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토크
“이제는 잘 아는 사람, 살면서 마주쳤던 사람들 같다”
- 윤성호 감독이 말하는 장선우의 '우묵배미의 사랑'

 

지난 2월 3일, 장선우 감독의 <우묵배미의 사랑> 상영 후 이 영화를 선택한 윤성호 감독과의 시네토크가 열렸다. 케이블TV에서 <우묵배미의 사랑>을 본 뒤 갑작스레 선택작을 바꾸게 되었다고 밝힌 윤성호 감독은 영화에 대한 세세한 감상을 들려주었다. 그 현장을 전한다.

 

 

윤성호(영화감독): <우묵배미의 사랑>을 스크린으로 보고 싶었다. 제가 많이 좋아하는 영화이긴 하지만 여러 번 본 건 아니다. 총 세 번 봤는데 한 번은 96년 대학생 시절 공강시간에 학교 도서관에서, 또 한 번은 케이블 방송에서, 마지막은 오늘 극장에서 본 거다.

김숙현(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코디네이터): 이 영화는 90년에 나온 영화인데, 90년이라는 해는 한국영화에서 새로운 장이 펼쳐지고 새로운 감독들이 드러나서 신호탄을 강하게 쏘아 올리던 해인 것 같다. 80년대하고는 약간 다르다.
윤성호: 저는 이번에 보면서 조금 감상이 달랐다. 오히려 80년대 영화 같았다. 장선우 감독님은 90년대부터 화제에 오른 감독인데, 이 영화를 자신의 필모그래피에서 좋아하실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만드시는 동안 여러 애로사항이 있었을 텐데 감독의 자의식이나 선택이 얼마나 반영됐을지 궁금해졌다. 이 영화의 원작 「우묵배미의 사랑」은 박영환 작가의 『왕룽일가』라는 6편의 연작소설 중 하나의 중편소설이다. 80년대 중반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근대와 현대가 묘하게 혼재되어 있다. 원작 소설이 80년대에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 먼저 TV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이게 브랜드가 있다 보니까 배일도의 친구 역할로 최주봉 씨가 쿠웨이트 박으로 나오는데, TV에서 히트한 캐릭터를 하나 넣어달라고 부탁받은 느낌이 약간 있다. 그리고 시어머니와의 화해도 이상하게 비중이 많이 할애되어 있다. 그런 장면들을 보면서 과연 장선우 감독의 모든 선택이 반영이 된 것인지 의문이 든다. 모든 걸 장악했다기보단 제작자나 투자자의 요구와 적절하게 수렴을 하면서 노력한 결과가 아닌가 싶다.

 

김숙현: 장선우 감독이 그 이전 세대 감독들의 자장 아래 있으면서 본인의 스타일을 찾던 시기였던 것 같다. 이후에 만들어진 영화들, <너에게 나를 보낸다>, <경마장 가는 길>은 이 영화와 굉장히 다르다. 오늘 보면서 여자 캐릭터들이 강하다는 생각을 했다. 배일도의 아내로 나오는 새댁 역 유혜리 씨의 에피소드가 그렇게 비중있게 나오지 않아도 될 텐데 12살 때 과거도 나오고, 시어머니와 화해하는 과정도 길고 섬세하다. 90년대는 민주화 이후 이런저런 창작을 하고 싶어하는 젊은 인재들이 영화로 모여들고 대학가에서는 페미니즘도 폭발하는 시기였다. 남녀묘사는 80년대 여성을 그리던 식과는 좀 다른 것 같다. 특히 여성 캐릭터를 그리는 방식이 다르다.
윤성호: 그땐 저도 여성학 수업을 많이 듣던 시절이었고, 영화가 웃기고 묘하긴 했는데 불편했다. 배일도가 미싱 공장에 첫 출근하던 날, 사장이 민공례에게 성희롱에 가까운 농담을 던지고 배일도도 덩달아 더한 농담을 던진다. 그런데 민공례는 좋아 죽으려고 한다. 그런 상황에서 아줌마들이 굉장히 걸쭉하게 리액션을 던진다. 이게 너무 낯설었다. 그런데 보다 보니까 오히려 저게 더 현대적인 것 같다. 왜냐면 가난하고 인정받으려는 욕구를 제한받은 여자가 자기 스토리를 만들어하고 싶어 하는 거니까. 구질구질하더라도 자신을 세팅한다는 게 이제야 오는 것 같다. 작년 한해 한국영화들은 나름 흥해도 되고 특별히 흠 잡을 게 없는 것 같아 부러웠다. 그러고 있다가 케이블에서 <우묵배미의 사랑>을 보고 생각이 달라졌다. 지금은 이런 영화 한 편을 대중영화로 만들 수 없구나, 하면서 뭔가 각성이 되고 기운을 수여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보니까 저때도 나름의 영세한 자본이나 마케팅 홍보가 작용을 했고 저때의 감독님들도 외롭게 자기 것을 지켰겠구나, 해서 지금 한탄할 일만은 아닌 것 같다.

 

김숙현: 영화 보는데 박중훈 씨가 밥 먹는 씬이 인상 깊었다.
윤성호: 밥 먹는 장면에 테이크를 다섯 번만 갔다고 생각해보면 장선우 감독님이 박중훈 씨 괴롭히는 데에서 즐거움을 느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웃음). 제가 인상 깊게 본 장면은 배일도와 민공혜가 기차에서 가위바위보 하면서 술 마시는 장면이다. 묘하게 귀여우면서 어설프다. 그런데 그 장면은 사실 원작에서 쉽게 지나간다. 배창호 감독님, 장선우 감독님, 이명세 감독님 이렇게 세 분을 보면, 각각 비슷한 영화인 것 같으면서도 스타일의 차이가 느껴진다. 배창호 감독님의 <꼬방동네 사람들>이 훨씬 위험한 설정이 많은데 절대 망측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명세 감독님은 <나의 사랑 나의 신부>에서 예쁜 문방구를 만드시는 것 같고, 장선우 감독님은 망측한 걸 보여주길 좋아하시는 것 같다. 민공례와 배일도가 비닐하우스에서 밀회하는 장면도, 거기서 굳이 민공례의 팬티를 보여주시고 호떡이 팬티까지 젖어있다고 하면서 웃는 모습을 보여주신다. 사람의 어떤 부분을 내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느냐의 차이인 것 같다.

 

관객1: 감독이 영화 속 인물을 냉정하게 비판하는 것 같지만, 애정 어린 시선으로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장선우 감독의 다른 작품에서도 그런 게 보이는지 궁금하다.
윤성호: 솔직히 말해서 비주류에 대한 따뜻한 감성은 한국영화가 다 갖고 있는 것 같다. 장선우 감독만의 시선은 아닌 것 같고, 시선이나 설정 말고 캐릭터의 터치를 봐야 하는 것 같은데 장선우 감독님은 즐거워하시는 것 같다. ‘저 사람들 저렇게 굴러가는 거지, 재밌지 않냐?’ 하시면서 자기가 그린 인물들을 귀여워하시는 것 같다.

 

관객2: 한국영화가 르네상스를 맞이한 지금 이 시기에도 이 영화 같은 걸 못 만들 것이라고 하셨는데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들려주셨으면 좋겠다.
윤성호: 못 만든다는 게 아니라 대중 상업영화로는 못 만들 것 같다는 얘기다. 옆에 있을 것 같은 궁상맞은 캐릭터를 다루고 해결되지 않는 서사를 다루는 영화들은 기획 단계에서 폐기될 것 같다. 일단 제목부터가 ‘우묵배미의 사랑’이 안 될 것 같다(웃음). 이건 한국영화 산업이 발전하면서 데이터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이 잘 모르고 배팅했던 것들은 시행착오 같지만 그게 쌓여서 스펙트럼을 낳았다. 이젠 투자자들이 연출자들의 ‘썰’에 속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 산업 문제는 문제고, 괜히 엄살떨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 이 영화도 찍으면서 고민이 많았을 테고, 촬영조건도 훨씬 열악했을 것 같다. 어느 시대건 자본과의 줄다리기는 당연히 있었겠구나, 그럼 나는 어떻게 균형을 잡을지 그런 고민을 한다.

 

관객3: 영화 속 민공례라는 캐릭터는 순수한 것 같다가도 결국엔 엄청난 선택을 한다. 공례 캐릭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윤성호: 이 영화를 고른 가장 큰 이유가 민공례 캐릭터 때문이다. 이제는 잘 아는 사람, 살면서 마주쳤던 사람들 같다. 그리고 순수하다고만 요약할 수 없는 ‘밀당’의 고수다(웃음). 자기를 발현할 만한 도구가 너무 없어서 아무것도 못 잡을 것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든 자기 스토리 하나 만들어 보려고, 나도 뭐 하나 잡아보려고, 내 인생에서 선택 하나 있어본 척 하려고 하는 것 같다.

 

정리: 송은경(시네마테크 관객에디터) | 사진:  문지현(시네마테크 자원활동가)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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