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매기'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1.08.10 [특별강좌] 안톤 체호프와 문학 ❷
  2. 2011.07.29 ‘문제의 올바른 제기’로서의 문학

인간 존재의 진실에 대한 안톤 체호프의 보고서

지난 8월 6일 오후 ‘러시아 모스필름 특별전’ 섹션에 마련된 안톤 체호프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갈매기> 상영 후 '안톤 체호프와 문학'이란 제하의 두 번째 특별강좌가 열렸다. 강사는 체호프로 석박사 논문을 썼을 만큼 체호프 전문가인 성균관대 러시아문학과 오종우 교수가 나섰다. ‘인간 존재의 진실에 대한 안톤 체호의 보고서'란 주제로 20세기 현대문학의 원류라 할 수 있는 체호프 문학의 특징과 의미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볼 수 있었던 그 시간의 일부를 여기에 옮겨본다.


오종우(성균관대학교 러시아문학과 교수):
좋은 영화를 보고 극장을 나서면 왠지 하늘 색깔이나 거리의 풍경이 달라진 듯하고, 마음속에서 여러 느낌들이 생기는 것을 체험하게 된다. 이것이 영화예술이 갖고 있는 진정한 힘이라고 생각된다. 좋은 영화를 보고났을 때의 감흥은 상당히 오랜 기간 살아남아 아주 미세한 부분에서 우리 삶의 어떤 동기나 힘이 되는 것을 보면서 그것이 영화, 넓게는 예술이 갖고 있는 힘이 아닌가 싶다. 오늘 본 영화 <갈매기>는 잔잔함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 절제된 격정이 존재한다. 이 느낌이 우리의 삶 속에 반영되거나 투영될 수 있는 경험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먼저 세계문학사에서 체호프가 갖는 의미에 대해 이야기하겠다. 체호프는 예술과 문학에 있어서 새로운 시대를 연 작가이다. 체호프 이전의 문학은 그 안에 사상과 철학이 녹아들어 있었다. 다시 말해 문학과 사상·철학이 분리되어 있지 않았다. 도스토예프스키나 톨스토이와 같은 작가들이 그렇다. 문학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예술의 한 분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문학이라는 단어는 러시아어에서는 문헌이라는 의미를 갖기도 한다. 즉 문학은 허구적인 이야기들만을 담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빗대서 철학이나 사상을 담는다는 의미를 갖는다. 이는 체호프 이전의 문학에 대한 일반적인 통념이다. 하지만 체호프는 문학을 사상과 철학으로부터 분리시킨다. 예술로서의 문학을 얘기한 것이다. 그의 작품에는 인물이 어떤 행위를 하는 데에 있어 그에 대한 사상과 철학에 대한 논리적인 진술이나 설명이 없다. 예술 작품은 논리적이거나 일상적인 언어로 백퍼센트 번역 혹은 환원되지 않는다. 바로 그 부분에 예술이 갖는 중요한 가치가 있는 것이며, 체호프의 작품은 이러한 예술에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20세기 현대문학의 원류라고 할 수 있다.

체호프는 ‘좋은 문학이나 예술 작품을 대하는 것은 한 잔의 보드카를 마시는 일과 같다’는 말을 남긴 적이 있다. 보드카는 무색, 무취, 무미한 술이다. 때문에 음미하며 마시는 것이 아니라 한 잔을 툭 털어 넣으며 마시게 된다. 이때 보드카의 작용은 미각이 아니라 가슴에서 일어난다. 우리가 무엇을 ‘안다’거나 ‘이해한다’고 하면, 이성적으로, 논리적으로 파악한다는 의미를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렇게 머리로 아는 지식은 결코 삶 속에서 실천되지 않는다. 우리의 감각으로 알아야 진짜 아는 것이다. 실천될 수 있는 진정한 지식은 우리의 감각과 가슴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는 예술이 이 시대에 갖는 중요한 의미이며, 체호프의 가치도 여기에 있다. 예술은 이성적이거나 논리적 행위가 아니다. 예술은 감각과 관련되기 때문에 예술을 통한 앎은 우리의 몸과 함께 하며, 따라서 이때의 앎은 우리의 삶 속에서 실천될 수 있다. 체호프가 보드카에 빗대어 한 얘기도 바로 이것이다. 보드카가 가슴으로 마시는 술인 것처럼 좋은 예술 역시 머리가 아닌 우리의 가슴을 통해 반응한다.
체호프에게서 중요한 것은 문학이 삶의 진실을 담는다는 것이다. 체호프 작품에 나오는 대사 중에 ‘인생은 짧은 거야, 그러니 잘 살아야해’는 말이 있다. 이는 그가 예술가로서 우리에게 남긴 아주 큰 의미를 함축한다. 그의 많은 작품들은 진실에서 벗어나거나 괴리감을 갖는 통념들의 문제를 다룬다. 통념에 갇혀서 모두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니까 거기에 안주하면서 우리는 진실로부터 멀어져 우리의 삶을 제대로 살 수 없게 된다. 이는 체호프에게 가장 예리하게 발견되는 점들이다. 일반적인 통념에 비추어 볼 때, 사실과 진실은 일치되곤 한다. 우리는 종종 사실을 곧 진실로 받아들이지만 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심지어 객관적인 사실이라는 것이 있을지가 의문이다. 모두가 동일하게 생각하는 사실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있는 것은 모두 해석된 대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모든 사물과 현상들은 사람들의 해석에 따라 사실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백퍼센트 객관적인 사실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사실들을 분석해서 범죄를 밝히는 법이 득세를 하는 시대는 한편으로는 타락한 시대이다. 로마가 그랬다. 여러 가지 정황들, 사건들의 사실들을 종합해서 판결하는 것이 이 시대의 진실 혹은 진리라고 주장하는 데에서는 인간들의 타락을 볼 수밖에 없다. 각각의 개인의 해석들을 죽여 버렸기 때문이다. 해석력이라는 것은 진실을 찾아낼 수 있는 것이기에 대단히 중요하다. 체호프에게 있어서 아주 중요한 것 역시 이 해석력의 문제이다.

영어에서 ‘general’과 ‘universal’이라는 두 단어는 모두 ‘일반적인, 보편적인, 두루 통용되는’이라는 비슷한 뜻을 지닌다. 하지만 이 두 단어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갖고 있다. ‘general’은 ‘종류’라는 뜻의 라틴어가 어원으로, 즉 같은 종류의 것이 널리 퍼진다는 것이다. 반면 ‘universal’의 라틴어원은 '하나'와 '귀결'이라는 뜻을 갖는다. 따라서 두 단어는 외형적인 뜻은 같아도 그 본질적인 뜻은 서로 다르다. 'general'이 똑같은 종류의 것들이 널리 퍼지는 것이라면, ‘universal'은 단 하나가 세상 모든 것의 의미를 갖는다. 이 세상에는 'general'한 듯하지만 'universal'한 것들이 몇 가지 있다. 우선 ‘사랑’이 있다. 세상에는 너무도 많은 사랑이 존재하지만 사랑의 경험을 떠올린다면 그 모든 사랑도 똑같은 건 하나도 없다. 많은 듯하지만 하나로서 전체가 된다는 점에서 ‘예술’과 ‘생명’ 개념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생명은 'general'한 형태로 아주 많은 것 같지만, ‘철수’라는 존재는 단 하나이다. 인간 존재라는 것은 바로 이 점에서 대단히 소중한 것이다.
한편 'general'한 것의 아주 대표적인 것이 이데올로기이다. 체호프는 그의 작품에 사상이 없다는 비판에 대한 대답으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두려워하는 사람은 행간에서 경향을 찾아 내가 자유주의자이니, 보수주의자이니, 확고하게 규정지으려고 하는 자들이다. 나는 자유주의자도, 보수주의자도, 점진주의자도, 성직자도, 무신론자도 아니다. 나는 그저 단지 자유로운 예술가이고자 한다. 나는 거짓과 모든 형태의 폭력을 증오한다. 내게 신성한 것은 모든 형태의 거짓과 폭력으로부터의 자유, 진실에 대한 아주 절대적인 자유이다. 이것이 내가 위대한 예술가라면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강령이다.’
‘우리가 단순히 좋다고 하는, 그리고 우리를 취하게 하는 작가들은 하나의 공통된, 중요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들이 어디론가 가서 거기서 당신을 부른다는 것이다. 그러면 당신은 이성이 아니라 자신의 온 몸으로 그들에게 어떤 목적이 있다고 느끼게 된다. 그들보다 더 뛰어난 작가들은 사실적이며, 삶을 있는 그대로 쓴다. 그러나 당신은 각각의 논쟁들에 목적의식들이 스며들어 있다면서, 있는 그대로의 삶을 배재한다. 하지만 우리는 삶을 있는 그대로 쓴다. 그 이상은 알바 아니다.’
이는 체호프의 아주 중요한 예술관이다. 우리가 통념처럼 갖고 있는, ‘주제가 있다’고 하는 것은, 결국 'general'한 것이다. 하지만 체호프가 얘기하는 것은 ‘해석한 주제’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삶을 있는 그대로 쓴다’는 것은 사실들을 마치 보고서처럼 쓴다는 것이 아니다. 체호프는 사실들을 각각의 해석력을 갖고 해석하는 것이 중요하며, 그것이 예술이라고 말함으로써 ‘universal'을 강조했다. 여기에는 대단한 인간 신뢰가 담겨있다. 체호프 이전의 작가들은 교사가 되려고 했다. 인간에 대한 신뢰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체호프는 객관적인 것을 냉철하게 보여주며, 독자에게 해석하라고 한다. 이것이 체호프의 현대적 가치이다.


체호프는 모스크바의 의과대학에 입학한 뒤, 생활비를 벌기 위해 잡지에 콩트를 쓰기 시작한다. 당시 러시아에서는 의사의 봉급보다 작가의 원고료가 훨씬 많았다. 우리는 문학과 예술을 관념의 유희라고 오해하곤 하는데, 체호프에게 있어서 예술은 생존의 수단이었다. 이는 그의 작품의 근간을 이룬다. 좋은 의사는 환자를 만났을 때 냉철하게 그 병의 이유가 무엇인지 파악한다. 이는 작가로서의 체호프와도 연결된다. 현실을 바라볼 때, 감정적으로 불쌍한 사람들을 동정하는 것으로는 현실과 조응하는 진정한 좋은 작품을 쓸 수 없다. 현실의 냉정한 문제들을 예리하게 볼 수 있는 눈이 필요한 것이다. 체호프가 불쌍한 사람들의 몰락에 대한 얘기들을 유머라고 쓴 것은, 그것을 보면서 그렇게 살아서는 진실한 삶을 살 수 없음을 독자 스스로 해석하기 바랐던 것이다.
『갈매기』는 주요 인물의 자살로 끝나는 이야기임에도 체호프는 이 작품이 코미디라고 말한다. 자신의 꿈을 이루어내는 인물은 한 명도 없는 이 작품은 자기가 바라는 바와 자기가 처한 현실의 괴리를 다루고 있다. 코미디의 중요한 요소는 어긋남, 불일치이다. 『갈매기』의 인물들의 삶들이 그렇다.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는 『갈매기』 이야기를 본 딴 것으로, 역시 꿈을 이루지 못한 이들의 이야기이다. 꿈은 현실로 와야 이루어지는 것이다. 즉, 마냥 기다릴 것이 아니라 고도를 오게 해야 하는 것이다. 진실을 통찰하지 못한 통념의 문제는 체호프 문학의 근간을 이룬다. 물론 이를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갈매기』에는 극중극 형식으로 니나의 중요한 독백이 있다. 그녀는 독백을 통해 생명과 해석과 같은 것들이 물질에 의해 사로잡혀서 그 생명력을 잃은 끔찍한 현상에 대해 얘기한다. 이처럼 체호프는 우리에게 삶과 인간 존재의 진실이 무엇인가를 강하게 얘기한다. 그는 작품은 우리가 삶을 해석하려는 노력을 얻게 될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정리: 장지혜(관객에디터) 사진: 주원탁(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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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톤 체호프의 문학 세계

모스필름 특별전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러시아의 최대 제작사 모스필름의 영화를 상영하는 행사다. 이번에는 특별히 러시아를 대표하는 극작가 겸 소설가 안톤 체호프의 작품을 원작으로 삼은 영화 다섯 편 <결혼> <베짱이> <철 지난 꽃> <갈매기> <6호실>을 소개한다. 이에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의 오원교 HK연구교수가 안톤 체호프의 문학세계에 대한 소개 글을 보내왔다.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Антон Павлович Чехов 1860-1904)은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최고의 단편 소설가이자 새로운 드라마 형식을 창조한 극작가이다. 체호프는 1960년 1월 17일, 러시아 남부 아조프 해의 작은 항구도시 타간로그에서 파벨 예고로비치(Павел Егорович)와 예브게니야 야코블레브나(Евгения Яковлевна) 사이의 5남 1녀 중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소규모 잡화상을 운영했던 아버지는 예술과 사회활동에 관심이 많은 개성이 강하고 다소 전제적이고 보수적인 인물이었고, 어머니는 충실하고 사랑이 넘치는 현모양처였다. 체호프는 후에 “재능은 아버지로부터, 정신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았다”라고 술회하였다. 1876년 아버지의 경제적 파산으로 가족이 모스크바로 이주한 후, 체호프는 고향에 혼자 남아 가정교사로 일하면서 고학으로 중학교를 마쳤다. 어린 시절 타간로그에서 다양한 경험과 기억들은 작가의 세계관과 자연관의 형성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으며, 체호프 문학이 자라나는 자양분이 되었다. 1879년 작가는 모스크바대학 의학부의 입학을 계기로 가족들과 재회하게 되지만, 궁핍한 가정 형편 때문에 고단한 대학 생활을 이어가야 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체호프는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순수한 예술적 동기라기보다는 주로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였다. 1880년 3월 잡지 <잠자리>에 실린 첫 작품을 시작으로 ‘안토샤 체혼테’, ‘환자 없는 의사’, ‘쓸게 빠진 인간’ 등의 필명으로 다양한 신문과 잡지에 수많은 단편소설, 콩트, 단막극, 만평을 썼다. 이 시기에는 출판사의 요구로 대부분 짤막한 작품들을 썼는데, 이러한 극도의 간결성에 대한 추구 — “간결함은 재능의 누이이다” —는 장차 단편작가 체호프의 고유한 시학적 원리 중의 하나가 되었다.

1884년에 의학 수업을 마친 체호프는 이후 수년간 간헐적으로 의술 활동에 종사하면서 작품 활동을 병행해 나갔다. 의학을 비롯한 자연 과학에 대한 관심은 그의 생애 전반에 걸쳐서 강하게 지속되었으며, 특히 의학 수업과 의술 경험은 그의 작품들에 깊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의술 경험은 그로 하여금 인간과 세계에 대한 세밀하고 직접적인 관찰을 가능하게 했다. 체호프는 그의 작품들 속에서 삶의 중대한 고비에 선 인간의 깊은 심리를 파고들면서 공감을 표하되 감상에 젖지 않고 냉혹하리만큼 명징한 객관성을 유지하였는데, 이는 훌륭한 의사와도 같은 작가의 냉철한 모습을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 예술가로서의 체호프는 과학자로서의 신조를 지니고 있었으며, “작가는 화학자와도 같이 객관적이어야만 한다”라고 말하곤 했다. 1885년 원로 작가 그리고로비치(Д.В. Григорович)의 충고와 격려, 당대의 유력 신문 <신시대>의 발행인 수보린(А.С. Суворин)과의 만남을 계기로 작가로서의 사명감을 새롭게 인식하면서 체호프는 점차 초기의 희극적이고 풍자적인 경향에서 벗어나 보다 진지한 문학성을 지향하게 된다. 1886년 단편 <추도식>에서 처음으로 본명을 사용하기 시작한 체호프는 <우수>, <아뉴따>, <반까>, <자고 싶어> 등에서 일상의 외적 희극성을 넘어 존재의 복잡한 심연으로 천착해 들어가 당대 러시아인들의 삶의 본질적 측면들을 예리하게 반추한다. 그는 자신의 인물들을 결코 치장하지 않으면서 그들을 짓누르는 온갖 삶의 고뇌와 인간적 실상을 들추어냈다.



1888년 체호프는 러시아 남부 돈 강지역의 여행에 기초해서 자신의 서정적 산문의 최고 걸작 중의 하나인 중편소설 <초원>을 집필하면서 확연히 문학적 전환을 이뤄냈고, 마침내 단편집 <황혼녘에>로 러시아 학술원에서 푸슈낀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작가로서 문단의 기대와 주목을 본격적으로 받게 된다. 이시기에 체호프는 산문작가로서 뿐만 아니라 극작가로서 활동을 시작하게 되는데, <이바노프>, <숲의 정령> 등의 작품은 절제된 체호프적 드라마 기법에 완전히 이르지는 못했지만, 주위의 일면적 이해와 부당한 평가와는 별도로 극작가로서의 면모를 이미 적지 않게 드러내었다. 하지만 문학적 성공과 명성에도 불구하고 체호프는 자신의 삶과 문학에 대한 심각한 고뇌에 빠지고 근본적인 자기 성찰에 몰입하게 된다. 1880년대 말은 체호프에게 문학 세계의 본질적인 변화를 가져오게 되는 긴장어린 정신적, 예술적 추구의 시기였다. 그는 이제 인간의 불행, 행복, 사랑 등의 보편적 문제를 넘어 당대 러시아 지성인들의 특별한 주목의 대상이었던 구체적이고 예민한 사회적 물음들, 특히 이른바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시대적 과제에 다가서게 되는데, 톨스토이주의에 대한 비판적 성찰은 그 대표적 예들 중의 하나이다. 이런 와중에 그는 1890년 4월 강제노역과 유형의 땅, 사할린 섬으로 여행을 떠난다. 여행길에서 체호프는 <시베리아에서>를 집필하였고, 유형지의 실태를 직접 체험하고 그 해 12월 모스크바로 돌아온 후 <사할린 섬>, <구세프>, <아낙네들>, <유형지에서> 등의 작품을 통해 커다란 문학적, 사회적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참을 수 없는 고행의 땅이자 악마의 섬’에 대한 자발적 순례였던 사할린 섬 여행은 체호프의 삶과 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는데, “우리 모두가 죄인이다”라는 현실에 대한 인간적 각성과 참회뿐만 아니라, 이제 “문제는 무엇이 아니라 어떻게 이다”라는 문학에 관한 획기적 인식을 낳는다.

체호프는 이듬해 수보린과 함께 유럽을 여행한 후, 1892년 모스크바 남쪽의 멜리호보 마을에 작은 영지를 구입하여 가족과 함께 정착하게 된다. 그곳에서 체호프는 창작 활동뿐만 아니라 의료, 교육 등의 사회 활동에도 적극 참여하였다. 또한 체호프는 레비탄((И.И. Левитан)을 비롯하여 수많은 작가, 학자, 미술가, 음악가 등과의 활발한 교류를 지속하였는데, 1895년에는 야스나야 폴랴나를 방문하여 처음으로 톨스토이(Л.Н. Толстой)와 조우했다. 멜리호보에서 작가 체호프는 문학의 절정기를 맞게 되는 데, 1892~1898년 사이에 <결투>, <6호실>, <신학생>, <3년>, <농부들>, <나의 삶>, <상자 속의 인간>, <나무딸기>, <사랑에 대하여>, <이오니치> 등과 같은 주옥같은 단편들을 집필하였다. 이 작품들은 러시아의 삶의 다양한 영역에 대한 예술적 탐색의 심연과 작가의 인본주의적 신념의 강도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1890년대 체호프의 작품들에서는 개인적, 사회적 삶의 차원에서 진리, 미(美),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의가 본격적으로 제기되었는데, 인간의 사회적-역사적 임무 혹은 사명이라는 문제가 가장 결정적인 의의를 지니게 되고, 이는 인간적 삶의 의미와 가치에 관한 종래의 이해에 대한 본질적 재고로 나아간다. 예컨대, 체호프는 인간의 행복 추구를 본성에서 비롯되는 자연스러운 권리로 간주하면서도 인간 존재의 고귀한 목적에 상응하는 행복만을 옹호하였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아르쉰의 땅이나 저택이 아니라 광활함 속에서 자유로운 영혼의 모든 본성과 특성을 펼칠 수 있는 지구 전체, 자연 전부이다.” 또한 1890년대 말 체호프는 다시 희곡으로 관심을 돌렸는데, 1896년 알렉산드린스키 극장에서 초연에 실패하여 작가에게 충격을 주었던 <갈매기>는 1898년 모스크바 예술극장(МХАТ)에서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고, 뒤이어 <바냐 아저씨>도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1897년에 체호프는 지병인 결핵이 악화되어 병원에 입원해야 했으며, 의사의 권유로 1898년 흑해 연안의 휴양도시 얄타로 이주한다. 그곳에서 요양을 하면서 체호프는 ‘하얀 별장’을 짓고, 육체적 쇠약에도 불구하고 문학 창작과 지인들과의 만남을 활발하게 펼쳤다. 1900년 체호프는 희곡, <세 자매>를 탈고하고, 이 작품으로 1902년 그리보예도프 상을 수상하였으며, 1898년에 처음 만났던 모스크바 예술극장의 여배우, 올가 크니페르(Ольга Книппер)와 1901년 5월 25일 결혼하였다. 한편 1900년 초 러시아 학술원 명예회원으로 선출되었던 체호프는 고리키(М. Горький)의 제명에 항의하여 회원 자격을 스스로 반납하기도 하였다. 1903년에는 마지막 단편 <약혼녀>와 희곡 <벚꽃 동산>을 탈고하였다. 말년에 체호프의 문학에서는 인간 내면에 대한 면밀한 숙고와 당대 사회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더욱 깊어지는 가운데 만연한 상투성과 산문성에 대한 예리한 질타와 지양의 모색이 두드러진다. 1904년 6월 체호프는 아내, 올가 크니페르와 함께 독일 남부의 유명한 요양지인 바덴바일러로 갔으나, 병세는 호전되지 않았고, 결국 1904년 7월 2일 새벽 3시,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면서 청했던 마지막 샴페인 한 잔을 다 비우지 못한 채, “나는 죽는다”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길지 않은 생을 마감한다. 그의 유해는 모스크바로 운구 되어 수많은 군중이 애도하는 가운데 7월 9일 노보제비치 수도원에 안장되었다.


일찍이 톨스토이가 ‘새로운, 온 세상에서 완전히 새로운 글쓰기’라고 일갈한 체호프 문학의 요체는 다름 아닌 ‘문제의 올바른 제기’이라는 독특한 ‘객관성의 시학’이다. 체호프에 따르면 예술가(작가)는 재판관이 아니라 ‘불편부당한 목격자’이고, 따라서 그에게 요구되는 것은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그것의 ‘올바른 제기’이다. 러시아 문학사에서 레르몬토프(М. Лермонтов)적 전통의 혁신으로 읽혀지고 체호프 문학의 새로움과 고유성을 가장 본질적으로 표현해주는 시학적 원리인 ‘문제의 올바른 제기’는 고리키의 진단처럼 세계와 인간에 대한 작가의 드높은 사고에 기초한다. 체호프의 객관성의 시학은 무엇보다도 현실의 절대적 총체성 앞에서 인간적 인식의 상대성이라는 예술-철학적 전제에서 출발한다. 문제의 올바른 제기는 당대 비평가들의 힐난과는 달리 세계와 인간에 대한 불가지론적 허무주의나 상대주의의 표출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현실을 독단적이거나 교조적으로 해석하고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 행동하면서 문제 해결을 시도했던 19세기와 당대의 러시아 문학의 지배적 조류에 맞서는 작가의 반성적 인식의 표출이자, 대상에 대한 대화적 관계를 견지하며 양심적 진리를 끝없이 추구하는 자유로운 예술가 정신의 표현이다. 체호프 문학에서 문제 제기의 올바름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는 것으로서 문제 자체의 합리성과 함께 서사 대상과의 관계에서 뿐만 아니라 서사 주체, 즉 작가 자신과의 관계에서 작가적 입장을 원칙적으로 규정한다. 체호프에 따르면 문학가는 화학자처럼 객관적이어야 하며, 일상의 주관성으로부터 절연됨으로써 일체의 강요, 허위 그리고 선입관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요컨대 문제 제기의 올바름은 ‘불편부당성’, ‘합리성’, ‘객관성’, ‘냉정함’, ‘냉담함’ 그리고 ‘정의’의 총체이며, 이것은 체호프에게서 양심적 진리를 사명으로 하는 문학의 예술성을 재는 척도이자 강한 인상의 기초이다. ‘산문 속의 푸슈킨’이라고 일컬어진 체호프 문학을 관통하고 있는 이른바 간결성과 절제성은 바로 이러한 시학적 원리의 구현이다.

말하자면 체호프 문학에서 문제 제기의 올바름 내지 객관성은 결코 삶에 대한 자신의 기존 지식의 주장으로 결코 환원되지 않고 타자의 지식, 견해, 진리에 대한 가치평가, 상이한 진리들의 대조, 진리들의 자질과 조건들에 대한 탐구를 전제한다. 또한 진정한 진리의 끝없는 추구 과정에서 어떠한 대답도 유일한 것으로 주장하지 않으면서도 제기된 물음에 대한 가능한 답의 추구 노력 속에서 표현된다. 이처럼 문제의 올바른 제기라는 체호프의 문학 창작의 원리는 현실에 대한 불편부당한 인식에 근거해서 그것을 고유의 복합성과 충만함 속에서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반영하는 것으로서, 섣불리 문제의 해결만을 추구하는 주관성의 시학에 맞서는 객관성의 시학의 본체인 것이다. 한마디로 체호프의 객관성의 시학은 해체와 회색빛 좌절, 산문적인 질서가 지배하는 파편화된 당대 현실에 대한 체호프의 작가적 대응이며, 구원의 가능성이 모호하고, 거대 서사의 황금시대가 종말을 고하며, 부정과 모색이라는 문학의 툰드라 시대에 맞선 작가의 진실하고 냉정한 문학적 형식이다. 바로 이로부터 자유로운 영혼의 모든 본성이 만개하고 인간 속의 모든 것이 아름답게 되는 드넓은 세상에 대한 체호프의 인본주의적 갈구가 샘솟는다.

글/ 오원교(모스크바 국립대학 박사,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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