거두는 게임을 하셨으면 좋겠다. 감사드린다.

(정리: 박예하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 관객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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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키>는 아메리카 대륙에 발을 딛을 때부터 시작된 아주 오래된 믿음인 아메리칸 드림을 해체하고 재정립하는 영화다. 이태리에서 온 이민자 후손 록키 발보아는 하루하루를 4회전 복서로 살아간다. 그것만으로 돈벌이가 되지 않자 건달 노릇까지 하면서 구차하게 돈을 번다. 그러던 어느날 헤비급 세계 챔피언 아폴로 크리드에게 도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1976년에 만들어진 <록키>는 제작과정부터 아메리칸 드림의 전형을 보여준다. 명제작자 어윈 윈클러에게 <록키>의 시나리오가 눈에 띄기 전까지 스탤론은 33번의 흥미 없는 시나리오를 쓴 가난한 이민자 중 한 사람에 불과했다. 하지만 실베스터 스탤론은 <록키>의 감독, 작가 그리고 배우를 모두 소화해 내며 일약 스타가 된다.
 

<록키>는 과거와 현재 사이의 간극. 즉, 노스탤지어를 구체화한다. 구체화된 노스탤지어의 조각들은 록키의 펀치들로 모아지고 관객들은 그의 시도에 공감한다. 초기 개척자들, 이민자들이 아메리칸 드림의 구현을 위해 시도했던 것들, 일찍이 자신의 삶을 희생했던 사람들이 보여준 삶의 용기라는 그 감정과 노력을 되새김질 한다. <록키>는 미국을 다각도로 파헤친다. 이를테면 영화에서 독립기념일, 추수감사절과 같은 미국의 중요한 명절들이 언급된다. 그러나 그 날들은 다른 느낌으로 채색된다. 추수감사절엔 그날의 상징인 칠면조를 밖으로 내던져버리고, 독립기념일엔 가난한 복서와 챔피언이 대결을 한다. 이런 모습에서 미국은 더 이상 아메리칸 드림의 환상이 아니다. 

영화는 미국이 쌓아온 굳건한 신화의 벽을 하나씩 깨트린다. 그 벽이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은, 록키가 아폴로와 싸우는 장면일 것이다. 아폴로 크리드는 챔피언이라기 보다 광대에 가까워 보인다. 그는 경기장에 들어오면서 조지 워싱턴을 흉내내는가 하면 들어와서는 "I want you!"를 남발하며 2차 세계대전 시절의 징집 포스터 엉클 샘을 흉내 낸다. 이는 자극적이고 직접적으로 미국을 우스꽝스럽게 풍자하는 것이다. 그것도 흑인복서의 이름으로. 


쓰러 트려야 할 미국의 신화, 오만 그리고 편견은 8:7이라는 스코어로 쓰러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 점수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경기장의 관객들과 영화관의 관객들은 알 것이다. 8:7은 미국이라는 이름의 체면을 살리기 위한 그들의 발악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 사이에 15회까지 서있었던 록키(사회의 소수자들)가 빛을 발한다. 아직까지 그 무엇도 이루어 보지 못했다던 록키는 자신과의 약속 15회를 버텨냈다. 록키의 시도, 그것은  혁명이자 미국에게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는 주먹이다.
(정태형: 시네마테크 관객에디터)

Cine-Talk
1월 26일(수) 19:00 <록키> 상영후 정가형제 시네토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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