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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아트시네마 소식

"문광부가 문화예술 다 말아먹네"

[뉴스메이커] 문화연대 주최 문화행정 토론회, "불법 비리 판치는 문화행정"

이명박 정부와 문화체육관광부(문광부) 유인촌 장관 하의 한국 문화행정에 대해 문화예술계 당사자들은 과연 어떤 평가를 하고 있을까. 문화연대가 주최하고 최문순 의원실(민주당)에서 후원하여 2월 9일 낮 1시 30분에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토론회는 '상식과 민주주의가 실종된 이명박정부 문화행정'이라는 제목을 달고 진행됐다. 현재 문화예술계 전반에 걸쳐 계속되고 있는 파행행정의 양상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제목이다.

▲ ⓒ프레시안

이번 토론회의 발제를 맡은 문화연대 이원재 사무국장은 발제 첫 머리에서 "이 정부의 여러 가지 문제들 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는 스스로 법을 어기고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이 정부의 문화행정 역시 불법과 탈법, 비리로 얼룩져 있다는 얘기다. 이 자리에서 거론된 굵직한 사건들만 해도 문화예술위원회(문예위) 사태,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의 부당한 공모심사와 시네마테크에 대한 공모제 전환 시도, 예술인회관 건립에 관련된 각종 비리, 국립극장 법인화, 그리고 한국작가회의에 대한 '확인서' 요구 등, 분야와 종류를 가리지 않았다.

그러나 토론회의 분위기가 마냥 어둡고 침울한 것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중간중간 웃음이 일었고, 때로는 폭소도 터졌다. 이는 현 정부 하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태들이 심지어 '비판의 대상'도 못 되는 수준으로 조롱과 비웃음을 사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토론회 말미에 마이크를 잡은 김정헌 문화예술위원회(문예위) 위원장은 유머러스한 발언으로 장내에 큰 웃음을 안겼다.

특히 최근 언론을 통해 이슈가 되고 있는 영진위의 공모심사에 대하여, 이원재 문화연대 사무국장은 "영진위가 시민으로부터 미디액트를 훔쳐갔다"고 표현했다. "조희문 위원장의 주도 아래 이번 공모가 비리에 가까운 수준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정부 사업이 아니라 민간에서 자기 돈 들여 잘해온 사업을 그간 지원만 해왔던 상황에서 갑자기 공모제를 하겠다고 나선 것부터가 옳지 않은 일"이었고, "그럼에도 공모제를 시행하겠다면 이는 이후 정책적 보강이 이뤄져야 한다는 전제 하에 시행됐어야 한다"고 이원재 사무국장은 주장했다. "공모제의 핵심은 누가 선정되느냐가 아니라, 사업자로 선정된 주체가 좀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어떤 정책적인 성과나 비전이 제시되느냐"인데 전혀 그렇지 못했다는 게 이원재 사무국장의 지적이다.

결국 그의 주장에 의하면 이번 공모제는 "실패가 예고된" 것이었다. 이전 사업자였던 미디액트(현 (사)한국영상미디어교육협회)가 그대로 선정됐다 해도 결국 공연한 낭비에 불과한 셈이 되었을 것이며, 영상미디어센터와 관련한 성과나 실적이 전혀 없는 (사)시민영상문화기구가 선정된 현재 "잘하고 있던 이들을 그저 흔드는 작업에 불과했을 뿐, 이전의 성과가 이어지지 못한 채 모든 것을 제로 베이스로 돌리는" 결과가 됐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 심사과정 자체에 대한 의혹은 시간이 갈수록 증폭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원재 사무국장은 "조희문 위원장은 수년 전 열린 한 토론회에서 내 바로 옆자리에 앉아 영진위라는 기구 자체에 대한 회의와 반대를 표명했던 인물"이라면서, "그런 이가 위원장직을 맡아 비리에 가까운 공모를 진행하면서 법적으로도, 윤리적으로도 모순을 저질렀다"고 비판했다.

▲ 토론자로 나선 미디액트 김명준 소장(왼쪽)과 서울아트시네마 김성욱 프로그래머.ⓒ프레시안

토론자로 나선 김명준 미디액트 소장도 이번 영진위의 공모심사에 대해 "잘못 짠 고스톱"이라고 일갈했다. 1차에 지원서를 냈던 문화미래포럼과 비상업영화기구과 사실상 다를 바 없는 조직이 거의 같은 내용의 사업계획서를 재공모에 제출해 꼴찌에서 순식간에 1위를 차지한 데다, 재공모 심사위원 5명 중 2명이 문화미래포럼과 비상업영화기구에 속해있는 인사였기 때문. 또한 미디액트에 대해 국제적인 탄원서가 밀려오면서 조희문 위원장이 지난 2월 4일 영문으로 공식 답변을 한 내용에 대해서도 "기자회견에 이어 답변서까지 국제적인 망신을 스스로 자초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조희문 위원장은 공식 답변에서 "미디액트가 지난 기간 동안 훌륭히 사업을 수행해왔고 더 높은 단계로 올려놓았다"고 글을 시작했다가 갑자기 논리를 비약해 "공모제를 시행했고 그 절차가 투명했다"고 주장했기 때문. 실제로 본지 2월 5일자에 텍사스주립대 저널리즘스쿨 최진봉 교수가 기고한 글 역시 이같은 국제사회의 반응을 전해주고 있다. (▶관련기사 참조 : 이명박정부 망신살, 미국까지 뻗쳤다)

한편 영진위가 독립영화전용관과 미디어센터에 이어 시네마테크마저 공모제로 사업자를 선정하겠다는 입장을 공공연히 밝히고 있는 가운데, 토론자로 나선 서울아트시네마 김성욱 프로그래머는 "과연 영진위가 시네마테크를 공모하는 것이 정당하고 책임있는 일이냐"며 강력하게 문제제기를 했다. 시네마테크를 공모한다는 발상이 전세계에서 유례없는 일인 것은 물론, 가까이는 부산시에 의해 건립된 시네마테크부산조차 공모제로 운영되지 않는다는 것. 김성욱 프로그래머는 애초 2007년부터 가시화된 영진위의 '다양성영화 복합상영관' 건립 계획이 2009년 다름아닌 영진위 때문에 좌초했음을 환기시키는 한편, "최근 영진위의 행보가 영화를 진흥시키기는커녕 정책과 철학의 부재만을 보여주며 기관의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같은 영진위의 행보는 결국 "예술가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이라는 경고도 잊지 않았다.

▲ 최근 법원으로부터 '해임 취소' 판결을 받고 문화예술위원회에 '출근 투쟁'을 시작한 김정헌 위원장. 그는 토론회 자리에 참석해 "문광부가 시켜서이긴 하지만, 오광수 위원장이 결과적으로 40억을 날려버린 만큼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프레시안
문제는 이같은 파행과 탈법이 비단 영진위만이 아니라, 우리 문화예술계 전반에서 벌어지고 있어 문광부의 책임이 막중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정헌 위원장이 서울행정법원으로부터 '해임처분 취소' 판결을 받고 문예위에 다시 출근을 시작해 '한 지붕 아래 두 위원장' 사태가 벌어졌음에도 유인촌 장관은 "재밌지 않겠어?"라는 반응을 보여 다시 한 번 충격을 안겼다. 신재민 차관은 법원의 판결에 대해 "직위는 인정하지만 권한은 없다는 내용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해괴한 논리를 댔다. 이 사태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문광부가 책임지는 자세는커녕 오히려 방관의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영진위의 심사 공모 의혹 논란과 관련해서도 신재민 차관은 "영진위의 기자회견 당시 해명에 별 문제점이 없다"고 말하며 부당선정 논란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MB정부 이전부터 국, 공립예술기관이 연달아 법인화, 민영화하면서 문화의 공공성은 오히려 후퇴하고 예술노동자들의 권리는 계속 축소되고 있는 등 부작용이 속출하는데도, 문광부가 지속적으로 국립극장을 법인화하려 드는 것 역시 공공문화 부문 전반에 대한 철학과 정책의 부재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예술인회관 건립 역시 감사 결과 지원금의 부적절한 사용과 사업을 맡은 예총 측의 횡령 등의 문제가 드러나면서 지원금 환수조치가 취해졌음에도, 문광부와 국회 문방위가 오히려 지원 예산을 증액시키고 또 다시 사업을 예총에게 맡긴 것도 납득할 수 없는 대목들이다.

결국 이 날의 토론회는, 문화예술에 대한 중장기적 안목과 비전은커녕 그 어떤 철학과 정책도 없이 누구도 제대로 책임지지 않은 채 밀어부치기 식으로 강행되는 우리 문화예술계 행정이 적나라하게 고발된 자리였다. <아바타>의 전세계적 흥행에 누구나 3D를 입에 올리며 호들갑을 떨고 있지만, 정작 문화와 예술을 떠받치는 가장 기본적인 인프라는 수습하기 어려울 정도로 망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그 중심에 바로 문광부가 있다.
/ 김숙현 기자 (프레시안 무비)


[출처] 프레시안 무비 2010년 2월 9일자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100209194619&Section=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