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7일, 하이메 로살레스와 왕빙의 서신교환 프로젝트를 상영한 후 장병원 평론가와 정지연 평론가의 ‘비평교감’이 이어졌다. 두 평론가 모두 오랜 시간 영화 매체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최근 한국 영화비평 풍토에 대한 솔직한 느낌과 영화 비평의 역할에 대한 각자 다른 견해를 들려주었다.

 

 

 

장병원 : 왕빙의 <철서구>와 <중국 여인의 연대기>를 본 적이 있다. 왕빙은 어떤 특별한 장소나 공간에 사는 사람들의 삶에 관심을 갖는 것 같다. 요즘 세상에 이런 삶이 있다, 라고 적극적으로 질문을 던지지는 않지만 기록하고 보존하고 의미를 묻는 경향이 있다. 대상에 대해 지시적으로 의미를 주거나 판단하지 않고, 그의 삶으로 깊이 들어가서 응시하게 하는 방법론이다. 로살레스의 ‘붉은 땅’은 왕빙의 ‘행복한 계곡’에 대한 응답으로 폐광촌의 과거와 현재가 시간적-공간적으로 어떻게 연결되고 분리되어 있는지에 대한 관심을 공유하는 작업이다. 로살레스는 공항 에피소드에서 사운드와 이미지를 동기화 시키지 않고 계속 분리해서 보여준다. 소리가 들리긴 하는데 기원이 어디인지 알 수 없고, 카메라가 쇼트의 커팅 없이 평면적으로 훑어간다. 그것을 적극적으로 영화에 활용하고 심지어 영화 작동의 기제를 드러냄으로써 영화 형식이나 이미지와 사운드, 명확한 카메라의 존재를 통해 관심사를 표현한다. ‘붉은 땅’에서도 이것을 구조화해서 보여준다.

 

정지연 : 왕빙 작업의 맥락을 모른다면 중국내에서 전(前)근대화된 공간, 즉 산업화 되지 못한 소외된 공간을 타자화 시키는 것 같아서 약간 불편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예전에 서구인들이 제3세계의 독특한 삶에 카메라를 들이대며 그들의 삶을 타자화 시키고 스펙터클로 찍던 것과는 분명히 다르다. 하지만 그 맥락은 ‘행복한 계곡’만으로는 충분히 드러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로살레스의 작업이 조금 더 친절하지 않았나 싶다. 그는 ‘붉은 땅’이라는 폐광촌의 풍경들을 과거-현재-미래의 화석화된 공간으로 담아 왕빙에게 응답하는 친절함을 보인다. 또한 첫 번째 에피소드인 공항 에피소드를 그의 영화 <고독의 편린>과 연결시켜 생각해보면 이 감독은 영화라는 매체의 형식성이나 자의식을 굉장히 강하게 어필한다. 롱테이크로 한 쇼트를 계속 쓰되 포커스를 달리 하면서 비물질적인 쇼트 개념을 만들어 내는 면에서 영화적 형식에 대한 탐구가 돋보인다.

이제 우리도 비평교감을 해보자. 비평이 어떤 지점을 고민하는지, 혹은 현재 비평가로서 어떤 걸 고민하는지 이야기해봐야 할 것 같다. 어떻게 비평가가 됐나?

 

 

 

 

장병원 : 나는 기자로 출발했는데 그때부터 한국 영화비평의 풍토에 대한 고민을 했고 지금여전히 같은 환경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비평에 대한 문제의식은 비평이 특성별로 분화가 잘 안 돼 있고 섞여 있다는 점이다. 지난 10년간 영화에 대한 담론을 만들어내고 비평적 의제들을 제출해낸 것은 거의 저널리즘 비평이다. 하지만 그것은 좀 더 본격적인 의제나 깊이 있는 영화분석이나 문제의식 있는 글들을 소화할 수 없다는 점에서 분명 한계가 있다. 저널리즘 비평에서 제대로 된 비평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매체별로 분화가 되어야 하는 것들이 모호하게 섞여 있는 게 문제다. 본격적으로 깊이 있는 영화적인 의제와 담론을 형성할 수 있는 비평이 필요하다면, 기존의 저널에 기대기보다는 명확히 분리된 다른 형식의 매체를 고민해봐야 한다. 그전에 독자적인 매체 또는 본격적인 비평저널이 가능한 상황인지도 질문해봐야 한다.

 

정지연 : 현재는 본격적인 비평을 쓸 수 있는 저널도 부족하고, 그런 식의 글을 썼을 때 독자들과 커뮤니케이션이 되는 지도 모르겠다. 이러다 보니 한국에서 영화 평론가라는 직업이 어떤 위상을 갖는지, 혹은 한국에서 영화비평이라는 것이 충무로나 독립영화 진영에 과연 생산적인 담론을 제공하는 역할을 했는지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돌이켜 보면 비평가들에게 한국영화는 늘 위기였다. 현재는 대기업 중심의 산업 획일화와 거대화에 따른 다양성의 상실과 관련해서 여전히 위기 담론이 유효하다. 하지만 그 우려와 다르게 한국 영화는 잘 발전해왔다. 정작 늘 위기를 이야기했던 평론가들은 자신들의 위기를 스스로 파악하지 못했다. 그런 만큼 한국에서의 평론가로 산다는 것과 한국 영화비평의 지형에 대한 이야기는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또 요즘 유명한 영화 평론가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사람들이 주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보면, TV나 여러 매체에 나와 개봉 영화에 대한 가십 차원의 이야기를 던지며 영화 홍보를 하고 있다. 과연 이것이 영화 평론가가 할 일인지에 대해서도 고민이 된다.

 

장병원 : 상통하는 맥락의 이야기다. 나는 영화에 대해서 아주 가볍게 소비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영화 평론가나 저널리스트들의 행위가 허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것들과 본격적인 영화비평의 경계가 흐려졌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이제라도 이 고착화된 풍토를 분화시켜야 한다. 비평적 저널을 하면서 영화 평론가가 재생산 구조를 가지고 생계를 유지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 자본이나 대중과의 친화력을 고려하지 않는 상태에서 본격적인 영화 담론이나 비평적 의제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연합이 있어야 한다. 어떤 의제를 가지고 비평과 관련된 새로운 매체를 할 수 있는지도 문제지만 어떤 형식과 어떤 형태로 결합해야 하는 지를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정지연 : 주제를 바꿔, 영화마다 고민의 지점들이 다양하기 때문에 평론가로서 영화를 어떤 관점에서 보는지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먼저 말하면 나의 경우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새로움이다. 새롭다는 것은 최근 영화나 첨단 디지털 영화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형식의 혁신적인 새로움이다. 이런 맥락에서 초창기 영화는 지금 봐도 놀라운 영화가 있다. 스스로 매체의 자의식을 인식하고 자신의 표현영역의 한계를 끊임없이 확장하려는 영화들은 항상 흥미롭다. 다른 하나는 사유나 성찰의 계기를 던져주는 영화이다. 형식적으로 진부할 지라도 묵직한 주제의식이나 사유를 던져주는 영화가 있다. 온전히 새로운 사유를 던져주기도 하지만, 내가 고민하고 있는 부분을 담고 있을 때가 있다. 이런 두 가지 경우가 흥미를 주고 글을 쓰게 하는 동력이 된다.

 

장병원 : 나도 두 가지 관점이 있다. 기본적으로 영화의 형식을 중요하게 보는 편이다. 평론가들이 글을 쓰게 되는 계기는 다 비슷한 것 같다. 그게 정서적인 것일 수도 있고 흥미로운 영화의 구조를 해명하고 밝혀내려는 지적인 욕구일 수도 있으며, 자신의 세계관이나 시선과 절묘하게 접속되는 영화들에 적극적으로 말을 걸어서 증명하려는 욕망일 수도 있다. 그 과정은 논증이다. 비평은 왜 그런 정서나 감정을 느꼈는지를 과학적으로 밝혀내고 입증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영화를 보는 두 번째 관점과 이어진다. 내가 저항감이 생기는 한국 영화비평의 풍토 중 하나는 비평이 어떤 영화를 판단하기를 바란다는 점이다. 어떤 영화가 좋은지 혹은 나쁜지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으면 안 되는 분위기가 있다. 하지만 그에 앞서 영화가 가지고 있는 형식적인 특성이나 구조를 중립적이고 객관적으로 분석하는 것이 필요하다. 비평가의 일차적인 임무, 혹은 본격적인 영역은 텍스트의 구조나 형식을 밝혀내는 것이지 판관의 위치에 서는 건 부차적인 것이다.

 

정지연 : 그 부분은 이견이 있다. 엄밀히 분석하고 논증하고 해부하는 작업은 중요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불호를 이야기하는 것은 중요하다. 내가 쓰는 글은 영화가 좋을 때 왜 좋은지,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아서 불편할 때 왜 그런지 밝혀내는 글이다. 그래서 싫거나 좋거나가 뚜렷하다. <까이에 뒤 시네마>나 <포지티프>의 예를 들면, 그 매체들은 자신들에게 관심이 없는 영화는 애당초 다루지 않는다.

 

장병원 : 한국 영화비평의 풍토에서 매체의 정체성을 놓고 보자면 명확한 입장과 노선에 따라 지지와 비판을 선명하게 내세우는 게 그 매체와 독자들에게 중요하다. 다만 개인이 독립적으로 글을 쓸 때는 그것은 다른 문제다. 즉 영화에 대한 옹호의 지점은 영화의 실체를 밝히는 작업 이후에 이뤄져야 한다. 자신의 관심사에 대해 집요하고 지속적으로 하나의 흐름들을 갖고 의식적으로 글을 써내야 한다. 하나의 화두를 물고 늘어지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것이 영화의 실체를 밝히는 작업이다.

 

정지연 : 영화 연구자 그리고 영화 평론가로서 화두는 모두가 똑같을 것이다. 오늘날 영화가 우리에게 무엇인가. 그리고 이것을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사례들을 통해 어떻게 볼 것인가이다. 내 관심은 연구자적 관점에서는 영화의 형식. 그리고 또 하나는 영화의 책무이다.

 

장병원 : 마지막으로 한마디 더 하자면, 비평적인 의제를 만들어 낸다고 하는 것이 어렵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영화 평론가들이 다들 개별적으로 뿔뿔이 흩어져 약진하고 있다. 공동의 모색을 하거나 교류할 수 있는 장이 필요하다.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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