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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전/한국영화, 새로운 작가 전략

“젊은 날의 혼란을 담고 싶었다”

[시네토크] 김종관 감독의 ‘조금만 더 가까이’

지난 22일 저녁, ‘한국 영화의 새로운 작가 전략’을 들어보는 첫 번째 자리로 영화 <조금만 더 가까이> 상영 후 김종관 감독과의 시네토크가 있었다. 이 날은 특별히 혜영 역할로 출연과 영화 음악을 겸한 배우 요조씨가 자리를 함께해 한층 소중한 자리였다. 배우와 감독, 관객의 영화에 대한 애정이 조곤조곤 오간 따뜻했던 그 시간의 일부를 지면에 옮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원래 김종관 감독이 서울아트시네마를 자주 찾는 만큼 이 영화가 개봉하기 전에 여기에서 프리미어 시사를 하면 어떻겠냐는 얘기가 오고 갔었다. 그 때는 사정상 결국 못했지만 극장에서 내린 오늘에서야 상영하게 되었다. 특히 요조씨가 함께 해주셨는데, 영화의 내부 관찰자로써의 이야기 해주시면 좋겠다. 일단 이 영화는 김종관 감독의 공식적인 장편 데뷔작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를 만들 때의 생각과 개봉 후 관객들 만날 때의 느낌들 등, 돌이켜봤을 때 이 영화가 감독에게 어떻게 남았는지 들어보고 싶다.
김종관(영화감독): 촬영 때는 장편 데뷔작을 찍는다고 크게 마음먹은 것은 없었다. 기존에 작업해왔던 중․단편들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생각이었다. 원래 다른 상업영화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KT&G에서 1억원을 지원받아 영화를 찍을 기회가 생겼다. 이 예산에 맞춰 뭘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옴니버스 식으로 하면 이전 작업들을 사용할 수 있고, 앞으로 다른 작업하기 전에 그 간의 작업을 종합적으로 정리해보는 기회가 될 수도 있어 의미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개봉을 하다 보니까, 많은 분들이 애를 써주셔야 했고, 극장에 배급되는 걸 보며 장편 데뷔라는 느낌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재미있고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

김성욱:
저라면 이런 영화를 만들 때 가장 먼저 요조씨에게 캐스팅 제의를 했을 것 같다. 음악과 함께 영화의 시작과 끝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요조가 없으면 영화가 다른 방향으로 갔을 것이다. 실제로는 어땠는가?
김종관: 실제로 제일 먼저 시나리오 보여주고 캐스팅을 했다. 제가 이 영화를 생각했을 때 마지막의 공연 장면부터 떠올렸기 때문에, 거기에 의미가 있었어야 했고 심사숙고하다가 요조를 만나게 되었다.

김성욱: 요조씨는 처음 캐스팅 제의를 받았을 때부터 출연해야겠다고 생각했는지?
요조(배우, 뮤지션): 무척 마음에 들었었다. 일단 인물의 나이나 하고 있는 일, 사랑에 대한 가치관 등 많은 부분이 저 스스로와 부합되었다. 사실 만약 연기만 따로 놓고 생각했다면 그렇게 욕심을 안냈을 것 같은데, 영화 음악에 대해 제가 적극적으로 욕심을 내왔던 터라, 음악을 함께 할 수 있어서 무척 매력적이었고, 처음부터 하고 싶었다.

김성욱: 대사에도 나오지만  이 영화가 일종의 연애불구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의 사랑으로 인해서 감정이 피어나지 못하는 커플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것 같다. 장편으로써 다섯 개의 에피소드에서 다섯 개의 커플 이야기를 다루며 연애의 어떤 점을 고민했는지?
김종관: 2, 30대 지나며 저에게 연애라는 게 중요했다. 모두 실패였기 때문에 뭐 하나 내가 정의내릴 수 있는 것도 없고 완전한 게 없었다. 그런 실패한 연애담에 대한 이야기다. 이 나이엔 뭘 정의내리기 힘들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대한 사람들의 젊은 날의 혼란 같은 게 들어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떤 에피소드는 내게서 먼 감정이고 어떤 것은 가까운 감정이다. 그런 것들이 다 매듭지어지지 않고 혼란스러운 마음에서 만들어졌으므로, 그런 혼란이 있는 실패하고 불안한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김성욱: 김태용 감독의 <만추>랑 비슷한 인상을 받은 게, 그 영화는 가을을 배경으로 해가 뜨고 안개 끼고 비 내리고 다시 해가 뜨는 기상 변화를 영화 전체의 맥락으로 넣었는데, 이 영화도 날이 흐리고 비가 그치고 마지막에 이르면 찬란한 빛이랄까, 에피소드 전반에 그런 기후적, 계절적인 느낌, 빛의 느낌이 많았다. 처음부터 염두에 두었는가?
김종관: 일단, 로케이션 할 때부터 가을의 느낌을 살리고 싶었다. 처음 기획할 때 남산 가서 좋은 사람들과 재밌게 놀며 이 계절을 남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봤다. 애착이 있었다. 한편으론 촬영하면서 왜 이 좋은 계절에 나는 영화를 찍고 있는가 생각했다.(웃음) 기후적인 매력이 있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예산이 적고, 공간감을 크게 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사운드 등을 통해서 사람들이 공간감을 상상할 수 있고 그 느낌이 배어들어있는 게 좋다.


김성욱: 첫 번째 에피소드는 저런 일이 있을 수는 있겠다 싶기는 하지만, 어디서 착상했는지 그 계기가 궁금하다.
김종관: 첫 로테르담 에피소드가 가장 개인적인 역사가 깃든 에피소드다. 4,5년 전에 영화제 때문에 로테르담을 갔다가 유럽을 여행했었다. 그 당시 핸디캠으로 찍었던 영상들이다. 그리고 그 당시의 내 사연에도 약간 그런 감정이 있었다. 호텔에서 다른 외국사람 수첩을 주운 적이 있는데 그런 기억들도 재밌고. 로테르담은 2차 대전 때 폭격을 당해서 전부 새 건물에, 외국인들이 많고 항상 공사 중인 느낌이다. 다른 오래되고 예쁜 유럽도시들과는 다른 공간의 분위기와 이방인적인 느낌이 있었다.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에피소드지만 알고 보면 오히려 다큐적 소스들도 들어있다는 부분이 재밌다고 생각했다.

김성욱: 두 번째 에피소드를 영화의 전반에 배치한 것이 관객들에게 기묘한 충격을 주는 것 같다. 두 번째 에피소드는 구성을 하면서 어떤 부분을 주로 생각하셨는지?
김종관: 두 남녀가 성적인 설렘을 겪는 시간을 묘사한 거고, 남자 입장에서 보면 새로운 연애를 시작하는 거다. 이 영화 전체가 하나를 얻고 하나를 잃는 것을 묘사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드러나는 에피소드다. 일반적인 영화는 생략으로 서사를 만들어간다. 여기서는 사람들이 생략하는 지점 없이 그 과정들을 묘사해보고 싶었고, 관계묘사에 집중하면, 그런 지점, 그런 느낌에서 뭔가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김성욱:
영화 음악은 영화의 장면들을 보면서 느낌 안에서 한 건지 어떻게 작업했는지 그 과정이 궁금하다.
요조: 처음에는 추상적인 단어들로 시작했다. 감독님도 쓸쓸함, 아련함 이런 식으로 단어를 툭툭 던지시고, 넓게 시작해서, 이런 느낌은 어떨까 멀리부터 맞춰가다가, 영화 제목처럼 음악 감독님도 함께 셋이 조금만 더 가까이가 성립되면서, 나중엔 감독님이 가사도 적어오시고(사용하지 않았지만), 음악감독님도 멜로디를 이렇게 하면 어떨까 제안하시고, 마지막엔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건 나지만 밴드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늘 혼자 노래를 만들고 가사를 쓰고 부르는 게 편하면서도 쓸쓸한 게 있는데, 감독님들과 함께 만드는 게 재밌었다. ‘우리는 선처럼 가만히 누워’라는 노래는 외롭지만 만드는 과정은 아주 즐거웠다.

관객1: 영화 잘 봤다. 전작들을 보며 대사보다는 클로즈업이나 감정 선에 집중해서 영화를 구성한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아무래도 단편이나 중편의 그런 감성들을 장편에서 이어나간다는 것은 아무리 옴니버스라고 해도 템포 조절 등이 어렵고 이전과는 다른 작업이었을 것 같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어려움이나 새로운 시도는 무엇이 있었는지?
김종관: 작업을 하며 크게 변하는 편은 아닌데, 나름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여기서는 다섯 개 에피소드의 다이얼로그 방식이 다 다르다. 앞으로 작업들을 해나가기 전에 이런 여러 가지 스타일의 대사를 쓰고 연출해보고 싶었다. 가령 윤계상과 정유미가 나오는 에피소드도 연애에 대해 직설적인 대사들이고, 게이 커플의 에피소드도 직설적이지만 그 둘은 방식이 다르다. 각각 다른 스타일의 다이얼로그에 대한 시도가 재미있고 배울 게 많았다. 일부 성공도 있었고 실패한 점도 있었던 것 같다. 각각의 에피소드들이 비슷한 형식일 수는 있지만 화법은 다르다. 이걸 한 편으로 묶기가 힘들었다. 형식적이기 보단 정서적인 연관성에서 하나의 이야기로 보이길 원했다. 전에도 말했었는데, 에릭 로메르의 <파리의 랑데부>라는 영화가 다른 도시에서 비슷한 테마의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그런 구성이 도움이 되었고, 원래 그런 류의 옴니버스를 좋아한다.


관객2: 요조씨 팬인데 머리 커트하신 게 더 예쁘신 것 같다. (좌중 웃음) 질문은 감독님께 하겠다. 낙엽이란 게 새로운 사랑보다 오래된 사랑이나, 이미 사랑을 할 만큼 해 본 두 남녀의 대화를 다루는 점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낙엽이 떨어지는 장면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제목 자체가 공간성을 띠고 있고 그래서 인지 영화 전체가 클로즈업이 많다. 또 첫 시작은 먼 곳에서 걸려온 전화라는, 거리감이 느껴지는 소재다. 이 거리감이라는 게 보통의 공간감인건지 사랑의 감정의 거리를 표현하신 건지?
김종관: 마지막 에피소드부터 이야기하자면 그게 마무리인 것 같지만, 실은 그들도 진행형이고 거기 나오는 사랑에 대한 대사들이 미련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술자리에서 ‘사랑은 이런 거야’, ‘뭐야’ 하는 것들이 전부 허튼소리고, 내가 다 안다고 하지만 그 아는 부분에서 늘 헝클어진다. 저는 뒤에 요조가 하는 독백의 독살스러운 느낌이 좋은데, 그런 미련함과 못난 모습들이 드러나는 게 에피소드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낙엽은 제가 어떤 느낌을 지녀서 넣은 것이긴 한데, 말하기 보다는 그냥 놓아두어야 할 것 같다. 거리감 얘기가 좋다. 그런 거리감이 좋아서 제목도 ‘조금만 더 가까이’라고 짓게 되었다. 주변에서는 ‘조금만 더 멀리’가 아니냐고 했지만. (웃음) 첫 에피소드는 서로가 모르기 때문에 더 밀접한 대화를 하고, 그 뒤의 인물들은 서로가 잘 알지만 오히려 더 멀어져 있다. 그런 느낌들을 생각했다. (정리: 백희원 시네마테크 관객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