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민호의 평범한 발작]
2010년 01월 29일 (금) 11:36:17 허민호/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mediaus@mediaus.co.kr

교육과 언론은 MB정부가 가장 탐욕스럽게 집착하는 영역일 것이다. 그것들은 그 탐욕스러운 집착 때문에 제 기능을 하지 못할 정도로 처참하게 망가져가고 있다. 교육과 언론에 대한 집착은 MB정부의 통치 원칙을 보여주는 지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교육과 언론은 한 사회의 이데올로기를 드러내고 전파하는 가장 대표적인 장치이다. 국가가 이것들을 장악했을 때 사라지는 것은 비판이라는 독특한 영역이다.

비판이란 소수의 평론가들이 전문적인 소견을 가지고 수행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타인의 언어와 나의 언어가 가진 차이를 드러내는 일상적 실천이다. 때문에 비판은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고 합의하는 소통의 기반이 된다. 비판없는 사회란 소통없는 사회이며, 소통없는 사회에서 행해지는 정치란 독재에 불과하다.

비판과 소통의 필요하다니! 사실 하나마나한 뻔한 이야기다. 그런데 이런 뻔한이야기를 반복하게 하는 사태가 눈앞에서 매일 벌어진다. 너무 노골적이고, 유치하고, 치사해서 눈을 감아버리는게 차라리 속편한 그런 사태들 말이다. 그런데 요즘 벌어지는 일련의 일들은 직접적인 삶과 너무 맞닿아 있어서 그럴 수도 없다.

   
  ▲ 27일 진행된 '영화진흥위원회의 2010년 영상미디어센터 사업운영자 선정결과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의 모습ⓒ권순택  
 
영상미디어센터를 둘러싸고 발생한 문제는 최근에 벌어진 일 중 가장 황당하고 노골적인 사건이다. 영진위는 작년 초에 독립영화전용관과 미디어센터를 공모제로 전환해 사업자를 선정하겠다고 밝혔다. 사실 이 공모제라는 것이 기존의 운영주체들을 내쫓고 새로운 운영주체들을 내세우겠다는 노골적인 의사표시였다. 이에 따라 독립영화전용관의 운영은 ‘한국다양성발전협의회’가, 영상미디어센터 운영은 ‘시민영상문화기구’가 맡게 되었다. 그리고 다음 달 영진위와의 계약이 끝나는 서울아트시네마도 공모제 전환에 따른 운영진 교체가 예상된다.

뭐 실력있는 운영자가 등장해서 더 잘 운영된다면 별문제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게 그리 간단치 않아 보인다. 공모를 통해 운영주체를 선정하는 과정에 문제가 많았기 때문이다. 최소한 운영주체를 교체하려면 기존의 운영 방식에서 문제가 되는 지점이 명확히 지적되어야 하고, 새로 선정된 주체가 과거의 운영주체보다 뛰어나다는 점도 증명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다양성발전협의회’는 지난해 11월 13일 설립되었고, ‘시민영상문화기구’는 미디어센터 사업운영자가 재공모 되기 바로 직전인 올해 1월 6일에 설립되었다. 이 단체들은 독립영화전용관과 영상미디어센터를 더 잘 운영할 수 있으리라는 근거가 될만한 아무런 실적도 없는 것이다.

   
  ▲ 조희문 영화진흥위원장 ⓒ 서울신문  
 
이들이 어떻게 정부 기관의 공모에서 선정될 수 있었는지 전혀 이해되지 않는다. 게다가 새롭게 사업자로 선정된 단체들은 친정부 성향을 지닌 보수단체라는 공통점이 있다. 예를 들어 시민영상문화기구를 이끄는 김종국은 문화계 대표 보수단체인 문화미래포럼의 사무국장이다. 현재 영진위원장을 맡고 있는 조희문 역시 이 단체에서 주요멤버이다. 직접적인 공모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최소한 이념적 편향의 문제가 공모 과정에 개입했을 가능성은 높은듯하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27일 전국미디어운동네트워크에서 영진위에 보낸 공개질의서에 따르면 ‘시민영상문화기구’는 영상미디어센터 운영 스탭을 채용 공고해놓은 상태로, 채용 확정일이 2월 3일로 되어 있다고 한다. 시민영상문화기구가 공식적으로 운영을 시작하는 것이 2월 1일이라는 점을 상기해보면 이해할 수 없는 방식이다. 새로 사업을 맡아 진행할 때 초기의 혼란은 당연한 것이지만, 그 혼란을 막기 위해 미리 스탭을 모집하고 준비를 해야 하는 것도 당연한 조치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영진위에서는 ‘시민영상문화기구’를 사업운영자로 선정하며, 그 선정 이유중 하나 로 “영상미디어센터를 운영할 사무국 구성원의 전공분야(영화영상예술학,촬영전공예술전문석사,한국영화아카데미)가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어 교육적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점을 들고 있다. 운영 스탭도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어떻게 사무국 구성원들에 대한 평가가 가능했을까.

독립영화 전용관이나 영상미디어센터 그리고 시네마테크는 영화 다양성을 지키기 위해 영진위 주도로 만들어진 사업이 아니다. 그것들은 독립영화 진영의 오랜 운동의 성과였다. 사업자 재선정은 그 오랜 노력들을 일거에 없애버리는 것이다. 단순히 오랜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서 안타깝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랜 기간 동안 운동을 해왔다는 것은 독립영화나 미디어센터에 대해 그만큼 고민하고 그 고민을 실질적인 방식으로 전환하려고 노력 해왔다는 뜻이다. 사업자 재선정을 통해 잃어버린 것은 바로 그 고민과 노력을 통해 만들어진 운영의 전문성과 그 공간(과 운영 스탭들)이 가지고 있던 영상 운동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다. 특히 영상 운동에 대한 애정과 열정은 단순한 심리적 동기가 아니라 미디어 운동에 접근하는 태도를 결정하는 중요한 계기이다.

이 지점에서 퍼블릭 액세스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보자. 미디어센터 활동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퍼블릭 액세스인데, 그것은 비전문가들에게 표현의 수단을 제공하는 것뿐아니라, 교육을 통해 소비의 주체가 아닌 문화생산의 주체를 양산해내고, 소통을 통한 공동체 경험을 공유하며, 나아가 지역운동의 근거지를 형성하는 것까지를 포괄하고 있다. 이는 영상미디어센터의 운영과 영상 운동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결코 분리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반복하자면, 영상미디어센터의 운영은 퍼블릭 액세스 담론을 중심에 둔 하나의 사회 운동의 성격을 지닌다.

때문에 이곳은 영상운동에 대한 애정과 열정 그리고 그에 바탕을 둔 고민과 노력 없이 결코 운영될 수 없는 공간이다. 과연 이런 영상미디어센터를 영상 운동과 퍼블릭 액세스에 대한 고민과 노력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시민영상문화기구’가 제대로 운영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시민영상문화기구는 기존에 활동하고 있던 스탭들과 그들을 통해 축적된 노하우와 열정들을 배제하고 부정하면서 출발했다는 점에서 이미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 퍼블릭 액세스는 기본적으로 배제되어 왔던 목소리들을 복원하는 작업이다. 결코 그동안의 고민과 노력들을 배제하면서 추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영상미디어센터는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 사건들을 끊임없이 기록하고 드러내는 시민들을 배양함으로써 언론으로서의 역할을 해왔고, 그 시민들을 배양하기 위한 교육의 장으로 기능하기도 했다. 영진위의 운영 사업자 공모제 전환은 언론과 교육의 장인 영상미디어센터의 비판 기능을 소거하는 조치이다. MB정부와 그것의 사회적 신체로 전락한 영진위에 대한 비판도 필요하겠지만, 영상미디어센터의 기능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하는 노력도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탄압을 견디고 살아 남는 것도 끈질긴 저항의 방식중 하나일테니 말이다.


[출처] 미디어스 2010년 1월 29일자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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