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테크 전용관 추진위원회
2010년 1월 18일 월요일  김도형 기자  

1월 15일 낙원상가의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내로라하는 감독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정윤철, 최동훈, 박찬욱, 이명세, 봉준호, 윤제균, 김지운, 류승완, 이경미 감독이 동시에 한 무대에 있는 모습은 영화제에서도 보기 드문 진귀한 장면. 이들이 이렇게 한 자리에 모인 이유는 서울에 시네마테크 전용관 추진위원회 발족회 때문이다.

사실 시네마테크 전용관 건립에 대한 얘기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미 2008년에 복합 상영관 건립이라는 이름으로 구체적인 진행이 있기도 했다. 하지만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위원장이 바뀌면서 사업 자체가 표류하게 되었고, 이에 서울아트시네마를 중심으로 한 전국시네마테크 연합과 이명세 감독을 추진위원장으로 한 추진위원회가 힘을 합쳐 시네마테크 전용관 건립을 위한 보다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기 위함이다.

시네마테크 전용관은 서울아트시네마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1991년 비디오테크인 문화학교 서울을 중심으로 시작된 시네마테크 활동은 2000년대 초반까지 오즈 야스지로, 에릭 로메르 등의 회고전을 진행하며 쉽게 접하기 힘든 영화들을 일반 관객에게 선보이며 이어졌다. 이후 2002년 소격동 아트선재센터 지하에 서울아트시네마를 개관해 활동을 진행했지만, 2005년 건물임대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고 폐관 위기를 겪기도 했다. 하지만 시네마테크의 친구들영화제와 같이 시네마테크 활동을 이어가려는 영화인들과 관객들의 노력으로 지금의 낙원상가로 자리를 옮겨 그 명맥을 잇고 있다.

시네마테크는 과거의 영화와 미래의 영화인을 만나게 해주는 특별한 공간이자 영화에 대한 진지한 담론의 장을 마련하는 공간이다. 하지만 서울아트시네마의 불안정한 운영으로 인해 영화인들은 시네마테크 전용관의 건립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과거의 영화들을 볼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영화박물관의 운영으로 한 나라의 영화 문화의 새로운 기틀을 마련하고자 했던 것이다. 2008년 서울시와 영진위가 각각 200억씩을 투자해 진행하려던 사업이 영진위의 입장 변화로 중단된 상태지만, 영화인들과 영화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은 시네마테크 전용관의 건립을 위해 다시 한 번 힘을 모은다.

프랑스의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독일의 도이체키네마테크, 미국의 필름 포럼, 가까이 부산의 시네마테크 부산 등은 그 나라, 그 도시의 문화적인 수준을 가늠하는 상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 세계 10위권의 영화산업을 유지하는 국가로서, 인구 1천만의 도시로서 서울의 시네마테크 전용관과 영화 박물관의 건립은 시대적인 흐름이며 서울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일이기도 하다. 이에 발족식에 참석한 감독들과 영화 제작 관계자들은 프린트를 기증하고, 시네마테크 전용관 건립을 위해 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임을 선언했다.


박찬욱 감독 영화 공부를 하던 시절 책에서 언급된 영화들을 볼 기회가 없었는데, 시네마테크는 그런 경험을 가능하게 한다. 영화를 공부하는 후배들이나 감독 지망생들이 영화 역사를 이해하고 접할 수 있는 곳이다. 고전영화를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어 불법 다운로드를 받는 이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 거대 도시 서울이 시네마테크 전용관을 운영하지 못한다면 수치스러운 일이다.

정윤철 감독 일단 발족식을 열고 추진하면 반드시 끝을 봐야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도 이 자리가 떨린다. 시네마테크 전용관은 영화인들과 예비 영화인들에게는 꼭 필요한 공간으로, 과거와 미래의 대화 공간으로서 큰 의미를 갖는다.

최동훈 감독 어렸을 적, 비디오테크에서 영화를 보며 영화에 대한 꿈을 키웠다. 많은 영화를 보면서 엄청난 좌절을 맛본 공간이기도 하다.(웃음) 하지만 영화를 보는 즐거움을 만끽하게 해 준 곳이다. 영화인은 물론 일반 관객에게 영화 보는 큰 즐거움을 알려줄 것이다.

이명세 감독 내가 영화를 공부할 때는 시네마테크라는 말을 듣기만 했다. 어려서부터 시네마테크가 궁금했고, 비슷한 곳이라도 있기를 바랐다. 미국에 있는 동안에는 필름 포럼이 나에겐 영화 학교였다. 여러 영화들을 접하면서 개인적인 체계를 정립할 수 있었다. 이런 귀중한 공간을 영화인들은 물론, 많은 이들에게 찾아줘야 한다. 보물 창고의 보물들이 잘 전달되도록 해야 한다.

김지운 감독 영화를 전공한 것도 아니고, 현장에서 경험을 쌓은 것도 아니다. 좋은 영화를 어떻게 봐야 하나를 고민하다가 6개월 아르바이트한 돈을 들고 무작정 파리로 갔다. 그곳에서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 2달 동안 살다시피 하면서 100여 편의 영화를 봤다. 영화를 보면서 보잘 것 없었던 내 영혼이 더 나빠지지 않는 것을 경험했다. 인생의 공부방이면서, 더 나은 영화를 만들고 싶은 에너지를 주는 곳이 바로 시네마테크다.

윤제균 감독 상업영화 감독으로서 시네마테크 전용관의 중요성을 생각해봤다. 쉽게 얘기하면 이런 것이다. 우리가 책을 살 때 서점에 간다. 베스트셀러가 진열된 서점이 일반적인 극장이라면, 시네마테크는 도서관 같은 곳이다. 최신 베스트셀러가 아니어도 꼭 필요한 책들이 있는 곳이다.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시네마테크 전용관은 반드시 필요하다.

봉준호 감독 전세, 월세로 살면 이사철마다 불안하고 초조하다. 시네마테크 역시 마찬가지로 안정적인 운영이 필요하다. 시네마테크는 한 나라 영화 문화의 자존심이다. 보따리 장사처럼 옮겨 다니는 시네마테크는 부끄럽다. 파리의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를 보면 입이 떡 벌어진다. 스크린이 4개고, 영화박물관 시설도 부러운 수준이다. 멀리 볼 것도 없이 시네마테크 부산도 안정적인 시설이다. 근데 서울에 이런 공간이 없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류승완 감독 1990년대 초반, 문화학교 서울에서 무분별한 복제 영상물을 보면서 지냈다. 하지만 좋은 프린트로 영화를 보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개인적으로 <와일드 번치>를 무척 좋아해서 다양한 매체로 30번은 넘게 봤다. 근데 극장에서 프린트로 보는 순간, 지금까지 봤던 모든 영상은 그저 자료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많은 영화가 나오고 과거의 영화들은 사라지고 있다. 단관 개봉 시절에는 한 영화가 두 달간 상영되기도 했는데, 이제 그런 시절은 안 온다. 시네마테크에는 역사적인 영화 외에도 더 많고 다양한 영화를 다시 볼 기회가 있다. 파리의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를 갔다 온 뒤에 꿈이 생겼다. 내가 갔을 당시에는 알모도바르 회고전이 열리고 있었는데, 4층에서 7층까지 알모도바르가 관여한 디자인으로 꾸며져 있었다. 죽기 전에 내 영화도 그곳에서 상영됐으면 좋겠다.

이경미 감독 영화 공부를 늦게 시작했다. 못 본 영화가 너무 많다. 시네마테크를 통해 내가 못 본 영화를 많이 보면서 흥분을 느꼈다. 힘을 받고 새로운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욕구도생겼다. 많은 사람들이 시네마테크에서 좋은 영화를 보기 위해서는 좋은 공간과 안정적인 운영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글_김도형 기자(무비스트)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