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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전/2012 베니스 인 서울

[리뷰] 로베르트 미네르비니의 <로우 타이드>

죽음 옆에 서 있는 아이

 

세계가 고통에 가득 차 있을 때 이를 더욱 생생하게 그리기 위해 영화가 자주 끌어들인 건 어린 아이들이었다. 그리고 누구보다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건 다름 아닌 이탈리아의 영화들이었다. <독일영년>(로베르토 로셀리니, 1948)에서 옥상위에 서 있던 소년이나 <자전거 도둑>(비토리오 데 시카, 1948)의 길거리에 서 있던 아이를 떠올려보자. 또는 <벨리시마>(루키노 비스콘티, 1951)의 어린 소녀는 어떤가. 결말이 희망이든 절망이든 아이들은 영화 속 세상이 살 만한지 아닌 지를 알려주는 리트머스 시험지였으며, 세상의 무자비한 폭력에 그대로 노출돼 그 잔혹성을 고발하는 존재였다.

이러한 전통은 변치 않고 이어져서 21세기인 지금까지도 수많은 아이들이 영화 속에서 크고 작은 고통을 겪고 있다. 그리고 이번에 상영하는 로베르토 미네르비니의 두 번째 장편 <로우 타이드> 역시 ‘수난을 당하는 아이들의 영화’ 최신 목록에 이름을 올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영화이다.

<로우 타이드>에 등장하는 아이는 12살 난 소년으로 아버지는 어디 갔는지 알 수 없으며 병원에서 호스피스로 일하는 어머니와 단 둘이서 가난하게 살고 있다. 그러나 어머니는 아들에게 거의 아무런 관심이 없으며 때로는 아이의 고통을 방조하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소년은 친구도 없이 대부분의 시간을 홀로 보내는데, 이때 주목할 건 어린 나이에 이미 외부자극에 무뎌져버린 아이의 무표정한 얼굴이다. 옷도 거의 걸치지 않은 깡마른 몸으로 거리를 휘청휘청 걸어 다닐 때 그 작은 몸만으로 막막한 절망과 슬픔의 정서를 영화로 불러오는 것이다.

이때 영화가 가장 공들여 묘사하는 것 중 하나는 아이의 바로 옆에 놓인 죽음이다. 아이는 영화 내내 텅 빈 벌판과 폐허를 혼자 돌아다니며 여기저기 숨어 있는 죽음의 이미지들을 찾아낸다. 마른 벌판의 뱀, 도살당하는 소, 낚시로 잡아 올린 물고기, 개구리, 금붕어, 꿈틀거리는 벌레 등. 그렇게 죽음의 이미지가 영화를 무겁게 감쌀 때 영화는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작은 안식과 같은 아름다운 장면을 펼쳐 보이지만, 그 장면에서조차 어쩔 수 없는 슬픔이 전해진다. 아이가 겨우 평안을 찾은 건지 아니면 죽음의 한 복판에 서 있는 것인지도 알 수 없다. 단지 정적과 같은 슬픔만이 영화를 무겁게 짓누를 뿐이다.

 

글/ 김보년(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코디네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