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한 마리, 양 두 마리>의 황철민 감독

새해 첫 '작가를 만나다' 에서는 황철민 감독의 세 번째 장편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를 상영하고 감독과의 만남이 이어졌다. "4년째 힘겨운 투쟁을 하고 계신 기륭전자 여성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 여러분에게 이 영화를 바칩니다"라는 헌사로 마무리된 영화 상영 후, 이어진 관객과의 대화에서 황철민 감독은 이 영화가 어떤 상황과 생각에서 출발을 했고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했는지 밝혔다. 그 현장을 옮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영화가 2009년에 제작되고 2011년에 어렵게 개봉을 했다. 어떻게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는지부터 듣고 싶다.
황철민(영화감독): 이 영화를 처음 기획할 때가 한국의 여성노동자 문제가 부각이 될 무렵이었다. 그것이 KTX 여성노동자들이었고 여기 보듯이 기륭전자 여성노동자들도 있었다. 여성노동자가 그냥 개념이 아니고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구나, 우리의 문제란 것을 그 때 알게 되면서 이 문제를 담은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시작했다. 그 당시 비정규직 여성노동자 문제 뿐 아니라 청년백수, 88만원 세대 이런 이야기들이 사회에서 화두가 되고 있었다. 이상을 잃은 세대 내지는 삶의 목표가 불확실한 세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다 보니 이야기 속에 담긴 것 같다.

김성욱: 영화의 주된 요소 중 하나가 연극과 관련된 것이다. 체홉의 희곡이 등장하는데 처음부터 체홉을 전제로 한 것인지, 『갈매기』도 나오긴 하지만 주된 것은『세자매』와 관련된 것인데.
황철민: 개인적으로 여러 매체가 영화 속에서 같이 나오는 작업을 좋아한다. 저예산 영화라 해도 관객의 욕구는 일반 블록버스터를 보는 관객의 욕구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런 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최대한 상상력이 투여가 돼야 하고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해야한다. 이 경우에는 예원의 방 하나가 방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시공간을 뛰어 넘는 연극의 공간이 되어야 했다.

김성욱: 영화에서 연극적인 부분이 들어갈 때 연극은 어떤 점에선 다른 삶에 대한 표현 같기도 하고 어떤 면에서는 그것이 진정한 삶의 영역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드는데.
황철민: 어디나 마찬가지겠지만 우리 사회는 항상 계산을 하고 산다. 열심히 계산을 하고 살지만 삶은 결국엔 크게 발전하지 않고 추진력을 얻기도 어렵다. 그 때에 우리에게 열정과 일종의 새로운 것을 시도할 수 있는 촉매제가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보고나서 "결국 노동자는 포기하는 존재인가." 이런 질문을 하는 분들도 있었다. 진희의 꿈이 배우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배우라는 과거의 꿈에 매달리다가 노동현장으로 돌아가 자기가 시작한 일에 마침표를 찍겠다는 의지를 찾은 것이다.

김성욱:
영화 속에서 2~3번 정도 동물원이 등장한다. 예원의 집이란 공간처럼 동물원도 특별하게 설정돼 있는데 어떻게 설정하게 된 것인지.
황철민: 예원역의 배우와 이야기를 하다 본인이 동물원에 많이 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예원이란 인물과 배우가 비슷한 면이 많다고 생각했고 예원이라면 우울한 원숭이를 쳐다보며 소통이 안 되는 사회 속에서 소통을 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소외된 장소로 공감할 수 있으면서도 노력하게 되는 장소로 활용해 보고 싶었다.

김성욱: 이 영화는 20대의 두 여인에게 집중되어 있어 윗세대도 아랫세대도 등장하지 않는데, 동물원 수위는 유일하게 등장하는 다른 세대다. 예원과의 대화에서도 묵묵부답이던 그가 사탕을 건네는 설정은 영화의 후반부에 예원이 진희에게 사탕을 건네는 것과 연결되어 상당히 미묘하다는 생각을 했다.
황철민: 윗세대 아랫세대와의 문제에서 그 사이에 필요한 것은 전통을 전달해주는 부분인데 그 안에 소통의 방법 같은 것도 포함이 될 것이다. 브레히트가 쓴 글 중에서 이런 문구가 있다. "전통이란 것은 부모가 자식에게 어떻게 빵을 써는지 알려주는 것"이란 말이다. 내가 삶을 통해 얻었던 경험을 아랫세대에게 건네준단 의미다. 구체적 질문을 했을 때 답을 줄 순 없는 말이다. 답을 준다면 돌팔이일 테고, 구체적 답은 아니지만 사탕을 주고받듯이 방법이 있지 않겠느냐, 어떤 식으로든 시도해보자고 하는 의미로 넣었다.

김성욱: 예원이 일하는 사무실의 옆 건물이 특이하다. 해파리 같은 것이 올라가기도 해서 동물원의 공간과도 연결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공간이 어딘지도 궁금하고, 그 건너편 사무실을 전제로 사무실 공간을 채택한 것인지도 궁금하다.
황철민: 그 공간은 거기에서 그 옆 건물을 보고 선택이 됐다. 진희란 인물이 부유하고 있는, 20대 초반에 인생을 설계하는 답을 찾아야 하는 상황에서 주워진 삶의 방법에 따라 대학 나와서 취직하고 결혼하고 살다가 애 낳고. 이런 관습적 삶의 방법을 답습하려는 20대 초반의 여성의 상태, 그런 상황이 해파리 같기도 해 그 건물을 선택했다. 디지털미디어 시티의 KGIT(한독대학원)라는 곳의 협조를 얻어 촬영했다.

김성욱: 예원과 진희, 두 인물의 비중면에서 진희보다는 예원에 더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영화를 구상할 때부터 두 인물을 어떤 식으로 담아낼지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황철민: 아까 이야기를 시작할 때 한국사회에 있어서 나타난 새로운 화두가 여성노동자, 비정규직문제라 생각했는데 이 문제는 진희 같은 노동자와 그렇지 않은 사람 모두가 노력을 해야지 해결되는 문제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 관계를 영화 속에서 그리고 싶었다. 또한 예원 같은 사무직 노동자나 진희 같이 컨베이어벨트에서 노동하는 노동자나 똑같이 육체적 노동을 하는 노동자라는 인식,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조금 다르게 보일지 모르지만 결국엔 비슷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관객1:
갑자기 노출신이 나와서 깜짝 놀랐다. 속옷도 잠옷도 화려한데 예원은 겉으로 보면 그런 옷은 전혀 입을 것 같지 않은 캐릭터라 의외였다. 어떤 컨셉이었는지 궁금하다.
황철민: 비정규직 여성노동자가 야한 속옷을 입고 있다는 상상을 우리 관객들이 했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길바닥에서 노동운동을 하고 투쟁을 한다고 하면 사람으로 안 보는 경우가 있다. 그렇게 되는 순간에 소통이 두절돼 버리고 상대방에 대한 이해가 없어져버릴 수 있다. 똑같은 인간이란 것을 우리가 받아들일 때 우리 사회에서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영화가 노동문제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을 표방하면서 왜 노동자를 이렇게 그린 것이냐고 화를 내시는 분들도 있었다. 노동자도 여러 가지 문제와 욕망을 갖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보여준 것이다.

관객2: 제목의 의미가 궁금하다. 또 영어제목은 <Moscow>더라. 감독님께서 전하고자 한 메타포가 있는지 궁금하다.
황철민: 여기서 모스크바는 세자매가 돌아가고 싶은 고향이고 동시에 이상이기도 하다. 그것이 첫 번째 의미였고 두 번째 의미로서는 인류가 시민혁명을 완성하고 민주주의로 평등사회를 구현해보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찾게 된 이상의 개념이라고도 생각했다. 사회주의가 붕괴 되면서 거기에 대한 생각이 부정적인 느낌이 생겼지만 모스크바로 상징되는 혁명이란 개념을 자본주의가 위기를 맞은 상황 속에서 하나의 옵션으로 다시 고민해봐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미에서 넣었다. 국문제목은 어릴 때부터 교회를 다니다보니 갖게 된 양과 목자란 개념이 잠재의식에 있던 것 같다. 재밌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할 때 안내하시는 분이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들어오세요"하는데 영화를 보시는 분들이 모두 양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노동자 문제에서도 서로를 다른 사람으로 규정하지 않고 서로를 양으로 본다면 우리 사회가 굉장히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관객3: 처음에는 예원과 진희를 볼 때 예원은 어른스럽고 진희는 행동이 변덕스럽고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는데 영화 끝에 가서는 서로 이미지가 반전된다. 아이와 어른의 이미지를 어떻게 생각하셨는지 궁금하다.
황철민: 진희는 폭발직전의 인물이다. 그래서 농성장에서 뛰쳐나온 것이다. 살기 위해서. 말하자면 여유가 없는 사람이다. 나는 그 사람들이 짜증도 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노동자도 스트레스 받고 힘들면 짜증낼 수 있는 것 아닌가, 인간이니까. 사람들이 진희가 예원에게 찾아와서 하는 추태를 보면서 진희를 미워하면서도 내가 너무 관대함이 사라진 것 아닌가 반성도 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어려운 상황이 닥쳤을 때는 그런 경험을 갖고 있는 사람이 버텨낸다. 눈이 내리는 숲에서 예원은 버티기가 어렵다. 그런 생존력은 진희가 더 강하다. 매일매일 싸우며 살아가니까.


관객4: 진희가 예원이 구석에 처박아둔 꿈이 담긴 대학시절의 책을 꺼내서 책꽂이에 꽂는 장면이 있다. 그 책을 다시 책꽂이에 꽂는 것은 꿈을 다시 찾는다는 메시지가 아닐까싶었는데 감독님이 젊은 세대에게 전하고 싶던 메시지가 있는가.
황철민: 많은 젊은이들이 겪는 고통이 구조적인 문제라고 이야기되고 그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들이 가만히 기다리지 않았으면 했다. 결국엔 자기 인생이기 때문에 부유하지 말자, 답을 찾자, 이런 이야길 해주고 싶었다. 우리나라 젊은이들을 보면 육체적으론 젊지만 정신적으로는 성숙해지기도 전에 늙어버린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꿈을 가져라, 쉽게 포기하지 말란 말이 고리타분하지만 다시 외칠 수밖에 없는 이야기 같다.

김성욱: 마지막으로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면 듣고 이 자리를 마감하겠다.
황철민: 이렇게 독립영화, 저예산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는 일은 참 어렵다. 저 나름대로는 동시대인들이 갖고 있는 근심들이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부분도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에서 만든 영화인데 어렵게 개봉됐지만 사실 많은 사람이 보진 않았다. 이런 문제는 시간을 두고 해결해야할 문제겠지만 오늘 이렇게 와주신 분들에게는 정말 감사함을 표현하고 싶다.

정리|이정아 관객 에디터 사진|최미연 자원 활동가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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