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특별전/현실의 새로운 감각: 주목할 3인의 작가전

[시네토크] “그 분들의 말 못한 사연과 고통들을 전달하고 싶었다”

<비념> 임흥순 감독과의 대화 지상중계

 

지난 9월 1일, <비념> 상영 후 임흥순 감독과의 시네토크가 이어졌다. 제주 4.3에서 강정에 이르기까지 아름다운 풍경에 가려진 제주의 어두운 모습을 담아낸 임흥순 감독과의 이야기를 여기에 일부 옮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영화 <비념>의 작업은 처음에 어떻게 시작 하게 되었나.

임흥순(영화감독): 단편선의 작품들도 가족의 이야기에서 시작했고, <비념>같은 경우도 저의 가족은 아니지만 김민경 프로듀서의 가족에서 시작되었다. 2009년 3월에 동료 미술작가들과 제주도를 내려갔었는데, 그 때 3일 동안의 일정을 끝내고 김민경 프로듀서와 함께 할머니 댁을 찾아갔다. 역사에 대해 관심이 있었고, 처음에는 제주도의 일제강점기 흔적 같은 것을 찾아볼까 해서 왔는데, 김민경 프로듀서의 할아버지가 4·3 때 돌아가셨다는 걸 알게 되었다. 영화를 만들어보면 좋을 것 같다고 얘기가 되었고, 그 해 10월부터 가족들 인터뷰를 시작하게 되었다.

 

김성욱: 영화 시작부에서 전통적인 복장을 하고 두 분이 서있는 장면은 그 이후엔 등장하지 않는데, 어떤 장면인가.

임흥순: 영감놀이라는 제주도의 굿이다. 영감은 일종의 도깨비인데, 심술을 많이 부리고 특히 혼자 사는 과부나 여성들을 괴롭히는 도깨비다. 신의 일종인데, 제주도의 무속에서 신이 형상화된 모습은 그것 하나라고 들었다.

 

김성욱: 제목도 그렇고, 영화에 전체적으로 무속적인 것이 많이 등장한다. 정확하게 ‘비념’이란 어떤 의미인가.

임흥순: 큰 굿은 굿이라고 하고, 작은 굿, 혼자서 하는 굿을 비념이라고 한다. 비념은 개인의 행복해지고 싶은 바람 같은 자그마한 부분을 다룬다. 4·3과 관련해서 어떻게 보면 한 사람 한 사람의 생명이나 행복해지고 싶은 바람을 비는 마음이랄까, 그런 의미의 영화다.

 

김성욱: 처음에 나오는 굿도 비념인가.

임흥순: 비념에 가까운 부분이 있다. 처음에 나오는 굿 장면은 강상문 할아버지의 7일장 마지막 날이었다. 6일은 유교식으로 장례를 치렀고, 마지막에는 할머니께서 굿을 원하셨다. 제주도가 전체적으로 남성문화, 중심문화는 유교이고, 여성문화, 주변부 문화는 무속으로 되어있어서, 여성들 안에서는 그런 굿을 해왔던 것이다. 실제로 그런 굿은 찍기가 좀 힘든데, 가족이기 때문에 촬영이 가능했던 부분이 있다.

 

김성욱: 인터뷰 장면들이 특이했다. 사람들의 얼굴이 등장하는 순간도 있지만 많은 경우 등장하지 않거나 굉장히 제한적으로 보인다.

임흥순: 그들의 이야기에 집중하기 위해서 다른 방식으로 보여주고 싶었고, 보통 얼굴을 보여주는 것과 대비해서 풍경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 부분은 이 전에 외국인 노동자와 작업을 할 때 대상화시키는 부분을 경계하면서 작업했던 것이 남아있는 것 같다.

 

김성욱: 종종 거울에 반사되는 이미지들이나 기울어진 화면의 장면들이 등장한다.

임흥순: 지금의 상황들을 여러 각도에서 봐야할 필요성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지금의 한국사회는 좌나 우든, 너무 양분화 되어있다 보니 여러 각도에서 보고 싶은 부분들이 있었다.

 

김성욱: 4·3 행사나 강정 마을에 관한 보도들이 TV화면에서 나오는 장면들이 있다. 당시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느낌도 있고, 미디어가 바라보는 방식을 보여주는 느낌도 있다. 그런 방송화면들은 그 순간들마다 촬영을 한 것인가.

임흥순: 영화에서 제가 한라산을 올라가는 장면이나 눈밭 위를 뛰는 장면 이외에는 모두 연출 없이, 그 때 그때의 상황들을 계속 찍어나간 것이다.

 

김성욱: 눈밭 위를 뛰어가는 장면은 4·3항쟁 당시의 사람들의 느낌을 주는, 재연의 한 일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임흥순: 이 영화 안에서 저의 고민들, 헤매거나 알아가는 과정들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 분들의 인터뷰를 듣고 재연을 통해 그 느낌들을 한번 밟아보고 싶었고, 그런 부분이 저로서는 굉장히 중요했다. 신발도 미처 못 신고 한라산으로 도망쳤다든가 하는 것들을 직접 체험해보고 싶었다.

 

김성욱: 전체적으로 어느 정도의 촬영을 진행하셨는지 궁금하다. 영화 안에 4·3에 대한 것과 인터뷰, 강정과 관련한 부분이 등장하는데, 촬영이나 편집 단계에서 영화의 전체적인 구성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셨을 것 같다.

임흥순: 촬영은 2009년부터 올해 4월까지 진행했다. 전체적인 편집을 고려해 촬영했던 건 아니었다. 그래서 사실 초반에 제작지원을 받으려고 해도 정해진 계획이 없었기 때문에 어려웠던 부분이 있었다. 기억이나 장소, 풍경 같은 것들을 넝마꾼처럼 계속 주워 담았는데, 촬영분을 놓고 보니 일본의 할머니 고향이 강정이고 하는 식으로 연결되는 부분들이 있었던 것이다. 편집이 굉장히 어려웠다. 해야 할 얘기, 인터뷰한 분들은 많은데, 다 쓸 수는 없고, 어쨌든 간추리다보니 이렇게 나온 셈이다.

 

김성욱: 기록 필름을 거꾸로 돌리는 장면이 있는데, 어떤 비극적인 순간들을 그러한 방식을 통해서 되돌린다는 느낌이 있다.

임흥순: 오라리 방화사건의 필름이다. 제주 4·3사건과 관련해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필름인데, 사실 조작 편집된 영상이다. 경찰이나 서북청년단이 마을에 불을 지르고선 무장대가 저지른 것처럼 조작되었던 것이다. 어쨌든 평화협상이 한번 일어났었고, 협상을 통해서 잘 마무리되어야 했는데, 그런 상황이 경찰 측에서는 불리했기 때문에 일부러 불을 지른 것이었고, 결국 협상도 결렬됐다. 기록 영상이고 이미 지난 역사이지만, 말씀하신 것처럼, 시간을 되돌리고 싶은 마음으로 표현한 것이다.

 

김성욱: 그 때는 아마 홍보나 선전적인 차원에서 제작된 것이겠지만, 그 것 안에서 오히려 당시 상황에 대한 비극성이 느껴지는 역설이 있는 것 같다. 그 기록 영상은 어디서 만든 건가.

임흥순: 미군에서 자체적으로 만들어 미군기록보관실에 있었고, 지금은 4·3 평화공원에 보관되어 있다.

 

김성욱: 할아버지 한 분이 집 앞에 서있는 모습이 비스듬하게 찍혀있고, 화면 오른쪽으로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강정 해군기지에 대해 찬성하는 주민들에 대한 얘기를 하는 장면이 있다. 영화의 전체적인 영상들이 4·3과 강정에 있었다면, 그 순간은 마을 사람들의 느낌일 수도 있고, 촬영방식이나, 사람들의 말들, 서계신 분의 느낌도 그렇고 약간 다른 느낌이 있었다.

임흥순: 원래는 화면에 반쯤 숨어있는 곰돌이 인형을 촬영하려고 했는데, 그곳에 사시는 할아버지가 나오신 거고, 그 다음에 올레꾼들이 지나가면서 이야기하던 것이 우연히 담기게 되었다. 그 분들의 이야기가 우리가 바라보는 제주의 풍경을 그대로 얘기해주신 거라고 생각한다. 찬성이든 반대든, 굉장히 남의 이야기처럼 바라보는 상황이 사실은 우리가 제주를 생각하는 것과 비슷한 부분이 있는 것이다.

 

 

관객1: 영화를 보면서 사운드를 유심히 들었다. 감독님의 <숭시>는 <비념>보다 어둡다는 느낌이 있었고, <비념>은 사운드가 더 강렬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단편에서 장편으로 풀어내실 때 유심히 고찰하신 부분이 있는지도 궁금하다.

임흥순: <숭시>는 <비념>을 만들기 전의 작업이고, <숭시>의 영상들은 거의 대부분 <비념>에 들어있다. <숭시>는 4·3과 강정을 놓고 그 이전과 미래에서 바라보는 제주의 어떤 모습을 일종의 징후로서만 풀어낸 것이다. ‘숭시’는 제주도 방언으로 징후를 뜻한다. 어느 4·3 연구자께서 강연을 하면서 끄트머리에 징후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는데, 그 부분이 인상이 깊었다. 이를테면 당시 쥐가 바다그물에서 건져졌다든가, 대나무 꽃이 폈다든가, 대낮에 관음사에 번개가 쳤다고 하는 이야기들이었는데, 사실여부를 떠나 당시의 사회적인 분위기나 사람들의 마음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숭시>는 그런 징후들을 중심으로 풀었던 영화이고, 제가 하고 싶은대로 한 작품이었다면, <비념>은 좀 더 많은 분들이 4·3을 이해할 수 있도록 친절하려고 했고, 감정적인 부분을 좀 더 보여준 부분이 있다. 그래서 음악에서도 굿이나 연극 장면에서의 현장 음악을 많이 썼다.

 

김성욱: 위기가 도래하기 전단계의 징후도 있고, 무언가 끝난 이후의, 이를테면 강정 안에서 4·3을 보는 것 역시 하나의 징후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고 4·3 과 강정이 동일한 사건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4·3의 경우, 서로 쉬쉬하거나 말할 수 없음이라는 사태가 있기 때문에, 집단적 공동체성이 괴멸되는 지점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작업이란 그 말할 수 없음을 자꾸 말하게 하는 것이고, 말한다는 것으로 무언가 깨어졌던 것을 연결하는 것도 하나의 작업의 결과라는 생각이 든다. 그 가운데 강정이라는 사건이 들어있기 때문에, 강정이라는 문제는 부분적으로 집단성의 문제도 있는 것 같다.

임흥순: 이 영화의 큰 부분은 공동체의 문제에 있는 것 같다. 일단 제 자신이 저의 가족에 대한 것에서 작업을 시작했던 것도 그렇고, 4·3이나 강정의 문제에서도 공동체 문제가 시작점 일 것 같다. 고유의 공동체가 있는데 거기에 국가폭력이 들어가서 파괴되는 순간인 것이다. 한국은 제주도를 역사적으로 계속 타자화, 주변화 했던 것 같다. 해방이 되었을 때 제주도는 자체적으로 그 공동체 내부에서 좌와 우가 굉장히 잘 어우러져 있었지만, 중앙정부에서는 그것이 두려웠고, 결국 파괴의 시작점이었다. 당시 제주도의 고위관리직이나 경찰들은 대부분 육지에서 온 사람들이었고, 그들은 제주 사람들을 대할 때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그런 기억으로 인해 제주도의 어르신들은 지금도 계속 공동체가 파괴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는 것이다. 이 영화를 만들기 전의 저도 마찬가지였지만, 우리는 제주도를 굉장히 아름다운 자연풍경으로서만 알고 있는데, 사실 그것은 우리가 만든 제주도이지 실제 제주도는 아닐 거란 생각을 했다.

 

관객2: 단편선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내 사랑 지하>와 <잘 가시오>였다. 그 작품들에 대한 배경 설명이 궁금하다. 지하, 분당, 성남, 제주처럼 계속해서 공간성, 공간과 사람에 주목하시는 이유가 궁금하다. 그리고 이전의 작업들은 설치작업용으로 만드셨고, <비념>은 극장에서의 상영을 위해 만드셨는데, 작업의 과정에서 변화가 있다면 어떤 것들인가.

임흥순: 좀 더 영화화되고, 세련되어지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일단 제가 가진 부분은 주변문화에 대한 관심인 것 같다. 회화작업도 “주변인”이라는 타이틀로 작업을 하기도 했고, 중심주의적으로 가는 부분에 대한 반발이나 반감이 커서, 좀 더 주변인, 주변의 역사, 더 넓혀서 지역의 이야기를 해왔던 것 같다. 부모님 두 분이 모두 노동자이시고, 지하에 사셨다. <내 사랑 지하>는 임대아파트로 이사 가는 과정을 찍은 것이고, 기존의 다큐멘터리에서 가족을 얘기할 때의 휴머니즘적인 부분보다는 공간이나 상황들을 보여주고 싶었다. <잘 가시오>는 아버지에 대한 작품이다. 한국사회에서 남자로 산다는 게 뭘까를 고민하면서 아버지에 대해 인터뷰를 했었다. 그런데 막상 아버지에게는 별로 얘기나 재미, 뭔가 드라마를 만들어낼 만한 부분이 너무 없었다. 그러다 아버지 세대의 다른 분들을 인터뷰했는데, 그러다보니 베트남 참전이나, 중동근로 같은 이야기들이 나왔고, 일종의 민초, 민중이라고 할 수 있는 그런 분들에 대한 인터뷰 작업을 계속 진행했었다. 민중문화, 주변문화의 사적인 부분을 어떤 식으로든 기록을 하고 싶었다. 그런 문화나 정체성에 대해 보통의 사람들이 어떤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지점이 있지만 계속 무시되어왔다. 하지만 그런 기록을 하는 데에 있어서 그림은 좀 답답한 부분이 있다. 반면 영상에는 사진이나 그림이 주지 못하는, 좀 더 사람들의 마음을 쉽게 움직이게 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전시와 극장 상영에서의 차이라면, 전시는 어떤 이야기를 풀어놓고서, 그 파편들을 보고 관객이 재해석하는 부분이 있고, 그에 비해 영화는 좀 더 친절하게 설명해 줄 수 있고, 어떤 이야기에 대해 좀 더 공감대를 많이 가질 수 있는 것 같다. 극장이라는 공간이 사람들을 붙잡는 것도 있다. 사실 전시 공간은 스윽 지나가면 1분이면 다 보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영화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데에 더 나은 부분이 있다.

 

김성욱: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이 있다면.

임흥순: 말하지 못함, 말할 수 없는 것들, 그리고 말할 수 있는 방법을 모르는 것으로 인해 굉장히 닫혀 있는 부분들이 있다. <비념>도 마찬가지다. <비념>에서 그 시대의 느낌을 이해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은 그때 돌아가셨던 분과 인터뷰 해야한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제가 대신 그 분들의 이야기를 듣기위해 숲과 풍경과 동물들을 동원했다. 어떻게 보면 제가 대중들과 그 분들의 이야기를 이어주는 현대의 무당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해서 그 분들의 말 못할 사연과 고통들을 전달하고 싶었다.

 

정리: 장지혜(관객 에디터) | 사진: 박지연(자원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