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발 소녀의 기벽'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0.06.04 2층집 금발 소녀의 은밀한 매력
  2. 2010.05.19 영화의 21세기, 미래의 시네마테크

[영화읽기] 마뇰 드 올리베이라의 <금발 소녀의 기벽>


많은 평자들이 이 영화가 명백히 루이스 부뉴엘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지적하였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나는 문득 오즈 야스지로가 떠올랐다. 아니 더 정확하게 오즈 야스지로의 2층 방에 살고 있는 과년한 딸들이 생각났다. 2층에 살고 있는 오즈의 딸들과 올리베이라의 금발 소녀. 하스미 시게히코는 오즈의 그녀들이 2층의 공간으로부터 사라지는 결정적 순간의 도래를 기다리는 통과자이며, 영화의 내러티브는 결국 그녀들이 오즈적인 ‘無'로 돌아가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 영화의 금발 소녀 역시 오즈의 딸들처럼 결혼할 시간을 기다린다. 그런데 그녀는 좀 더 적극적으로 창문을 열고 자기를 그 2층 방에서 데리고 나갈 누군가를 부르고 있다. 그리고 그 부름을 건너 편 2층에서 마카리오가 듣는다. 금발 소녀가 2층 창문가에 나타날 때마다 울리던 종소리는 이제 종소리를 들은 마카리오를 그녀에게로 이끄는 자동 장치가 되어 마카리오가 그녀를 향한 욕망을 포기하지 못하도록 부추긴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마카리오가 금발 소녀를 만나기 위해 자신의 2층 방에서 내려오는 순간, 두 번 다시 2층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건 금발 소녀가 아니라 마카리오라는 점이다.

첫 눈에 반한 금발 소녀를 만나기 위해 마카리오는 그녀가 찾아온 삼촌의 스카프 가게로 내려간다. 그런데 갑자기 등장한 삼촌이 1층에 채 내려오지도 못한 마카리오를 다시 2층으로 쫓아 올려 보낸다. 그런 다음, 마카리오가 소녀를 만나기 위해서 찾아간 곳은 시를 읽고 음악을 감상하는 모임이다. 그런데 이 모임은 계단을 올라가야만 하는 2층의 살롱에서 진행된다. (올리베이라는 모임의 구성원들이 살롱에 가기 위해 계단을 오르는 모습을 꼼꼼히 보여주고 있다.) 모임이 끝난 다음 날, 마카리오는 금발 소녀를 만나기 위해서 그녀의 집을 방문한다. 그리고 그곳 역시 2층에 있다. 마치 이들에게는 2층의 세계만 있는 듯 보인다. 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2층의 공간은 우아하기 그지없다. 그곳은 수많은 그림과 조각들로 장식되어 있고, 사람들은 아름다운 하프 연주를 듣고 시를 낭송하며 문학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중국풍의 부채를 살랑거리며 베일 속에서 드러났다 숨었다를 반복하던 금발 소녀의 황홀한 모습이 표상하는 2층의 세계는 완벽한 부르주아의 공간처럼 보인다.



하지만 계단을 내려와 땅에 발을 붙인 1층의 세계는 어떠한가? 2층에서 그렇게 황홀한 모습만을 보여주던 금발 소녀는 1층에 내려오면 손수건을 훔치고 반지를 훔치며 자신의 기벽을 드러낸다. 삼촌 프란시스코는 1층은 마카리오가 있을 곳이 아니라고 말을 하거나 ‘가난한 사람들’을 가게에 들이지 말라고 경고하듯 말한다. 그러나 삼촌 덕분에 2층의 세계에 진입했던 마카리오는 삼촌의 뜻을 거스르며 금발 소녀와의 결혼을 고집하다가 2층에서 쫓겨나 철물상에서 돈을 벌어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이제 그가 지내는 방 어디에도 그림이나 조각을 찾아볼 수 없다. 2층에서 그를 내려다보게 된 금발 소녀는 2층으로 그를 초대하는 대신 자신이 신호를 보내기 전까지 올라오지 말라고 말한다. 마카리오를 내려다보는 금발 소녀의 시점 숏은 불과 2층에서 내려다본 것인데도 마치 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것처럼 멀고 낮게 느껴진다. 1층의 세계에게서 금발 소녀는 도벽을 드러내고, 마카리오는 사기를 당하며 도둑으로 몰린다. 2층을 장식하던 그림과 조각들은 1층에서 돈으로 거래되는 하나의 상품으로 취급된다.



이처럼 영화 속에 등장하는 각각의 층은 마치 자본주의에서 은밀하게 작동하는 계급처럼 아무도 인정하려 하지 않지만 엄격하게 구분되어 좀처럼 섞이지 않는다. 2층에 속한 삼촌은 계속해서 1층에 있는 사람들을 비난하고, 1층의 사업가는 마카리오가 더 이상 삼촌인 프란시스코와 관계를 맺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고서야 그에게 일자리를 제안한다. 2층의 삼촌에게 쫓겨나 우여곡절을 겪은 마카리오는 이제 1층의 세계에서 돈을 벌어 2층에 있는 금발 소녀와 결혼을 하겠다는 자신의 꿈이 삼촌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금발 소녀는 2층에 속한 인물이기는 하지만 결혼을 하지 않은 ‘소녀’의 신분으로 자신의 방에 계속 머무는 것은 사실 상 불가능하다. 오즈의 딸들처럼 금발 소녀도 자신의 방을 비워야하는 것이다. 그런데 올리베이라의 금발 소녀는 2층에서 내려올 생각이 없는 듯하다. 결국 그녀는 자신을 2층의 공간에 살게 해줄 남자를 찾았지만 자신의 ‘기벽’ 때문에 그 기회를 잃는다. 그리고 그 기회는 마카리오가 타고 떠난 마지막 장면의 기차처럼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이제 금발 소녀는 다시 원점인 자신의 2층 방으로 돌아온다. 지쳤다는 듯 털썩 소파에 주저앉은 금발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다시 창밖을 내다보며 낚시를 드리우는 일 뿐이다. (우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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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아트시네마 개관 8주년 기념 영화제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www.cinematheque.seoul.com)시네마테크 전용관 서울아트시네마의 개관 8주년을 맞아 영화의 21세기, 미래의 시네마테크를 테마로 오는 25일까지 일주일간 서울아트시네마 개관 8주년 기념 영화제를 개최한다.

지난 2002년에 개관한 비영리 극장인 서울아트시네마는 지난 8년간 상업과 유행에 따라 소멸하고 사라지는 영화들, 문화적 가치와 예술성을 지닌 고전들을 꾸준히 소개해 왔다. 손쉽게 영화를 볼 수 있다고 말하지만, 영화의 고전과 상당수의 예술 작품들을 극장에서 온전하게 감상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21세기의 새로운 영화들 또한 마찬가지의 운명에 처해 있다. 뛰어난 작가들의 작품 상당수가 아직 우리들에게 제대로 도착하지 못한 상태이다.

이번 시네마테크 전용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개관 8주년을 맞아 여는 서울아트시네마 개관 8주년 기념 영화제21세기에 새롭게 나온 영화들 중 상업성이 적다는 이유로 국내에 수입되지 않은 작품을 소개하는 특별전이다. 마뇰 드 올리베이라의 <금발 소녀의 기벽>(2009), 잉마리 베르히만의 <사라방드>(2003) 등 세계적인 거장의 작품부터 마르코 벨로키오의 <승리>(2009) 등 최근 각종 영화제에서 찬사를 받은 작품 총 8편이 상영된다. 종종 좋은 영화들을 관객들이 외면한다고 말하지만, 이런 영화들을 외면하는 것이 관객들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생긴다. 이번 특별전은 21세기에 문을 연 서울아트시네마와 함께 동시대를 살았던 영화들을 소개하는 행사이자, 왜 동시대의 영화들이 극장을 통해 안정적으로 상영되지 못하는가를 생각해보는 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이 기간에는 서울아트시네마를 후원하기 위한 영화인들의 후원활동을 기념하는 특별한 행사도 마련된다. 서울이 세계 4대 도시 중의 하나가 될 거라고 하지만, 정작 서울의 영화적 환경은 파리, 런던, 뉴욕 등의 선진국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안타까운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영화인들은 서울아트시네마를 후원하는 활동을 꾸준히 벌여왔고, 올해 1월에는 ‘서울에 시네마테크전용관을 건립하기 위한 추진위원회(위원장 이명세 감독)’를 발족시켰다. 시네마테크 전용관 건립을 위한 후원 활동의 일환으로 지난 3월에는 박찬욱, 봉준호, 김혜수, 원빈 등 총 12인의 영화인들의 서울아트시네마를 후원하기 위한 하이트맥주의 맥스 광고 촬영이, 4월에는 하퍼스바자에서 영화의 집으로 오세요를 컨셉으로 이장호, 이명세, 안성기, 이병헌 등 총 26명의 영화인들과 함께 진행한 후원사진 촬영이 있었고, 이 사진들은 2010 5월호 하퍼스바자 특집 코너에 게재되었다. 또 국내 대표적인 영화잡지 씨네21에서도 시네마테크 전용관 서울아트시네마를 후원하기 사진전을 개최하고, 관련 캠페인도 지속적으로 펼치고 있다.

이에 따라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이번 개관 8주년 기념 영화제 기간 동안 이들의 후원활동을 기념하는 ‘후원 사진전’을 서울아트시네마 로비에서 연다.

또한 20일 저녁 7시에는 시네마테크 전용관 건립의 염원이 담겨진 영화인들의 후원활동을 기념하고 감사의 뜻을 전하며, 함께 서울아트시네마 개관 8주년을 축하하는 '시네마테크 전용관 건립을 위한 후원의 밤' 행사를 개최한다. 이날 행사에서는 그간 아낌없는 후원을 해주신 후원사와 다양한 분야에서 시네마테크를 지지하는 친구들이 참여할 예정이며, 향후 건립될 시네마테크 전용관의 상을 그려보는 프리젠테이션도 진행될 계획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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