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과거를 후회하는 사람들 - 스콧 프랭크의 <툼스톤>

2015. 3. 24. 13:58특별전/낯선 기억들 - 동시대 영화 특별전

과거를 후회하는 사람들

- 스콧 프랭크의 <툼스톤>





<툼스톤 A Walk Among the Tombstones>은 독특한 호흡을 갖고 있다. 이 영화는 진행 도중 자꾸 멈춰선다는 느낌을 준다. 어떤 영화가 하나의 사건을 보여준 뒤 그 다음 사건을 매끄럽게 연결시켜 보여주는 것은 분명 권장할 만한 미덕 중 하나다. 특히 그 영화가 리암 니슨이 출연하는 할리우드의 탐정수사극일 때는 더욱 그럴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 미덕을 따르려 하지 않는다. 하나의 사건은 다음 사건으로 넘어갈 때 계속해서 잔여물을 남기고, 이 잔여물은 영화 전체에 녹아들기를 고집스레 거부한다. 결국 시간이 흐를수록 ‘주인공이 범인을 잡는다’는 기본 줄거리와는 별개의 침전물이 쌓여 그 존재감이 영화의 전체 분위기를 압도하고 만다.


그러니 <툼스톤>에서 정말 중요한 건 사건 해결의 과정과 결과가 아니라 그 침전물 자체일지도 모른다. 유괴당한 아이는 아버지에게 돌아갔고 범인들은 죗값을 치렀으며 주인공은 무사히 사건을 해결했지만 이 영화는 처음부터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다시 말해 <툼스톤>은 효율적이고 속도감 있게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대신 자꾸 주위를 돌아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다른 이야기가 보이기 시작하고, 다른 리듬이 발생하며, 고유의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이 영화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것도 이런 특징들 때문이다.


이때 <툼스톤>의 인물들이 사건을 눈앞에 두고서도 계속해서 과거를 돌아본다는 것이 중요하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들은 자신의 과거를 후회한다. 주인공인 맷(리암 니슨)부터가 그렇다. 과거에는 알코올중독자였으며 술에 취한 채 강도와 총격전을 벌이다 어린 소녀를 죽인 적이 있는 그는 끊임없이 지난 일을 떠올린다. 맷이 조사 중이던 증인이 자살했을 때의 편집이 이를 잘 보여준다. 이 사건은 영화를 통틀어 가장 강렬한 서사적, 정서적 파장을 남기는 순간 중 하나이지만 정확히 바로 그때 맷의 과거가 불쑥 등장한다. 즉 사건을 해결할 결정적 단서가 등장하고 극의 긴장이 가장 높아진 순간, 그 흐름을 과감히 끊고 맷의 지난 기억을 끄집어내는 것이다. 이 연결에 논리적 필연성은 없다. 다만 현재의 어느 중요한 순간에서 자신이 과거에 저지른 과오를 떠올린다는 것이 중요하다.


후반부의 클라이막스인 인질 교환과 지하실에서의 마지막 싸움 장면 역시 마찬가지다. 서로 총을 겨눈 채 문자 그대로 0.1초가 급박한 상황 속에서 영화는 몇 번씩이나 이미지를 정지시킨 뒤 맷의 과거와 관련된 나레이션을 들려준다. <툼스톤>의 장르적 쾌감을 많은 부분 포기하는 대신 맷이 얼마나 과거에 얽매여 있는지 과감한 편집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툼스톤>의 독특한 호흡은 확실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사건의 진행을 멈춰 세우고 인물의 과거를 제시하는 이런 연출은 <툼스톤>의 리듬뿐 아니라 영화적 분위기를 결정짓는 요인이기도 하다. 이 영화 속의 인물들은 마치 현재와 과거, 두 개의 시간을 동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런 점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는 이야기의 힘과 지속적으로 충돌하며 긴장을 만들어낸다. 맷을 포함한 사람들은 최선을 다해 현재의 시간을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계속해서 과거를 후회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니 이들에게 현재란 언제나 만족스럽지 못한 것일 수밖에 없다. 만약 맷이 알코올중독자가 아니었다면 그는 지금과 다른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만약 맷이 그때 술을 먹지 않았더라면 적어도 소녀는 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또는 케니가 마약범이 아니었거나 유괴범들이 요구한 돈을 순순히 지불했다면 아내는 살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피터가 동생 케니를 질투하지 않았다면 케니의 아내는 유괴당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며, 조나스가 범인들과 어울리지 않았다면 자살하지 않고 그냥 평범하게 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후회의 가정법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계속 이어진다. 만약, 내가,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그런 맥락에서 <툼스톤>을 후회하는 사람들에 대한 영화라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영화에 길게 드리워진 비관과 무력감의 정서도 여기에 기인한다. 자신의 과거를 후회하지 않는 악당들은 웃으며 악행을 계속해나갈 수 있지만 자신의 행동을 후회할 줄 아는 사람들은 계속 우울해하며, 그만큼 더 불행해진다. 그리고 <툼스톤>을 대표하는 이미지라 할 수 있는 과거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슬픈 무표정은 결국 보는 이의 마음에 깊은 인상을 남긴다. 사실 냉정히 말해 이 영화는 엄청난 걸작의 반열에 들 만한 작품은 아닐지도 모른다. 원작 소설의 유치한 에피소드들을 대부분 들어냈음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몇몇 에피소드는 극에 잘 녹아들지 못하며(특히 맷과 TJ의 우정을 그린 ‘훈훈한’ 장면들), 사건 해결 과정에는 적지 않은 우연이 개입한다. 때로는 엑스트라에 가까운 인물이 불쑥 등장해 지금까지 벌어진 일들을 친절히 설명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즉 영화의 완성도 면에서 <툼스톤>을 완전히 지지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이들이 자신의 지난 잘못을 잊지 못한 채 홀로 죄책감을 끌어 안고 현재를 살아가는 모습은 영화에 숙명론적 비극의 공기를 불어넣는 동시에 관객들이 조용히 몰입할 수 있는 잿빛 풍경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툼스톤>이 결정적으로 보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이 영화가 단지 과거에 짓눌린 사람들의 무기력함을 그리는 데 만족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이 영화는 패배주의의 비극적 분위기를 낭만화하는 우를 범하지 않는다. 대신 (영화 속 나레이션을 빌어 표현하자면) 자신의 한계를 겸허하게 인정한 채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신중함을 그린다. 이를 잘 보여주는 장치가 영화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맷이 발걸음을 되돌릴 때의 편집이다. 맷은 어렵게 범인의 아지트를 찾아낸 뒤 경찰을 부르는 대신 피해자이자 의뢰인인 케니에게 사적 복수의 기회를 준다. 사실 이것만으로도 맷은 자신이 할 일을 모두 한 것이다. 이대로 집에 돌아가도 비난 받을 일은 없을 것이며, 그의 삶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화면은 다시 멈추고, 네 개의 인서트 숏이 나레이션과 함께 끼어든다. 그러고 나서 맷은 발걸음을 돌려 범인의 집으로 향한다(그리고 풀려난 범인과 목숨을 건 싸움을 벌인다).


물론 이를 전직 형사의 ‘감’이라고 간단히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하면 맷이 발걸음을 돌리는 순간 끼어든 인서트 숏의 정체를 알 수 없게 된다. 이때 이 네 개의 장면들이 이상한 이유는 이 이미지 중 맷이 직접 보지 못한 것, 즉 맷이 떠올릴 수 없는 이미지가 끼어있기 때문이며, 또한 현재의 피해자들과 8년 전 맷이 저지른 잘못의 이미지가 함께 섞여있기 때문이다. 이 이미지들의 연결은 영화의 내적 논리를 따졌을 때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이 불가능한 것을 기어이 영화 속에 실현시키고야 말 때, 우리는 <툼스톤>의 어떤 의지를 뚜렷하게 읽을 수 있다. 네 개의 이미지를 묶을 수 있는 한 가지 공통점은 이 숏들이 모두 등장인물들이 후회하는 과거에 대한 것이라는 점이다. 여기엔 아내를 잃은 케니, 그런 케니를 마약범으로 경찰에 신고했던 그의 형, 범인들을 도왔던 공범의 후회가 함께 섞여있다. 그리고 그 후회의 연장선에는 맷이 과거에 저지른 잘못까지 닿아있다. 다시 말해 지금 맷은 영화의 적극적인 비디제시스(non-diegesis)적 개입을 통해 자신은 물론 먼저 죽은 사람들의 옛 잘못까지 끌어안게 된 것이다. 나아가 맷은 그 무거운 책임으로부터 도망가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 도드라지는 편집과 그 뒤에 이어지는 맷의 행동은 지난 일을 후회하며 과거에만 머무르지 않겠다는 강력한 결심으로 보인다.





8년 전의 맷은 도망가는 강도를 쏴죽인 뒤 유유히 발걸음을 돌려 최초의 사건 장소로 돌아왔고, 그곳에서 자신이 저지른 실수의 처참한 현장과 마주했다. 그리고 8년이 지난 지금, 맷은 바로 그 기억을 떠올리며 다시 사건 현장으로 돌아간다. 겉으로 보기에 이는 같은 행위이지만 그 성격과 결과는 완전히 다르다. 현재의 맷은 자기가 관여한 일의 마지막을 끝까지 지켜보려 한다. 그것이 비록 최선의 결말은 아니라 할지라도(맷은 소녀의 죽음과 마찬가지로 케니의 죽음에 대해서도 죄책감을 가지게 될 것이다) 적어도 8년 전의 자신처럼 현실로부터 도망가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의 이런 선택이 어떻게 최악의 사태를 막아냈는지는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맷이 굳이 8년 전 입었던 코트를 다시 꺼내 입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과거를 후회하고, 과거에 얽매여 있지만 자신의 옛 실수와 정면으로 마주함으로써 과거를 반복하는 걸 피하려 한다. 결국 맷의 이런 행동 때문에 <툼스톤>의 그 독특한 영화적 리듬은 당위성을 얻고, 나아가 이야기의 품위까지 지켜낸다.


끝으로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감독은 원작과는 달리 영화의 시대적 배경을 1999년으로 설정했다. 영화 속 TV와 신문은 매일 같이 Y2K를 운운하며 세상이 곧 끝날 것이라 떠들어댄다. 마치 내일이 오지 않을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이다. 하지만 과거와 현재에만 관심이 있는 맷은 미래의 문제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모든 사건을 마무리한 뒤 자신이 보호하는 소년이 잠든 집으로 돌아온다. 그 사이 이미 날은 밝아 오기 시작했고, 그렇게 ‘내일’이 찾아왔다. 맷은 앉은 채로 조용히 잠이 들고 영화는 거기서 끝난다. 이 결말은 평범하고 간결하지만 더할 나위 없이 <툼스톤>에 잘 어울린다. 영화는 계속해서 현재의 시간을 멈춘 뒤 과거의 기억을 호출지만 시간이 흐르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또한 맷은 이제는 과거가 되어버린 이 사건을 언젠가 또 후회하겠지만 그것과 별개로 그가 지금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단지 피곤한 눈꺼풀을 내리는 것뿐이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맷은 과거를 떠올리지 않으며, 영화 또한 이를 방해하지 않은 채 긴 호흡으로 그의 현재를 지켜본다.


 


김보년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