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유령처럼 빨려 들어간 서울아트시네마가 안정적인 전용관 마련으로 오랫동안 함께하면 좋겠다"


단골 관객 이현미 씨를 만나다!


어쩐지 낯익었다. 극장의 풍경과 어우러지는 이미지가 쉬이 떠오르는 걸 보니, 아무래도 서울아트시네마에 자주 오시는 분 같았다. 눈이 펑펑 내리는 오후, <겁쟁이는 무릎을 꿇는다>의 시네토크가 끝나고 막 떠날 채비를 하는 이현미 씨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언제부터 시네마테크와 인연을 맺으셨는지.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를 열심히 다닌 지는 한 2007년부터다. 그 전에는 회사일 끝나고 틈틈이 보다가 2008년부터는 본격적으로 ‘달리면서’ 본 것 같다. 회계 쪽 일을 하는데, 하는 일에서 예술적 감수성을 충족시키지 못하니까 극장을 다니면서 자극을 많이 받으려고 한다. 처음에는 시간적 제약이 마음에 걸려 (비교적 가기 쉬운) 멀티플렉스 상영관을 갔는데 필이 꽂히고 나니까 시간은 문제가 안 되더라. 영화를 본 후 기록을 하다보면 어느 해인가부터 개봉영화 보다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월등히 많이 본다. 영화를 직접적으로 공부하지는 않았지만, 한 편의 영화를 보고 나면 무언가 남는 게 있다. 그 뒤로 마치 유령처럼 빨려 들어가 서울아트시네마를 계속 다니게 됐다.


이번 친구들영화제에서는 어떤 영화를 보셨는지.

개인적으로 괴기영화나 피 튀기는 영화는 안 좋아해서 지난주에 상영한 <지옥인간>은 거부했는데, 그 외의 작품들은 시간표에 나름대로 체크를 해놓았으니 다 보게 될 것 같다.


영화제가 중반을 넘어가고 있다. 지금까지 이번 친구들영화제에서 본 영화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영화는 무엇인가. 

시네마테크 추천작인 <내일을 위한 길>이 좋았다.


오늘 가이 매딘의 <겁쟁이는 무릎을 꿇는다>는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 

영화에 대한 사전지식이 전혀 없었다. 일단 친구들의 선택작이고, 어느 감독이 추천했다고 하면 궁금해져서 다 보고 싶다. 특별히 싫어하는 장르의 영화가 아니라면 무조건 와서 다 보는 편이다. 한 감독의 영화를 보고 나면 나중에 그 감독의 영화를 또 보게 되었을 때 다시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니, 사전정보가 없더라도 일단 봐두면 나중에 도움이 되더라. 원래는 영화만 보는 것도 힘드니까 시네토크는 안 듣고 집에 갔는데 시네토크를 듣는 것이 영화를 보고 나서 감상을 정리하는 데에 도움이 되더라. 의문점이 남는 것들을 다른 사람들이 질문을 해주면 해소가 되기도 하고. 그래서 이제 여유가 되면 시네토크도 들으려고 한다.


영화에 대한 짤막한 감상을 말씀해 주신다면.

굉장히 독특하고, 새로운 세계를 들여다 본 것 같다. 새로운 형식의 영화여서 살짝 졸수도 있는데 ‘이게 뭐지’ 싶어서 끝까지 보게 되었다. 아마 감독님이 추천하신 다른 작품도 찾아서 보게 될 것 같다.


이제까지 시네마테크에서 보았던 특별전이나 감독의 작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유럽연합대사관에 다니고 있다. 불어를 하는 게 수월하니까, 아무래도 프랑스 영화를 제일 많이 보게 된다. 2011년 11월에 했던 <프랑스 영화 황금기 전>이 관객들에게는 인기가 별로 없었지만, 나에게는 굉장히 좋았다. 내가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같은 곳에 직접 가서 찾아보지 않으면 볼 수 없는 영화를 모아서 왕창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 특별전을 다 보고 나니까 프랑스 친구들이랑 이야기 할 때 ‘아, 그 영화’하고 딱 나와서 대화가 통하고 얘깃거리가 풍부해졌다. 그 점이 무척 좋았다. 관객들은 70년대 이후의 최근 프랑스 영화를 더 많이 보나보다. 그 특별전에서는 3, 40년대 프랑스 영화를 많이 틀어서인지 관객이 많이 들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가장 좋았던 특별전이다.

서울아트시네마는 프로그램 한 번 할 때 필름을 외국에서 수급해 와서 2주 내지 3주 안에 다시 돌려보내야 하니까, 그 2, 3주 동안 내가 이곳에 있어야 이 영화들을 다 볼 수 있지 않나. 가끔 시네마테크가 있는 파리나 브뤼셀에 가서 보면, 같은 유럽이고 가까워서인지 필름 수급이 수월한 것 같다. 프로그램 북을 보면 어떤 감독전, 어떤 특별전을 할 때 일 년 이런 식으로 긴 시간동안 하더라. 이 사람 작품은 매주 월요일 상영 또는 첫째 주 무슨 요일, 이렇게 프로그래밍해서 그 감독 작품을 보고 싶으면 한 번 놓치더라도 이후에 시간을 내서 볼 수 있도록 한다. 유럽 시네마테크에 가서도 모르는 감독이 태반인데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보았던 작품을 만나면 무척 반갑다.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다른 관객들의 마음과 같이, 전용관이 생겨서 안정적으로 프로그래밍 할 수 있다면 좋겠다. 아주 오랫동안 이 곳을 다니고 싶다. 농담 삼아 나이 들면 여기에 와서 수표 자원봉사를 하고 싶다고 했는데, 오랫동안 드나들며 젊은 친구들을 만나고 싶다. 전용관이 빨리 생겨서 그 곳에 모일 수 있으면 좋겠다.


서울아트시네마에서 개인적으로 보고 싶은 영화가 있다면.

필립 느와레가 나왔던, 70년대 영화인가, 예전에 사간동 프랑스 문화원 시절에 보았던 영화인 <녹슨 장총>(한국 개봉 제목 <추상>)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인터뷰글/ 지유진 관객에디터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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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토크

작은 몸짓과 시선이 전하는 통렬함

김성욱 프로그램디렉터가 말하는 시네마테크 선택작 ‘내일을 위한 길’

 

지난 1월 30일, 시네마테크의 선택작인 레오 맥커리의 <내일을 위한 길> 상영 후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의 시네토크가 이어졌다. '이 영화는 무인도에 가져가고 싶은 작품 중 하나'라는 소회로 시작된 강연은 영화의 감흥을 곱씹을 수 있도록 한 시간이었다. 그 일부를 옮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시네마테크의 선택작을 고르며 고민하던 중 문득 생각했던 작품이 레오 맥커리의 <내일을 위한 길>이었다. 노년이 되신 분들이 시대의 흐름에서 느끼는 고립감을 다룬 작품이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런 것 있지 않나. 무인도에 가져가고 싶은 영화의 목록들도 있지만, 삶의 마지막에 아마도 보고 싶은 영화들도 있다. 예를 들어 파스빈더는 삶의 마지막에 죽어가면서 더글라스 서크의 영화를 봤다고 한다. 나에게는 바로 이 작품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도 그랬지만, 후반부가 아주 인상 깊다. 부부가 작별을 고하기 위해 허니문을 떠났던 도시를 다시 방문하는 부분이다. 앞으로 서로를 보지 못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그들이 마지막을 어떻게 정리해 가는지, 그 장면을 보고 있으면 왠지 뭉클하다. 영화가 아주 정갈하다.

이 영화에 대해 할 말은 많지 않다. 다만 몇 가지 사전적인 정보를 말씀드리고 싶다. 이 영화를 만들었던 시기는 1930년대 대공황 이후 경제 불황이 계속되던 때다. 그렇기 때문에 은행의 차압이나, 일자리 부족 같은 문제가 많았다. 시기적으로만 보자면 우디 앨런의 <카이로의 붉은 장미>와 비슷한 시기라 할 수 있다. 또한 루즈벨트에 의해 사회보장제도가 처음 마련되던 시기였다. 영화의 후반부, "젊은 때 저축하라"는 표어가 나오는데, 그게 바로 이 보장제도에 대한 것이다. 사회적인 맥락에서만 보자면, 이 시대에 노년의 부부가 어려움에 처하게 되는 것은 결혼 생활동안 아이들을 위해 모든 것을 주다 보니 아무 것도 남지 않은 불행인 것이다.

두 번째와 세 번째는 레오 맥커리의 개인적인 사정이다. 1936년에 레오 맥커리는 상한 우유를 먹고 죽음의 위기에 처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 경험이 맥커리에게 죽음에 대한 불안과 민감성을 주었다고 생각된다. 이런 개인적인 사연 때문인지 맥커리의 영화 인물들은 동시대 비고되는 프랭크 카프라의 영화 속의 인물들보다 어둡고 자기비하적이거나 불안, 혹은 민감함이 더 커 보인다. 비슷한 스크루볼 코미디를 찍어왔음에도 이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세 번째로, 1936년에 맥커리가 건강을 회복 한 후에 정작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이와 관련해 영화 속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유추해 볼 수 있다. 1937년에 노인을 다루는 영화는 거의 없었다. 게다가 레오 맥커리는 로렐과 하디, 막스 브라더스와 함께 코미디 영화를 찍어왔던 감독이다. 그런 감독이 이렇게 슬픈 멜로 드라마를 만든 것이다. 노년의 멜로드라마, 이것은 장르적으로도 특별한 경우다. 이 영화가 맥커리의 가장 웃긴 영화라고 하는 <놀라운 진실>과 같은 해에 나왔다는 것은 놀랍다. 그런데 한편으로 이 영화의 시대적 상황을 생각해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일반적인 멜로드라마와 비슷하긴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레오 맥커리의 섬세한 연출이 돋보인다. 장면 편집, 카메라 워킹에는 화려한 부분이 전혀 없다. 하지만 한 장면 안에서 인물들을 위치시켜놓고 찍어 나가는 그 순간, 그 안에서 느껴지는 감정의 통렬함이 잘 표현되어있다.

 

공간 속에 있는 인물들이 보여주는 아주 작은 표정, 시선, 몸짓들이 관객에게 감정을 전달해주는 것이다. 브리지 게임을 하는 중, 헤어진 아내에게 남편의 전화가 걸려오는 장면을 보자. 카메라는 앞에서 전화를 받고 있는 그 아내를 관객들이 정명으로 보게끔 만든다. 이 영화의 많은 장면들은 중심인물들을 정면으로 보도록 만들거나 반대로 거꾸로 등져 보이도록 한다. 마치 중심인물들이 무대의 객석에 앉아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하는 것이다. 남편이라는 보이지 않는 대상을 향해서 아내의 목소리가 커져가고, 브리지 게임을 하고 있던 사람들은 소리가 커져가자 게임을 중단하고 그 모습을 바라본다. 이 장면이 지속되는 내내 그녀를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주인공은 인식하지 못하지만, 관객들은 그 장면을 보며 그녀가 이 장면에서 초래하는 결과들, 그녀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바로 이런 것이 멜로드라마적인 통렬함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런 사례들은 영화 속에 많이있다. 양로원에서 온 편지를 보는 장면, 이 장면은 아주 심플하게 구성되어 있다. 양로원에 가겠다고 하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자 아들의 표정에는 잠깐 미소가 번지다가 다시 평소의 상태로 돌아온다. 하나의 장면 안에서 감정의 미묘한 상태가 변해가는 미니멀한 부분들을 잘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단순한 위치와 시선, 몇 개 정도의 짧은 컷들이 복합되어 감정을 컨트롤 해 나간다. 특히 관객이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전제하며 구성해 나가는 장면들이 인상적이다.

 

17살 손녀딸 로다와 할머니가 이야기 하는 장면을 보자. 할머니는 손녀딸에게 17살 때는 모든 게 아름답게 보였고, 70살이 되면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그래서 '짐짓 그런 것인 척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어떤 상황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고, 받아들일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편의적으로 3막으로 보자면, 영화의 초반에 주인공의 집이 저당 잡히는 순간으로부터 모든 파국이 발생한다. 사실 이 출발점은 작은 사건에 불과해 보인다(아마도 얼마 후에 부부는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라는 대사처럼). 이후의 이야기는 작은 헤어짐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는 알 수 없는 일로 흘러가는 것이다. 2막에서 부부는 헤어졌다가, 3막에서 다시 만난다. 1막과 2막은 가족의 이야기다. 그런데 3막이 흥미로운 것은 여기서는 이야기가 가족에서 소셜한 세계로 진입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짐짓 그런 것인 척 한다'는 태도가 사회적인 영영에서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자동차 장면을 보자. 노부부는 1막에서부터 '짐짓 그런 것인 척 한다'는 태도를 지니고 있다. 그런데 3막에서 노부부에게 차를 판매하려던 사람 역시 차를 태워주며 그런척한다. 결국 부부가 차를 자랑하려고 그러는 줄 알았다며 차를 살 형편은 아니다 라고 말 했을 때, 그 또한 그렇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 다음부터 호텔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가족 관계에서는 잘 기능하기 힘들었던 일이사회적인 규모로 확장되어 진행된다. 가족이 아닌 사람들에 의해서 정작 노부부는 대우를 받고 있다. 3막의 부분은, 감독이 생각하는 가족을 넘어선 사회적 관계에 의한 대우랄까, 관계성의 회복에 대한 사회적 비전을 보여주는 것 같다.

 

이 영화는 감정을 분명히 토로하지 않으면서도 감정을 관객들이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간다. 이 영화의 세계는 잘 구성된 세계인 것 같다. 등장인물들은 각자의 이유가 다 있지 않나. 부모도, 자식들도 (부모를 모실 수 없는) 이유가 있고, 그럴 수밖에 없는 현실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세계 내에서 조그만 하나의 변화가 어떻게 이 전체를 교란시켜나가는가를 보여준다. 조화로운 질서의 파괴가 어떻게 작은 것에서 번져나가는지를 보게 된다.

 

정리: 김경민(시네마테크 관객에디터) | 사진: 주원탁(시네마테크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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