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질 운명의 멜랑콜리

- 알렉산더 소쿠로프의 <러시아 방주>




알렉산더 소쿠로프는 러시아의 영욕이 ‘겨울 궁전’ 속에 모두 있다고 여기는 것 같다. 겨울 궁전은 러시아의 마지막 왕조인 로마노프 왕가의 궁전으로, 1917년 볼셰비키 혁명 때 ‘붉은 군대’에 의해 점령당한 곳이다.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의 <10월>(1927)에서 화려함의 극치로 묘사된 바로 그 궁전인데, 지금은 세계 최대 규모인 에르미타주 미술관이 있는 곳으로 더 유명하다. 만약 대홍수로 세상이 파멸 직전에 놓인다면, 소쿠로프는 에르미타주를 ‘노아의 방주’에 싣고자 한다. 그곳엔 러시아를 넘어 인류의 찬란한 영광이, 또 감추고 싶은 부끄러움이 모두 들어 있어서다.

바로크 회화의 경외감


<러시아 방주>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겨울 궁전에서 시작한다. 로코코 스타일의 화려한 의상을 입은 귀족, 군인들이 궁전 안으로 몰려 들어가고, 막 잠에서 깬 듯 내레이터는 “여기가 어디지?”하면서 관객의 의문을 대신 묻는다. 곧 이어 우리는 표트르 대제(그의 이름에서 도시 이름 페테르부르크가 나왔다)가 자기 신하를 때리며 심하게 꾸짖는 장면을 본다. 말하자면 지금 내레이터는 18세기 초에 와 있고, 그는 곧이어 프랑스 외교관을 만난다. 이 외교관이 궁전을 본격적으로 산책할 것이고, 우리는 그의 발걸음에 따라 앞으로 95분간 이어질 원테이크 영화를 볼 것이다. <러시아 방주>는 처음으로 원 숏 원 시퀀스(One Shot One Sequence) 형식을 선보인 경이로운 작품으로 영화사에 기록된다.

프랑스 외교관은 서구중심주의자로서, 러시아는 유럽이 아니라며, 러시아적인 아름다움을 폄하한다. 이를테면 러시아의 영웅인 표트르 대제는 걸핏하면 신하를 때리는 폭군에 가깝고, 에르미타주의 미술관은 바티칸의 복제물이라는 식이다. 내레이터는 외교관과 대화를 나누며, 종종 논쟁도 하고, 그의 궁전 내 여행에 동참한다.


외교관이 주목하는 궁전 내의 대상은 크게 세 가지다. 미술, 정치적 군사적 의례(의전과 의장), 그리고 음악이다. <러시아 방주>는 이 세 가지를 대상으로 18세기부터 현재까지 대략 3백 년의 역사를 넘나든다. 여행은 연대기순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먼저 외교관은 에르미타주 미술관을 건립한 계몽군주 예카테리나 여제가 참관한 연극 공연을 본 뒤, 궁전 내의 그림들을 감상하기 시작한다. 만약 수집품이 그 나라의 미술 수준을 가늠하는 잣대라면, 외교관은 에르미타주에는 라파엘로 급의 걸작은 없다며 러시아의 미술 문화를 애써 무시하려 든다. 곧 이어 외교관이 본 것이 신고전주의의 거장인 안토니오 카노바의 조각들이다. 우윳빛 대리석에 새겨놓은 그리스 로마의 찬란한 문화가 손에 잡힐 듯 느껴지자 외교관은 조금씩 태도를 바꾼다.


태도의 변화는 바로크 그림들을 보면서 더욱 분명해진다. 외교관이 바로크의 걸작 회화들을 볼 때, <러시아 방주>는 소쿠로프 특유의 숭고의 시간에 이른다. 곧 걸작에 압도되는 경외감과 함께, 아름다운 대상에서 느끼는 쾌감 같은 이중적인 감정이 밀려오는 것이다. 외교관은 플랑드르의 바로크 거장인 반 다이크의 『이집트로의 탈출 중의 휴식』(1630)부터 주목하기 시작한다. 그때 카메라는 아기 예수를 지키려는 성모의 불안과 예수를 찬양하는 아기 천사들의 기쁨을 자세히 전달하려는 듯, 그들의 얼굴을 천천히 클로즈업하며, 외교관의 흥분된 마음을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어서 루벤스의 『바리새인 시몬 집에서의 만찬』(1629) 속 바리새 여성이 예수의 씻은 발을 금발 머리칼로 정성스럽게 말리는 장면, 엘 그레코의 『베드로와 바울』(1592)에서 두 성인이 아직은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서로 실망하고 있는 모습, 렘브란트의 『다나에』(1636)에서의 황금빛 여성의 누드, 그리고 역시 렘브란트의 『탕아의 귀환』(1669)에서의 용서와 사랑이라는 부친의 관용의 태도에 눈을 떼지 못한다. 에르미타주의 바로크 회화들은 아마 대홍수 이후의 ‘러시아 방주’ 속의 가장 안전한 자리에 놓일 것 같다.




비스콘티의 멜랑콜리 닮은 무도회 피날레


소쿠로프의 영화세계에서 군인, 전쟁, 군사(軍事)는 자주 등장하는 주요한 테마다. 과거는 물론 현대에도 러시아는 여러 전쟁에 개입했고, 이는 현대 러시아 사회의 기억 속에 강하게 남아 있다. 소쿠로프는 1994년 아프가니스탄 국경 지역에 주둔하는 러시아 군대에 가서, 군인들의 일상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혼의 목소리: 전쟁의 기록>을 제작하기도 했다. 군사와 관련해서, <러시아 방주>에서 특별히 다루는 것은 러시아 황제의 의전과 그에 따른 군인들의 의장이다. 19세기 페르시아와의 갈등에서, 페르시아 주재 러시아대사관의 외교관들이 현지인들에 의해 학살된 비극이 있었다. 영화는 이제 관계가 정상화되어, 페르시아의 외교관이 러시아 황제를 방문하여, 과거의 사건에 대해 사과하는 의전 행사를 묘사하고 있다. 그런데 그 장면은 의전이기보다는 웅장하게 안무된 무용에 가깝다. 황제와 외교관은 마치 무용극의 주인공처럼 마주 서서 의례적인 발언을 하고 있고, 화려한 홀 안엔 드레스와 군복으로 최고의 멋을 부린 상류층 인사들이 합창단처럼 둘러서서, 역사적인 장면을 더욱 빛내고 있다. 말하자면 겨울궁전 안엔 러시아의 영욕의 역사가 모두 새겨져 있는 것이다.


<러시아 방주>의 피날레는 주로 18세기, 19세기 복장을 한 상류층 사람들의 무도회다. 표트르 대제, 예카테리나 여제의 통치를 거쳐 러시아가 제국으로 성장하던 시기와 볼셰비키 혁명 전야, 곧 19세기 로마노프 왕가의 퇴보의 역사가 동시에 기억되는 시간이다. 화려한 홀 안의 중앙에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대표 악단인 마린스키 오케스트라가 거장 발레리 게르기에프의 지휘로 마주르카를 연주하고 있다. 이 곡은 마하일 글린카의 오페라 『황제를 위한 삶』의 춤곡이다. 글린카는 러시아 음악의 시조로, 『황제를 위한 삶』은 러시아 오페라의 선구작으로 평가된다. 말하자면 러시아의 자긍심을 한창 북돋는 작품이 연주되고 있고, 사람들은 저마다 역사의 절정을 향유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무도회는 마냥 흥겨운 것만은 아니다. 영화의 마지막은 무도회가 끝난 뒤 이들이 전부 궁을 빠져나가는 장면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화려한 옷을 자랑하며 모두 걸어 나오면, 카메라는 마치 겨울궁전이 종말의 대홍수 속으로 떠날 듯 시커먼 바다를 조용히 비춘다. 말하자면 겨울궁전은 원래의 자기의 삶을 다 마쳤고, 그 삶을 누렸던 사람들이 모두 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화려한 의상과 빛나는 무대에서의 춤 장면은 마치 비스콘티의 <레오파드>(1963)의 마지막 장면 같다. 춤은 죽음을 앞둔 역사 속 사람들의 마지막 축제여서, 사라질 운명의 망각에 대한 멜랑콜리의 정서까지 전달하고 있어서다.


한창호 영화평론가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