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브롤은 현실과 주류 영화를 통렬하게 풍자한다 -<야수는 죽어야 한다> 상영 후 이명세 감독 시네토크

2017. 5. 16. 11:42회고전/클로드 샤브롤 회고전

[클로드 샤브롤 회고전]


샤브롤은 현실과 주류 영화를 통렬하게 풍자한다

- <야수는 죽어야 한다> 상영 후 이명세 감독 시네토크




김성욱(프로그램디렉터) 프랑스 문화원 시절에 영화들을 보고 다니던 사람들이 고다르, 트뤼포를 얘기할 때 이명세 감독은 유난히 샤브롤 얘기를 많이 했다고 들었다.

이명세(감독) 1970년대 말 불란서문화원의 시네 클럽에서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봤었다. 장 뤽 고다르, 프랑수아 트뤼포, 에릭 로메르, 장 피에르 멜빌의 영화들을 상영했다. 이 감독들은 당시 영화인들에게 굉장히 중요한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그때는 고다르를 얘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절이었다. 샤브롤의 영화가 재밌고 좋은데 샤브롤을 얘기하면 조금 무식해 보이는 분위기가 있었다(웃음). 누구나 그렇듯 나도 추리와 서스펜스 장르에 관심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샤브롤은 좀 독특했다. 살인이 벌어지는데 시각적으로 드러나지는 않고 이상한 유머도 쓴다. 긴장감을 강조하기 위해 주류 영화와는 다른 방법을 쓰는 것 같았다.


김성욱 샤브롤 영화는 오프닝이 흥미롭다. <야수는 죽어야 한다>에서 자동차에 꼬마 아이가 치이는 장면이 딱 세 개의 커트로 되어 있다. 그 장면이 갑작스럽게 등장하는데, 굉장히 과감한 연출이라는 생각이 든다. 줌의 활용도 특별하다.


이명세 클로드 샤브롤은 줌을 특이하게 많이 사용한다. 특히 60~70년대에는 줌을 안 쓰는 경향이 있었다. 줌을 쓰면 뭔가 촌스럽고, 소위 ‘작가’가 아니라는 분위기가 있다. 그런데 샤브롤은 그런 걸 비웃듯이 거칠게 보이는 연출을 많이 한다. 영화 후반부에는 샤를이 벽돌을 들었다 놓는 장면에서 줌과 패닝이 거칠게 들어간다. 블랙코미디 같다. 줌이 만드는 거친 느낌과 점프 컷의 조화, 그 불협화음이 좋았다.

전체적으로 진지한 영화 같은데, 뭔가 이상하다. 코미디 장르의 연극으로 만들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샤를이 폴의 정비소에서 증거를 찾으려 부품을 뒤적거리는 장면도 그렇다. 연기를 과장되거나 우스꽝스럽게 하는 것도 아닌데 유머가 있다. 관객을 가지고 논다고 말하면 좀 이상하지만 영화와 관객 사이에 오가는 상호작용이 존재한다.

특히 거실 장면에 블랙코미디적인 요소가 짙다. 폴의 어머니가 무척 인상적이지 않나. 며느리를 조롱하는 웃음도 그렇고 기괴한 느낌이 있다. 저 인물로 인해서 무언가 이상한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느낌을 준다. 단순히 하나의 스릴러 서스펜스가 아니라 전체적으로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 집중하게 만든다.



김성욱 이 영화의 마지막에 관해서 논란이 조금 있었다. 실제로 기자가 샤브롤에게 묻기도 했다고 한다. 누가 폴을 죽였냐는 것이다. 그때 샤브롤은 “샤를이 폴을 죽인 장면을 당신은 보지 않았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명세 『오리엔트 특급 살인』처럼 모든 사람이 폴을 죽였을 것 같지 않나?(웃음) 살인이 일어난 다음 TV 뉴스가 이 사건을 보여준다. 이때 폴의 엄마를 제외한 TV 화면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의 표정이 전형적인 미스테리 연극처럼 그려진다. 폴을 죽일 이유가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사실 폴의 엄마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폴을 죽일 수 있는 사람들이다. 영화가 진짜 범인을 말하고 싶지 않아 하는데 누가 범인이냐고 따지는 건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김성욱 말씀하신 대로 폴은 죽인 진범에 대한 질문은 이 영화의 핵심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레스토랑 장면에서 샤를과 엘렌은 굉장히 진지한 이야기를 하고, 그때 식탁에서는 웨이터가 닭을 자르고 있다. 이야기의 시간을 보면 그때 아마 폴이 죽어 가고 있었을 것이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이 레스토랑 장면이 샤를이 폴을 죽이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명세 아주 클리셰적인 장면이다. 살인과 육식이 붙는 건 몽타주의 전형이다. 살인 후에 야채를 먹는 장면은 없지 않나(웃음). 그 당시에 만들어졌던 영화들, ‘주류 영화’들을 함께 놓고 생각하면 샤브롤이 무엇을 의도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냉소적인 시선이 있는 장면이라 생각한다.


김성욱 후반부에 모리스 피알라 감독이 형사로 등장한다. 영화를 찍을 수 없던 시절에 연기를 했었는데, 영화 속 그의 인상은 잊을 수가 없다. 그가 샤를이 일기를 쓴 이유가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냐는, 위장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 말을 듣고 생각해보면 이 영화에서 샤를의 나레이션이 자기 고백이 아니라 알리바이 그 자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내레이션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아직 모르겠다. 이상한 말이지만, 샤브롤은 명확하면서도 모호한 영화를 찍고 있다. 명확해 보이지만 자꾸 생각하면 모호하다. 감독님도 잠정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다 살인자일 수 있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샤브롤에 관한 평을 썼던 외국의 평론가는 ‘범죄의 평등성’이라는 말을 쓰기도 했다.


이명세 샤를은 마지막 편지에서 마치 스스로 목숨을 끊을 사람처럼 말한 다음 바다로 떠난다. 그런데 그 장면 자체만 보면 바다가 너무 반짝거린다. 그냥 여행을 떠나는 것 같다. 마지막 그 편지조차 알리바이로 보이기도 한다. 샤를은 처음 등장할 때도 가명으로 등장한다. 이후 자신의 진짜 이름을 드러냈다고 하는데, 그 본명의 진위를 영화 안에서 밝힐 수 없다. 그런 점에서 마지막 장면조차도 관객에게 내세우는 알리바이로 볼 수도 있다.

관객 범죄를 다루는 영화들을 보면 감독이 그 대상에 대해 취한 태도나 시선이 특히 도드라져 보인다. 영화 안에서 잔혹한 일을 묘사하는 것과 현실 안에서 일어나는 일 사이에는 간극이 존재하는 것 같다.

이명세랙코미디적인 이야기들이 있다. 어떤 사람이 목을 매달아 죽으려고 했는데 도중에 의자가 부러지는 바람에 넘어져 죽었다, 같은 이야기들. 요즘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더 영화 같아서 시나리오를 못 쓰겠다고 말하는 주변 사람들도 비슷한 맥락이다. 사실 우리가 어떻게 현실에서 살인을 볼 수 있겠나. 실제 인생은 그렇지 않은데 우리는 영화 안에서 항상 살인과 같은 비일상적 요소들과 계속 마주친다. 샤브롤은 이런 이상한 전형성을 통렬하게 풍자한다.

김성욱 사실 샤브롤의 황금기는 아주 초반에 끝났고 이후 1967년에서 1978년 사이의 시기를 2차 전성기라고 한다. 2차 전성기의 샤브롤은 한 명의 제작자와 계속 작업했다. 이때 샤브롤이 계속해서 영화를 찍을 수 있었던 건 그 특별한 제작 환경의 영향이 크다. 샤브롤은 ‘감독은 계속해서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지조를 가지고 있었다. 이명세 감독님도 샤브롤의 입장에 맞는 분이라는 개인적인 느낌이 있다. 작품을 기다리고 있다.


이명세 내년까지는 꼭 새 영화를 보여드릴 수 있도록 하겠다(웃음).


일시 I 3월 31일(금) 오후 7시 30분

정리 I 황선경 자원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