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12일 오후 이탈리아의 신예 마테오 가로네의 <고모라> 상영 후 ‘마테오 가로네의 영화세계’란 주제로 한창호 영화평론가의 강연이 이어졌다. 가로네의 영화적 토대부터 이탈리아의 현재까지 영화보다 더 흥미로운 얘기들이 오간 그 현장은 가로네 영화를 좀 더 깊게 조망해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자리였다. 그 일부를 여기에 옮긴다.


한창호(영화평론가): 마테오 가로네의 영화적 토대에 대해 이야기하겠다. 하나는 이탈리아 영화계의 큰 전통인 네오리얼리즘이다. 네오리얼리즘은 카메라를 들고 무엇을 판단하는 입장이 아니다. 자신이 관찰하는 대상을 가능한 객관적으로 관찰해서 관객들에게 제시하는 것으로 자신의 역할을 의도적으로 제한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관객들로 하여금 제시된 사실들을 보고 스스로 판단하게 만든다. 네오리얼리즘은 마테오 가로네의 데뷔작 <이민자들의 땅>의 첫 번째 미학의 토대였다. 또 하나는 마테오 가로네의 영화적 교양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인데, 네오리얼리즘과 같은 윤리적 사실주의 한편에 이탈리아식 코미디가 있다. 이탈리아식 코미디의 특징이라면, 그 당시 사회가 갖고 있는 사회적 이슈를 가지고 패러디하는 것이다. 거울을 비추듯 사회적 이면을 다루기 때문에 헛웃음이 나고 때로 눈물이 나기도 하는 그런 웃음을 준다. 이런 코미디 장르는 1960년대에 유행했는데, 60년대에 들어서면 네오리얼리즘은 거의 없어진 상태였고, 소위 작가감독들 중에서는 펠리니나 비스콘티 정도만 대중들과 소통되는 정도이지, 안토니오니나 파솔리니 같은 감독들의 영화는 대중들에겐 어려웠다. 대신 일반 관객들은 주로 코미디영화들을 봤다. 가로네가 대중들이 좋아할만한 코미디적인 부분들을 자신의 데뷔작에 담았다는 데에는 관객들과 활발하게 소통하고 싶어 하는 태도가 보인다. 비교적 출발을 잘한 것 같다. 그 이후에 계속해서, 가로네는 사실주의에 토대를 둔 작품들을 만들어왔다.

그런데 2002년 <박제사>를 만들면서 그런 자신의 미학적 태도를 180도 바꾸는 변화를 보여준다. <박제사>를 만든 제작사는 판당고라는 현재 이탈리아의 영화계를 이끌고 있는 대표적인 제작사다. 판당고의 프로듀서가 도미니코 프로카치라는 능력있는 제작사인데, 가로네는 <박제사>를 만들면서 그를 만나게 되고 자신의 미학적 방향을 틀었다고 볼 수 있다. 화가가 되고 싶어 했던 본인의 꿈을 영화적으로 실현한 영화가 바로 <박제사>라고 할 수 있다. 필름 느와르 장르 영화로 대단히 표현주의적이고 장식적이다. 많은 사람들이 가로네의 영화를 보고 ‘필름 블루’라고 표현하듯이, 느와르영화인데 주로 검은색보다는 푸른 색에 대한 감각이 두드러진다. 현재 마테오 가로네의 영화와 함께 프로그래밍되어 상영되고 있는 로만 폴란스키의 영화들을 가로네가 굉장히 좋아했다. 특히 <박제사>를 보면 폴란스키의 영화가 많이 떠오를 것이다. 폐쇄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심리드라마이고, 장신적인 표현들이나 색깔들, 조명들과 같은 인공적인 부분들이 두드러지는 특징이 있다. 또 한 가지,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겠지만 서울아트시네마의 다음 프로그램으로 준비되어 있는 마리오 바바의 영향을 들 수 있다. 마리오 바바를 소개할 때 보통 B급 호러영화를 잘 만드는 감독으로 주로 소개되지만 마리오 바바가 다른 많은 영화인들에게 영향을 끼친 것은 그런 부분들만은 아닌 듯 하다. 마리오 바바는 화가다. 그의 표현력, 특히 색을 이용한 표현력은 웬만한 화가보다 낫다. 가로네 같은 사람들은 어렸을 때부터 마리오 바바의 영화들을 보고 자랐을 것이다. 노란색, 푸른색, 붉은색 들을 대단히 잘 이용하고 있는데 분명히 가로네가 마리오 바바에게서 배운 점이 있다. 가로네 영화에 관심있는 분들은 그와 폴란스키, 마리오 바바 사이에는 공통점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가로네는 <박제사>로 칸 감독주간에 초청을 받아 호평을 받고서 다음으로 <첫사랑>을 만든다. <박제사>와 <첫사랑>은 미학적으로 같은 카테고리 안에 있다. 그리고 만든 영화가 바로 <고모라>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가로네는 네오리얼리즘에서 출발했던 사람인데, 판당고 제작사를 만나면서 <박제사>와 <첫사랑>이라는 폴란스키 스타일의 심리드라마를 연속해서 만들고서, <고모라>를 통해 처음에 자신의 출발점이었던 네오리얼리즘 미학으로 돌아왔다. 이 영화는 아시다시피 2008년 칸에서 대단한 호평을 받게 된다. 그러면서 마테오 가로네는 <일 디보>의 파올로 소렌티노와 함께 현재 이탈리아 영화계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꼽히게 된다. <고모라>의 원작은 로베르토 사비아노의 논픽션이다. 사비아노는 앞으로 더 두고 봐야겠지만 가로네보다 더 멀리 갈지 모르는 작가이다. 이 책이 나왔을 때 사비아노는 27살 이었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나폴리 출신으로 철학과를 나왔다. 마피아라는 말은 특정한 집단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이탈리아의 조직범죄를 말한다. 마피아들은 주로 이탈리아 나부에서 활동하는데, 활동하는 지역에 따라 조직의 고유 이름이 있다. 사비아노의 원작과 영화에 등장하는 것은 캄파니아에서 활동하는 카모라이다. 우리가 코폴라나 스콜세지의 영화를 통해서 알고 있고 국제적으로도 시칠리아의 마피아가 더 유명하지만 최근에 이탈리아에서는 이 카모라에 관한 문제들이 더 많이 기사에 오르내리고 있다. 이 카모라 조직을 사비아노가 취재 하면서 대학생때부터 지방지나 잡지에 르포를 썼었고, 본격적으로 써낸 작품이 바로 『고모라』이다. 책이 나오자 카모라는 공개적으로 사비아노에 대해 살해명령을 내렸다. 움베르토 에코는 작가에 대해 전폭적인 지지를 표했고 다른 많은 지식인·작가들이 나서서 이탈리아 정부는 사비아노의 신변을 보호해야한다고 말했다. 독자들의 반응 역시 대단하다. 사비아노를 지지하는 독서모임 같은 것을 하면서 함께 모여 『고모라』를 읽는 행사를 한다. 작가에 대한 지지와 열성이 높지만 불행하게도 현재까지도 카모라는 사비아노에 대한 살해위협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이런 원작을 가로네는 용기있게 영화로 옮기게 된 것이다.



<고모라>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몇 가지 사전지식이 필요할 것 같다. 먼저 나폴리라는 도시는 자연풍광이 굉장히 아름답고, 베네치아와 더불어 반드시 가봐야 하는 이탈리아 도시 중의 하나지만 수위 이탈리아의 남북문제의 상징적인 도시이기도 하다. 이탈리아의 남부와 북부의 차이는 심각한 수준이다. 경제적인 것만 따져도 남부는 북부의 절반이 안 된다. 여러 복합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그래서 그런지 마피아들의 활동 지역 역시 대부분 남쪽에 있다. 오랜 문화적 전통을 갖고 있어서 이탈리아를 대표하고 사랑받는 도시이지만, 실업률도 굉장히 높고, 영화에도 나오지만 중국인들이 많이 들어와서 지역경제의 일정부분을 빼어가고 있는 부분도 있다. 그 지역에서 폭력을 행사하는 조직이 바로 카모라이다. 시칠리아의 마피아와 다른 점은 영화에서도 강조되듯이, 경제 쪽에 집중한다는 점이다. 시칠리아의 마피아들은 과거에 독립운동도 있었을 정도로, 육지에 대해 별로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 중앙 정부에 대해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특히 70년대 시칠리아에서는 중앙 정부에서 보낸 관리들을 마피아들이 암살하는 일이 잦았다. 그런 과정에서 정부측과 전면전 비슷한 면모를 띄게 될 때 나폴리 마피아는 정부와 싸우는 대신 경제 활동에 더 많이 집중하게 된 것이다. 영화의 대사들은 모두 나폴리 지역어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자막이 없다면 이탈리아 사람도 이해하지 못하는, 악센트가 대단히 센 나폴리 지역어를 쓰고 있다. 영화에 나오는 음악 역시 지역어로 가사를 붙여 부른 노래들이 주로 나온다. 음악을 쓰는 부분에 있어서는 마피아들이 나올 때 대중음악이나 락음악을 들려주는 점들이 스콜세지의 <좋은 친구들>을 참조한 듯하다. 또 한 가지 이탈리아 남부를 이해할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일하다’는 말에 있는 것 같다. ‘일하다’는 말을 남부 사람들은 ‘피곤하다’는 단어로 표현한다. 이런 표현은 일반적인 편견들, 남부 사람들의 노동률이 낮은 것, 게으름을 설명할 때 자주 쓰이는 예가 되었다. 물론 그런 부분들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 말 속에는 남부와 북부 문제의 차별이 응축되어 있다. 남부는 과거에 대부분 농촌지역이었고, 북부는 공업지역이었다. 과거에 ‘일을 한다’고 했을 때 지주의 입장에서는 일을 하는 것이지만 소작농의 입장에서는 일을 한다는 말을 쓰기 주저되었을 것 같다. 착취당했던 남부 사람들의 피해의식 같은 것이 말 속에도 들어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고모라>는 크게 4개의 에피소드로 진행 된다. 첫 번째는 나폴리 북부의 스캄피아 지역을 배경으로 한다. 자막에도 나왔지만 유럽에서 마약밀매 거래량이 제일 많은 지역 중의 한 곳이다. 그곳의 아파트가 나오는데, 과거에 60~70년대를 거치면서 하층민들의 주거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에서 지은 건물인데, 지금은 보시다시피 범죄지역으로 빈민굴로 바꾸어버렸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는 토토와 살해당하는 마리아, 돈 치로 그 세 사람이 나온다. 토토는 커서 카모라 단원이 되는게 꿈인 소년이다. 마리아의 남편은 감옥에 있는데 아들이 다른 파의 조직에 들어 가버리는 바람에 보복을 당하게 된다. 돈 치로는 그저 돈심부름하고 대가를 받으면 되는 사람인데 조직원들 사이에 전쟁이 벌어지는 바람에 어느 한쪽을 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맞는다. 토토의 입장에서는 태어날 때부터 존재했던 그 지역의 질서를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생각한다. 가로네는 마피아의 질서가 자연으로 변해있는 곳임을 강조하고 있다. 나폴리 혹은 스캄피아만의 문제를 얘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는 잘 만들어진 갱스터 영화들의 특징이기도 하다. 마피아의 질서가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사회라는 것은 단지 나폴리의 이야기로만 보이진 않는다. 두 번째는 에피소드는 마르코와 치로, 십대 갱스터의 이야기다. 이 에피소드는 갱스터 장르를 많이 이용하고 있고, 또 <박제사>나 <첫사랑>같은 영화에서 보여줬던 장식적인 화면들을 많이 쓰고 있다. 마르코와 치로는 드팔마의 <스카페이스>의 주인공에 매혹된 소년들이다. <스카페이스>에서 알파치노가 연기하는 토니 몬타나 흉내를 내면서 자기들도 언젠가는 조직의 두목이 되고, 나폴리지역을 장악하는 그런 꿈을 꾸는 친구들이다. 그들에게는 희망이 폭력이다. 역시 알레고리적인 부분이 많이 들어가 있다. 제도권의 질서에 따라 노력을 했을 때 그 노력의 상당한 대가를 받는 것이 문명사회에서의 당연한 바람인데, 나폴리처럼 카모라들이 장악하고 있는 곳에선 문명사회에서 제공하는 질서를 지키려고 노력했을 때 돌아오는 대가가 대단히 낮고 그 가능성이 낮을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십대들이 폭력에 호소하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할 수 있다. 그게 정말 나폴리만의 문제일까 하는 질문을 던지게 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영화가 던지는 경고가 분명히 있다. 세 번째 에피소드에서 프랑코 역할을 맡은 사람은 현재 이탈리아를 대표적인 배우인 토니 세르빌로이다. <일 디보>에서 줄리오 안드레오티를 연기하기도 했다. 세 번째 에피소드에는 이탈리아 북부지역 산업지역에서 독극물을 받아와 남부에 묻는 과정을 다룬다. 합법을 가장한 불법행위로 소위 전형적인 카모라의 사업이기도 하다. 나폴리의 카모라가 시칠리아의 마피아 코자노스트라와 다른 점은 서류상으로는 사실상 모두 합법적인 것으로 꾸며 불법행위를 저지르는 거다. 그 같은 경제행위가 과연 나폴리에서만 일어나는 경제행위일까. 가로네는 그런 부분들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다. 참고로 원작에는 수많은 에피소드들이 있고, 그 에피소드들 가운데 가로네가 선택을 한 것이다. 따라서 영화에서 다뤄지는 부분들에 대해서 가로네가 강조하고 싶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대단히 상징적인 에피소드다. 사실상 일반적인 경제행위라고 할 수 없는 행위가 벌어졌을 때 마피아는 축적을 하겠지만 보통의 사람들은 죽어간다 것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 들어있다. 마지막으로는 재단사 파스콸레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가 중국인들을 교육할 때 하는 말이 있다. 휼륭한 재단사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두 가지가 있는데, 인내와 사랑이라는 것이다. 이 두 단어는 영화의 재단사 뿐 아니라 이탈리아 사람들을 상징하는 단어다. 이탈리아의 사람들에 대한 고정관념, 편견 같은 것 중에 감정적으로 행동하고, 말이 많고 하는 특징들이 있지만 사실 파스콸레같은 캐릭터가 전형적인 이탈리아인의 모습 중의 하나이다. 파스콸레는 차분하고, 조용하고, 자신이 갖춘 실력으로 묵묵히 일한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카모라가 사업을 장악하고 있는 탓에 카모라와 관련된 쪽이 아니면 일을 할 수가 없다. 사회적으로 이슈화되어 기사화되는 것으로 짐작컨대 그 지역에 불법으로 들어온 굉장히 많은 중국인들이 노예처럼 일하고 있는 상황이다. 의류산업은 고급패션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중국인들 또는 아프리카에서 온 사람들로 채워져 있다. 영화는 착취의 부분, 이웃의 문제가 바로 우리의 문제로 돌아온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가로네는 <고모라>를 통해 마피아의 질서가 스캄피아의 아파트에서만 한정적으로 일어나면 좋겠지만 그곳의 매카니즘이 이탈리아의 다른 곳, 나아가 유럽문명에 미친다고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정리 | 장지혜 (관객 에디터) 사진 | 이호규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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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지티브’의 미셸 시망은 2008년의 영화를 꼽는 자리에서 마테오 가로네의 <고모라>를 수위에 놓으며 이렇게 얘기했다. “<고모라>는 이탈리아 정치영화의 뛰어난 귀환을 의미한다. 사회 곳곳에 파고든 범죄의 심각성을 모자이크 스타일의 구성을 통해 폭로하기를 마다하지 않는 것이다.” 미셸 시망의 극찬은 동명의 원작 소설가 로베르토 사비아노가 극중 범죄조직 ‘카모라’로부터 위협을 받는 상황에 굴하지 않고 영화화를 밀어붙인 마테오 가로네의 용감함에 기초한다.

<고모라>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나폴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미항의 면모를 품은 곳도, 피자 맛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구름같이 몰려드는 낭만적인 여행지도 절대 아니다. 죄악과 탐욕으로 몰락한 성경의 ‘고모라’처럼 나폴리 역시 도시 곳곳에 스며든 악의 세포로 빠르게 쇠락해가는 중이다. 특히 마약과 매춘은 물론이고 패션 산업과 심지어 쓰레기 처리까지, 나폴리를 근거지 삼아 이탈리아 지하세계를 지배하는 카모라의 악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그러다보니 카모라의 범죄에 개입된 인물은 특별히 너나 할 것 없다. 위로는 카모라의 수장부터 아래로는 빈민가의 어린아이까지 나폴리는 도시 전체가 카모라가 뿌려놓은 범죄의 거미줄로 카르텔 되어있을 정도다. 그래서 마테오 가로네는 10여 명이 넘는 인물을 통해 이탈리아 범죄 특유의 피라미드 구조를 가감 없이 드러낸다. 가로축으로는 카모라에 들어가고 싶어 안달 난 두 소년을, 세로축으로는 조직을 위해 의상실을 운영하는 중년남자를 위치시키고 그 주변으로 가난하고 평범한 이웃들을 점점이 박아놓아 일상이 범죄인 나폴리의 충격적인 실상을 그려나간다.


이들의 행위는 결국 지독한 가난을 벗고 어떻게 해서든 부와 권력을 거머쥐고 싶다는 이탈리아의 집단적인 욕망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평범한 이들의 검은 욕망은 카모라와 같은, 시칠리아 마피아의 세력을 훨씬 뛰어넘는 범죄조직이 암약할 수 있는 가장 최적의 토양으로 기능한다. 극중 주인공들은 자신들의 욕망을 드러낼 수 있을지언정 결코 성취할 수는 없다. 철저히 카모라의 이득을 위해서만 그 욕망이 존재 가치를 가질 뿐 쓰임새가 없어지는 순간 쥐도 새도 모르게 제거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폭력을 동반한 검은 욕망은 가난으로 대물림되고 그 와중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서로를 살상하는 현대판 고모라의 신화가 완성하는 것이다.

<고모라>가 소설의 영역에, 영화의 영향력에 머무르지 않고 현실에서 끊임없이 논란이 되는 이유는 카모라의 폭력 카르텔이 만 천하에 폭로된 까닭이다. 원작자 로베르토 사비아노는 수년간의 잠입 취재를 통해 카모라의 조직체계와 핵심인물, 범죄 수법을 폭로하는 탐사저널리즘의 개가를 일궜고 (소설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열 살도 안 넘은 꼬마 아이가 카모라에 들어가겠다며 방탄복을 입고 총알을 막아내는 충격적인 신고식의 실상을 알 수 있었을까?) 감독 마테오 가로네는 뛰어난 영화화로 전 세계가 나폴리의 실상에 주목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원작자와 감독은 여전히 카모라의 협박으로부터 생명을 위협받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영화가 현실을 뒤바꿀 수는 없겠지만 현실에 관심 갖도록 여론을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을 <고모라>는 증명한다. 2008년의 영화일 뿐 아니라 2000년대를 대표하는 범죄영화의 걸작이라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허남웅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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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마테오 가로네의 ‘첫사랑’


사랑의 본질은 만고불변이지만 시간과 공간에 따라 그 형태를 달리한다. 이탈리아에서는 사랑도 ‘조각’처럼 한다. <첫사랑>의 두 주인공 비토리오(비타리아노 트레비잔)와 소냐(미셸라 세스콘) 역시 조각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금속세공사로 활동하는 비토리오와 화가를 위해 모델을 서주는 소냐는 블라인드 데이트로 만난 사이다. 첫 만남의 서먹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서로에 대한 탐색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비토리오는 조각 같은 몸매의 소냐가 맘에 들고, 그녀 역시 자상해 보이는 그가 싫지 않다. 그렇게 뜨거운 사랑을 시작한 이들은 곧 동거를 시작하고 비토리오는 소냐에게 좀 더 날씬해질 것을 요구한다.

<첫사랑> 포스터의 태그라인은 ‘욕망에 대한 공포영화’(A Horror Movie about Desire)다. 즉, 달콤해 보이는 제목과 달리 이 영화는 육체에 대한 집착이 낳은 비극적 사랑에 대해 다룬다. 그것은 정신과 육체의 관계에 대한 비토리오의 유별난 관점에서 기인한다. 정신적인 사랑이 퓨즈를 꽂아야 육체적인 사랑에 전기가 통한다는 항간의 속설과 달리 그는 상대방의 육체에 혹해야 비로소 정신적인 사랑이 가능하다고 믿는 남자다. 비토리오의 사랑이 에로스(Eros)와 구별된다면, 소냐에게 성적인 매력을 느낀다기보다는 시각적으로 완벽한 형태의 육체를 갈구한다는 점에 있다.

그런 욕망은 소냐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비토리오의 요구를 차치하고, 그녀도 현재 자신의 몸매에 만족하지 못하는 눈치다. 비토리오와의 첫 만남 당시 소냐가 (인사를 제외하고) 그에게 던진 첫 말은 “제 몸매가 맘에 들지 않나요?”다. (이에 비토리오는 “좀 더 날씬한 줄 알았어요.”라고 대답한다.) 여기서 감독 마테오 가로네는 촬영에 능한 감독답게 비토리오와 소냐가 바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3분간의 롱테이크를 담당했다. 그때 카메라는 마치 상대방의 몸매를 훑듯이 장면을 찍어나간다. 이는 음흉한 남자의 눈빛이라기보다는 오브제를 관찰하는 조각가의 시점에 더욱 가깝다. 아닌 게 아니라, 비토리오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이 영화의 카메라는 등장인물, 특히 소냐를 조각하듯이 촬영한다. 처음엔 고정된 구도로 지긋이 바라보다가 이내 덩어리를 깎아가듯이 온 육체를 내지르고, 마지막 순간엔 미술품을 감상하는 양 섬세하게 소냐를 지켜보는 식이다. 이렇게 비토리오는 조각가의 마인드로 모델을 물색하듯 여자 친구를 고르고 완벽한 형체를 빚듯이 사랑을 나눈다.


다만 그 자체로 생명력을 갖지 못하는 조각과 달리 인간의 사랑에는 자유의지가 작용한다. 마음이 동하지 않으면 육체 역시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법이다. 비토리오가 소냐의 몸매를 가장 완벽한 형태로 구현하겠다며 먹을 것을 관리하려들수록 그를 향한 그녀의 거부감은 점점 커져만 간다. 그리고 이들의 사랑이 종국엔 파국을 맞이하리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추측 가능하다.

비토리오의 사랑은 비록 육체가 결부되어 있지만 이상주의적이며 관념론적인 사랑이라는 점에서 일종의 ‘플라토닉 러브’를 연상시킨다. <첫사랑>도 그렇지만 마테오 가로네는 전작 <박제사>에서도 육체의 아름다움에 집착하는 남자를 내세웠었다. 일련의 작업을 통해 드러난 마테오 가로네가 생각하는 사랑이란, 정신과 육체의 균형이고 무엇보다 자유의지의 발현이다. 이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사랑은 결국 공포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첫사랑>은 보여준다. (허남웅_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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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모라>는 일확천금을 꿈꾸는 젊은이들의 비장하고 장엄한 일대기를 그려온 갱스터 무비의 전통을 거스른다. 형식과 내용 양면에서 <고모라>는 안티 갱 영화에 가깝다. 소수의 갱스터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나폴리 범죄조직 카모라의 강력하고 광범위한 사슬아래 놓인 인물들의 선택을 교차해 보여주기 때문이다. 독립되어 보이는 플롯이 결국 하나로 모이는 타란티노식 서사마저 거부한 나열의 내러티브는 상당히 불친절해 보인다. 그러나 감독은 비전문 배우의 기용과 일상적인 세팅 같은 네오리얼리즘의 전통, 확고한 문제의식을 갖고 집필된 르포르타주 원작에 힘입어 손쓸 새 없이 부식되어가는 나폴리의 과거, 현재, 미래를 전 방위적으로 조명한다. 나아가 평범한 나폴리 주민과 세계 곳곳의 사람들까지 범죄에 연루시키는 카모라의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고발한다. 이 영화는 칸 국제영화제의 심사위원대상을 받았다. 


영화는 조직원 일부가 태닝을 하는 사이 배신한 조직원들이 그들을 총살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죄악의 도시'라는 의미가 함축된 '고모라'라는 성서적인 제목이 올라간다. 이제 살인이 일상인 나폴리의 풍경이 그려질 차례다. 대부분의 러닝타임을 차지하는 것은 카모라 조직 언저리에 있는 사람들의 각기 다른 생존법이다. 살육의 늪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옴짝달싹할 수 없는 돈 배달부와 약간 얼떨떨해 보이지만 카모라에 편입되길 갈망하는 소년은 박탈된 나폴리의 과거와 미래를 암시한다. 반면 카모라를 배후에 둔 영세한 공장의 재단사 파스콰레(살바토레 칸탈루포)와 유독성 폐기물 처리업자의 비서 로베르토(카민 파테노스테)는 죄악의 늪에서 기어코 빠져나온다. 그렇다고 '나폴리의 현재'인 이들의 앞날이 희망적일지는 의문이다. 할리우드 스타의 드레스를 재단하던 (본인은 몰랐던) 파스콰레는 무급 잔업과 박봉에 못 이겨 트럭 기사를 하게 됐고 로베르토는 보스의 말대로 피자나 만들게 될지 모른다.


인물을 클로즈업하면서 배경의 초점을 흐리는 단도직입적인 카메라는 때로 익스트림 롱숏의 활용으로 잊히지 않는 명장면들을 빚어낸다. 선택을 강요받고 사람 죽이는 일에 동참한 소년의 일그러진 표정 뒤로 그를 보러 나온 여자를 향해 총구가 겨눠지고 이후 슬럼가 전체로 총성이 울려 퍼진다. 배신을 망설이던 돈 배달부는 겁에 질리고 관객은 절망한다. 한편, <스카페이스>의 토니 몬타나를 흉내 내며 객기를 부리던 마르코(마르코 마코르)와 치로(치로 페트로네)는 예상보다 오래 생을 부지하기는 하지만 끝내 끔찍한 최후를 맞는다. 시체가 실린 채 지평선을 향해 가는 포클레인이 오랫동안 비춰진다. 희극은 롱숏이고 비극은 클로즈업이라고 하지만 엔딩 장면에서 관객은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다. <고모라>가 안티 갱 영화인 것은 카모라가 비애를 불러일으킨다거나 멋있기보다 범죄 집단임을 명백히 보여줘서이다. 동시에 토니 몬타나를 흉내 내는 얼치기 갱스터들의 최후를 냉담하게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카모라의 비극은 나폴리의 과거, 현재, 미래를 절멸시키는 가운데 평범한 주민들과 나라 전체를 범죄에 연루시키는 데 있다. 가난 때문에 다수의 주민들이 자신의 토지에 독극물을 폐기하는 것을 자처한다. 로베르토의 말대로 이는 북부의 공장 노동자가 사는 대신 남부의 농민들을 죽이는 사태를 초래한다. 신기한 것은 이러한 각성을 유발하는 <고모라>가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극영화라는 점이다. 극영화에서 사실적 연출이 갖는 힘을 <고모라>는 증명하고 있다.(최용혁: 시네마테크 관객에디터) 

 1월 26일(수) 16:00 마테오 가로네의 <고모라> 상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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