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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5.05 [리뷰] 존 카사베츠의 '글로리아'

20세기의 히로인

- 존 카사베츠의 <글로리아>

 

 

 

 

<글로리아>는 미국 독립영화감독으로 유명한 존 카사베츠의 필모그래피 중에서도 독특한 위치에 있는 영화다. <차이니즈 부키의 죽음>과 더불어 그가 만든 2편의 느와르 영화 중 하나이며, 무엇보다 메이저 제작사에서 탄생한 작품이라는 점이 특이하다. 당시 영화 <챔프>(1979)의 성공을 본 MGM이 존 카사베츠에게 남자 아이를 주인공으로 한 시나리오를 부탁하면서 <글로리아>가 시작됐다. 하지만 원래 연기하려 했던 아역배우가 월트 디즈니사로 가면서 무산되었고, 후에 콜롬비아 영화사에서 이 시나리오를 다시 구입하여 존 카사베츠에게 영화를 의뢰한다. 독립 제작 방식을 고수 했던 그였지만 자신의 영화 제작비용을 위해 제안에 응한다.

 

 

때문에 <글로리아>는 그의 전작들과는 다소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대중적인 이야기와 뚜렷한 해피엔딩 역시 낯설게 다가온다. 그럼에도 이야기를 연결하는 순간들은 존 카사베츠 만의 감성으로 가득하다. 그 중심에는 영화의 히로인인 글로리아 역의 지나 롤랜즈가 있다. <글로리아>에서 뿐 아니라 존 카사베츠와 지나 롤랜즈는 떼어 설명할 수 없는 관계일 것이다. 지나 롤랜즈가 분한 인물은 기존 영화 속 여자의 이미지를 완전히 뒤집었다. 그녀는 남자 중심의 영화에서 남자의 시선으로 그려진 여자가 아니었다. 스스로 자신을 지키고, 남자에 귀속되지 않으며 특히 <글로리아>에서는 남자들보다 우위에 있다. 자신을 쫓는 남자 마피아들에게 총을 겨누고 “여자한테 지니까 싫지?”라고 조롱하는 장면에서는 그러한 성격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적들을 향해 총을 쏠 때는 주저함이 없고, 그 후 택시를 타는 모습에서도 거침없다. 그녀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도망치는 와중에도 미행하는 마피아들에게 먼저 다가가 총을 빼앗아버리는 스타일이다. 그러니 결국 마피아 보스에게 직접 찾아가는 것은 그녀로썬 당연한 선택이었던 것이다. 글로리아의 이러한 캐릭터는 후에 수많은 감독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동명의 영화로 시드니 루멧이 리메이크 했으며, 많은 사람들이 비교하는 <레옹>은 <글로리아>에 대한 오마주이다. 또 <중경삼림>에서의 임청하 역과 우리나라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의 이영애 역이 글로리아에서 나왔다고 한다.

 

 

<글로리아>는 마피아가 몰살시킨 글로리아 친구의 가족 중, 살아남은 8살의 남자아이 필을 그녀가 떠맡게 되며 마피아에게 쫓긴다는 이야기로 서사 자체는 단순하다. 아이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글로리아는 계란 후라이 하나 제대로 못할 정도로 가정과는 멀어 보인다. 실제로 다정한 엄마보단 강인한 전투사에 가까운 글로리아와 그녀에게 의지하면서도 끊임없이 엄마와 아빠를 찾아대는 필. 이 둘은 지하철, 버스, 공항, 길거리, 식당, 그리고 여러 밤을 보내는 각각의 여관들까지. 수많은 곳을 거쳐 어디론가 향해가고 있지만 정작 그 공간성은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즉 아무리 이동해도 그곳이 어디인지 알 수가 없다. 더 강하게 말하면 같은 곳을 맴도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어디서든 자신들을 쫓는 마피아와 부닥친다. 그러니까 그들이 빠져나갈 곳은 어디에도 없는 셈이다. (이는 글로리아가 결국 마피아 보스를 찾아가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결론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렇다면 왜 긴 시간동안 글로리아와 필의 여정을 비춰주느냐고 묻게 된다. 그건 <글로리아>가 둘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라고 보는 게 더 적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글로리아>는 마치 한 편의 로드무비 같기도 하다. 전혀 다른 분위기이지만 <기쿠지로의 여름>이 계속 겹쳐 보인 이유이다. 처음에는 아이에 대한 애정이나 사람으로서의 따뜻함이 보이지 않던 어른이 한 아이를 만나고, 아이를 지켜주기 위한 여정을 동행한다. 그리고 마침내 아이가 도착해야할 곳에 이르자 정작 그 시간동안 뭔가를(이를테면, 유대감, 추억) 얻은 것은 어른이었다. 이는 <기쿠지로의 여름>의 줄거리이다. <글로리아>도 그렇지 않나. 그 둘의 관계는 모성애라는 표현으로 한정하지 않고도 더 많은 감정을 함축하고 있다. 필의 표현처럼 글로리아는 ‘엄마이고 아빠이고 친구이며 여자친구’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유일한 가족’이며 그건 글로리아에게 있어 필도 그런 것 같다. 따라서 <글로리아>는 인간관계라고는 아무도 남지 않은 사람 둘이 외로움을 그들의 존재로 채워가는 과정에서 빛이 난다.

 

 

마지막으로 존 카사베츠 특별전을 꼭 봐야하는 이유를 하나 말해야 한다면 그의 영화에선 때로 음악이 대사를 대신하기도 하기 때문이라고 말하겠다. 극장 안에서야 만 영화 속 또 다른 언어가 생생히 들릴 것이다. (김휴리 / 관객 에디터)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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