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도> 오멸 감독과의 대화 지상중계

 

지난 9월 8일 <이어도> 상영 후, 끊임없이 제주도에 관한 영화를 만들어온 오멸 감독과의 시네토크 자리가 이어졌다. 제주 4.3을 다루는 영화 <이어도>에 대해 나누었던 이야기들을 이곳에 옮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연초에 이 영화를 극장에서 상영했었다. 7개월 만에 다시 상영한 셈이다. 오늘 오신 분들 중에 <이어도>를 처음 보신 분들도 있을 것 같다. 그때도 잠깐 이야기를 하긴 했지만, <이어도>라는 작품은 제주 4.3에 대한 작품인데 어떻게 만들게 되셨는지 간단히 이야기를 해 주셨으면 좋겠다.

오멸(영화감독): 다른 작품에 비해서 이 영화는 관객 분들한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적 재미도 많이 배제되고 지극히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작업을 한 건데 이렇게 같이 보게 돼서 소통이 부담스러운 점도 있는 것 같다. 제주도라는 지역은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곳이고 아름다운 풍광으로는 이야기가 많이 되는 한편, 제주도의 역사나 삶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오가는 있는 경우가 있다. 아름다운 풍경만큼이나 슬픈 일이 많았던 곳이라서 그 이면에 있는 모습을 담아보려고 했다. 다만 그 이야기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일들이기 때문에 그림처럼 보여드리면서 이야기를 살짝 건네 보려고 했던 작업이다.

 

김성욱: 어떻게 해서 영화에 흥미를 갖게 되고 영화적 작업을 하시게 됐는지 궁금하다.

오멸: 원래 전공은 한국화였다. 그림 그릴 때 타르코프스키의 <노스탤지아>를 본 적이 있는데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언젠가는 이런 작업, 이런 표현으로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연극을 했고 지금도 하고 있다. 연극 연출, 공연예술 쪽으로 공부하면서 여러 분야를 돌아다니고 싶었다. 극단을 만든 지 10년쯤 됐는데 지금도 극단 운영을 하면서 틈틈이 영화도 같이 하고 있다.

 

김성욱: <이어도>는 연극적인 느낌이 강하다. 출연하신 분들도 연극작업을 같이 하셨던 분들이다. 화면 안에서 보면 인물들에게 연극적인 느낌이 있고, 나머지의 경우는 자연의 드라마 같기도 하다. 그런데 동시에 카메라의 존재성이라고 해야 할 부분들도 강하게 느껴졌다. 특히 포커스가 나간 상태의 화면들이 영화에 꽤 많았다. 촬영의 컨셉이 궁금하다. 연극적인 인간의 드라마가 있고 그걸 찍어나가는 과정에서 카메라의 광학적 특징이 많이 드러난다.

오멸: <이어도> 전에 만든 영화들에서는 카메라의 기술적인 사용을 안 했다. 왜냐하면 제주도에 장비가 없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작업을 많이 하는데, 이 작업은 카메라 감독이 렌즈를 두 개 갖고 있어서 효과를 써 볼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 효과를 그냥 썼던 건 아니었다. 어린 엄마가 아침에 몸이 무거워서 못 일어나고 하는 장면은 포커스가 전체로 나가 있는데, 그 장면은 사전 콘티에 없었다. 어린 엄마를 우리 어머니라고 생각해봤을 때 우리 어머니가 어린 나이에 저를 키웠다면 저 모습이었을 테고 저 아침을 맞이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저 장면을 보니까 눈시울이 붉어지더라. 저 온전히 무거운 몸을 찍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걸 바라보는 사람의 눈도 중요한 것 같았다. 시선을 바라보는 사람의 입장에서 포커스가 나가기도 하고, 어떤 부분에선 포커스가 나무 이파리에 있기도 한데 거기서 부서지는 빛들, 풍광들이 그 엄마의 우울한 삶에 비추어서 싱그러운 햇살이 들이비추고 있는 것이 감정적으로 대조가 되는 것도 있어서 순간순간 선택을 했다.

 

김성욱: 연극 작업과 영화 작업의 차이가 있을 것 같다. 에이젠슈테인이 연극에서 출발했다가 영화로 들어갔던 이유 중 하나가, 연극으로 리얼리티를 구사하려고 하는 그 순간에 공간, 환경, 자연이 갖고 있는 사실적인 리얼리티는 연극이 근간으로 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였다. 그런 면에서 제주의 자연들을 화면에 담아내는 건 연극이 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연극과 영화를 동시에 하실 때, 그 차이들을 어떻게 느끼시는지 궁금하다.

오멸: 주제 같은 경우는 연극이나 영화나 충분히 각자의 역할로 닿을 수 있는 것 같다. 무대에서는 배우의 에너지를 주고받으면서 감정을 전달하는 방식이 있다면, 영화에선 시선과 사운드 등 여러 가지 것들로 감정을 표현해내서 조금 더 풍부한 요소들이 많은 것 같아서 탐이 나는 분야인 것 분명한 것 같다. 저 같은 경우엔 처음에 그 경계를 넘기가 힘들었다. 표현하는 방식에서 카메라라는 존재감이 감당이 안 될 정도로 너무 무서웠다. 연극 무대는 일대일의 공간인데 영화는 360도 모든 공간이 열려 있다. 안 써왔던 감각을 너무나 필요로 해서 힘들고 부담스러웠다. 대신 그만큼 시선, 표현의 다양성이 열려있어서 그걸 넘어서려고 했던 게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김성욱: 장면들 상당수는 고정된 채로 촬영할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들고 찍어서 흔들리는 느낌이 강하다. 이렇게 들고 찍은 데에는 이유가 있었을 것 같다.

오멸: 카메라에 담기는 호흡도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영화로 볼 것인가, 아니면 그 공간에 같이 서 있을 것인가의 문제다. 우리의 호흡을 담아야 할지 말지를 생각했지, 깨끗하게 찍느냐는 중요한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우리의 존재감을 끝까지 가져갈 수 있는 호흡에 대한 개념이 중요한 것이다. 앵글이 흔들려서 보는 데 불편할 순 있지만 그 시대를 재현하는 게 아니라 호흡하면서 그 시대로 들어가고 싶었다.

 

김성욱: 카메라를 들고 있는 호흡의 느낌이 화면에 묻어나는 것처럼, 자연의 느낌도 그런 호흡 중 하나가 아닐까.

오멸: 제 시나리오는 많이 비어있는 편이다. 시나리오를 쓸 때는 현장의 공간, 자연에 대한 걸 감안하지 못한다. 그걸 들고 자연에 나가면 시나리오가 종이 쪼가리에 불과했던 상황을 많이 맞이했다. 그러면서 현장에 들어가서 공간과 자연이 주는 이야기나 메시지들을 들어야한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아침마다 뭘 찍을까 고민할 때 결정을 내리는 건 마치 자연이 얘기해주는 것 같다. 그런 식으로 찍으면 바람이며 풀이며 나무며 이런 것들이 드라마처럼 펼쳐지더라. 그게 게으른 것일 수도 있지만 그런 식의 작업을 했던 것 같다.

 

 

김성욱: 게으른 게 아니라 작가로서 그런 작업을 해 나가는 데는 굉장한 용기가 필요한 것 같다. 방금 얘기하신 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이, 군인이 오름을 지나가는 순간 구름이 깔렸다가 걷히는 장면이다. 처음 오신 분들은 CG가 아닐까 생각하실 텐데, 저도 영화를 처음 봤을 때 굉장히 놀랐다. 그 장면에 대한 얘기를 해주셨으면 한다.

오멸: 촬영 당일 아침에 그냥 그 자리에 가서 찍기로 결정이 났다. 그러다보니까 조연출이 군인의 헬멧을 깜빡 잊었다. 그래서 조연출이 헬멧 가지러 왔다 갔다 하느라 2시간을 기다려야 했는데 그 광원을 놓칠 것 같아서 속이 타고 있었다. 나중에 조연출이 도착하고 첫 테이크 가고, 동선 잡고, 두 번째 테이크 가는데 갑자기 하늘에 구름이 쫙 깔리더라. 마치 모든 상황들이 그 시간이 오기까지를 기다렸던 것 같았다. 찍자마자 그 컷을 확인하러 사무실에 갔다가 확인하고 돌아오는 길에 눈물이 조금 났다. 개인적으로 슬프기도 하고 영광스럽기도 했다. 그날 하늘을 덮었던 구름, 바람, 햇빛, 풀이 하나로 같이 움직여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제주도의 자연이 우리가 이 일을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우리 촬영을 위해 그 날을 기다려준 것 같았다. 제주도가 이 장면을 같이 만들어준다는 기분이 들었다. 자연들이 제주도에 있었던 기억들을 갖고 있지 않았을까.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들, 그런 장면을 그들이 만들어주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슬펐다. 만약 내가 이 영화를 안 찍었으면 그 소리를 못 듣고 그냥 살지 않았을까. 그래서 미안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다.

 

관객1: 영화를 흑백으로 찍은 이유가 있는지 궁금하다.

오멸: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제주도를 얘기하는 색깔을 떠올리면 보통 푸른 하늘, 비취색의 바다, 오름의 황토색 등이 있을 거다. 근데 개인적으로는 제주도의 색채는 유채색보다 무채색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땅이 갖고 있는 무게와 순박한 사람들의 역사나 삶에 대한 모습에서 흑과 백에 대한 느낌을 많이 갖고 있다. 그리고 한국화로 사과를 그리면 그 흑백의 톤 안에 작가의 마음, 작가의 세계나 여러 가지가 섞여서 어느 순간엔 빨간색으로 보인다고 한다. 흑과 백은 단조로운 칼라일 수 있지만 어떠한 경험이나 제주도를 이해하는 상황에서 보면 각자 가질 수 있는 칼라로도 느껴질 수 있지 않을까. 저도 칼라를 중요하게 생각을 하지만 화려한 색보다는 흑백이 더 잘 다가오는 것 같다. 예산에 대해서는, 시대극을 찍으면서 의상이나 전체적인 톤들을 정리하고 통일시키는 게 힘들다. 미술감독이 두드러지게 작업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면 색상 톤을 맞추는 데 어려움이 있다. 저는 다른 영화도 워낙 저예산으로 해서 상관은 없지만, 그런 부분에서는 자연스러움을 얻는 것도 있기는 하다. 대신 리얼리티나 색채에서 오는 즐거움 등 버려야 할 것도 많다. 보통의 경우 영화의 기술적인 부분, 개념과 관념의 부분 각각의 비중을 50대 50으로 둔다면 저의 환경에선 50대 50으로 갈 수가 없다. 대신 후자에 비중을 많이 둔다. 거듭 말씀드리면 흑백은 저한테 제주도의 느낌이다. 제주도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보다 슬프다는 생각을 많이 해서 그게 적절한 것 같다.

 

관객2: 영화 초반부에 여인이 계속해서 물을 물동이에 나른다던지, 견딜 수 없이 이어지는 삶을 카메라가 계속 쫓아가는데 중간 중간 사나운 파도가 심하게 부딪히는 장면들이 있다. 파도가 어떤 국면이나 전환을 의미하는 건지 궁금하다.

오멸: 이런 질문은 처음 받아보는데, 이 얘기를 꼭 하고 싶었다. 지금 우리가 보는 바다는 아름답기도 하지만 <이어도>의 바다는 절망의 바다이자 고난의 바다이기도 하고, 엄청난 삶의 무게를 표현하는 방식을 갖고 있다. 영화 후반부에서는 바다가 폭탄처럼 엄마를 때린다. 그러면서 생사를 좌지우지하는 게 제주도의 바다이다. 저는 20대 초반에 바다에 가서 생각을 던지고 온 적이 많다. 제주도의 수십만 인구가 자신의 고민을 바다에 던지지 않았을까. 영화 속에서 엄마가 바다에 내려가서 미역 줄기를 들고 내려오는데, 바다는 생계수단이기도 하지만 세상의 짐이기도 한 거다. 제주도 바다는 열정, 생명, 폭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가녀린 엄마에게 폭탄처럼 쏟아지는 공격적인 바다의 느낌도 갖고 있다. 제주도 바닷가에 엄청나게 많은 시신이 떠 있었던 적이 있다. 바다 위로 폭포가 떨어져서 아름답다고 알려져 있는 정방폭포는 100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학살당하여 그 밑이 피바다가 됐던 자리다. 제주도의 바다는 아름다운 자연에 비해 묻혀버린 역사를 지니고 있는 슬픈 바다이다. 그런 바다를 감정적으로 묘사하려고 했다.

 

관객3: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은은하지만 처량한 곡조의 음이 계속해서 일관되게 흐른다. 그 음악을 왜 영화 대부분에 사용했는지 궁금하다.

오멸: 초등학교 선생님인 친구가 고정국 시인의 시를 읽고 곡을 붙이려고 하는데 너무 슬퍼서 못 붙였다. 그래서 단소로 멜로디만 만들어서 녹음만 해 두고 그냥 구술하듯이 읊조린 곡이다. 그 곡을 예전에 한 번 듣고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시나리오를 쓰면서 이 음악을 우연히 듣게 됐다. 너무 충격을 받았다. 다시 두 번째 들을 때는 내 시나리오가 너무 부끄러웠다. 내가 이걸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결국엔 그 음악 바로 앞에 15초 정도 되는 부분을 영화 길이만큼 늘렸다. 그래서 이 음악을 만든 친구한테 네 음악이 8분인데 내 영화의 전주곡이 됐다고 말했다. 전주를 한 시간으로 늘리고 이 8분을 위해서 영화를 찍었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영화라고 하기보단 8분을 가기 위한 뮤직 비디오나 영상을 잠깐 만든 것이다. 이 8분이야말로 진짜 영화가 아닐까, 영화가 과연 뭘까, 우린 영화 같은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데 이런 것들이 바로 영화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김성욱: 이 영화 이후에 만든 장편영화 <지슬>이 올해 부산영화제에서 처음 상영된다. <이어도>를 보신 분들이 부산에 가게 되면 <지슬>도 보셨으면 좋겠다. <지슬>에 대해서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 같은데 간단히 얘기해주시고 마지막 말씀 부탁드린다.

오멸: 심정적으론 이 영화의 후속이긴 하나 많이 다르다. <지슬>은 제주도민들을 달래고 싶어서 만든 영화다. 사이즈도 커졌고 드라마도 많이 들어간다. 주변분들 반응이나 기술팀 쪽에서 좋게 얘기가 나와서 궁금하시면 나중에 보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영화에 대한 관심도 좋은데 제주도의 다른 이야기들에 관심도 주시면 좋겠다. 제주도 사람들은 육지에 의해 역할을 강요받는 역사와 그로 인한 서글픔을 가지고 있다. 제주도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애정 있게 보시면 서로 오해들이 풀릴 수 있을 것 같다.

정리: 송은경(관객 에디터) 사진: 박지연(자원 활동가)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