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루세 미키오 감독의 대표작 <부운>은 일본에서든 서구에서든 가장 사랑받는 영화이자 대표작이라 할 만하다. 이 작품 역시 나루세 감독이 즐겨 영화화했던 하야시 후미코의 소설을 원작으로, 나루세 미키오의 ‘여신’ 다카미네 히데코가 주연을 맡았다. 그러나 <부운>은 여러모로 감독의 다른 영화들과 다른 면모를 보인다. 단적으로, 주인공 유키코는 나루세 감독의 다른 여주인공들과 달리 주체적이지도, 자립적이며 생활력이 강하지도 않다. 그녀는 자신을 버리고 피하며 가는 곳마다 여자들과 정분이 나는 남자 도미오카에게 한없이 매달리고 그의 사랑을 갈구한다. 심지어 그녀 눈앞에서 다른 여자와 눈이 맞아도 그녀는 번번이 그를 따라나선다. 그런가 하면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미군과 연애(!)를 하거나, 자신을 겁탈했던 사촌오빠를 찾아가 기꺼이 그가 꾸린 사이비종교단의 일원이 되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생계를 유지해 나가는 유키코의 삶에는, 직업이 뭐든 생존을 위해 분투하는 사람 특유의 숭고함이나 진취성이 전혀 없다. 허무와 무의미, 그리고 무기력만 가득할 뿐이다.


그렇다면 도미오카는 어떤가? 유키코를 뻔뻔스럽게 대하면서도 번번이 그녀에게 돈을 빌리기 위해 찾아온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나루세 미키오의 못난 남자들’과 별다르지 않다. (나루세 미키오의 못난 남자들은 대체로 여자들을 착취하며 그녀들의 노동에 기대 살아가면서 그녀들에게 습관적으로 폭력을 휘두른다.) 그러나 한사코 유키코와의 관계를 거부하는 도미오카야말로 실은 필사적으로 도망치다가도 번번이 유키코에게 돌아오는 것은 아닌가? 그리고 이들이 처음 만난 곳이 대동아전쟁 중 인도네시아에서 농림성 ‘공무원’이었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이 둘의 관계를 좀더 다른 눈으로 해석할 수 있다. 예컨대 유키코의 집착이 실은 패망 전 제국주의가 정점에 달했던 일본의 소위 ‘좋았던 시절’에 대한 향수와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불특정 다수 일본인들의 막연한 정서를 은유한다면, 그녀와 거리를 유지하고자 애쓰는 도미오카는 ‘개전국’의 공무원으로서 책임감을 느끼며 전범으로서의 과거와 단절하려는 지식인의 나약한 몸부림이라 볼 수는 없는가.





대동아전쟁 중 인도네시아에서 처음 만나 전쟁이 끝나고도 20여년을 지리멸렬하게 이어가던 두 사람의 관계는 야쿠시마라는 섬마을에서 유키코의 죽음을 계기로 비로소 끝이 난다. (이곳은 하야시 후미코가 실제로 3년간 머물며 <부운>의 집필을 완성한 곳이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오지인 이곳은 두 사람의 마지막 여정지가 되지만, 이곳으로 향하는 긴 여정에서야 도미오카는 비로소 그녀를 받아들인다. 그러나 병색이 완연한 유키코는 도미오카와 꿈꾸던 새로운 삶을 살아보지도 못한 채 그의 품에서 죽음을 맞고 만다. 결국 이들의 운명은 하늘 위를 떠돌며 또렷한 물질적 형상도 가질 수 없었던, 풀은커녕 뜬구름밖에 되지 못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김숙현 | 프로그램 코디네이터)


1.14(토) 14:00
2.10(금) 18:30 상영 후 김태용 감독의 시네토크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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