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사람들

- 줄리아노 몬탈도의 <금테 안경>(1987)



1938년, 이탈리아 북쪽에 자리한 도시 페라라. 옛날부터 유태인들이 많이 모여 살았던 이 도시의 분위기는 지금 흉흉하다.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정권이 유태인을 박해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유태인 교수들은 대학에서 쫓겨나고, 그 교수를 옹호하는 학생들 역시 별종 취급을 당한다. 그리고 이 도시에서 오랫동안 살아 온 파디가티 박사도 세상이 나빠지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있다. “이탈리아는 독일과 다르다”며 걱정을 숨기는 사람도 있고 박사도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듯 행동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이 사회로부터 서서히 고립되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런데 파디가티 박사가 처한 문제가 또 하나 있다. 바로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이다. 지금까지는 어떻게든 그 사실을 숨겨 왔지만 어느 날 금발의 매력적인 청년 에랄도를 만나면서 모든 것이 밝혀지고 만다. 박사는 남들 앞에서 부끄러운 모습을 보일 정도로 에랄도를 사랑했고, 박사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안 사람들은 이전과는 다른 시선을 그에게 보낸다. 이제 박사는 이중의 괴로움을 겪는다. 그는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국가로부터 박해를 받고,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유태인 공동체에서 배척을 받는다. 남은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박사는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만다.



줄리아노 몬탈도 감독의 <금테 안경>은 조르조 바사니가 1958년에 쓴 동명의 소설을 영화화 한 작품이다. 전형적인 멜로 드라마의 외양을 취한 이 작품에서 도드라지는 정서는 외로움이다. 멜로 드라마에서 외로움이나 고독이 주요 정서로 등장하는 건 특별한 경우는 아니지만 <금테 안경>의 경우에는 그 시대 자체를 외로움이라는 정서로 그린다는 점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갈등 요인은 결국 외로움으로 귀결된다. 즉 조르조 바사니와 줄리아노 몬탈도가 그린 1930년대의 이탈리아는 고독의 시대다. 이 이야기 속 세상에서는 한 사람이 타인과 유의미하고 지속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 불가능하다. 설사 관계를 잠시 맺는다 하더라도 그는 곧 떠나가고, 떠나가는 과정에서 지우기 힘든 상처를 남긴다. 만약 그 원인이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어떻게든 대화를 통해 풀어나갈 수도 있겠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것조차 어렵다. 오해랄 것도 없이 ‘나’라는 존재 자체가 나를 외롭게 만드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파디가티 박사는 유태인이기 때문에 주류 사회에 속할 수 없으며, 동성애자이기 때문에 친구들을 잃을 수 밖에 없다. 또 한 명의 주인공인 다비드 역시 가난한 유태인이기 때문에 신분 상승을 원하는 애인에게 버림 받아야 한다.


이때 영화는 이들에게 꺾이지 않는 의지나 사그라지지 않는 분노, 또는 운명과 마주하는 최소한의 용기와 같은 태도를 조금도 허락하지 않는다. 대신 회색빛 우중충한 화면 속에서 이들이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지독한 외로움에 괴로워하는 모습을 말없이 지켜본다. 자연스럽게 영화의 후반부로 갈수록 무기력한 상태가 도드라지고 결국에는 내가 속한 시대와 나의 삶에 대한 체념만이 남는다. 만약 <금테 안경>을 비판한다면 이처럼 정해진 비극을 향해 끌려가는 패배의 정서를 근거로 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를 알고 있으면서도 결국 어느 순간 마음이 움직이는 건 <금테 안경>이 그 시대를 감쌌던 고독의 공기를 한 개인의 구체적인 삶을 통해서 스크린 속에 생생히 보여주는 데 성공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지금 조르조 바사니와 줄리아노 몬탈도는 지나간 역사를 자신의 관점에 따라 성실하게 기억하고 증언하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중이다.



김보년 프로그램팀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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