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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시네토크

“모든 가치관이나 생각을 뒤집는 면에 이상한 쾌감이 있다”

이재용, 전계수 감독이 함께한 존 워터스의 <디바인 대소동> 시네토크

 

2월 7일 일요일 오후,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컬트 영화, 존 워터스의 <디바인 대소동>이 상영된 후 이 영화를 추천한 이재용, 전계수 감독과의 대화가 이어졌다. 얼마나 많은 즐거움과 혐오감이, 환호와 야유가 교차했을지 궁금해지는 시간이었다. “영화를 처음 보신 분들은 뜨악한 반응도 있을 것 같고, 웃어야 할지 야유를 보내야 할지 주저하시는 것 같다. 워낙 특이한 영화”라는 말로 시작된 시네토크에서 이 영화를 추천한 이재용, 전계수 감독은 무엇보다 영화를 본 관객들의 반응이 제일 궁금하다고 했다. 많은 이야기들과 다양한 생각들이 오간, 영화만큼이나 예측할 수 없던 흥미로운 시간의 이야기를 옮겨본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이재용 감독과 전계수 감독이 극장에 자주 영화 보러 오시는데, 그때마다 존 워터스 이야기를 했었고, 이재용 감독은 존 위터스 특별전을 하면 좋겠다고 말씀하시기도 했다. 전계수 감독의 경우 카탈로그 책자에 보면 추천의 변에 이렇게 썼다. “10년 전 일본의 허름한 독신자 아파트에서 그의 전작 <핑크 플라멩고>와 더불어 이 작품을 보는 내내 내가 가진 비위의 한계치를 계속해서 넓혀가야 했던, 특별히 더러웠던 경험을 기억합니다.” 두 분이 어떤 방식으로 존 워터스 감독의 영화를 접하셨는지, 어떤 점에 매력을 느끼는지 궁금하다.

전계수(영화감독): 악취미지적인 온갖 더러운 것들, 조잡한 것들, 나쁜 것들을 한데 모아서, 굉장히 설득력 없게 그리는 방식이 좋다. 왠지 ‘길티플레저(Guilty Pleasure)’ 느낌이다. 그 전에 봐왔던 숭고하고 고상한 가치를 지닌 영화들과 완전히 반대의 지점에서 출발한 영화들을 볼 수 있어서 너무나도 신기했다. 매년 친구들 영화제 프로그램들이 너무너무 좋은데, 그 대부분이 우리가 용인할만한, 포용할 수 있는 가치체계 안에서의 숭고한 가치를 보여주는 영화들이다. 나는 영화를 만드는 동기는 꼭 그런 것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고, 그래서 이 영화를 추천하게 됐다.

이재용(영화감독): 내가 처음 존 워터스 영화를 본 것은 95년, 다큐멘터리를 하다가 편집을 하기 위해서 뉴욕에 가 있을 때였다. 한국에서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영화에 우선 끌렸던 것 같고, 모든 가치관이나 생각들을 뒤집는 면들에 쾌감을 느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처음 봤을 때 받았던 문화적 충격이 내 안에 잠재되어서, <다세포 소녀>에도 영향을 크게 미친 것 같다.

 

김성욱: 그러고 보면, 전계수 감독의 <삼거리 극장>도 그런 느낌이 있었던 것 같다.

전계수: <삼거리 극장>에서도 토하는 장면도 많고 온갖 더러운 것을 먹는 장면도 많다. <삼거리 극장>을 투자 받아 제작하게 됐을 때, 블로그에 존 워터스 감독에게 경의를 표한다고 쓴 적이 있었다. 정말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던 감독이다.

 

김성욱: 이런 영화를 두고 악취미라고 부르는데, 악취미의 본질이 어떤 걸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전계수 감독의 추천의 변을 보면, 꼭 이렇게 영화를 만들어야 될까라는 질문과 동시에 이렇게 만들면 왜 안 되느냐는 질문이 공존한다고 쓰셨다.

전계수: 존 워터스 감독의 다큐를 봤는데, 그가 영화를 만드는 이유는 딱 하나인 것 같다. 바로 엔터테인먼트. 워터스는 “내 영화가 아무 사회적 가치를 갖지 않은 것에 대해, 나는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심야상영관에서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 그 때는 모든 가치들이 좀 더 열려 있고, 어떤 행동도 장면도 용납되고, 관객들의 반응이 어떻든 그것이 진심에서 우러나온 갈채든 야유와 비아냥이든 모든 것이 가능한 세계에서 영화가 보여지기를 원한다. 엔터테인먼트의 본질이 악취미”라고 말했다. 존 워터스 감독이 좋아하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 있는데, 자동차 사고가 나서 그 안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피가 낭자한 채로 허리가 꺾어진 채 있었는데, 그 낭자한 피를 한 없이 들여다봤던 기억이라고 한다. 그 때 선혈이 낭자한 피를 보고 끌렸던 자신의 기억을 사람들과 공감하기 위해 이런 영화들을 만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김성욱: 존 워터스 감독이 했던 인상적인 또 다른 말이 있다. “만약 당신이 아웃사이더라면, 더 이상 불안해하지마라. 그걸 장점으로 하고 살아가다 보면, 당신은 더 이상 루저가 아니다. 바로 이런 것들이 내 모든 영화가 말하려던 거였다. 당신을 괴롭혀온 모든 것을 과장하고 심지어 자랑스러워한다면, 사람들은 정말로 당신을 존경하게 될 것이다. 노이로제랑 친해져라. 그것이 현대인의 성숙한 삶의 태도다.” 이재용 감독님은 이런 방식의 영화를 만드는 것, 이런 방식이 또 다른 삶의 태도라는 이야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이재용: 존 워터스 감독의 영화를 봤을 때 참 놀라웠다. 저런 영화를 만들 수도 있구나했다. 감독이 되기 전에 학창 시절부터 많은 영화를 보면서, 관습적이거나 어떤 공식이 있는 영화들, 대부분의 장르영화들, 다음 이야기가 예측되는 영화들이 어느 순간부터 재미가 없어진 것 같다. 일종의 직업병이랄까. 영화가 자꾸 눈에 보이고, 카메라 뒤에 사람들이 느껴지고, 연기할 때의 배우의 심정들이 느껴지니까, 일반 순수한 관객처럼 빠져서 영화를 못 보게 되더라. 그래서 점점 좀 다른 방식의 영화들에 빠져들게 됐다. 어설픈 연기, 우리가 연기를 하고 있다고 보여주는 것 자체가 오히려 더 거짓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런 영화의 예측불허의 상황들을 따라가는 것이 더 즐겁다. <다세포 소녀>를 만들기 전에 만화 원작을 접했을 때, 이런 영화를 떠올렸던 것 같다. 스스로 어떤 경우는 메이저 느낌의 상업적인 영화도 만들지만, 기본적으로 그런 것들을 뒤집는 영화들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있기 때문에, ‘이런 영화를 나같이 이런 것을 즐기는 사람들이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그들과 접선을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만들었던 영화였다.

 

김성욱: 이런 것을 즐기고 편하게 받아들이는 관객들은 한국에선 많지 않다. 전계수 감독도 <삼거리 극장>을 극장에서 맥주 마시면서 춤추고 난리치면서 보고 싶었는데, 사람들이 너무 점잖게 보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존 워터스를 비롯해서 파솔리니, 타비아니 형제, 페데리코 펠리니 같은 사람들은 세상의 참 특이한 사람들을 스크린에 가득 모아놓는다. 평상시에 잘 못 볼 것 같은 사람들이 영화 내내 진기명기처럼 등장한다. 이런 영화들의 어떤 점들을 특히 재밌게 보는지. 연기의 문제나,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의 전개나, 디바인이라는 여자의 캐릭터에 대해서나.

전계수: 제일 재밌었던 것은 디바인이 극장가서 쇼를 할 때, 쇼의 내용이 트램폴린 타는 것밖에 없는데, 그것만으로 장면이 가능하다고 생각한 존 워터스 감독의 절약정신이었다. 디바인이라는 여자가 도대체 어디까지 악행을 자신의 아름다움으로 치환해서 생각을 하는지, 그게 어떻게 가능한 건지 지켜보는 과정이 재밌었다. 범죄 안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는 역설을 존 워터스 감독은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사실 대부분의 영화들에 그런 면들이 있다. 범죄에 경도되는 대부분의 영화들에 형사나 범죄자들이 많이 나오는데, 그것은 그들의 삶이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정상성을 거스르는 추악한 나쁜 취향, 그리고 자신이 할 수 없는 범죄를 보는 쾌감들이 이런 영화를 만들게 하는 나쁜 피 중의 하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던 것에는 사실 그런 측면도 있다.

김성욱: 진짜 보신 분들의 반응이 궁금하다. 영화를 본 소감이나 궁금한 점이 있으면 이야기 해 달라.

 

관객1: 매혹적이고 신선하고 아주 재밌었다. 이재용 감독님이 존 워터스 감독의 전작을 보고 싶다고 하셨다고 하는데 나도 그렇다. 영화를 보는 행위는 일종의 관음적인 행위이고, 이런 신기한 일상을 벗어난 영화를 보는 것은 일종의 대리만족이다. 우리가 사람을 죽일 수는 없지만, 범죄영화를 보면서 그것을 대리로 만족하고 즐기지 않나. 이런 영화를 보니 그것을 아주 극대화시키는 것 같다. 아까 보니 ‘쓰레기 영화의 황제’라고 했는데, 그 말은 조금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그리고 노망난 할머니는 비전문배우 같던데 맞나.

전계수: 들은 애기라 확실하진 않은데, 존 워터스의 고향이 볼티모어이고 지금도 거기서 살고 있는데,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이 볼티모어에 사는 자기 이웃들이라고 한다. 저예산 영화로 찍었으니 그런 이웃을 쓴 것이겠지만, 연기를 잘하는 배우를 쓸 수도 있었는데 일부러 어색하고 책을 읽는 듯한 연기를 하게 한 것 같고, 모든 대사를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마저도 우스운 것으로 만들고 싶어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재용: 실제로 이웃이면서 친구면서 그런 문화를 아는 사람들끼리 즐기면서 만든 영화가 아닌가 싶다. ‘쓰레기 영화의 황제’라는 칭호는 고상한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한 비난이라기보다는, 다른 의미로 저런류의 영화의 장르로의 대가라는 뜻으로 칭찬하는 말인 것 같다. 본인 스스로도 그런 말을 자랑스러워할 것이라 생각된다.


 

관객2: 존 워터스의 영화를 좋아하는데, 일관적으로 두 가지 주류를 한꺼번에 비교하면서 비판한다는 느낌이다. <디바인 대소동> 같은 경우, 주인공 여자가 자신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밀고나가면서 그것으로 인해 범죄를 저지르고 그로 인해 사회적 비판을 받는데, 감독은 비판하는 사회 그 자체를 여주인공보다 더 비판한다는 느낌이 든다. 여주인공에 대해서는 연민을 느끼게 되기도 한다. 인물들의 행동이 지저분하고 폭력적이기도 하지만, 그 인물들에 애정이 생기기도 하는 것은, 감독이 그들에게 품고 있는 연민이 담겨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또한 존 워터스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이야기의 전개가 전혀 예측불가능하고, 신선한 발상이 거침없이 드러나는 점에 있는 것 같다.

 

관객3: 나는 영화를 볼 때, 이 감독이 친구들과 영화를 가지고 그냥 논다고 하는 생각이 들어서, 나도 같이 참여해서 놀았다. 이런 영화를 당당하게 만든 존 워터스 감독의 용기가 존경스럽다.

이재용: 누군가가 <다세포 소녀>를 만들 당시 약을 먹고 찍었냐고 물었는데, 이 영화는 정말 약을 먹고 찍었을 것 같다. 이 영화는 극단적으로 가서 어떤 경지까지 이룬 느낌이 든다. 언젠가 제작의 여건이나 문화적 여건에 따라 이런 영화도 꼭 도전해 보고 싶다는 욕망이 있지만, 이런 것이 어떻게 관객과 만날 수 있을지가 가장 어려운 지점이다.

 

관객4: 영화를 보면서 굉장히 맘에 들었던 게, 보통의 영화처럼 엔터테인먼트나 쇼 비지니스의 화려한 이면 뒤의 역겨운 것을 풍자하지 않고, 오히려 진짜 직설적으로 스트레이트하게 ‘그것이 진짜 역겹다’고 보여준 점이다. 궁금한 게 이 당시 존 워터스 감독이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었던, 할리우드의 산업구조를 알고 싶다.

이재용: 할리우드과 완전히 떨어진 독립영화다. 십시일반 자기 친구들 공짜출연으로 만들어진 영화였다. 심야영화나 예술영화관에서 이뤄지는 소통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런 것들이 어떤 진정성을 인정받으면서 조금씩 메이저로 들어가기도 했지만, 여전히 할리우드 메이저에서 영화를 만드는 감독은 아니다.

전계수: 산업적 배경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문화적 배경은 60년대의 히피 문화와 특히 펑크 문화가 드러나는 것 같다. 60년대의 약간 기성적인 것, 질서, 관습, 전통에 대한 의미 있거나 혹은 이유 없는 반발들이 하나의 세대적인 문화로 자리 잡았을 때의 그런 정신이, 이런 영화가 가능하고 이런 영화를 향유할 관객이 있다고 생각한 이유가 아닐까 싶다. 물론 이 영화는 처음에는 배급사를 못 잡았다. 놀랍게도 처음에는 교회를 빌려 상영했다고 한다. 다큐멘터리를 보니 그 교회의 목사님이 그 사실을 매우 자랑스러워하더라.

 

김성욱: 이런 영화를 상영하게 해준 목사든, 만든 사람이든, 출연한 배우든 자부심을 갖는 것일 게다. 영화 속에는 매일 매일이 트러블로 가득하다. 그 트러블들을 받아 안아서 그걸 가지고 과장되게 만들어 내는 것. 그것을 도피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그걸 가지고 그것과 맞서서 살아가는 것. 그런 이상한 자신감이 이런 영화를 보며 생기는 거 같다. 죽음의 순간까지 수그러들지 않는 디바인의 모습은 어떤 면에서는 숭고하기도 하다. 나중에 존 워터스 영화 특별전을 하게 돼서 일주일 내내 이런 영화들을 보게 된다면 우리가 어떻게 변할지 궁금하다. 두 분이 평소에 전혀 틀지 못했던 영화를 선정해주셔서, 특이한 문화적 충격을 만들어내 준 것 같다. 하지만 아쉽게 끝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해주신다면.

전계수: 존 워터스 감독에게 가장 크게 배운 것은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눈치 보지 않고 밀어붙이는 태도가 우리의 삶을 다양하고 폭넓게 만든다는 점이다. 나도 계속해서 이상한 것들에 대한 끌림을 부정하지 않고 만개시키는 영화를 앞으로 만들겠다.

이재용: 어떤 면에서 영화는 큰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저 영화일 뿐이기도 하고 즐기기 위한 도구이기도 하다. 영화를 너무 진지하게만 보기보다는, 열린 마음으로 다양한 영화를 접할 수 있으면 좋겠다. (정리: 박영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