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18 시네바캉스 서울

[2018 시네바캉스 서울: 작가를 만나다] “관객에게 위로를 주는, ‘선물’ 같은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리틀 포레스트> 상영 후 임순례 감독과의 대화

[2018 시네바캉스 서울: 작가를 만나다] 

“관객에게 위로를 주는, ‘선물’ 같은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리틀 포레스트> 상영 후 임순례 감독과의 대화

 

정지연(영화평론가) <리틀 포레스트>의 전작이 <제보자>였다. <제보자>가 2014년에 개봉을 한 뒤 거의 4년 만에 다시 장편영화를 만들었다. <리틀 포레스트>가 한국에서 만들어지는데 연출을 임순례 감독이 맡는다고 해서 크게 기대했었다. 어떻게 이 작품을 만들었는지 처음 계기를 듣고 싶다.

임순례(감독) 사실 <제보자>가 끝나고 중국에서 영화 연출 제의를 받았다가 결과적으로 잘 안 되면서 텀이 좀 생겼다. 그렇게 기다리고 있던 중에 <제보자>를 만들었던 제작사의 대표가 일본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리메이크를 제안했다. 그런데 사실 이 영화가 40대 중반 남성이 좋아할 만한 영화는 아니지 않나? 그분이 평소 만들던 영화와 색깔도 많이 다르다(웃음). 그런데 대표님이 개인적으로 그 영화를 보고 매우 큰 위로를 받았다고 하더라. “감독님, 저도 한국 관객에게 위로를 주는 영화를 만들고 싶습니다.”라고 제안했다. 내가 교외에서 십 년 넘게 생활하고 있고, 소위 ‘자연친화적’ 성향인 걸 알고 <리틀 포레스트>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당시 그 제안을 받아들인 이유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내가 관객의 입장에서 영화를 봐도 너무 폭력적이고 자극적인 영화들이 많기 때문이다. 볼 때는 재미있게 보지만 보고 나면 뭔가 나도 폭력을 당한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그렇지 않은 영화를 만들어 관객들에게 ‘선물’을 드리고 싶었다. 또 한국 영화 제작비가 너무 올라가고 있다. 100억, 200억을 우습게 여기는 풍토에 약간이라도 저항을 해보고 싶은 것도 있었다. 그래서 컴팩트하게, 소소한 이야기를 갖고 위로를 주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정지연 일본판 <리틀 포레스트>를 먼저 본 동료가 “내러티브가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 계속 보게 된다. 별 사건도 없는데 재밌다.”라고 말했던 기억이 있다. 감독님은 영화를 만드는 입장에서 ‘한국화’를 해야 했을 텐데, 각색이나 연출에서 어떤 고민을 했는지 궁금하다.

임순례 처음에 제안을 받았을 때는 고민을 좀 했다. 너무 당연한 얘기지만, 원작이 너무 ‘일본스러’웠다. 이걸 한국의 상황에 맞춰 바꾸는 게 쉽지 않았다. 같은 농경문화고 같은 농촌이지만 영화 속 음식도 너무 다르고, 결론의 결도 굉장히 다르다. 일단 일본판 <리틀 포레스트>의 결론에서는 그 마을이 오랫동안 유지한 전통 문화를 주인공이 수용하는 식으로 마무리된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마을만의 어떤 독특한 전통은 파괴된 게 사실이다.

또 한국 관객은 일본판 <리틀 포레스트>를 볼 때 이 영화를 좋아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어떤 호의를 품고 봤을 것이다. 이 영화의 느리고 독특한 리듬을 받아들이겠다는 태도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런데 그 관객수가 만 명에서 이만 명 사이였다. 일본에서도 매니아가 있기는 하지만 그렇게 큰 흥행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한국에서는 독립영화가 아닌 이상 그보다는 많은 관객이 보게 해야 한다. 그래서 원작의 리듬과 호흡을 어떻게 대중적으로 가져올지 정말 많이 고민했다.

이 영화의 핵심 설정은 젊은 여성이 고향 마을에 가서 집 주변에 있는 식재료를 갖고 스스로 요리를 한다는 것이다. 이건 당연히 가져가야 하는 설정이다. 그런데 원작에서는 엄마가 훨씬 일찍 집을 떠난다. 만약 한국에서 엄마가 어린 딸을 혼자 시골에 두고 가면 어떨까? 이건 그 누구도 납득하기 힘든 선택이다. 그리고 단순히 우체부 아저씨가 뭘 가지고 와도 이상한 일이 벌어질 것 같은 분위기가 생길 수 있다. 이런 치안과 관련한 현실적인 문제들도 있었다. 혼자 사는 젊은 여성이 농촌에서 안전하게 생활하는 걸 관객들이 편안하게 볼 수 있게 만드는 장치도 함께 고민했다. 관객들이 주인공을 계속 불안하게 지켜보도록 만들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 혜원(김태리)의 주변의 친구들이 집을 자주 찾아오고, 고모도 가까운 곳에 살고, 진돗개도 키우는 설정들이 들어갔다. 엄마도 혜원이 좀 더 자란 뒤에 떠나는 걸로 했다. 

참고로 제작자가 우리가 만드는 <리틀 포레스트>도 1부, 2부로 나눌지 물어봤다. 내가 그건 안 된다고 했다. <신과 함께>는 관객들이 2부를 기다릴 수 있겠지만 <리틀 포레스트> 1편을 보고 2편을 기다리는 관객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웃음). 그렇게 한 편 안에 사계절을 전부 넣기로 했다. 이런 고민들이 전부 합쳐져 오늘 본 한국판 <리틀 포레스트>가 만들어졌다. 

정지연 추가로 질문하자면, 일본의 원작은 이야기가 뚜렷한 편이 아니다. 캐릭터들도 다들 활기찬 느낌은 아니고, 차분한 인물들이 느긋하게 지내는 느낌이다. 그런데 한국의 <리틀 포레스트>는 상대적으로 이야기가 더 뚜렷한 편이고 한국 이십 대 청년 특유의 생기 같은 것도 잘 느껴진다. ‘대중적’인 화법을 고려했을 때 어떤 걸 보여주고 싶었는지 궁금하다.

임순례 일단 영화에 커다란 서사가 없고, 주변 인물도 친구 두 명과 고모, 엄마, 우체부 정도라서 고민을 많이 했다. 그중 친구들이 양날의 검이었다. 이들 때문에 영화가 지루해지지 않지만, 동시에 이들은 혜원의 혼자 있는 시간을 적게 하는 요소이기도 했다. 혜원은 고민을 안고 있는 친구라서 혼자 조용히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했는데 친구들이 너무 자주 찾아온다(웃음). 이 부분을 많이 고민했지만 일단은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좀 밝게 가져가고 싶었다.

사실 혜원이 처한 상황이 굉장히 어둡다. 시험도 다 떨어졌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계획도 없고 돈도 없다. 이런 우울한 현실을 우울하게 보여주면 관객도 같이 우울해질 것 같았다. 이런 색깔을 잡을 때 김태리 씨도 고민을 많이 했다. 이런 많은 고민을 가진 배역이 이렇게 밝아도 되나? 같은 고민이었는데, 이 부분은 내가 밝게 가자고 계속 이야기를 했다. 밝음을 보여준다고 해서 혜원이 갖고 있는 고민이 없어지는 건 아니고, 이 영화의 밝음이 관객을 영화 끝까지 이끌고 독려하는 힘이라고 설명했다. 아무래도 영화 안에 사계절이 다 들어가다 보니 호흡이 짧을 수밖에 없다는 한계가 있기도 했다. 선택을 해야 할 문제였고, 연출자로서 밝음을 선택했다.

정지연 두 가지가 궁금하다. 하나는 혜원이 전 남자친구와의 관계가 정리가 깔끔하게 안 된 상태에서 고향으로 와 헤어지기 전까지 관계를 조금 더 유지한다. 또 엄마와의 관계도 인상적이다. 영화의 엔딩이 약간 열려 있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엄마가 와 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때 혜원이 활짝 웃으며 엄마를 이해했을 수도 있다는 해석의 여지를 준다. 이렇게 엄마와의 관계가 일본 원작보다 좀 더 커진 면이 있다.

임순례 엄마와의 관계에 대한 문제를 제일 크게 잡았다. 나는 혜원이 고향을 떠나 서울로 간 것, 임용고시 도전 같은 여러 가지 결정들이 엄마와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라 봤다. 엄마와 해결되지 않은 무언가가 혜원으로 하여금 원하지 않은 선택들을 하게 만든 것이다. 엄마로 인한 트라우마가 극복이 안 된 상태에서 연애든, 취업이든, 진로든 계속 자신이 뭘 해야 할지 모르는 걸로 봤다.

하지만 엄마 없는 집에서 1년 동안 요리를 하며 엄마와의 삶을 복기했고, 이를 통해 엄마에 대한 사랑과 신뢰를 확인했고 자연스럽게 본인의 앞으로의 삶에 대한 자신감이 붙었다. 이런 흐름을 영화의 중심으로 잡았고, 그렇기 때문에 남자친구와의 결별은 상대적으로 그렇게 중요한 사건은 아니었다. 혜원이 그 일로 심한 상처를 받지는 않았을 것 같다.

정지연 감독님은 그동안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을 계속 작품에 녹여냈다. <리틀 포레스트> 역시 취업에 실패한 이십 대 청년이 자신의 문제를 정리하고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는 과정을 그린 작품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캐릭터들을 통해 청년 세대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나 제시하고 싶은 희망의 모습이 있을 거란 생각을 했다. 이건 약간 사소한 건데, 일본판 <리틀 포레스트>의 엔딩을 보면 주인공이 마을 축제에 가서 전통춤을 춘다. 전통적인 공동체에 녹아드는 결론이다. 그런데 한국판 <리틀 포레스트>에는 의외로 농촌 공동체와의 커뮤니케이션은 다루지 않았다.

임순례 이 영화에서는 철저하게 요즘 젊은이들의 현실을 다뤄보고 싶었다. 요즘 귀농하는 친구들도 많지만, 그 친구들이 전부 그곳 사람들과 잘 섞이는 것 같지는 않더라. 농촌에서 살지만 개인의 삶을 더 중시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사실 나도 조금은 옛날 세대라서 엔딩에 대한 고민이 정말 많았다. 여러 버전의 엔딩을 구상했는데 그중 하나는 혜원이 자전거를 타고 가다 동네 어르신에게 먼저 인사를 하는, 그런 모습을 담은 엔딩도 있었다. 새로 이사 온 젊은 귀농 가족과 인사를 하거나, 동네 마을회관에서 친구들과 함께 어르신들에게 육개장 같은 요리를 대접하는 것도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 시나리오를 본 우리 스탭들이 경악을 하더라. 무슨 <6시 내 고향>도 아니고 너무 촌스럽다는 거다(웃음). 그래서 마을 공동체에 섞이기보다는 자기 생활을 유지하며 뭔가 협조할 게 있으면 협조한다는 식으로 정리를 했다. 일본은, 특히 시골에는 공동체 문화가 좀 남아 있다고 보는데 한국은 사실 그런 문화가 거의 없다고 본다. 이런 점을 반영했다.

정지연 다른 인터뷰를 보니 감독님이 이번 영화는 지금까지 만든 영화 중 제일 예쁜 영화라고 이야기했다. 비주얼 컨셉을 많이 신경 썼다고 했는데, 공간을 보여주는 방식이나 촬영의 기본 원칙 등을 큰 틀에서 들어보고 싶다.

임순례 일단 인물이 많이 없는 영화고, 동시에 김태리 배우가 거의 모든 장면에 다 나온다. 그래서 일단 김태리 씨가 나오지 않는 장면에서 자연, 소품 등 모든 피사체들이 굉장히 예쁘게 나오길 바랐다. 그래서 조리 도구나 음식 플레이팅이나 자연의 색깔 같은 것에 신경을 많이 썼다.

<리틀 포레스트>의 촬영감독인 이승훈 감독이 <최악의 하루>(김종관), <더 테이블>(김종관)을 찍었었다. 그분의 촬영을 보니 여성 배우들을 정말 예쁘게 찍더라. 그래서 추천을 받고 이 영화들을 찍었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 김태리 배우도 잘 찍을 것 같아서 함께하기로 했다.

정지연 사계절을 다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각 계절마다 3주씩 촬영했다고 들었다. 그러면서 실제로 스탭들이 농사도 지었다고 하는데, 이런 방식에는 장단점이 있을 것 같다. 감독님도 1년 동안 기다리며 영화를 찍는 건 처음이었을 것이다.

임순례 어쨌든 사계절 동안 사계절을 다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떤 계절은 다 실내에서 찍고 인서트만 따로 찍는다든가, 이런 방식은 쓰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든 사계절을 실제로 찍으면서 각 계절마다 어떤 작물이 나고, 하늘 색깔이 어떻게 변하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관광지로서의 아름다움 같은 게 아니라 평범한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우리가 잘 보지 못했던 아름다움을 담아내고 싶었다. 워낙 시골을 좋아하고, 영화를 빨리빨리 찍는 사람이 아니라서 개인적으로는 큰 불만이 없었다.

그런데 나중에 배우들의 인터뷰를 보니까... 김태리 배우는 <1987>(장준환)을 찍고 있었고 류준열 씨는 <독전>(이해영)을 찍고 있었다. 아시겠지만 배우들이 영화를 찍는 동안 마음속으로 간직해야 하는 정서들이 있다. 그런데 특히 <독전> 같은 건...(웃음). 배우들이 그 감정을 오가는 게 정말 힘들었다고 하더라.

관객 1 영화의 영상도 정말 예뻤지만, 소리에도 깊은 감명을 받았다. 눈 밟는 소리라든지, 벌레 우는 소리, 튀김하는 소리 등등. 혹시 특별히 더 신경 쓴 소리가 있는지 궁금하다.

임순례 이 영화에 자극적인 요소가 없다 보니 시각적 요소는 물론 자연의 소리도 잘 전달하고 싶었다. 특히 대사가 많지 않다 보니 빗소리, 바람에 나부끼는 낙엽 소리, 음식 먹는 소리 같은 걸 잘 담으려고 했다. 후반 작업할 때도 사운드에 신경을 많이 썼다.

관객 2 중간에 혜원이 다시 서울로 간다. 거기서 취직을 해서 서울에서 사는 것 같았는데, 곧 다시 시골로 돌아온다. 이때 시골로 온 게 완전히 정착을 하려고 온 건지 다른 목적을 갖고 온 건지 사실 잘 모르겠다. 어쩌면 자기는 도시가 더 맞다고 생각한 걸 수도 있을 것 같다.

임순례 서울에 간 건 보증금 빼러 간 거다(웃음). 혜원은 시골에서 정말 귀농을 할 수도 있고 다시 다른 어떤 삶을 살 수도 있다. 정해진 삶은 없을 것 같다. 여기 시골도 완전히 정착을 한다기보다는 ‘아, 봄이다!’ 하며 그냥 몇 달 동안만 있는 걸지도 모른다. 다시 임용을 준비할 수도 있고, 재하와 사과를 팔 수도 있다. 여러 선택이 있겠지만 그 무엇을 하든 간에 어쨌든 혜원은 이전의 삶보다는 훨씬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일시 8월 11일(토) <리틀 포레스트> 상영 후

정리 권세미 관객에디터

사진 목충헌 자원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