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의 존 포드는 양친에게 물려받은 아일랜드인의 뜨거운 피가 자신의 몸에 흐르고 있음을 자각하고 있었다. 비록 미국에서 출생하긴 했지만 존 포드는 대다수 아일랜드계 이민자들이 그러했듯 고향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을 지니고 있었다. 스물여섯이 되던 해인 1921년에 존 포드는 오매불망하던 고국 아일랜드를 처음으로 방문할 수 있었다. 당시 영국과의 독립투쟁을 벌이고 있던 탓에 아일랜드는 정치적 긴장상태로 긴박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예술가에서 그런 사회적 격변은 종종 긍정적인 창작의 열정을 부추기곤 한다. 존 포드는 이 여행에서 민감하게 느꼈던 것들을 나중에 작품을 통해 표현할 기회를 얻게 된다.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How Green was My Valley>(41)와 <조용한 사나이>(52), 그리고 <긴 잿빛 선>(55)과 같은 작품은 고국 아일랜드에 바치는 찬가로 그가 이 시기에 겪었던 체험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존 포드의 영화를 두고 전통과 현대의 충돌이나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지나가버린 과거에의 노스탤지어를 종종 말하곤 하는데 이런 특징의 상당부분은 아일랜드계 이민자로서가 그가 느낀 소수자, 국외자의 정서에서 기인한 것이다. 종종 그의 영화에서 통렬한 순간은 인물들이 고향을 떠나기 위해 가족과 작별을 고할 때에 발생한다. 19세기 아일랜드의 웰스 지방의 탄광촌을 배경으로 광부의 가족사를 필연적인 해체의 과정으로 그려낸 걸작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에서 탄광에서 해직된 두 아들이 미국에서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고향을 떠나는 장면은 지극히 담담하게 묘사된다. 아버지는 두 아들에게 석별의 정을 토로하는 대신 성경의 구절을 읽어주고 어머니는 흔들의자에 앉아 미동도 없이 떠나는 두 아들을 뒤돌아보지도 않는다. 마을을 등지면서 석양에 구부정한 그림자를 남기면서 저 멀리 두 아들이 사라지는 모습이 보인다. <수색자>의 마지막 장면에서 서부 저편으로 사라지는 존 웨인의 모습보다 더 통렬한 순간이다.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는 성장한 주인공 휴 모건(Huw Morgan)이 어릴 적 시장에 갈 때 어머니가 두르던 숄에 소지품을 챙겨 고향을 떠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정든 집을 떠나면서 그는 이제 다시는 고향에 돌아오지 않으리라고 결심 하는데 카메라는 이 때 집의 내부에서 빠져나와 창문을 거쳐 탄광촌 마을의 한적한 거리를 비춘다. 이미 폐광이 되어버린 탓인지 휑뎅그렁한 거리에는 오직 늙은 여인만이 누군가를 쓸쓸하게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화면위로 ‘현재의 기억은 사라지지만 오래 전의 기억은 너무나도 생생하다’라는 주인공의 내레이션이 깔리면서 이내 화면은 과거 풍요롭고 초록이 무성했던 대지로 전환한다. 흑백영화이기에 휴가 기억하는 초록으로 가득한 계곡은 지각 가능한 것이 아니다. 대신 그것은 흐릿한 기억처럼 추억과 상상의 영역에 속한다. 그것은 또한 아일랜드의 대지를 감싸는 환경, 분위기, 숨결과도 같은 것이다. 존 포드가 그려내는 아일랜드인의 기질은 그런 초록의 대지와 호흡하며 탄생한다. 남성다움의 본성, 즉 의리와 자부심 말이다. 이는 남성들의 다툼과 싸움에서 드라마틱하게 표현된다. 이를테면 학교를 다니기 시작한 휴는 저급한 탄광촌에서 왔다는 이유로 급우들에게 시달림을 당하는데, 그는 동네 아저씨에게 익힌 권투기술로 괴롭히는 친구들과 싸움을 벌인다. 이 때 싸움은 서로 주먹을 공평하게 교환하는 게임과도 같은 것으로 아일랜드계의 남자다움과 우정을 획득하는 통과의례와 같은 순간을 표지한다.

탄광촌에서 일하는 남자들이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긴 행렬을 이루어 함께 노래를 부르며 퇴근하는 장면이 영화에서 몇 차례 반복적으로 보이는데, 꽤나 인상적인 순간이다. 이들은 모두 집 문 앞에서 기다리는 대지의 신과도 같은 어머니의 에이프런 속에 하루 벌어온 돈을 꼬박 집어넣는다. 근면하고 억척스런 어머니는 아버지만큼이나 자부심과 의지가 강한 존재다. 영화의 한 장면에서 임금 삭감에 반대하는 파업을 벌인 마을 청년들이 완고한 아버지가 파업에 동참하지 않는다며 비난을 퍼붓자 이에 참을 수 없었던 휴의 어머니는 파업참가자들의 회합에 참석해 수많은 사내들을 향해 ‘누구든 남편을 건드리면 가만두지 않겠소’라며 으름장을 놓는다. 어머니의 분노와 의지의 표명이 휘몰아치는 겨울의 매서운 눈발을 무색하게 만들 정도다. 그러나 가족애와 우애, 그들의 근면한 삶도 한번 만난 사람은 반드시 헤어진다는 회자정리(會者定離)의 세상사의 법칙을 넘어설 수는 없는 일이다. 누구는 경제적 곤란 때문에 집을 떠나고 누구는 결혼 때문에, 그리고 또 다른 사람은 갱도에서 삶을 마감한다. 사건의 관찰자이기도 한 어린 휴의 순수성은 가족의 해체와 공동체 성원들의 멸시와 조롱, 형제와 아버지의 죽음과 마주하며 변모한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휴의 어깨에 기대어 아버지가 삶을 마감하는 장면이 이것의 정점에 해당한다. 이 순간 휴는 망연자실한 듯이 빈 시선을 허공에 던지는데, 이 때 모진 현실은 저편의 기억 속으로 침잠해 들어가고 마치 꿈같은 세계가 펼쳐진다. 아버지와 푸르른 계곡을 함께 거닐던 행복했던 순간, 이혼 때문에 완고한 마을주민들에게서 따돌림을 당한 누나의 귀환, 일자리를 얻기 위해 고향을 떠났던 형들이 저 멀리서 돌아온다. 행복한 기억이지만 동시에 비애로 가득한 숭고한 장면이 아일랜드의 거대한 하늘 아래에서 벌어진다.

존 포드는 거대한 하늘을 밑그림처럼 활용해 거기에 대지와 공동체, 인간사의 이야기를 숨결처럼 화면에 불어넣었던 영화작가로 서부극은 그런 에센스를 가장 이상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장르였다. 2차대전이 끝난 뒤에 만든 서부극 <황야의 결투My Darling Clementine>(46)는 그의 대표작 중의 하나다. 이 영화는 서부극에서 자주 회자되는 전설적인 보안관 와이어트 어프의 전설 같은 이야기를 그린다. 닷지 시티에서 유명했던 보안관직 생활을 청산하고 형제들과 소를 몰고 떠돌아다니는 와이어트 어프(헨리 폰다)는 막내 동생이 톰스톤에서 클랜튼 일가의 습격으로 살해당하면서 복수를 결심한다. 서부에서 가장 거대한 무덤이 있는, 어둠과 타락의 마을인 톰스턴에서 와이어트 어프는 다시 보안관 배지를 달고 도박장을 운영하는 닥 할러데이(빅터 마튜)와 연대해 클랜튼 일가와 전투를 벌인다. 이런 복수를 둘러싼 이야기에 동부에서 톰스톤을 찾아온 아름다운 클레멘타인과의 미묘한 사랑이야기가 함께 한다. 

평자들은 존 포드의 서부극을 호메로스가 그리스의 신을 노래하는 것처럼 미국 개척기의 영웅들을 찬미하는 일종의 역사극으로 평가한다. 그의 영화에서 진정한 주인공들은 서부를 개척하고 공동체를 건설하기 위해 여행을 떠난 이민자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공동체의 재건을 위해 노력한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대중들이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상상의 공간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미국 남서부의 모뉴먼트 밸리가 그가 만든 서부극의 주된 장소다. 거대한 메사와 이를 감싸는 무한과 숭고의 감정을 불러오는 하늘이 있다. 그 아래에서 인간들은 공동체를 건설해 거주하고 경작하고 또 신을 향해 예배와 찬양을 벌인다. <황야의 결투>에서 와이어트 어프와 클레멘타인이 함께 춤을 추는 장면이 그러하다. 이들은 모뉴먼트 밸리를 배경으로 이제 막 건설 중이라 기둥만 세워져있는 교회에서 마을 주민들이 환호 가운데 조금은 어색하지만 흥겹게 춤을 춘다. 이상적인 공동체에 대한 집합적인 상상력이 가장 적절하게 표현된 장면이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영웅적이고 국민적인 통합의 신화는 공동체 내부에 내재한 갈등의 해소룰 통해 표현된다. 톰스톤에 처음 도착한 와이어트 어프는 총질이 난무하고 인디언이 바에서 소란을 피우는 장면을 묵도하며 연신 ‘도대체 뭐 이런 마을이 다 있냐’며 사람들에게 의문을 제기한다. 그가 동생의 죽음 때문에 다시 보안관직을 맡아 마을에 머무는 것은 클랜튼 일가와의 최종적인 결투를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존 포드는 공동체 내부에 스며든 어둡고 곤혹스런 문제들을 사회적 합의를 거쳐 해결해가는 과정을 외부의 적과의 단선적인 대결보다 더 중요하게 다룬다. 여기서 영웅은 한 명이 아니라 이중화되어 있다. 그 하나가 전통적인 관습을 중시하는 보안관 와이어트 어프라면 다른 한 명은 리버럴한 독 할러데이다. 이 둘은 마을의 질서와 헤게모니를 둘러싸고 다툼을 벌인다. 이는 법보다 도덕이 앞서는 다툼으로 증오의 표현이라기보다는 우정과 연대를 위한 통과의례이다. 동부에서 온 아름다운 여인 클레멘타인과의 사랑 또한 이중화되어 있는데, 시간의 서로 다른 두 방향과 연결된다. 그것은 과거(예전 독 할러데이는 동부에서 그녀를 사랑했지만 이미 그녀를 두고 떠났다)와 미래(톰스턴의 교사로 정착한 그녀는 어프의 미래의 여인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로 열려있는 시간의 이미지이다.

영화의 한 장면에서 와이어트 어프는 막내 동생의 무덤가에서 묘비에 적힌 연도표기를 보며  짤막하게 한탄한다. ‘그래 18년을 살았구나.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하고 떠났구나. 너 같은 아이들이 안전하게 자랄 수 있는 그런 마을이 될 때까지 여기에 있을 거란다.’ 어프의 다짐은 순수성을 지켜내겠다는 결의의 표현이다. 다시 무기를 손에 들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종종 이 장면의 비극적인 정서를 두고 2차 대전으로 인한 전쟁의 상처가 영화에 기입된 것이라 말해진다. 클랜튼 일가와의 전쟁이 끝난 뒤, 질서가 회복됐을 때 와이어트 어프는 학교의 새 선생이 된 클레멘타인에게 언젠가는 돌아오리라 약속하고 다시 서부로 말을 타고 떠난다. 순수성과 미래의 희망을 간직한 클레멘타인은 떠나는 그를 저 멀리까지 쳐다본다. 역시 행복과 비애가 가득한 숭고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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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존 포드의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


우리는 영화를 보면서 많은 것을 얻는다. 즐거움을 얻기도 하고, 감동에 젖기도 하며, 무언가를 배우기도 한다. 특히 자신의 삶의 가치관이나 기억을 환기시키는 영화는 더욱 특별한 작품으로 남는 경우가 많다. 존 포드의 가장 빼어난 드라마중 하나인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1941)는 거기에 담긴 감정이 너무도 보편적이고 진실해서, 누구에게라도 그러한 특별한 작품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다. 이 영화는 고전적 형식미의 완결성과 전형적인 가족멜로드라마적인 이야기만으로 인간적인 삶의 가치를 그려낸다.

 

영화는 웨일즈의 한 탄광촌에서 살아가는 모건 가족의 이야기다. 막내인 휴는 자신 인생의 정점에서 유년기의 가족과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회상한다. “나의 계곡은 얼마나 푸르렀던가!”라는 회상. 집안에 위치하던 카메라는 유연하게 창밖으로 이동하며 그 회상을 표현한다. 그곳은 계곡의 정점에 탄광이 있고, 거기서부터 내려오는 길가를 따라 집들이 정렬해 있는 작고 소박한 마을이다. 모건 가족의 아버지와 형제들은 모두 탄광에 다닌다. 일이 끝나면 일당을 받고, 다 같이 집에 와 몸을 씻으며 저녁식사를 한다. 지극히 평화롭고 행복해 보이는 평범한 가정이다. 휴는 “아버지는 우리들의 머리였고, 어머니는 심장이었다”라고 회상한다.

그런데 이 가족의 조화로운 삶의 균형을 깨뜨리는 몇몇 갈등이 발생한다. 탄광회사 측의 횡포(임금 삭감)로 인한 파업을 바라보는 견해차로 가족의 분열이 일고, 어머니와 휴에게 닥친 사고로 한동안 병상에 누워 지내는 일도 생긴다. 마을의 목사와 딸의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의 문제도 있다. 두 아들이 탄광에서 해고되어 미국으로 떠나면서 가족의 분열이 발생하기도 한다. 마을 사람들은 모건 가족의 친구이지만, 쉽사리 소문에 휩쓸리며 때로는 적대적으로 변한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갈등들은 오래지 않아 무마된다. 휴가 한동안 걷지 못하다가 푸른 꽃밭에서 목사의 도움으로 다시 걷기 시작할 때가 그 시작이다. 롱쇼트로 찍힌 이 장면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자연의 아름다움, 이에 더해 인간성의 따스한 품속에서 모든 갈등은 치유된다. 휴가 유년시절의 회상을 끝내는 결정적 사건도 회한과 고통보다는 애상감이 더 크다. 가족은 언제나 거기에 굳건하게 자리한다. 휴의 기억 속에서는 가족들과 아버지에게서 배운 삶의 가치들이 평생 뿌리처럼 자라왔던 것이다. 그 계곡의 푸름과 함께.

 

이 영화에 담긴 ‘가족과 집의 소중함’이라는 가치는 쉽사리 진부한 것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또한 영화 속 따스한 감정들은 현실성 없는 낭만주의라고 비판받기도 했다. 실제로 고용자와 노동조합의 문제, 계급의 문제, 공동체의 문제 같은 갈등의 틈들은 크게 부각되지 않은 채 너무 쉽게 봉합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모든 현실성의 문제를 넘어서는 숭고한 지점에 있다. 삶의 순수한 진실이 담겼기 때문이다. 포드는 삶의 가치들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한 지극히 영화적인 직관만으로, 이 영화를 진실함의 심원한 영역에 올려놓는다. 어떠한 표현적인 혹은 스타일적인 기교도 필요치 않다. 그의 영화는 그 자체로 살아 숨쉰다.

 

영화는 애상에 젖어 말한다. 어떤 일이 발생했더라도 삶은 그 자체로 흘러왔으며, 인생의 정점에서 돌이켜 볼 때 그 시절은 더없이 아름다웠다고. 이는 아일랜드 이민 2세대인 포드가 가진 ‘아일랜드에 대한 근원적인 그리움’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영화는 어린 시절에 보았다면 평생 어떠한 유년의 기억처럼 그리움으로 남을 수 있고, 나이가 지긋이 든 후에 본다면 삶을 뒤돌아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우리는 바로 이러한 영화를 ‘고전’이라고 부른다. (박영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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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진 영화평론가의 선택, 존 포드의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 시네토크

이번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 김영진 영화평론가가 추천한 작품은 존 포드의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로 지난 17일 이 영화에 대해 그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 이 자리에서 김영진 평론가는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에 한껏 젖어있는 관객들을 보며 ‘나도 여러분이 보시는 그대로만 존 포드를 알고 있다’는 말을 건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영화에 대한 개괄적 설명과 함께 평소 쉽게 접할 수 없는 존 포드 감독에 대한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재미있게 풀어 주었던 시간이었다. 재치와 유머가 한껏 묻어났던 김영진 영화평론가의 시네토크 현장을 이곳에 옮긴다.


김영진(명지대 교수, 영화평론가): 영화 잘 보셨는지 궁금하다.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를 어렸을 때보면서 막 울고 그랬던 기억이 난다. 대책 없이 센치한 영화 같다. (웃음) 감독 존 포드에 대해서 우리는 늘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 우리가 대체 그에 대해 무엇을 아는가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위대한 감독이라고 하지만 명쾌하게 왜 위대한지에 대해서는 대답하기 어렵다. 존 포드는 무성영화부터 시작했던 감독이고 수많은 경험을 통해 다져진 감독이기 때문에 우리가 도저히 당도할 수 없는 깊이를 가진 감독이었다. 주로 그는 ‘촬영은 사람들의 눈을 찍는 것이다’라는 말을 했는데 그의 영화를 보면 이 말이 정말 공감된다. 존 포드 영화현장의 전설 중 하나가 우연찮게 굉장한 장면을 건진다는 것에 있다. 이를테면 진주만 습격 때 존 포드가 현장에 있었는데 그는 그걸 카메라에 담았다. 또한 <황색 리본을 한 여자>에서 기병대가 말을 타고 갈 때 내려치는 천둥번개를 그대로 화면에 담았다고 한다. 일부는 철저하게 기획된 것들도 많았겠지만 이 같은 에피소드들은 정말 기막힌 우연과 행운이라 할 수 있다.

존 포드는 전성기가 굉장히 길었고 외형상으로 거의 모든 작품을 통해 확고한 커리어를 쌓았던 감독이나 그럼에도 불가하고 그의 최고 정점을 꼽자면 1939년 후 <역마차>와 <젊은 날의 링컨>, 그리고 <모호크족의 북소리> 등을 연달아 발표할 때다. 흔히 존 포드의 영화는 패밀리 전통에 대해서 낭만적이고 감상적인 미화를 하고 있다고 읽혀지는데 사실 그것 이상으로 패밀리 공동체가 부서지는 걸 낱낱이 보여주고 있다는 게 훨씬 흥미롭다.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를 처음 봤을 때 아버지의 죽음을 보여주는 방식이 엄청나게 충격적이었다. 아버지가 죽을 때 아들의 대사 한 마디 없이 바로 점프해서 어머니로 넘어가는데 어머니가 ‘영광을 봤다’라고 하잖나. 그런 ‘디그니티’, 가족이 ‘디그니티’를 지키며 어떻게 죽음과 대면하는가를 절실히 보여주고 있다. 가장 이상적인 부분이다.

존 포드 영화에서 말하기 힘든 부분들 중 하나는 영화에 나타나는 텐션을 어떻게 발견하느냐에 대한 것이다. 많은 비평가들이 논구를 많이 했지만 존 포드의 살아생전 인터뷰에서는 그럴듯한 대답이 없었다. 존 포드는 1950년대 이후에 비평적 명성이 높아지며 유럽에서 엄청난 열풍이 불었던 감독이다. 인터뷰는 거의 코미디였다. (웃음) 피터 보그다노비치의 인터뷰가 있는데 것도 재밌지만 서면으로 볼 수 있는 평론가들 인터뷰는 더 희극적이다. 존 포드의 곁에 있었던 사람들은 흔히 존 포드가 굉장히 권위적이었다는 말을 하곤 한다. 존 포드를 회고하며 그의 스태프들은 존 포드를 ‘고집불통 노인네’라고 말하지만 돌아보면 그와 일한 것은 정말 멋진 경험이었다고 이야기한다. 존 포드는 인터뷰를 통해 ‘나에게 영화는 직업이고 내 인생이다’라는 말을 했다. 그는 주변사람들과의 관계를 좋아했고 그것을 즐겼을 뿐이지 자신이 한 번도 위대하다거나 하는 걸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런 발언들이 존 포드 영화 복합성의 깊이를 설명해주는 한 예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존 포드는 할리우드 인더스트리 내에 있었고 단 한 번도 스스로 각본을 쓰지 않았다. 당시 영화사의 사장들은 소위 ‘영화 밥 먹고 자란 사람들’이라 나름대로 영화의 도사였다고 한다. 그날 찍은 분량을 보고 맘에 들지 않으면 재촬영하고 편집기사 불러서 편집하고 했던 시스템이 있어서, 감독은 실제로 공장의 현장책임자정도에 불과했었다. 이로 인해 존 포드도 상처를 많이 받았다고 한다.

존 포드는 왜 ‘존 포드’일까. 그는 미국의 역사에 대해 굉장한 탐구를 했던 감독이다. 책도 많이 읽고 영화들을 보면 독립전쟁부터 서부시대는 물론이고 2차 세계대전까지 역사적 시기의 영화들을 많이 다루고 있다. 그의 영화에서는 현재나 미래가 늘 과거로부터 시작한다. <황야의 결투>에서도 그렇고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에서도 주인공의 회상부터 시작하지 않나. 과거를 회상하며 미래를 다짐할 때 전통은 굉장히 강력한 흡입력을 보여준다. 놀라운 건 존 포드가 그려낸 현재와 미래가 쉽게 예상할 수 있는 것처럼 낙관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나중에 이르러서 신화 자체도 스스로 해체하고 파괴하는 정도까지 발전한다. 이게 바로 존 포드 영화의 특이점이다. 많은 할리우드감독들은 존 포드만큼 미국을 사랑했고 미국적 가치를 주장했지만 그만큼 미국의 역사 이면의 양극성을 복합적으로 드러낸 감독은 없었다. 근데 이게 드라이하지 않고 센치하며 유머러스하다는 것이 흥미롭지 않나. 존 포드 영화에 가장 중요한 것은 잔치장면이다. 그는 이걸 거의 의식적으로 보여준다.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에서도 밥 먹은 것을 마치 의식 치루는 것처럼 아기자기하게 보여준다. 일상에서 흥분되는 하모니의 순간들을 잡아내는 거다. 이 장면들은 언제나 순간적이다. 향연이 짧게 끝나고 그다음은 대체로 가족의 해체라든가 노동착취, 초기 자본주의의 극악함이 극에 달할 때의 상황이 전개된다. 로빈우드는 포드적 히어로는 결말에 늘 혼자 남는다는 말을 했다. 기이한 패러독스다. <분노의 포도>에서도 마지막에 어머니를 떠나는 헨리 폰다가 전혀 낙관적이지가 않게 보인다. 전통의 가치는 신화화된 시선에 뿌리를 두고 현재와 미래를 그려내지만 항상 현실의 복합적 조직들이 인물들이나 공동체를 무너뜨린다. 하지만 끝까지 ‘디그니티’를 잃지 않는다는 것, 그게 감동을 준다.

존 포드의 스타일은 수식이 없다. 그는 얼터너티브한 숏을 절대 쓰지 않는다. 그렇게 카메라에 담겨진 장면들은 편집실에서 그냥 붙이기만 하면 되는 거다. 물론 이것도 존 포드의 전설 중 하나다. 그는 두 번 찍으면 불 같이 화를 냈다고 한다. 히치콕은 치밀한 콘티를 짰지만 존 포드는 그냥 굵게 제작하는 스타일이었다. 요즘엔 왜 다들 이렇게 찍지 못할까 의문이 든다. 현존하는 존 포드 스타일의 유일한 감독은 클린트 이스트우드라는 생각이 든다. 이스트우드는 여전히 호소력이 있지 않나. 결국 영화는 다 인품 그대로 나오는 것 같다. 그래서 나도 존 포드를 무척 좋아하는 것 같다. 존 포드는 정말 철두철미한 감독이다. 무성영화 시절부터 영화를 찍어왔고 엄청난 커리어가 붙었기 때문에 그는 전설의 거장이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이다.

관객1: 클린트 이스트우드 말씀을 하실 때 공감을 했다. 감독 가치관의 옳고 그름이 영화에 투영되고 또 그것이 영화의 가치에 포함된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다.
김영진: 별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가치는 불필요한 것 같다. 이면을 같이 보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겉으로만 입바른 소리를 하는 사람은 많잖나. 훌륭한 예술가는 그 레벨이 아닌 것 같다. 복합성을 응시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한다. <분노의 포도>같은 경우도 보수적인 사람이 만든 영환데 요즘 이야기 같지 않나, 용산 이야기 같고 어쩜 이렇게 현재와 똑같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분노의 포도>가 존 스타인벡의 사회리얼리즘을 감상적으로 변형시켰다는 글을 보았는데 나는 이것에 전혀 동의할 수 없다. 영화를 보면 가족이 트럭을 타고 난민촌으로 가는데 놀라운 숏이 나온다. 모든 난민들의 얼굴에 초점이 맞아있는 것이다. 그런 태도는 굉장한 리얼리스트의 태도다. 물론 정서적으로 영화에서 찡한 것 도 있었다. 극 중 아들이 엄마와 춤을 추는데 엄마는 아들의 사상을 이해하지 못하고 아들은 엄마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서로 융합되어 즐겁게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다. 그 장면이 너무 감동적이다. 보수적인 엄마와 운동권 아들이 잔치에서 춤을 추는 것을 묘사하는 것 같지 않나. 이것에 흐르는 인간애라는 건 진짜 성숙한 무언가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관객2: 영화 속에서 가족만이 유일하게 주인공들의 불명예를 안아주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당 가족들은 현실 때문에 죽거나 떠난다. 양면성과 복합성을 드러내는데 이런 영화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가르쳐달라.
김영진: 본인이 말씀하셔놓고(웃음), 그대로 받아들이시면 된다. 이 영화도 충분히 산만하게 찍을 수 있는 영화인데 산만하지 않다. 비교적 스피디하게 전개되는 편인데 이런 구조에서 양가성을 나타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아버지가 머리면 어머니는 가슴이라는 대사를 보면 알 수 있다. 아버지가 ‘머리’라지만 아들들이 노조를 결성할 때는 갑자기 감동적으로 나오지않나. 이런 인물들의 세세한 지점을 보는 것이 정말 재밌다.


관객3: 영화에서 특이하게 노래가 많이 나오는데 어떤 부분은 뮤지컬이라 생각될 정도다. 노래의 영향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해주신다면.
김영진: 나는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가 존 포드 개인의 자전적 느낌이 수용되었다 생각한다. 존 포드는 아일랜드계였고 미국에서 태어낫는데 11명의 형제들 중 막내였다. 그의 11명의 형제들 중 6명만 살아남았다고 한다. 때문에 휴에 대한 애착이 어느 정도 짙게 담겨있지 않나. 사실 존 포드의 댄스파티만 나오면 나는 이성을 잃는다. (웃음) 정말 따듯한 순간 아닌가. 이렇게 이야기하다보니 나도 존 포드를 더 많이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 감독의 산맥을 넘어본다는 게 결코 쉽지 않은 거다. 여러분들과 나, 우리 모두 존 포드를 너무 익숙하게 보지 말고 제한적 영역을 뚫었던 위대한 감독이라는데 동의해야한다. 아직도 나는 존 포드를 탐구 중이다. (정리: 강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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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과 엑소더스

'2010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는 새롭게 시네마테크에서 구매한 존 포드의 영화 6편과 작년 '할리우드 고전 컬렉션'으로 이미 구매했던 <분노의 포도>를 포함 9편의 존 포드 영화가 상영된다. 이 중 <분노의 포도>는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와 비교해 볼만한 작품으로 빈곤으로 고향을 떠나는 해체되는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다. 사실적이면서 시적인 정취가 느껴지는 그렉 톨랜드의 촬영이 돋보이는 이 영화는 존 스타인벡의 원작 소설을 각색한 것으로도 유명하다.(편집자)





서부극의 거장인 존 포드가 퓰리처상을 받은 존 스타인벡(1902 ~ 1968)의 동명의 소설을 영화화한 것은 사회적 문제보다는 빈곤 때문에 유랑을 떠나야 했던 조드 가족의 운명에 흥미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작품의 무대는 1930년대, 미국의 오클라호마의 ‘사풍 지대’라 불리는 건조 지대이다. 1929년의 대공황으로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손상이 발생하고 그 여파는 농업의 집약화와 기계화라는 형태로 농가의 생활을 위협한다. 가석방된 톰 조드(헨리 폰다)는 오클라호마에서 가족과 재회하지만 일자리를 찾고자 캘리포니아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 궁핍한 농민이지만 자긍심을 가졌던 이들을 기다리는 것은 그러나 더 가혹한 현실이다. 포드는 이들의 방랑에서 아일랜드 이민자들의 역사를 떠올렸다. 

스타인벡의 사회파 소설 「분노의 포도」는 발표와 동시에 선풍을 일으켜 당시 베스트셀러가 됐다. 폭스사의 총수 다릴 F. 자눅은 소설의 중요한 테마와 사회적인 의도를 충실히 재현해야한다는 스타인벡의 조건을 받아들여 영화화 판권을 획득했고, 존 포드와 헨리 폰다를 기용해 영화를 제작했다. 소설의 테마는 자연의 맹위와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변동성, 공산주의에 대한 당대의 공포가 주를 이루지만 다릴 F. 자눅과 존 포드는 인간적인 면과 가족의 드라마를 강조해 소설과 달리 톰과 모친이 헤어지는 장면에서 영화의 끝을 맺는다. 그리하여 영화 속 가장 감동적인 장면 중의 하나는 톰이 모친과 이별을 고하는 마지막 순간의 롱테이크이다.

종종 포드의 영화에서 가장 통렬한 순간이 인물들이 고향을 떠나려고 가족과 작별을 고할 때에 발생하는데, 이 서정적인 장면은 다음해 만들어진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1941)에서 탄광에서 해직된 두 아들이 미국에서 일자리를 구하려고 고향을 떠나는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톰과 모친이 무도회에서 ‘홍하의 골짜기’에 맞춰 춤을 추는 장면도 급진주의자로 변모한 톰과 보수적인 가치를 고수하는 어머니와의 마음과 영혼의 상태를 보여주는 점에서 감동적이다. 존 포드 영화에서의 이상주의와 숭고한 무법자 간의 원형적인 충돌의 감성이 이에 묻어난다. 

이런 점으로 <분노의 포도>는 미국사회를 다루지만, 영혼과 테마의 관점에서는 포드가 말하는 ‘아일랜드적인 전통’에 속하는 영화라 할 수 있다. 톰 가족이 겪는 빈곤과 엑소더스는 아일랜드의 대지에서 쫓겨나 미국으로 건너올 수밖에 없었던 이민자들의 여정을 반복한다. 존 포드가 스타인벡의 소설에서 떠올린 것은 그의 아일랜드 선조가 ‘대기근’의 시기를 거쳐 미국으로 이주했던 과거의 기억들이었던 것이다. 그랙 톨랜드의 콘트라스트가 강한 다큐멘터리 터치의 촬영도 기억할 만하다. 조드 가족이 빈민 캠프에 도착하는 장면에서의 느린 트래킹 쇼트, 뇌리를 떠나지 않는 밤 장면들, 성냥불과 촛불에 의존한 촬영장면들 또한 사실적이면서도 시적인 정취를 더한다.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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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②


존 포드는 1895년 2월 미국 메인주에서 아일랜드 이민자의 후예로 태어났다. 영화계에서 ‘잭 포드(Jack Ford)’라는 예명으로 일하면서 배우, 스턴트맨, 시각효과 등의 다양한 경험을 쌓았으며, 그의 형인 프랜시스 포드의 조연출을 거쳐 자신의 이름을 건 연출을 시작했다. 현장에서 계속된 영화작업을 통해 스스로를 발전시켜나간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포드는 폭스와 워너 등 메이저 스튜디오에 소속되어 50년(1917~1966)의 연출경력동안 웨스턴, 가족멜로드라마, 코미디, 전쟁물 등 다채로운 장르의 영화를 만들었다.

미국 영화의 카리스마

특히 포드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단연 웨스턴이다. 포드는 스스로 자신을 소개할 때 “내 이름은 존 포드다. 나는 서부영화 감독이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그의 경력을 온전히 설명해주지는 않지만, 서부영화를 상징하는 감독으로서의 무게감을 잘 드러낸다. 그의 웨스턴 영화가 보여주는 서부개척 신화는 미국 건국의 역사와 조응했으며, 그가 이뤄낸 웨스턴의 장르적 진화는 할리우드 클래식의 형식적 발전의 주요 요소가 되었다. 그리하여 포드는 고전기의 미국영화를 대표하는 거장으로 남게 된다. 이번 친구들 영화제의 특별 섹션으로 마련된 ‘존 포드 걸작선’에는 그의 유명한 웨스턴영화들을 비롯하여 코미디와 드라마 영화도 포함되어 있다. 그의 방대한 필모그래피를 음미해 볼만한, 비교적 다양한 시기의 다양한 장르의 영화들을 만나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굽이도는 증기선>은 포드의 초기 유성영화의 스타일을 드러내는 블랙코미디로 윌 로저스 삼부작의 마지막 작품이자 그의 유작이다. 로저스가 연기한 엉뚱한 행동을 보이지만 소박하고 따스한 마음씨를 가진 인물 닥터 존은 포드 영화의 인간적인 면을 잘 드러내준다. 증기선의 질주와 장르적 쾌감의 상승효과가 어우러지는 후반부의 즐거움이 압권이다.

포드 영화를 얘기할 때 드라마도 빼놓을 수 없다. 포드의 많은 드라마 중에서도 가장 가족멜로드라마의 원형에 충실한 걸작들이라면, 아카데미 연속 수상을 달성한 <분노의 포도>와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일 것이다. <분노의 포도>는 불합리한 사회구조 속에서 붕괴되어가는 가족과 그에 따른 분노의 표출을 그린다.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는 전작과 유사한 구도로 행복한 가족이 탄광회사의 횡포로 겪는 갈등을 보여주는데 가족의 따스한 유대감에 더 집중하여 가슴 저린 감동과 유년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특히 포드의 드라마에는 아일랜드에 대한 그의 근원적 그리움의 정서가 짙게 배어있다.

창조한 신화를 스스로 전복시키다!


하지만 역시 포드의 매력적인 영화들은 웨스턴에 집중되어 있다. 무성영화 시절 포드의 최고 걸작 중 하나인 거대한 스케일의 <철마>는 대륙횡단철도를 연결시키려는 꿈을 키워가던 사람이 마침내 그것을 이뤄내는 과정을 통해 서부개척 신화의 가장 핵심적인 사건 중 하나를 다룬다. 포드는 이미 39년에 <역마차>와 <모호크족의 북소리>를 통해 고전적인 웨스턴의 원형을 정립한 바 있다. 서부개척의 역사에서 발생했던 인디언과의 전쟁, 공동체의 구축과 문명의 도입 과정, 서부사나이들의 결투 등이 다뤄진다. 예컨대 <모호크족의 북소리>는 미국이 독립전쟁을 치르던 시기를 배경으로, 다양한 인종이 함께 공동체를 형성하여 척박한 자연환경에 맞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간다는 미국적 개척신화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번 상영작 중 더 눈 여겨 봐야할 것은 그의 중후반부 작품들이다. 포드의 웨스턴에서 경력의 후반부로 갈수록 더 강해지는 특징이 있다면, 인디언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영웅적 군대의 모습을 보여주거나 강한 총잡이끼리의 결투를 긴장감 있게 연출하는 것보다는 전쟁이나 결투 전후의 사람들의 일상적 삶의 모습을 다룬다는데 있다. 포드는 개인을 사회 혹은 역사 속에 두면서도 거기에 함몰시키지는 않았던 것이다. 아니 차라리 실제로 역사에서 함몰되었던 사람들의 삶을 영화 속에서 복원해낸 것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를테면 <황야의 결투>는 문명이 개척되고 사람들이 변해가는 과정을 상징적인 여성의 존재성과 사랑을 통해 보여주는데, 이는 실제역사이자 서부극의 신화로서 영화의 큰 골격을 형성하는 와이어트 어프와 클랜튼 가족 간의 OK목장의 결투보다 더 중점적으로 다뤄진다. 또한 <아파치 요새>는 역사적으로 유명한 기병대의 패배를 다루면서도 그 전투 자체보다는 요새에 살던 이민자들의 소수 공동체에 동부의 질서(대령과 그의 딸)가 유입되는 것을 보여 준다. 공동체 삶의 모습이 새로운 질서를 따라 변화하는 모습에 더 집중한 것이다. 1940년대 중후반부터 <수색자>에 이르는 시기에 만든 그의 웨스턴영화들은 그를 서부영화 감독으로서 정점에 다다르게 했다.

이후로도 그의 작업은 계속되었다. 그는 웨스턴에 담겨있던 세계관들을 스스로 비판하고 성찰하는 영화들을 만들었다. <말 위의 두 사나이>은 기병대 문화, 가부장제, 백인 우월주의에 대한 비판과 자본주의의 유입을 담고 있으며,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는 옛 가치가 새로운 가치로 완전히 대체되는 서부의 풍경을 다룬다. 이는 옛 가치를 대표하는 톰 도니폰(존 웨인)과 새로운 가치를 대표하는 랜섬 스토다드(제임스 스튜어트)를 통해 극명히 양분화 된다. 도니폰은 열심히 집을 짓지만 더 이상 그곳에서 살아갈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아버리고는 스스로 그 집을 태운다. 도니폰과 같은 사람은 이제 스토다드와 같은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새로운 세상의 건설을 어둠 속에서 돕는 역할을 할 뿐이다. 일종의 역사적 희생자를 재물삼아, 역사는 이러한 방식으로 신화가 된다. 전투에서 패배한 대령이, 영웅으로 신화화 되는 <아파치 요새>처럼 말이다. 결과적으로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는 웨스턴에 대한 장례를 스스로 치른 셈이 됐다. 영화에는 옛 가치의 상실에 대한, 그리고 동시에 웨스턴 장르의 인기가 시들어가는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의 멜랑콜리가 담겨있다. 실제로 유작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존 포드의 유작처럼 느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고전기 영화의 위대한 유산


한편 포드와 함께 웨스턴의 전형으로 자리 잡은 것이 있다면 그건 아마도 배우 존 웨인과 모뉴먼트 벨리라고 할 수 있다. 포드는 이를 기본으로 삼으면서 이에 안주하지 않고, 다른 요소들, 이를테면 헨리 폰다나 제임스 스튜어트와 같은 다른 성격을 지닌 배우들을 기용하고, 이들의 캐릭터를 내러티브 구축의 역학과 연동시키면서, 스스로의 전형성에 변주를 가했다. 또한 주연과 조연을 오가며 포드와 평생을 함께한 워드 본드, 빅터 맥라글렌 등의 개성 강한 배우들도 영화의 서브플롯들을 작동시키는 중요한 요소로서 포드 영화의 다채로움과 풍요로움을 증진시킨 보증수표라 할 수 있다.

이처럼 다양한 스펙트럼을 지닌 포드가 그의 경력 전반에서 가장 지속적으로 탐구한 문제가 있다면 무엇일까? 그건 아마 ‘영화에 삶을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라는 단순하고 소박한 문제의식일 것이다. 그는 누구보다도 그것을 잘 해냈던 사람이다. 포드에게 있어서 인간성, 가족, 그리고 집이라는 가치는 가장 핵심적인 주제들이다. 그는 평생에 걸쳐 아일랜드라는 뿌리를 잊지 않았다. 공화당원이자 보수주의자였으며, 가톨릭 신자였던 포드는 그의 영화처럼 일관성 있게 평생을 살았던 인물이다. 그는 배우에게 어떤 연기를 요구하고, 카메라를 어디에 세팅하고, 미장센과 몽타주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에 대한 지극히 영화적인 직관만으로도, 아름다운 영상과 고결한 정신이 깃든 영화들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더 놀라운 것은 그가 스튜디오 시스템의 통제를 받으면서도 이렇듯 일관성 있는 작품들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이다. 그의 비전의 심원함은 영화가 어떠한 예술가적 자의식을 요구받지 않고, 그 깊이와 완성도만으로도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는데 있다. 그렇게 존 포드의 영화들은 고전기 영화의 위대한 유산으로 신화처럼 남아있다. (박영석)

 ■ 존 포드 걸작선 
 
 철마 The Iron Horse
 
1924 | 133min | 미국 | B&W | 35mm 
 
 굽이도는 증기선 Steamboat round the Bend
 
1935 | 81min | 미국 | B&W | 35mm 
 
 모호크족의 북소리 Drums Along the Mohawk
 
1939 | min | 미국 | Color | 35mm 
 
 분노의 포도 The Grapes of Wrath
 
1940 | 129min | 미국 | B&W | 35mm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 How Green Was My Valley
 
1941 | 118min | 미국 | B&W | 35mm

 
황야의 결투 My Darling Clementine
 
1946 | 미국 | 97min | B&W | 35mm

 
아파치 요새 Fort Apache
 
1948 | 미국 | 127min | B&W | 35mm

 
말 위의 두 사람 Two Rode Together
 
1961 | 미국 | 109min | Color | 35mm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 The Man who Shot Liberty Valance
 
1962 | 미국 | 122min | B&W | 35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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