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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0주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Review

[리뷰] <허공에의 질주> - ‘소년’ 리버 피닉스의 얼굴


관객들의 선택 - 허공에의 질주 Running on Empty


1988│116min│미국│Color│35mm│15세 관람가

연출│시드니 루멧 Sidney Lumet

출연│리버 피닉스, 크리스틴 라티, 주드 허쉬

상영일ㅣ 1/28 17:00, 2/5 17:30

‘십대’를 키워드로 고른 열 편의 영화 중 관객들의 온-오프라인 투표에서 가장 많은 지지를 얻은 작품을 상영하는 섹션.



‘소년’ 리버 피닉스의 얼굴



베트남 전쟁 당시 급진주의자 그룹에 속했던 아서와 애니는 네이팜탄 연구 실험실을 폭파한다. 그 사건으로 건물에 있던 경비가 실명하고 이후 15년 동안 두 사람은 FBI로부터 도주 중이다. 영화의 이러한 설정은 실제 1970년에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는 청년들이 일으킨 대학 연구소 폭파 사건에서 모티브를 빌려온 것으로 보인다. 시드니 루멧은 <12인의 노한 사람들>(1957), <형사 서피코>(1973), <뜨거운 오후>(1975) 등, 사회적 문제를 다룬 영화들을 만들며 실제 사건이나 인물들로부터 영감을 얻었다.


하지만 실제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해도 <허공에의 질주>에서 전개되는 이야기는 폭파 사건이 아닌 그 이후다. 영화에 등장하는 갈등은 불안정한 사회와, 그로 인해 폭파를 감행한 개인 사이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갈등이 생겨나는 건 가족 안에서다. 폭파 사건 이후 15년이 지났다. 아서와 애니, 그리고 두 아들 대니와 해리는 6개월마다 거주지를 옮기고 이름과 머리색, 눈동자 색깔을 바꾸면서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지켜냈다. 그렇지만 대니는 이제 17살이다. 곧 가족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는 나이. 6개월 뒤면 대학에 갈 수도 있다. 대니에게는 엄마인 애니로부터 물려받은 음악적 재능이 있다. 아서는 대니가 독립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FBI에 쫓기는 처지에, 아들이 가족을 떠나면 그들은 다시 만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갈등을 고려했을 때 <허공에의 질주>를 성장영화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하나의 세계에서 또 다른 세계로의 이행을 성장이라고 한다면, 대니는 부모가 경험하고 확정지어 준 세계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세계를 선택하며 성장의 기회를 얻는다. 그런데 사실 영화 안에서 비춰지는 외부 세계는 아서와 애니의 신념과 달리 악의 소굴처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수사망을 피해 도망 다녀야 하는 그들 가족의 삶보다 평화롭고 안정적이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바깥에는 대니가 피아노를 마음껏 칠 수 있는 기회가 있고, 자신의 재능을 알아봐 주는 이들이 있고,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모든 조건이 준비되어 있다. 갈등은 가족 안에서 일어날 뿐이다. 세계는 대니가 가족을 떠나 자신의 삶을 살겠다는 결단을 내리기만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그 세계는 영화가 그린 세계다. 실제 우리의 현실도 아서와 애니가 살아낸 6, 70년대보다 나아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영화 안에서 대니가 선택한 세계는 이상화되어 있고 그러므로 선택할 수밖에 없는 세계다. 이런 점에서 이 영화에서 이루어지는 성장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를 부모와는 또 다른 세계에서 살아가야 할 젊은 세대가 마음을 기댈 성장영화로 기억할 수 있다면, 그건 순전히 대니를 연기한 리버 피닉스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리버 피닉스는 소년의 얼굴을 가졌다. 설렘과 체념, 냉소와 반항심과 간절함이 하나의 얼굴에 담겨 있다. 너무도 솔직하게 드러나는, 그래서 때로 종잡을 수 없는 그의 감정들이 아직 얼굴에 자리를 잡지 않아서일 것이다. 그저 아름다운 얼굴만이 아닌 소년이 가질 수 있는 얼굴을, 그는 이 영화를 찍고 나서 몇 년 뒤 이른 죽음을 맞을 때까지도 가지고 있었다. 그 얼굴이 우리가 기억하는 소년의 얼굴이기에, 우리는 그의 얼굴에서 우리의 소년을 여전히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송재상 자원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