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스콜세지와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말하는 버드 보티커



마틴 스콜세지가 말하는 <외로이 달리다>

- “느리고, 무심하고, 조용하고, 친밀하게”


<외로이 달리다>의 외로운 주인공 스콧은 자신의 역할을 완벽히 해낸다. 나는 세상이나 만물로부터 홀로 동떨어져 있는 이 영화의 인물을 많은 젊은 배우들에게 레퍼런스로 언급하곤 한다. 서부영화 역사의 정수에 있는 이 방랑자 loner라는 역할은 황야 한복판에서 본인의 의지로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낸다. 당신은 방랑자라는 개념이 미국이라는 나라의 역사에서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지 질문할 수 있는데, 이는 미국인들이 자신의 나라에 대해 갖고 있는 신화적 개념의 큰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는 최초이자 가장 유명한 예로는 허먼 멜빌의 『백경』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외로이 달리다>는 서부영화로서도 중요하지만 니콜라스 레이의 <어둠 속에서 On Dangerous Ground>(1952)나 폴 슈레이더가 각본을 쓰고 내가 연출한 <택시 드라이버>(1976)와 같이 도심을 배경으로 한 영화들에게도 중요한 작품이다.


방랑자가 지역사회와 가까워지기 위해 공동체에 적응하려 노력하고 상실과 상처를 극복하는 내용은 <외로이 달리다>의 강력한 요소 중 하나이다. 스콧은 아내를 목 매달아 죽인 남자를 찾아 복수하는 현상금 사냥꾼인데, 이는 안소니 만의 <운명의 박차 The Naked Spur>(1953)에서 제임스 스튜어트가 자신의 동생을 죽인 자를 찾아 다니는 내용과 비슷하다. 그러나 이때 두 영화의 주인공들이 복수를 함으로써 자신이 치루어야 할 대가를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이 두 영화의 핵심이기도 하다. 보티커가 프레임을 디자인하는 방식, 즉 여백을 남기는 방식과 그의 미니멀리즘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어떤 이는 1.33:1 이나 1.85:1 의 화면비가 더 ‘통제된 confine’ 느낌을 줄 것이라 말하지만 보티커는 스크린을 열어 젖혀 더 많은 여백을 사용한다. 이를 통해 그의 미니멀리즘이 강조되는데, 나는 그 정도의 넓이를 사용하는 것을 개인적으로도 선호하는 편이다.




<외로이 달리다>와 <코만치 스테이션>(1960)은 시네마스코프 화면비율과 그 여백을 통해 서사시적인 감성을 더할 뿐 아니라 ‘덜 구성해 더 펼쳐지게’ 만든다. 넓은 스크린의 남은 공간은 캐릭터를 더욱 외롭고 아주 작게 만들기도 하지만 <외로이 달리다>의 결말은 두 개의 매우 강력한 감정을 동시에 보여줌으로써 독특한 힘을 지닌다. 복수의 각오에 대해 말하자면, 나는 이 영화가 복수를 비극으로 제시하고 있으며 이를 여러 번 암시한다고 믿는다. 복수는 수세기 동안 일반적이면서도 모든 이들의 심장 가까이에 있던 주제로서 특히 ‘불타는 나무’ 장면은 인간의 중요한 본성을 보여준다. 그리고 벤을 연기한 랜돌프 스콧이 자신의 십자가인 ‘그 나무’를 불태워 버리는,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을 하고 마는 장면은 특히 인상적이고 아름답다. 왜냐하면 벤은 단지 그의 아내가 죽었던 나무를 없애버리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자신의 복수를 함께 없애기 때문이다. 그는 복수를 그만둠으로써 스스로 평온을 얻는다.


이를테면 <천국의 나날들>(테렌스 맬릭, 1978)에서 아내가 자신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자 농장에 불을 지르던 샘 셰퍼드나, <스펜서의 산 Spencer’s mountain>(델머 데이비스, 1963)에서 아들을 대학에 보내기 위해 자신의 꿈의 집을 파는 주인공, 또는 <차이나 9, 리버티 37 China 9, Liberty 37>(몬테 헬만, 1978)에서 결혼을 시작하며 그들의 집을 불태워 버리는 워렌 오티스와 제니 아구터 Jenny Agutter 같이 우리가 꿈꾸던 환상의 무언가를 파괴해 버리는 행위는 매우 강렬한 인상을 준다. 많은 영화들이 훌륭한 오프닝 장면을 갖고 있고 당신은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장면에서 감독과 작가의 생각을 볼 수 있다. 이건 어떤 출발점이지만 이 한 장면에 의미를 부여한다고 해서 모든 다른 장면들이 여기에서 시작한다거나 이 장면으로 다시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버드 보티커와 랜돌프 스콧의 영화에서 좋은 점은 영화 속 인물들 사이의 복잡한 그물망을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사이 느리고, 무심하고, 조용하고, 친밀하게 영화를 전개시킨다는 것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말하는 <코만치 스테이션>

- “그의 영화에는 예법이 있다”


물론 1930-40년대, 더 나아가 1950년대 영화에서 서부극은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만일 1950년대 당시의 장르가 어떠했는지 궁금하다면 버드 보티커는 그 시대에 아주 잘 맞는 감독이고 주목하기에 좋은 사람이다. 그가 일해야 했던 당시 상황들을 고려해볼 때 그는 꽤 좋은 작품들을 만들어냈다. 그는 막대한 자본을 이용하지 않았고, 그의 가장 큰 스타는 랜돌프 스콧이었으며, 정말 짧은 시간에 영화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느꼈던 것 같다. 버드 보티커가 큰 규모로 만든 영화들을 포함해 그가 만든 모든 영화를 다 봐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는 몇몇 따분한 영화들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영화 속 여자들은 어떤 박해나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길게 늘어뜨린 머리를 하고 있으며, 언제나 모든 것이 아름답게끔 많은 화장을 했고 립스틱을 칠했다. 남자들 역시 언제나 멋지게 땀을 흘리는 등 어찌 보면 현실성이 없는 것들이 가능한 시대였다. <셰인>(조지 스티븐스, 1953) 같은 대작에서도 그렇듯 인테리어와 밝은 조명 등을 보면 저 많은 전등들이 어디서 왔나 싶다. 내가 최근 들어 본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코만치 스테이션>(1960)이다. 랜돌프 스콧은 극 중에서 외로운 남자로 나온다. 보티커의 ‘프레이밍’ 방식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고, 감독은 엄청난 클로즈업을 사용해 모든 것을 넓은 스케일로 잡아내며 실제보다 더욱 크게 찍는다.


나는 그가 야외를 배경으로 한 것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인테리어가 많이 들어간 것이 아닌, 그저 휘트니 산에 있는 알라바마 언덕의 베이스캠프에서 촬영했다. 이곳은 <건가 딘 Gunga Din>(조지 스티븐스, 1939) 등 그 시기의 서부영화들을 많이 촬영했던 훌륭한 장소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오지의 땅에서 빠른 속도감과 바위 지대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감독은 스콧과 그 사내의 주변을 언제나 감싸고 있는 광활한 풍경을 잘 이용했다.



랜돌프 스콧은 흥미로운 배우였다. 그는 큰 키에 안정적인 사람이었지만 서부에서 그럴듯하게 믿음이 가는 악센트를 구사했다. 그는 다른 남자들처럼 도시적인 말투를 쓰지 않고 일반적인 지역 특유의 발음을 구사했고, 그것은 언제나 확실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듯하게 느껴졌기 때문에 보티커에게 언제나 좋은 주연이었다. 그리고 <코만치 스테이션>의 중요한 악당인 스킵 호마이어나 그레고리 펙과 같은 견고한 연기력을 가진 훌륭한 조연들이 출연했고, 이들은 보티커의 작품에서 연기 활동을 시작했다. 그 당시, 특히 그 시대의 서부지역에서는 상당히 일반적인 예법 Code of Honor 이 있었다. 영웅은 언제나 과묵했지만 다른 이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한 준비가 돼 있었다. <코만치 스테이션>에서도 주인공은 처음 보는 한 여인을 구해주는데, 이는 과거에 갖고 있던 누군가를 향한 연민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나는 그 예법으로 인해 주인공의 과거와 관계가 있든 없든, 그의 감정이 점점 더 달아올랐다고 추측해 본다.


나는 물론 하워드 혹스나 존 포드와 마찬가지로 버드 보티커와도 함께 일해 보고 싶었지만 그들은 은퇴했거나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그럴 기회를 얻지 못했다. 나는 세르지오 레오네와 같은 젊은 이탈리아 감독과 작업했고, 레오네 역시 이러한 감독들에게 영향을 받았다. 그는 이탈리아 출신으로 영어를 못했지만 그 시대의 감독들과 보티커의 영화를 보며 자라왔다. 그 당시 감독들은 서부극 장르에 관해 레오네에게 매우 큰 영향을 주었던 것이다.


동시상영(※한 편의 입장요금으로 ‘메이저’ 영화와 ‘B무비’를 동시에 볼 수 있었던 상영 방식-편집자 주)이 활발했던 시기에 두 번째 상영작은 대개 말을 타고 총을 쏘는 서부극이었고, 그중에는 정말 재미있고 좋은 영화들이 많았다. 어떤 면에서는 오락의 차원도 있지만, 영화를 좋아하는 당신에게 그 영화들은 역사적으로 대단한 영화 cinema 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려주고 그 당시의 영화들이 어떠했는지 알려줌으로써 오늘날의 영화와 얼마나 다른지 비교하게 하는 등 여러 가지 의미로 볼 만한 가치가 있다. 요즘 장르 영화들은 그대로 믿어질 만큼 사실적으로 만들어지지만, 언제나 외로운 사내가 넓은 서부의 황야를 말을 타고 달리던 그 시대에는 그 시대만의 예법이 있었다.



번역│권세미 관객회원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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