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흘리는 샘’ 혹은 ‘폭력의 피카소’라 불린 샘 페킨파는 1960,70년대 아메리칸 시네마의 감독들 중에서 서부의 신화를 의문시하면서 가장 전복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영화를 만든 작가이다. 페킨파 영화의 독특한 시학은 베트남 전쟁, 정치적 암살 등으로 표출된 아메리카의 폭력적 에너지를 역사의 죄의식과 연결하는 것이다. 미국적 프런티어는 이제 물리적 여정이라기보다는 정신적이고 심리적이며 움직임의 선 또한 내부화된다. 방황하는 인물들의 폭력 또한 몸을 파괴하는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차라리 영화적 이미지, 즉 표상의 질서를 파괴하는 폭력의 경향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와일드 번치>(1969)의 말미에 보이는 극단적인 커팅, 수천 개의 쇼트로 구성된 장렬한 총격전은 줌 렌즈와 느린 화면들의 활용으로 폭력의 잔상을 관객들에게 강렬하게 전달한다. 그러나 폭력의 양상만큼이나 액션의 무게와 짐을 덜어내는 강력한 정서적 효과를 고려해야 한다. 폭력은 가능한 구제, 은총의 성취를 이뤄내는 노력의 일환이기 때문이다. 죽음은 장례를 치르는 것이다.

<겟어웨이>에서 핵심적인 것은 이러한 심리학이다. 페킨파의 작품 중 가장 대중적인 흥행을 거둔 이 영화는 보다 오락적이다. 현란한 촬영과 편집, 슬로 모션으로 이루어진 액션 장면, 멕시코의 황량한 대지에의 집착 등은 물론 여전히 페킨파적적이다. 주인공 맥코이(스티브 맥퀸)는 무장 강도 혐의로 4년째 수감생활을 하고 있다. 가출옥 요구가 번번이 거부당하자 맥코이는 아내 캐롤(<러브 스토리>의 알리 맥그로우가 이 역을 맡았는데, 영화를 촬영하면서 둘은 사랑에 빠져 결혼했다)을 시켜 부패한 정치인과 접선해 출옥에 성공한다. 하지만 부도덕한 거래에는 대가가 있는 법. 맥코이는 아내가 자신의 출옥을 위해 원치 않는 성적 교섭을 가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내와의 은행 강도에도 예기치 않은 사건이 발생하면서 둘은 멕시코로 도주하는 불안한 모험을 벌인다.


추격전이 전면에 부각되고, 클라이맥스를 장식하는 총격전의 세밀한 커팅과 슬로모션으로 구축된 박력 있는 폭력묘사가 길이 남을 명장면이지만 화려한 볼거리만이 전부는 아니다. 맥코이에 불의의 총격을 당한 갱 한명이 수의사 부부를 억지로 끌고 다니면서 벌이는 해괴한 에피소드는 폭력에 처한 소심한 인간의 반응, 부부의 정조, 성적 무기력 등의 핵심적인 문제를 불거지게 한다. 수의사 부부의 부조리한 행태는 맥코이와 캐롤의 왜곡된 거울상에 가깝다.

영화 시작부의 장면 또한 이채롭다. 형무소의 일상적인 단순 작업을 보여주는 이 장면은 시간 축을 교착시키는 혼란스런 컷의 연결로 가히 초현실적이다. 맥코이의 감옥의 일상이 정지화면을 포함한 분절된 에피소드로 연결되는데, 여기에 몇 개의 플래시백 인서트가 결합되어 있다. 현재의 구속 상태를 부정하고픈 심정이 기억을 혼란에 빠지게 한다. 게다가 감옥에서 풀려난 맥코이가 캐롤과 강변에 뛰어드는 장면은 일종의 플래시 포워드처럼 표현되어 있다. 페킨파의 몽타주는 여기서 더 이상 액션이 아니라 주관적인 비전, 상상을 현시하는 것에 활용되고 있다. 이 장면은 초현실주의와 허무주의가 공존하는 <가르시아>(1974)의 혼란스런 비전을 떠올리게 한다.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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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토크] 이명세 감독이 추천한 샘 페킨파의 <겟어웨이>

지난 21일 두 번째 시네토크로 이명세 감독과 함께 그의 추천작 샘 페킨파의 <겟어웨이>(1972)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영화가 끝나자 객석에서는 박수가 터져 나왔다. 오락적 요소들과 장르적 쾌감으로 충만한 영화였던 만큼 즐겁고 고양된 분위기가 시네토크까지 내내 이어졌다. 이 영화의 어떤 장면과 요소들이 우리를 흥분케 하는지 그 ‘즐거움을 나누며’ 웃음 터뜨리던 유쾌한 시간을 전한다.


허남웅(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고등학교 때 <겟어웨이>를 보셨다고 들었다.
이명세(영화감독):
아니다. 고등학교 때 봤던 샘 페킨파의 영화는 더스틴 호프만이 나오는 <어둠의 표적>이었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대사 중에 “하나님이 그 왕국을 만든 이래 폭력이 멈춘 적이 없었다”라는 구절이 있었다. 돌이켜보면 당시 유신정권 하에서 어딘지 모르게 느끼고 있던 폭력에 대한 분노감, 증오 같은 게 있었는데, 이런 면에서 페킨파의 영화에 매혹되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겟어웨이>를 극장에서 본 것은 나중에 뉴욕에 갔을 때였다. 관객 여러분도 오늘 보셔서 아시겠지만 페킨파는 소위 액션 영화에 많은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영향을 끼쳤다.

허남웅: 어느 인터뷰에서 폭력이라기 보단 아름다운 액션이라 하고 싶다고 말씀하셨던데 어떤 지점에서 그렇게 생각하셨는지?이명세:
폭력은 폭력이라고 생각한다. 흔히 페킨파를 폭력 미학의 거장이라고 평가하는데, 과연 폭력이 아름다움이 될 수 있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사람들이 왜 페킨파에 매혹되는 것인지도 궁금하다. 생각해보면 그건 단지 폭력의 미학이라기 보단 우리 안에서 도태되어버린 원시성, 동물성이 가진 아름다움 그 자체를 보여주었던 게 아닌가 싶다. 왜 요즘 초식남이란 말도 있잖은가. 이런 식으로 잃어버린 야성성의 미학을 보여주어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같다. 아, 요즘 짐승돌, 짐승남 같은 것도 이래서 유행인가보다. (좌중 웃음)

허남웅:
영화에서 스티브 맥퀸이 알리 맥그로우를 차 밖으로 내보내며 때리는 장면이 대본에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알리 맥그로우가 매우 놀랐다던데, 이런 점에서 맥퀸이 연기에 어느 정도 본능적 감이 있었던 것 같다. 그에 비해 인정은 별로 못 받은 배우다. 감독님이 매우 좋아하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의 연기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이명세:
맥퀸 뿐 아니라 연기 그 자체에 대해서 말하자면, 보통 ‘연기’라고 하면 마구 소리 지르고 ‘널 죽여 버릴 거야’라며 울부짖는 그런 것만 높이 평가하는 것 같다. 하지만 사실 영화 매체에서의 연기란, 단지 클로즈업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연기하고 있는 것이다. 맥퀸도 표가 많이 나진 않지만 일종의 메소드 연기를 하는데 군더더기 없는 연기, 영화 매체적으로 훌륭한 연기를 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연기는 전문가들도 잘 몰라본다. 개인적으로 윌리엄 허트가 <브로드캐스트 뉴스>에서 보여준 연기를 좋아한다. 예를 들자면 <미션>을 보고 사람들이 로버트 드니로랑 제레미 아이언스 중에 누가 더 연기를 잘했느냐 많이 얘기 했었는데, 학점으로 치면 나는 냉정하고 드라이한 제레미 아이언스의 연기에 A+을 주고 싶다. 드니로의 액티브한 연기에는 A-나 B+정도? (좌중 웃음)

허남웅:
사실 페킨파의 영화들 중에는 <겟어웨이>가 너무 대중적이란 이유로 가장 저평가되는 작품이잖은가. 다른 작품과 비교해서 어떤 점이 매력적이었나?
이명세:
곳곳에 조금씩 매력이 있다. 페킨파가 세르지오 레오네와 영향관계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 둘의 악당은 그야말로 악당이란 공통점이 있다. 보다보면 죽었으면 좋겠다 싶을 만큼 정말 추악하고 나쁜 놈들이다. 인간의 본성 중 가장 더러운 것만 보여줄 수 있는 배우들을 악당으로 적절하게 잘 골라서 정말 적절한 순간에 그 악당들을 샷건(장총)으로 통쾌하게 처리한다. 사람 죽어 자빠지는 게 통쾌하다기 보단 이런 것들이 소심한 우리들의 욕구를 대변해주는 매력이 있다. 또 오늘은 곳곳의 작은 유머들이 너무 재미있었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트럭 운전수와 땅바닥에 주저앉아서 흥정하는 부분은 마치 성경에서 예수가 ‘이 중 죄 없는 자만 돌을 던져라’라고 할 때 땅바닥을 끼적이고 있는 느낌도 나고 해서 아주 재밌게 보았다.

허남웅:
한편 굉장히 남성적인 영화기도 하다. 처음에 맥퀸이 감옥을 나오기 위해 맥그로우를 이용해 놓고 나중에는 '왜 그 때 (관리와) 잠을 잤냐'며 탓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는데, 이런 점은 여성관객들에겐 불편할 수도 있었을 것 같다.
이명세:
마초적인 동시에 어떤 면에서 페킨파도 조잡한 인간이었겠지. (웃음) 사실 나 같아도 그럴 것 같다. 빨리 감옥에서 나가서 영화 찍고 싶은데, 막상 또 그런 식으로 나가면 그 문제에 소심하게 매달려 있을 것 같고. 그런 거 아닌가. 이런 이중성이 여러 캐릭터의 모습 속에서 곳곳에 나타나는 것 같다. 그 동물병원 여자의 전형성도 그렇고. 또 심리학적으로 볼 만한 부분인데, 페킨파는 꼭 폭력의 현장에 아이들을 등장시킨다. <와일드 번치>에서 전갈 태울 때에도 아이들이 나오고, 또 아기 울음소리라든지, 상당히 종교적인 것들이 배어있는 것 같다.

허남웅:
샘 페킨파를 말할 때 그의 폭력미학을 슬로우 모션과 연결 짓는다. 이 영화에서는 시간이 역순으로 진행되는 도입부의 편집도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또 소리로 감옥을 만들어 맥퀸을 가두는 듯한 사운드 편집도 독특했는데, 이런 부분들에서 어떤 인상을 받았는가?
이명세:
지금도 이런 편집방식은 상당히 새로운 것 같다. 오늘은 이 영화의 편집을 통해 구현되는 사운드 디자인을 보았다. 혹 영화연출에 관심이 있다면 도입부의 감옥장면을 눈여겨 볼만 하다. 인물 소개부터 감옥 생활, 현재 처한 상황까지 정말 짧은 시간 내에 편집으로써 이렇게 잘 보여주지 않는가. 또 감옥 방직 기계의 끼이는 듯한 소리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눈부신 철창살의 황금빛 등, 많은 묘한 요소들이 편집을 통해 재밌게 잘 조화를 이룬 것 같다. 편집 작업할 때 생각해볼만 하다.

허남웅:
어떤 장면이 감독님께 가장 인상적이었는지?
이명세:
라디오 구입 후 샷건을 들고 나왔을 때. '아 저것이야 말로 영화다!'싶었다. 샷건이 무엇인지 영화만의 방식으로 보여주었다. 슬로우 모션의 리듬감과 단 몇 개의 클로즈업 숏으로 정확하게 불의 느낌과 힘을 표현해 냈다. 오늘도 그 힘이 아주 강력하게 다가왔다.
허남웅:
개인적으로 쓰레기 하치장 장면은 남성적인 힘을 과시하면서도 전쟁에 피어난 꽃 같은 여성적인 느낌도 주는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이명세:
아마 아웃풋의 문제겠지만, 원래 그 장면에 대한 내 기억 속 이미지는 쓰레기가 아름답게 오색으로 날리는 거였는데 오늘 보니까 아니었다. 착각이었던게지. 우리가 영화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뭔가를 만드는 것 같다. 기억엔 네모난 쓰레기건초더미가 슬로모션으로 공중에서 아름답게 해체되면서 거기서 사람이 풀려나오는 장면이었는데...... 오늘 본건 내가 갖고 있던 이미지보단 덜 했던 것 같다. (웃음)
허남웅:
실망하셨는지? (웃음)
이명세:
아니 실망은 아니고...관객 여러분도 <부당거래>나 두기봉 영화들, 소위 말하는 누아르 영화 보며 느끼셨을 테고, 또 오우삼 감독의 경우 대놓고 샘 페킨파와 장 피에르 멜빌로부터 영화를 배웠다고 하듯이, 정말 페킨파가 후배 영화인들에게 곳곳에 아이디어와 영향을 줬다는 생각이 확실히 들었다.


관객1:
혹시 감독님께서 만든 영화 중 샘 페킨파에게 오마주를 바친 장면이 있는지?
이명세:
이번에 있어보려 한다. 페킨파의 힘을 좋아하지만 아직까지 오마주라고 할 만한 건 없었다. 다만 아까도 말했지만 <겟어웨이>는 상업적으로 성공했을 뿐 아니라, 미장센, 리듬감, 사운드 편집 등 영화적 측면에서 다시 발견할만한 부분도 많다. 특별히 어느 장면을 오마주하기 보다는 이런 점들에서 페킨파가 표현했던 원시성, 야성성, 리듬감 같은 걸 다음 영화에서 적절히 활용할 생각이다.

관객2:
<형사>, <M>부터 영화에서 서사보다는 다른 쪽의 매력을 부각시키는 작업을 하시는데 앞으로도 이런 영화 형식적인 실험을 계속 하실 건지 궁금하다.
이명세:
아. 조용히 있으려고 했는데. (웃음) 소재를 약간은 관객들이 편안하게 볼 수 있는 걸로 맞추려한다. 반발자국 뒤로 물러서서 찍으려고 생각 중이다. 영화가 나와 봐야 아는 것이고 아직은 모른다. 머릿속엔 이미지들만 떠돌고 있다. 페킨파의 리듬만 갖고 올지 오마주를 만들지 어떨지 모르겠고. 어쨌든 이번엔 페킨파의 영화가 보여주는 힘, 구로자와 아키라가 보여주는 화면의 힘 같은 걸 보여주고 싶다. 이들은 내 영화학교의 초빙교수들이다. 원래 내 영화학교의 주임교수는 오즈 야스지로, 찰리 채플린, 자크 타티, 페데리코 펠리니, 버스터 키튼인데 이번에는 초빙교수 쪽으로 가려고 한다.

(정리: 백희원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 관객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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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 혹은 남성 집단에 대한 치열하고 묵직한 탐구를 이어가며 ‘폭력의 피카소’라고 불리던 샘 페킨파의 필모그래피에서 70년대 중반 무렵은 가장 저평가되는 시기이다. 초기 페킨파 영화들에 비해 다소 평범하거나 실망스러운 대중영화의 외양을 지닌 영화들이 줄지어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페킨파의 하락세의 시작점으로 지목되는 작품이 <겟어웨이 The Getaway>(1972)다. 아서 펜의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Bonnie and Clyde>(1967) 이후에 등장한 수많은 도주극들과 일견 큰 차이가 없는 평범한 내러티브를 가진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겟어웨이>는 페킨파의 영화적 스타일과 세계관이 대단히 과감하고 첨예한 방식으로 드러나 있는 영화이다. 


무장 강도혐의로 10년형을 살고 있는 닥 맥코이(스티브 맥퀸)는 가석방이 좌절되자 아내 캐롤(앨리 맥그로우)을 통해 유력한 지인 배넌(벤 존슨)에게 석방시켜줄 것을 부탁한다. 배넌은 그 조건으로 맥코이에게 은행털이를 제안하며 어딘지 미심쩍은 동업자들을 붙여준다. 맥코이 부부는 우여곡절 끝에 은행을 터는 데는 성공하지만, 경찰과, 동업자와, 배넌의 패거리 모두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페킨파는 이 영화에서 자신의 전매특허라고 할 수 있는 고속촬영과 교차편집, 그리고 프리즈 프레임을 거침없이 활용한다. 수감 중인 맥코이가 노역으로 조작하는 기계의 소음을 기반으로 10분 남짓 이어지는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에서는 교차편집과 프리즈 프레임만을 이용해 시간을 자유자재로 뛰어넘거나 지연시키며, 내러티브적 상황과 인물의 강박적이고 불안한 정신 상태를 완벽하게 드러낸다. 또한 출소 직후 맥코이 부부가 공원으로 산책을 가는 장면에서는 고속촬영과 교차편집을 통해 아예 시간의 순서를 뒤섞어버리며 영리하게 관객을 교란한다. 애초에 이 모든 기법들이 시간을 변형시키는 것이기는 하지만, <겟어웨이>에서는 이런 장치들을 통한 시간의 변형을 훨씬 과감하게 탐구한다.


또한 이 영화에서는 페킨파의 세계관 역시 극명하게 드러난다. <대평원 Ride the High Country>(1962)이나 <와일드 번치 The Wild Bunch>(1969)에서 확인할 수 있듯 페킨파는 스러져가는 서부의 기억을 끝내 잡아보려 애쓰는 작가였다. ‘페킨파는 전원을 옥죄어가는 돈과 기계들을 찍었다’는 캐서린 머피의 표현처럼, 그것은 서부에 대한 애착이기도 했지만 전원이나 자연 자체에 대한 애정이기도 했다. 언뜻 드넓은 목초지를 뛰어노는 것처럼 보이는 사슴들이 사실은 교도소의 뒷마당에 갇혀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의 첫 장면과, 오프닝 시퀀스 내내 끊임없이 이어지는 날카로운 기계의 소음은 페킨파의 전원주의를 은유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것은 영화 후반의 쓰레기차 시퀀스에서 훨씬 더 직설적으로 표현된다. 이 장면에서는 쓰레기를 퍼올리고, 쏟아 담고, 압축하는 기관들의 움직임을 끈질기다 싶을 정도로 상세하고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심지어 이 기관들은 내러티브적으로도 주인공들을 위협하는 요소로 작용하며, 기계에 대한 페킨파의 적개심을 다분히 드러낸다.
사실 <겟어웨이>는 대중영화로서의 본분 역시 완벽하게 수행하는 영화이다. 피와 총탄이 난무하는 가운데서도 적절하게 유지되는 유머러스함과, 의심의 여지없이 멋지게 연출된 액션 시퀀스들은 관객들의 카타르시스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멀끔한 대중영화의 모양새를 구축해가는 과정에서 목도하게 되는 페킨파의 날카로운 시선과 장인적 손놀림이야말로 <겟어웨이>를 만나야 할 가장 중요한 이유다.(박예하: 시네마테크 관객에디터)

Cine-Talk
1월 21일(금) 19:00 <겟어웨이> 상영후 이명세 감독 시네토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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