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자들을 위한 영화- 고다르와 사운드, 그리고 ECM

2013. 9. 11. 09:30특별전/ECM 영화제: ECM과 장 뤽 고다르

눈먼 자들을 위한 영화- 고다르와 사운드, 그리고 ECM



80년대 이래로 진행된 고다르의 새로운 역사수업은 1988년에 시작해 근 십년만인 1997년에 완성한 <영화사>에서 정점을 맞았다. <영화사>는 기획의 원대함과 치밀함으로 보자면 19세기 파리를 배경으로 근대성의 원현상을 그려낸 발터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와 비견할 만한 작품이다. 여기서 고다르의 영화를 특징짓는 가장 주요한 키워드는 단연 몽타주이다. <영화사>에서 그는 더 이상 장면을 촬영할 필요도 없이 이미 존재하는 필름의 풋티지들, 가령 20세기 영화의 역사를 장식한 수많은 영화들에서 발췌한 장면들을 활용한다. 거기에 현실의 기록인 뉴스릴의 단편들, 회화의 단편들, 그리고 음악의 단편들이 혼란스럽게 뒤섞여 있다.





<영화사>에서 모든 이미지들은 다큐멘터리와 픽션, 이야기와 역사의 경계가 무너진 일종의 무차별성의 지대에 놓인다. 여기서 몽타주가 가치를 갖게 되는 것은 모든 역사들에 우리의 이해를 개방하도록 더욱 복잡하게 할 때이다. 이 때 역사는 본질적인 다양성multiplicity을 얻는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이 이미지의 영역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사실상, 80년대 이래로 고다르의 관심은 이미지만큼이나 회화, 모놀로그, 음악, 효과음 등의 독창적인 사운드의 몽타주에 기울어져 있었다. 여기서 소리는 영상에 종속되거나 이야기, 혹은 시퀀스에 부가적인 것이 아니라 완전하게 이질적인 것을 특징으로 한다.


1979년 작인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에서 도입된 영상과 음성의 명백한 분리는 고다르가 밝히듯이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인디아 송>의 영향력 아래 있었다. 이의 구체적인 성과는 이어지는 고다르의 일련의 작품들, 이를테면 <열정>, <프레놈 카르멘> 등에서 구현된다. 가령, <프레놈 카르멘>에서 베토벤의 현악 4중주 연주나 톰 웨이츠의 노래, 그리고 반복되는 파도소리 들이 거의 맥락 없이 몇 번이나 흘러나오다 갑자기 중단되는 페이드 인 페이드 아웃을 반복한다. 게다가 전동 타자기의 구동음, 편집실의 필름이 돌아가는 소리 등, 음악과는 거리가 먼 소음들 또한 음악 이상의 빈도로 영화에 출몰한다. 귀에 거슬리는 노이즈로서의 이러한 소리들은 다른 소리들(이를테면 인물들의 음성이나 대사들)과 어떠한 위계의 자장 안에 놓이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등장하는 듯하다. 모든 사운드가 완전히 동등한 권리로 작품에 배치되어 주선율이 실종된 교향곡에 가까워진다.


고다르의 사운드의 활용이 더욱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가 주류적인 영화음악의 작곡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는 80년대 이래로 전통적인 영화음악의 작곡을 활용하지 않았다. 고다르 스스로는 자신이 영화의 ‘작곡가’임을 자칭하기까지 한다(종종 그는 크레딧에 자신이 작품을 ‘연출directed by’했다기보다는 ‘작곡composed by’했다고 쓰곤 한다). 고다르가 음악과 관련해 하는 일이란 기성의 곡을 활용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는 ECM의 만프레드 아이허와의 우호적이고 지적인 관계에 힘입은 바 크다. 자신이 흥미 있어 하는 여러 음악가들, 그들의 작품에서 창작에 쓸 만한 것들을 선별하는 것. 오직 고다르만이 가능했던 일이다. 이러한 작업은 그래서 고다르의 작품에 특별한 흔적을 남겼다. 첫째, 고다르의 음악의 활용은 일반적인 영화음악과는 달리 편곡, 혹은 리믹스에 가까운 것이다. 그는 몇 가지 예외를 제하자면(이를테면 단편들에서 전곡을 활용하는 경우), 대부분의 작품에서 ECM 음반의 음악적 질료들을 리믹스해 그의 작품에 새롭게 활용한다. 이러한 수법은 각각의 음반이 지닌 고유한 역사들과는 무관계한 방식의 활용이다. 그렇게 고다르는 아르보 파트, 폴 힌데미스, 메레디스 몽코, 기야 칸첼리의 음반들을 작품에 가져왔다.





둘째, 고다르는 <누벨바그>를 시작으로 단지 영화만을 만든 것이 아니라 ECM에서 몇 장의 음반을 만들었다. 통상적으로 영화의 사운드 트랙이라 부르는 것인데, 고다르의 사운드 트랙은 그러나 영화에서 활용된 음악들을 모은 일반적인 OST가 아니라 영화의 대사와 노이즈 등이 모두 포함된 완전한 사운드 트랙이다. 단지 음반이 아니라 이미지들이 부재한 또 한편의 영화인 것이다. 이 ‘음악으로서의 영화’가 이미지와 독립한 고유한 표현 형식으로서의 작품을 의미한다면 이는 또한 논리적으로 눈먼 관객들, 즉 시각성의 부재에서 영화를 체험하는 다른 관객들을 전제할 것이다.


고다르는 원래 ECM 레코드의 음악가들 몇 명을 방문하는 아이디어로 한 편의 영화를 만들 생각을 했다고 한다. 이 계획은 고다르의 영화 대부분이 그렇듯 나중에 대폭 수정되어 다른 작품이 되었다. 그렇게 고다르의 <아워뮤직>이 만들어졌다. 사라예보를 방문하는 것으로 상황은 변경됐지만 그럼에도 음악에 관한 아이디어는 그 제목에 흔적을 남겼다. 우리들의 음악이란 여기서 영화의 다른 표현과 다른 작용을 의미할 것이다. 눈을 감는다는 것은 보기를 중단하고 상상하는 것이다. 혹은, 그것은 마치 바울의 회심을 이끌어던 사건처럼 새로운 빛을 발견하는 과정이다. 고다르의 표현을 빌자면, 영화는 어둠속에서 빛으로 우리를 이끄는, 우리들의 음악인 것이다.




김성욱 /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