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의 영화학자 벨라 발라즈는 ‘옛날 영화를 보고 왜 사람들이 웃는가’를 질문한다. 다른 오래된 예술은 웃긴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가장 순박하고 원시적인 예술을 보고도 사람들은 감탄할 뿐, 낡았다고 여기거나 웃고 싶은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영화는 사정이 다르다. 불과 백년도 지나지 않은 1920년대 무성영화들이나 1960년대 한국영화들을 보며 사람들은 촌스럽다고, 웃긴다고 여긴다. 발라즈는 그 이유로 사람들이 오래된 예술에서는 지나간 시대의 정신을 거기에 합당한 형식에 담은 표현성을 발견하는 반면 영화에서는 유행을 민감하게 느끼기 때문이라 말한다. 벨라스케스의 그림이나 모차르트의 음악은 과거의 것이지만 거기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그 시대의 취향과 예술의 적절한 표현형식이 있다. 반면, 영화는 시대의 유행에 민감해 지나버린 영화는 낡은 것처럼 보인다. 불과 1년 전에 유행한 의상이 촌스럽게 느껴지는 것과 같다. 뭔가 여전히 지금 사용되고 있지만 조금은 우스꽝스럽고 불완전한 형태를 과거의 영화들에서 발견하고는 웃어버린다. 과거의 문학을 낡았다고 말하지 않으면서 무성영화를 오래된, 낡은 영화라 말하는 이유다.


영화는 특정한 세대와 삶을 같이한다


영화는 그런 점에서 특정한 세대와 삶을 같이한다. 서로 다른 세대가 있듯이 그들 각자의 영화들이 있다. 모두에게 동일한 영화란 없다. 영화는 언제나 복수複數로 존재한다. 각 세대는 고유의 방식으로 영화를 전유한다. 고전영화는 영화의 탄생기인 19세기 말에 태어난 작가들과 생사를 함께 했다. 왕성하게 영화를 만들던 그들의 젊은 시절이 고전영화의 황금기였다. 고전기 거장인 존 포드, 하워드 혹스, 프리츠 랑, 알프레드 히치콕의 나이는 영화의 나이와 그래서 얼추 비슷하다. 그들이 세상을 떠날 때 영화도 사라졌다.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전 세계적으로 ‘영화의 죽음’이라는 말이 유령처럼 떠돌아다녔는데, 고전기 거장들의 부고장이 계속 날아들었던 탓이다. 1973년 서부극의 거장이었던 존 포드가 사망했고, 1977년에는 하워드 혹스, 1976년에는 프리츠 랑, 1980년에는 알프레드 히치콕이, 1981년에는 윌리엄 와일러가 세상을 떠났다. 영화의 한 세대가 종말을 고하던 시기였다.


:: 거장의 죽음은 영화의 한 세대가 종말하는 비극을 가져왔다 (왼쪽부터) 알프레드 히치콕, 존 포드


그 비슷한 상황이 21세기에 들어 재연되고 있고, 올해가 더 그러하다. 올해 초에 프랑스의 거장 에릭 로메르가 세상을 떠나면서 이어 데니스 호퍼, 아서 펜, 클로드 샤브롤 감독이 사라졌다. 이들은 대부분 1920년대에서 30년대에 태어난 세대들이다. 영화의 고전기에 태어나 전후의 시기에 영화에 뛰어들었던 사람들. 이른바 현대영화를 새롭게 개척한 자들이다. 고전기 작가들과 달리 그들 앞에는 거대한 영화의 바다가 있었다. 새로운 창조는 이전 시기의 영화들과 마주해 그것을 거부하거나 혁신, 혹은 갱신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다른 바람을 끌어와 새로운 물결을 이뤄내야 했던 세대들이다. 쉽게 영화를 만들 권리가 주어지지 않았던 상황에서 영화를 탈취하려 했던 세대. 20세기 영화사의 절반쯤에 위치해 전과 후의 역사를 살았던 세대. 그런 뉴웨이브의 세대가 하나 둘씩 작별을 고한다. 그 세대와 함께한 영화가 사라지고 있다.


누벨바그 이후의 새로운 바람


전후의 뉴웨이브는 정말 새로운 시작이었다. 프랑스 누벨바그는 더더욱 그랬다. 1950년대 약관의 나이에 프랑수아 트뤼포는 도발적인 필치로 그 동안 프랑스 영화계를 대표해온 감독과 영화인들을 공격했고, ‘작가’라 불리는 개성적인 감독들이 새로운 영화를 창조할거라 호언장담했다. 얼마 후 사실로 입증됐다. 1950년대 후반 클로드 샤브롤을 필두로 젊은 영화광들이 일제히 감독으로 데뷔했다. 당시 감독이 된다는 것은 현역의 영화감독 밑에서 도제과정의 수속을 거치거나 정련된 테크닉과 엄격한 교수 체계를 갖춘 학교에서 과정을 밟는 것으로 시작했다. 누벨바그리언들은 그런 구태의연한 태도를 경멸하듯 자신들의 영화학교가 특별한 영화관에 있다고 말했다. 50년대 파리에는 ‘영화의 루브르’라 불린 작은 영화박물관이 있었다. 그 이름에 비하자면 규모는 대단히 초라해, 50석이 조금 넘는 작은 영화관이었다. 앙드레 말로의 표현을 빌자면 이 영화관은 ‘상상의 영화박물관’이었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라 불렸다. 그들은 이곳에서 영화를 발견했다.


:: 영화인들을 위한 천국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누벨바그의 대표주자인 장 뤽 고다르는 이렇게 생각했다. “우리 어머니는 피카소와 베토벤과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해서 말해주었지만 한 번도 에이젠슈테인이나 그리피스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이렇게 생각해보자. 호메로스나 플라톤에 대해 전혀 들은 적이 없는 사람이 도서관에서 우연히 그들의 저와 마주쳤다고 상상해 보라. 도대체 이런 작품들에 대해서 왜 아무도 나에게 말해주지 않았단 말인가!” 도서관의 서가에서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고전들과 접하듯이 누벨바그리언들은 시네마테크에서 새로운 영화들, 하지만 결코 소개된 적이 없는 과거의 영화들과 만났고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고 생각했다. 그 경이로운 발견이 동기가 되어 새로운 세상을 담아내는 혁신적인 영화가 만들어졌다.


누벨바그리언의 홍일점 아녜스 바르다 회고전


:: 누벨바그리언의 홍일점 아녜스 바르다와 이번 회고전 포스터 (위 왼쪽부터)

:: 아녜스 바르다의 주옥같은 단편들 (아래 왼쪽부터) <시네마테크의 계단><오페라 무페 거리><여인상 기둥>


뉴웨이브 감독들이 세상을 떠나고 있지만 그들의 영화는 여전히 현재형이다. 그 물결과 만날 흥미로운 기회가 있다. 이번 주부터 시네마테크 전용관인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누벨바그리언들 중에서 유일한 여자감독이었던 아녜스 바르다의 대규모 회고전이 열린다. 다수의 극영화가 있지만 바르다는 동시대 마르그리트 뒤라스와 더불어 시네에크리튀르, 즉 영화 글쓰기라는 독특한 에세이 영화를 주로 만들었다. 문학과 사진, 회화 등 예술적 조예가 깊은 눈과 감성적인 귀로 문체만이 아니라 자신만의 독특한 언어를 활용한 에세이 영화들이 특히 빛을 발한다. 보석 같은 단편들 중에 <시네마테크의 계단>(1986)이란 작품이 있는데, 과거 샤이오궁 시절의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50주년을 기념하는 영화다. 이자벨 아자니가 출연해 파리 시네마테크를 소개한다.


서울에 불어온 새로운 바람


:: 11명의 영화인들이 시네마테크 후원을 위해 광고 촬영에 나섰다


역사는 이어진다. 비슷한 일이 지금 서울에서 벌어지고 있다. 얼마 전, 11명의 영화인들이 시네마테크를 후원하는 활동에 나섰다. 이준익, 이재용 감독과 배우 고현정, 김강우, 김민희, 김하늘, 소지섭, 송승헌, 이정진, 주진모, 천정명 등 11명의 영화인이 광고촬영에 나서 그 출연료를 전액 서울아트시네마에 기부하고, 서울에 시네마테크 전용관을 건립하는 후원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새로운 물결(누벨바그) 이후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생전에 유현목 감독의 말처럼 ‘지금 시네마테크에 후원하는 것은 한국의 영화문화와 예술에 투자하는 것’이다.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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