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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6.28 페데리코 펠리니의 모더니티에 대한 의문

[영화사강좌3] 유운성 프로그래머가 본 펠리니의 모더니티

페데리코 펠리니 회고전이 한창인 시네마테크 전용관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펠리니의 작품세계를 보다 폭넓게 살펴볼 수 있는 '펠리니의 달콤한 영화읽기'란 영화사강좌가 열리고 있다. 지난 19일 오후 4시 그 세번째 시간에는 유운성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가 '페데리코 펠리니의 모더니티에 대한 의문'이란 제목으로 강연을 펼쳤다. <로마>를 중심으로 펠리니 세계에 대해 다양한 시각을 알려준 유운성 평론가의 강연 일부를 여기에 옮긴다.


유운성(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로마>부터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자면, 나는 기차역 장면부터 출발하려 합니다. 기차가 일상의 탈것처럼 보여지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기차역, 기차역 내부 같은 것은 아주 특권적인 공간으로 묘사됩니다. 예컨대 오즈의 기차가 인상적이긴 하지만 등장인물들에게 색다르고 경이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오즈가 그것을 포착하는 시선이 인상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펠리니의 <로마>에선 19살의 펠리니가 로마에 도착하던 경험이 그대로 담긴 것 같습니다. <로마>에는 관광객의 시선이라고 할 만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역사 간판인데, <로마>에서 기차가 도착하는 장면, 테르미니 역 간판 밑 포스터는 마리오 카메리니감독의 <백화점>이라는 영화의 포스터입니다. 이 영화가 이탈리아에서 개봉된 때가 펠리니가 로마에 도착했던 1939년 6월입니다. 이 포스터가 붙어있는 건 시기적으로도 맞아 떨어집니다. 대도시에 갓 도착한 시골사람이 느낀 경이가 보이는 것입니다. 단독으로 연출한 첫 장편 데뷔작, <백인추장>이라는 영화는 <로마>의 첫 장면과 매우 유사합니다. 이것 말고도 베르도 라투아다와 공동연출한 <다양한 불빛>이라는 걸 보면 역시 기차역은 평범한 공간이 아닙니다. 남녀주인공의 첫 만남, 남주인공이 여주인공에게 버림받은 이후에 한 눈을 파는 장소도 기차입니다. 이는 후기 영화들에도 나타납니다. 기차역을 떠날 때의 광경은 펠리니의 세 번째 장편 <비텔로니>에서 간접적으로 묘사됩니다. 모랄도가 마을을 떠나는 장면에서 그것이 보여지는데 이 장면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입니다. 로마에 갓 도착한 청년이 자신이 살던 고향 마을을 떠날 때의 모습정도입니다. 기차를 타고 떠난 청년의 이후 모습이 로마 테르미니역에 도착한 청년의 모습입니다.

<비텔로니>같은 영화를 놓고 보면 실제로 펠리니가 리미니에서 살았음이 분명한데 그는 이 영화를 리미니에서 찍진 않았습니다. 세트도 아니고 외딴 마을에서 찍은 것도 아닙니다. 인근 다른 마을들을 돌아다니며 곳곳풍경들을 조합해서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허구의 마을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나중에 <아마코드>에서는 고향마을 전체를 거대한 스튜디오 안에서 창조해 찍게 됩니다. 고향인 리미니의 기억들이 영화에 등장하기는 하지만 펠리니는 직접 고향의 모습을 담은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펠리니는 내밀한 추억조차도 영화제작현장 세트라는 경이의 공간에 가져다놔야 직성이 풀리는 감독이었습니다. 영화의 제목과 관련해서 말씀드리면, '비텔로니'는 '비텔로네'가 되는데 이것은 일종의 사투리로 대략 정규학업과정 마치고 할 일 없이 빈둥거리는 백수 한량을 일컫습니다. 영화에 펠리니의 고향에 대한 경험이 반영되었지만 비텔로네는 20대 중반에서 30대 초반을 가리키는 것인데 그는 이 시기를 고향에서 보낸 적이 없습니다. 펠리니가 고향에서 경험한 시절은 마지막 장면인 모랄도를 배웅하는 귀도라는 꼬마, 그 꼬마정도의 시절만을 고향에서 보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비텔로니>는 펠리니 자신도 애착을 느끼는 영화 중 하나였고 그는 이 영화에 대한 속편의 기획도 했었습니다. 제목은 <도시의 모랄도>였고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도시의 모랄도>는 고향을 떠나서 도시에 도착한 모랄도가 겪는 로마의 기이한 이야기들, 방탕, 희망 등이 중심플롯이었다고 하는데, 이런 것을 보면 웰즈의 직관이 그럴싸하게 느껴집니다. <도시의 모랄도>는 <달콤한 인생>의 원안이 되었던 기획입니다. 최종 완성본에는 마르첼로가 주인공이지만 기획시의 주인공이 모랄도였다고 합니다. 배우가 캐스팅되면서 배우의 실제이름을 극 중 인물에 반영하는 펠리니의 버릇에 따라 마르첼로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비텔로니>의 속편, 마지막으로 '기차'라는 공간을 특권적으로 낭만화하는 펠리니의 성향을 볼 수 있는 장면은 <8과 1/2>에서 정부가 도착하는 순간. 평범한 장면이긴 하지만 기차가 도착하는 공간 자체를 판타지에 가깝게 그려내는 펠리니의 성향이 잘 보여지는 장면입니다.

펠리니가 근대적인 기계들을 특권적으로 묘사하는 행위는 기차 외에도 선박이나 자동차, 오토바이 등으로 이어집니다. 이 중에서 자동차가 이례적인데, 기차가 상당히 낭만적인 대상으로 등장하는 것에 비해 펠리니가 안 좋은 경험이 있었는지 의심되는 기계, '자동차'는 거의 괴물에 가까운 기계장치로 나옵니다. <8과 1/2>도 그렇고 <로마>도 그렇고 지옥도를 본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웃음). <달콤한 인생>에서도 자동차에 타는 연인은 꼭 싸웁니다. 탈 것뿐 아니라 펠리니가 기계를 대할 때 여기서 말하는 '기계'에는 영화장치 자체도 포함됩니다. 펠리니의 관심 태도는 고다르나 웰스가 관심을 가지는 태도라기보다 영화촬영에 요구되는 번잡한 기계장치들, 경이로움이나 황홀감을 반영하는 형태로 나타납니다. 펠리니는 영화라는 기계장치를 경멸, 비판적 의식으로 접근한 감독은 아닙니다. 영화라는 걸 만들어 내기위해 요구되는 사람과 기술의 경이로운 시선이 보여지는 것입니다.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경험, 영화관이 아수라장되는 경험, 이런 것들도 펠리니 영화에서 자주 보여집니다. 펠리니의 모더니티에 대해 말하기 전에, 펠리니의 모던이 경험에 대한 영화적 기록에 중요한 부분을 이룬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긍정적이고 이상화된 경이의 체험에서 무시무시한 부분, 의혹의 시선이 드러나는 경우도 아주 많습니다. 공포나 두려움을 느끼는 것도 근대경험의 양면성입니다. 그의 영화에는 이런 것들이 매우 잘 드러나 있습니다. 펠리니가 후기작들에서 기계장치 세트들을 보여줄 때 기차나 선박, 비행기, 우주선을 포착할 때와 거의 유사한 감정입니다. 후기에서 비관적시선이 느껴졌다면 그것은 모던의 경험 자체에서 느끼는 비관이 되기도 합니다. 펠리니 영화에서는 영화라는 기계장치 세트들을 보는 시선도 기차나 선박 등을 보는 시선과 같은, 모던시네마의 반영적 태도와 만난다고 봐야지 이걸 의식적으로 모더니티 기획을 가지고 접근하다보면 비평적 오해가 생깁니다. 후기작을 포스트모던하다고 말하는 건 말장난입니다. 펠리니는 단 한 번도, 포스트모던은 고사하고 모던에도 깊숙이 발을 담근 적이 없습니다. <로마>같은 현대적 형식의 에세이영화를 만들자마자 <아마코드>나 <카사노바>같은 영화들로 돌아가면서도 아무런 모순도 느끼지 않았던 이유가 설명이 안 됩니다. 이들은 다른 흥미요소들, <카사노바>는 펠리니 모더니티와는 다른 면, 완전히 이면이자 어두운 면이라 할 수 있는 면이 극단화된 영화입니다. 펠리니의 모더니티에 넘어가기 전에 기계장치에 대한 매혹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장면들 몇 개가 있습니다. 펠리니의 <노트북>은 한 시간도 안 되는 짧은 에세이풍의 영화이고 마이너한 영화입니다. 사실 <노트북>은 1970년대 펠리니 영화들, <광대들>이나 <로마> 등의 기원이 되는 중요한 에세이영화입니다. 여기에는 펠리니가 끝내 만들지 못했던 <마스토르의 여인>이라는 프로젝트를 위해 만든 영화의 세트장면이 등장합니다. <노트북>은 국내 출시된 <8과 1/2>의 DVD에 서플먼트로 있는 영화입니다. 70년대 펠리니의 영화에 관심을 가지시는 분들이라면 주목해야 합니다. 이 영화에서 히피들이 등장하는 건 역사적 증거처럼 보입니다. 히피들 역시 펠리니는 <로마>에서 다른 측면으로 묘사했습니다.


펠리니 영화를 다시 본다면 주의 깊게 보아야하는 건 그 사이, 특히 <로마>같은 영화들입니다. 펠리니의 성향, 모던의 경험, 영화를 본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영감의 원천이 여기에 담겨있다 생각합니다. <로마>는 자유로운 방식에 트리트먼트도 없이 리서치 다니면서 인터뷰와 기록 등을 토대로 찔끔 찔금 2년에 걸쳐 이례적으로 찍은 영화입니다. 제목 그대로 <펠리니의 로마>, 펠리니의 눈에 비친 <로마>, 웰즈 식으로 말하면 촌놈의 눈에 비친 <로마>입니다. 기계장치에 대한 매혹과 두려움, 영화로 쓴 칼럼형식, 스펙터클에 대한 취향, 영화를 보면 그런 게 담겨있습니다. 패션쇼라든가 버라이어티극장에서 연행, 관람 양식 등 숨기지 않고 한 번에 끌여 들인 영화입니다. 이 영화를 엮는 유일한 방식은 이 영화의 작가가 '펠리니'라는 것을 알고 나름대로 엮어 보는 것이지 귀도라는 인물을 빌려 과거와 현재, 현실과 몽상을 비평적으로 오갈 필요는 없습니다. 현대적인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펠리니 비평서에서 가장 얇게 다뤄지는 영화입니다. 언급되지 않는 영화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다시 펠리니를 이야기한다면 여기서부터 출발해 확장하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펠리니 영화의 진수가 담겨진 건 1970년대 때의 작품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펠리니의 스펙터클에 대한 취향, 기묘한 것에 열광하는 자세, 기계장치 자체 자동차 혹은 도시적인 것에 대한 매혹이 한꺼번에 엮어져 우러나는 영화가 그 시기의 작품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정리: 강민영)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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