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영작 리뷰

.......가이 매딘, 자궁의 빙하기

가이 매딘의 '겁쟁이는 무릎을 꿇는다' 


한국뿐만 아니라 전세계를, 영화감독들 뿐만 아니라 영화팬들을 몇 십 년째 사로잡고 있는 현대의 저주가 있다. 그것은, 영화 문법의 개발은 멈춰 버렸고, 더 이상 형식과 스타일의 새로움은 없으며, 모든 새로움은 이제 내러티브의 몫이 되어버렸다는 자포자기다. 누구 말대로, 더 이상 영화는 없던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있던 것을 취하는 것이라는 저주. 가이 매딘은 이 공공연한 저주를 깜박 잊었던 작가 중에 한 명이다.

매딘은 무의식을 추구한다. 하지만 그것은 영화를 통해 비춰보는 인간의 무의식이 아니라, 반대로 그를 통해 인간이 스스로를 비춰보는 영화의 무의식이다. 매딘이 원시적인 옵티칼 효과, 조악한 아이리스나 이중노출, 소프트 필터, 어설픈 자막 삽입, 저감도 필름 혹은 8mm 필름에서 얻어지는 거친 그레인과 같은 초기 무성영화의 이미지로 물러선다면, 그것은 영화 자체를 그 자신의 오래된 시간, 즉 영화사조차 버려졌던 역사의 쓰레기통에서 주워오기 위해서다. 그 쓰레기통이야말로 영화의 무의식이다. 이것은 마치 삶에서 잊혀졌던 사람들이 꿈을 타고 튀어나오는 것, 도시에서 사라졌던 쓰레기들이 홍수를 타고 쏟아져 나오는 것, 또한 이사하려고 가구를 옮기다가 오래전 잃었던 물건을 되찾는 것과 같다. 그래서 매딘의 영화는 신화의 영화이기도 하다. 이것은 너무나 오래되어 잊혀졌던, 그래서 그에 선행하는 어떠한 시간도 불가능한 최초의 시간에 속하는 영화다. 매딘 영화는 영화의 선사시대에 존재한다. 자궁의 빙하기. 8mm 그레인들이 눈보라치는.

그러나 그 신화엔 거주하는 자들은, 고상한 그리스 신들이 아니라는 점에 주의할 것. 가이 매딘의 신화에는 아이스하키 선수들, 프로레슬러들, 점성술사나 미치광이 과학자, 음흉한 간호사들이나 가죽의상을 입은 변태들, 무엇보다도 조악한 옵티칼 효과를 입은 유령들이 산다. 꿈의 홍수를 타고 튀어나오는 것들은 짝퉁 프라이팬, 날짜가 지워진 새마을호 티켓, 코묻은 불량식품 포장지, 퇴폐이발소 언니들과 같은 쓰레기 혹은 싸구려들이지, 결코 단군, 이순신, 유관순, 대통령 혹은 영부인과 같은 거룩한 문화재 혹은 위인들이 아니다. 여기에 여타의 다른 꿈 혹은 신화 작가들과 매딘이 견지하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고급신화로 꾸며지는 인간의 무의식이 아니라, 저급신화 즉 대중신화로 꾸며지는 영화의 무의식. 이것은 표현주의 카메라에 찍힌 멜로드라마, 혹은 방화가 되어버린 선데이 서울이다. 괴테 혹은 삼국유사는 그만큼 키치하지 않다. 싸구려만이 거룩해야 한다. 아마도 매딘이 정립한 가장 위대한 정식은 다음일 것이다: <영화의 무의식=대중의 신화>. 빙판을 미끄러지는 정충들은 아이스하키 선수들이다(<Coward Bends the Knees>).

만약 매딘이 언제나 키치로 신화를 꾸민다면, 그것은 기억을 잃어버리는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싸구려만이 죽은 것이고, 잃어버릴 수 있고, 또 반복해서 잃어버릴 수 있다. 그래서 이 신화국(神話國)에 이주할 수 있는 유일한 여권이란 기억상실증이다. 신화는 기억나지 않을 만큼 기억의 끄트머리이고, 그보다 오래된 어떠한 기억도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유령들은 자신들이 죽은 것조차 잊어버렸기 때문에 돌아온다. 매딘의 영화들을 관통하는 주요한 모티브는 그래서 기억의 오작동이다. 과대기억과 과소기억의 대결이 매딘의 유치뽕짝 결빙 멜로드라마를 사로잡는다. 한 여자만을 기억하는 강박적 신랑과 결혼한 것을 매번 잊어버리고 매일 결혼준비만 반복하는 바보 신랑의 쌍(<Archangel>), 복수심에 사로잡힌 메타와 바람둥이 어머니(<Coward...>)이 그러하고, 예수연기자와 장의사라는 두 형제(<Heart of the World>)도 그러하다. <Careful>은 그 중 가장 흥미로운 쌍일 것이다: 서로에게 기억상실을 요구하는 두 연인은, 사실 어머니의 자궁과 아버지의 정충에 이끌리는 과대기억 망상증자들이었다. 어떠한 경우든, 그 가능성과도 같을 “총체적 기억상실”에 이르는 것, 모든 얄팍한 기억을 휩쓸어 가는 중인 8mm 눈보라를 타고 기억의 빵구에 이르는 것, 나아가 스스로 그만큼 결빙되어 투명한 입자가 되는 것이 관건이다. 빙하기란 비기억immemory의 시대다. 하지만 바로 그 얼어붙은 것의 투명함이 다시 빛을 발할 것이다. 크리스탈만이 자체발광한다(<The Saddest Music in the World>, <My Winnipeg>). 빵꾸를 통하지 않고서 우린 삶으로 돌아올 수 없다. 기억의 바닥을 치지 않고서, 우린 어느 하나 기억할 수 없다. 죽어보지 않은 자가 어찌 환생할 수 있단 말인가. 후굴되지 않은 자궁이 어찌 배태할 수 있을 것이며.

물론 이 모든 것은 매딘이 다른 풋티지 작가들과 공유하는 방법론이다. 그러나 풋티지 작가로서, 매딘의 고유성은 풋티지를 영화의 숙명으로 선언했다는 것에 있을 것이다. 매딘은 풋티지로 영화를 만들려고 하는 작가가 아니다. 그는 반대로 영화를 풋티지로 만들고자 한다(그러한 의미에서 그의 풋티징은 구스타프 도이치, 피터 체르카스키와 같은 오스트리아 전통에 견주어야 한다). 매딘의 가장 위대한 유머가 여기에 있다: 선사시대에 발견된 최초의 영화, 그것은 풋티지 영화였던 것이다(가장 담대한 시도는 단연 <Heart of the World>일 것이다). 어떤 영화도 원본이었던 적이 없다. 모든 영화는 풋티지 영화이며, 최초의 영화도 풋티지인 것은 마찬가지다. 그래서 영화는 태생적으로, 선험적으로 신화이며, 바로 그 신화를 통과하는 8mm 그레인들은 눈보라처럼 기억을 결빙시킨다. 신화제국, 그곳은 캐나다의 얼어붙은 두메산골, 위니펙이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이, 발명도 아닌 것처럼, 단지 발견은 아니라고 믿는다. 왜냐하면 기억으로부터 분실되었던 8mm 눈보라는, 없던 것도 아닌 것처럼 있던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없으면서도 있었던 것이기에 무의식의 원소들이다. 매딘의 영화는 “영화를 처음부터 재발명하려는 시도”이고 “우주의 정중앙에 끝내 영화를 위치시키려는 경건한 신화”*다. 


김곡 / 영화감독


*Guy Maddin, "Very Lush and Full of Ostriches" in From the Atelier Tovar: Selected Writings, Coach house Books, 2003, p.95.)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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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ץ�� �Хå� 2013.05.02 23: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속하지만 각 사회의 발전형태에 따라 경제적

인터뷰 

"유령처럼 빨려 들어간 서울아트시네마가 안정적인 전용관 마련으로 오랫동안 함께하면 좋겠다"


단골 관객 이현미 씨를 만나다!


어쩐지 낯익었다. 극장의 풍경과 어우러지는 이미지가 쉬이 떠오르는 걸 보니, 아무래도 서울아트시네마에 자주 오시는 분 같았다. 눈이 펑펑 내리는 오후, <겁쟁이는 무릎을 꿇는다>의 시네토크가 끝나고 막 떠날 채비를 하는 이현미 씨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언제부터 시네마테크와 인연을 맺으셨는지.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를 열심히 다닌 지는 한 2007년부터다. 그 전에는 회사일 끝나고 틈틈이 보다가 2008년부터는 본격적으로 ‘달리면서’ 본 것 같다. 회계 쪽 일을 하는데, 하는 일에서 예술적 감수성을 충족시키지 못하니까 극장을 다니면서 자극을 많이 받으려고 한다. 처음에는 시간적 제약이 마음에 걸려 (비교적 가기 쉬운) 멀티플렉스 상영관을 갔는데 필이 꽂히고 나니까 시간은 문제가 안 되더라. 영화를 본 후 기록을 하다보면 어느 해인가부터 개봉영화 보다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월등히 많이 본다. 영화를 직접적으로 공부하지는 않았지만, 한 편의 영화를 보고 나면 무언가 남는 게 있다. 그 뒤로 마치 유령처럼 빨려 들어가 서울아트시네마를 계속 다니게 됐다.


이번 친구들영화제에서는 어떤 영화를 보셨는지.

개인적으로 괴기영화나 피 튀기는 영화는 안 좋아해서 지난주에 상영한 <지옥인간>은 거부했는데, 그 외의 작품들은 시간표에 나름대로 체크를 해놓았으니 다 보게 될 것 같다.


영화제가 중반을 넘어가고 있다. 지금까지 이번 친구들영화제에서 본 영화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영화는 무엇인가. 

시네마테크 추천작인 <내일을 위한 길>이 좋았다.


오늘 가이 매딘의 <겁쟁이는 무릎을 꿇는다>는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 

영화에 대한 사전지식이 전혀 없었다. 일단 친구들의 선택작이고, 어느 감독이 추천했다고 하면 궁금해져서 다 보고 싶다. 특별히 싫어하는 장르의 영화가 아니라면 무조건 와서 다 보는 편이다. 한 감독의 영화를 보고 나면 나중에 그 감독의 영화를 또 보게 되었을 때 다시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니, 사전정보가 없더라도 일단 봐두면 나중에 도움이 되더라. 원래는 영화만 보는 것도 힘드니까 시네토크는 안 듣고 집에 갔는데 시네토크를 듣는 것이 영화를 보고 나서 감상을 정리하는 데에 도움이 되더라. 의문점이 남는 것들을 다른 사람들이 질문을 해주면 해소가 되기도 하고. 그래서 이제 여유가 되면 시네토크도 들으려고 한다.


영화에 대한 짤막한 감상을 말씀해 주신다면.

굉장히 독특하고, 새로운 세계를 들여다 본 것 같다. 새로운 형식의 영화여서 살짝 졸수도 있는데 ‘이게 뭐지’ 싶어서 끝까지 보게 되었다. 아마 감독님이 추천하신 다른 작품도 찾아서 보게 될 것 같다.


이제까지 시네마테크에서 보았던 특별전이나 감독의 작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유럽연합대사관에 다니고 있다. 불어를 하는 게 수월하니까, 아무래도 프랑스 영화를 제일 많이 보게 된다. 2011년 11월에 했던 <프랑스 영화 황금기 전>이 관객들에게는 인기가 별로 없었지만, 나에게는 굉장히 좋았다. 내가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같은 곳에 직접 가서 찾아보지 않으면 볼 수 없는 영화를 모아서 왕창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 특별전을 다 보고 나니까 프랑스 친구들이랑 이야기 할 때 ‘아, 그 영화’하고 딱 나와서 대화가 통하고 얘깃거리가 풍부해졌다. 그 점이 무척 좋았다. 관객들은 70년대 이후의 최근 프랑스 영화를 더 많이 보나보다. 그 특별전에서는 3, 40년대 프랑스 영화를 많이 틀어서인지 관객이 많이 들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가장 좋았던 특별전이다.

서울아트시네마는 프로그램 한 번 할 때 필름을 외국에서 수급해 와서 2주 내지 3주 안에 다시 돌려보내야 하니까, 그 2, 3주 동안 내가 이곳에 있어야 이 영화들을 다 볼 수 있지 않나. 가끔 시네마테크가 있는 파리나 브뤼셀에 가서 보면, 같은 유럽이고 가까워서인지 필름 수급이 수월한 것 같다. 프로그램 북을 보면 어떤 감독전, 어떤 특별전을 할 때 일 년 이런 식으로 긴 시간동안 하더라. 이 사람 작품은 매주 월요일 상영 또는 첫째 주 무슨 요일, 이렇게 프로그래밍해서 그 감독 작품을 보고 싶으면 한 번 놓치더라도 이후에 시간을 내서 볼 수 있도록 한다. 유럽 시네마테크에 가서도 모르는 감독이 태반인데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보았던 작품을 만나면 무척 반갑다.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다른 관객들의 마음과 같이, 전용관이 생겨서 안정적으로 프로그래밍 할 수 있다면 좋겠다. 아주 오랫동안 이 곳을 다니고 싶다. 농담 삼아 나이 들면 여기에 와서 수표 자원봉사를 하고 싶다고 했는데, 오랫동안 드나들며 젊은 친구들을 만나고 싶다. 전용관이 빨리 생겨서 그 곳에 모일 수 있으면 좋겠다.


서울아트시네마에서 개인적으로 보고 싶은 영화가 있다면.

필립 느와레가 나왔던, 70년대 영화인가, 예전에 사간동 프랑스 문화원 시절에 보았던 영화인 <녹슨 장총>(한국 개봉 제목 <추상>)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인터뷰글/ 지유진 관객에디터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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