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로메르의 영화를 두고 '말의 영화'라 말한다면 이 영화는 그런 특징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인물들의 말의 속도가 빠를 뿐만 아니라 말이 영화의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방데에 있는 작은 마을의 젊은 사회주의 시장은 공유 녹초지에 거대한 스포츠 문화센터를 만들기 위해 정부의 승인을 얻으려 한다. 환경주의자인 문법 선생은 이 계획을 반대한다. 파리의 저널리스트는 마을에 내려와 사람들과 인터뷰를 하며 사람들의 의견을 듣는다. 시장의 딸과 선생의 딸이 친구가 되면서 이야기는 예견치 않은 결말로 향한다.

<나무, 시장, 메디아테크>는 7개의 우연에 관한 영화로 '만약... 하지 않는다면'으로 시작한 7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로메르적인 우연이 영화의 전체를 좌우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의 모두에 학교의 교사는 프랑스어 문법에서 상황을 나타낸 조건법의 용도를 가르치는데, 이런 내용에 입각해 르누아르의 영화를 연상케 하는 콩트가 전개된다. 우연을 동반한 조건법은 '만약 사회당의 지지율이 내리지 않는다면', '만약 초원의 버드나무가 긴 세월을 넘기지 못했다면' 등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사실상 이 우연이란 설정은 영화의 맥락에서 정확하게 그려지지는 않는다. 로메르의 우연은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의 결정적인 사건처럼 기능하는 것도, 우연히 발생한 과실로 어떤 중요한 미래가 좌우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차라리 우연은 인과관계의 환상에서 풀어헤쳐진 현재를 제시하는 것에 가깝다. 과거에의 감상이나 미래에의 기대에 종속되기 쉬운 현재를 그 자체로 제시하는 것이 그의 우연인 것이다. 일상을 순수하게 기록하고, 자연의 순수한 운동을 표현하는 것으로서의 우연에 관한 이야기. 로메르는 이러한 현전성의 영화를 멜로드라마적으로 <겨울 이야기>에서 다시 선보인다.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댓글을 달아 주세요





지난해 에릭 로메르의 부음을 접하면서 과거의 추억이 떠올랐다. 2001년 7월 29일. ‘문화학교 서울’ 주최로 아트선재센터 지하에서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에릭 로메르의 17편의 작품을 상영하는 대규모 회고전을 개최했었다. 당시 문화학교서울의 프로그래머로 일하면서 기획한 두 번째 회고전이었다. 지금에야 에릭 로메르는 시네마테크에서 관객들의 사랑을 받는 인기 작가이지만 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여름이야기>가 개봉당시 천명의 관객을 넘기지 못했을 정도로 그는 소수의 시네필들에게만 알려져 있던 인물이었다. 그러니까 2001년의 회고전은 로메르를 국내에 처음 온전하게 알리는 행사였다.


회고전에 즈음해 로메르의 영화사인 ‘로장주 필름’(로메르는 누벨바그 작가 중 거의 유일하게 자신의 영화사를 설립해 40년 동안 거의 전작을 그곳에서 독립 제작했다)을 통해 그가 직접 서신을 보내왔다. 친필로 쓴 팩스에는 ‘멀리 있는 친구들에게, 저희 모든 작품에 대한 당신들의 오마주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내 모든 감사와 따뜻한 우정의 표현을 받아주시길’이라는 짤막한 내용이 담겨있었다. 당시 17편의 영화를 상영하면서 가장 역점을 두었던 것은 그의 ‘연작들’을 소개하는 것과 두 편의 시대극인 <O후작 부인>(76)과 <갈로아인 페르스발>(78), 그리고 여전히 미지의 작품으로 남아있는 <나무, 시장, 메디아테크>(93)를 상영하는 것이었다. <나무, 시장, 메디아테크>는 로메르적인 우연이 전체에 일관되게 작동하는 영화로 거의 책 한권 분량의 대사가 담긴 가장 ‘수다스런’ 영화다. 이 영화는 지금도 프랑스를 제외하자면 로메르의 영화들 중 전 세계적으로 많이 상영되지 않는 작품이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로메르의 팬이라면 이 영화를 꼭 봐야만 한다!






그 때의 회고전 이래로 한국에서 로메르의 영화를 필름으로 만나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게 됐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영화는 덜 소개되어 있고, 덜 평가되어 있다. 그가 평생을 연애 이야기를 만든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를 ‘연애박사’ 정도로 치부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특히나 그가 70년대에 만들었던 도시와 건축에 관한 다큐멘터리들을 살펴보는 일은 중요하다. 80년대 ‘희극과 격언 시리즈’의 무대가 되어있는 장소들은 사실 70년대에 그가 만든 다큐멘터리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이를테면, <비행사의 아내>의 인조공원이나 <내 친구의 남자친구>의 파리외곽의 도시건축물들이 그러하다. 로메르는 영화가 ‘공간의 예술’이라 여긴 작가였다. 공간이 인물과 맺는 극적관계는 그의 영화에서 풍경과 자연이 그러하듯 언제나 중요하다.


로메르는 대단한 절약의 작가이기도 했다. 그는 영화가 선택의 예술이자 거절의 예술이라 여긴 사람이다. 영화는 불필요한 것을 없애는 것, 버려야할 부분을 버리는 것이기에 기술적 결함을 제외하자면 그는 놀랍게도 언제나 한 번의 촬영만을 했다고 한다. 그는 배우를 선택할 때 리허설을 하지 않았고, 연기지도를 절대 하지 않았다. 연기는 배우의 몫이라 여겼던 탓이다. 데뷔작을 제외하자면 그는 조감독을 평생 두지 않았고 단지 5-6명의 스태프로 영화를 만들었다. 시네마테크에서 무성영화로 영화를 배웠던 그는 영화가 문학이나 회화처럼 그 역사의 초기의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변용해 뛰어난 영화가 나온다고 믿었던 사람이다. 가장 근대적인 화가가 결국은 가장 잘 과거의 화가를 이용한 사람인 것처럼, 그는 영화에서도 자연을 앞에 둔 인간의 감동을 가장 웅변적으로 표현한 거장들의 작품을 계승하고자 했다.


로메르는 ‘우연성을 믿는 것, 그것이 나의 영화적 방식이다’라 말한다. 이 발언은 그런데 그가 영화의 전권을 통제하는 작가를 옹호하는 ‘작가주의 정책’의 주창자였음을 감안할 때 미학적인 입장에서 무언가 작은 모순이 있음을 느끼게 한다. 작가주의는 통상적으로 반우연성의 입장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작가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것이고 그래서 영화의 모든 장면들에는 견고한 의미론적 연결이 존재한다. 히치콕, 프리츠 랑, 스탠리 큐브릭 등 그들만의 고유한 영화적 구조를 구축한 작가들의 경우 그러하다. 로메르는 그러나 다른 입장을 갖고 있다. 설사 인과론적인 연결이 존재할지라도 영화적 사건은 결정론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가령 그의 단편 옴니버스 영화 <파리의 랑데부>의 한 장면에서 우연히 장터에서 만난 낯선 사내는 남자친구의 새로운 애인에 대해 의혹을 갖는 여주인공 에스테에게 접근해 수작을 부린다. 그는 에스테에게 “항상 예외적인 만남은 가장 예상치 못한 순간에 이루어진다고 확신 했었죠. 가령, 여행 중이나, 휴가의 마지막에 혹은 급한 약속이 있을 때요. 이건 내 불행이기도 하고,  또 행운이기도 해요. 왜냐하면 대담해지거든요”라 말한다. 에스테는 그에게 싫지는 않은 표정을 보이지만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의 표시로 “그래요, 하지만 당신도 알듯이, 늘 좋은 결과를 가져오진 않죠”라 응수한다. 로메르의 영화에서 이런 낯선 사람과의 우연한 만남과 예기치 않은 사건의 전개는 흔히 엿보인다. 가령, <봄이야기>에서는 목걸이의 실종과 우연한 목걸이의 발견이 발생하고 <겨울이야기>에서는 서로 헤어진 두 남녀가 우연히 수년이 지난 후에 버스 안에서 재회하는 사건이, 그리고 <여름이야기>에서는 세 명의 여성과 동일한 약속을 해 궁지에 몰린 남자가 우연히 걸려온 한 통의 전화로 위기를 모면하는 일이 벌어진다.






우연을 받아들이는 것은 영화연출에 있어서 대단히 위험스런 시도다. 스토리의 공백과 결여, 거대한 빈틈이 초래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로메르의 영화에서 우연은 보다 적극적인 의미를 지닌다. 그에게 우연은 생생한 현재, 신비로운 현재를 드러내는 효과적인 수단이다. 어떤 인과율과 결정론에 좌우되지 않는 현실의 불투명성과 애매함, 즉 무언가를 읽어내기 어려운 불분명함으로 가득한 생생한 현실이 신비롭게 드러난다. 여기서 우연은 마치 어떤 패가 보일지 알지 못하는 포커 판의 카드 패와도 같은 것으로 그 패들은 현실의 표면에 다만 덮여 있을 뿐이다. 아직 보이거나 드러나지 않은 불투명한 패의 향방에 따라 로메르적 사건이 발생한다. 그에게 영화는 마치 거친 바다 속을 항해하는 것과 같다. 진행하고 싶은 방향으로 가려해도 능숙하게 가지 못해 순풍대로 항해해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영화는 다른 예술보다 우연에 좌우된다. 많은 영화작가들은 그러나 반대로 말하곤 했다. 사건을 준비하고, 모든 것을 조직해 계획을 세워 우연에 맡기는 것을 멈추어버린다. 로메르는 그러나 일견 부조리하고 무질서해 보이는 우연에 자신을 내어 놓아 자연의 바람과 흐름대로 영화를 이끌려가게 했다.


로메르의 영화에서 우연은 인물들의 실존적 선택의 문제와도 관련된다. 실존의 양식, 선택들, 거짓된 선택들, 그리고 선택에 대한 의식의 전체이야기가 그의 초기 ‘도덕이야기 시리즈’를 지배하고 이는 오랫동안 지속했다. 그런데 왜 이러한 것이 영화적인 중요성을 지니게 되는 것일까? <모드 집에서의 하루 밤>, 그리고 <겨울 이야기>에서 언급되는 파스칼의 ‘내기’는 신이 존재하는가 혹은 존재하지 않는가를 내기할 때 분별 있는 도박사라면 신이 존재한다는 데에 배팅을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파스칼의 논증은 행위자가 행위를 선택할 때 결단의 결과에 따른 효용성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로메르의 선택과 관련한 문제는 또한 키에르케고르의 미학적, 윤리적, 종교적 인간과 관련해 보다 풍요로워진다. 파스칼에서 키에르케고르에 이르는 하나의 매혹적인 사상이 말해주는 것은 들뢰즈의 표현을 빌자면 양자택일이 선택하는 사람의 실존 양식들 사이에 존재한다는 점이다. 때로는 도덕적 필연성에 의해(선, 올바름), 때로는 물리적 필연성에 의해(사물들의 상태, 상황), 때로는 심리적 필연성에 의해(어떤 것에 대해 가지는 욕망),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설득한다는 조건 위에서만 선택이 이루어질 수 있다.


그리하여, 키에르케고르를 경유한 로메르의 결론은 이러하다. 선택과 비-선택 사이에서 제기되는 선택이란 우리를 내밀한 심리적인 의식뿐만 아니라 상대적인 외부 세계 저 편에 있는 바깥과 절대적인 관계를 맺게 한다. 이것만이 우리에게 세계와 자아를 다시 부여할 수 있게 한다. 이는 로메르의 영화가 지닐 수 있는 고귀한 주제이다. 그런데, 이 바깥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우연, 혹은 은총인가? 여기에 우연의 놀이, 그리고 진정한 선택, 이를 통한 은총의 도래가 있다. 로메르의 유작인 <로맨스>는 이러한 것들의 집대성이었다. 몸과 영혼의 문제, 자연에 대한 사랑, 인간에 대한 문제, 남녀의 사랑에서 발생하는 오해와 거짓말들, 불멸의 문제 등이 망라되어 있다. 최종적 국면에서 인물들이 누리는 은총은 로메르가 평생을 걸쳐 영화에 담아냈던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로메르의 명성에 비해 이런 신비로움은 적게 논의되어 있다. 이 작은 추모전이 로메르의 영화를 되돌아보는 기쁜 기회가 되기를 기원한다.(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