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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전/탄생 100주년 : 조르조 바사니와 영화

조르조 바사니와 이탈리아 영화 - 예술가 또는 기록자로서의 헌정

조르조 바사니와 이탈리아 영화

- 예술가 또는 기록자로서의 헌정


조르조 바사니


시인이자 소설가, 시나리오 작가인 조르조 바사니Giorgio Bassani는 네오리얼리즘 영화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는 당시 이탈리아 문학과 네오리얼리즘 영화의 특성과도 무관하지 않다. 바사니뿐만 아니라 모라비아 등 네오리얼리즘 작가들의 여러 작품이 영화의 소재나 원전이 되기도 했고, 작가들이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들은 파시즘이라는 공통된 소재로 역사와 사회적 상황을 이념적으로 접근하였다. 외부 영향으로 달라지는 인간, 즉 개인의 현실이 달라지는 현상에 주목하였다. 나아가 그들의 공통 관심사는 인간 내면에 내재된 이중성, 남부 문제, 성별과 계층 간 갈등까지 확대되었다.

이처럼 문학에서 시작된 네오리얼리즘이 영화로까지 확산된 것은 서로가 함께 절감하는 현실에 대한 반영이었다. 전쟁, 독재, 검열 등 시대적인 상황을 영상을 통해 폭넓은 차원으로 그려냈던 것이다. 영상과 이미지는 글이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현실을 직접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진실’에 이르게 했다. 현실을 바라보는 깊이와 방식은 다르지만, 어떤 면에서 네오리얼리즘은 현대 영화의 원천이라고 볼 수 있다.


<정복된 사람들>


바사니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여 그가 참여한 주요 영화들을 소개한다. 열 편의 시나리오와 아이디어 작업에 참여했던 작품들 중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정복된 사람들 I vinti>(1953), 모라비아의 작품이 원안인 마리오 솔다티의 <시골 여인 La provinciale>(1953), 보이토의 소설을 원안으로 한 루키노 비스콘티의 <센소 Senso>(1961)가 있다. 또한 비토리오 데 시카의 <핀치 콘티니의 정원 Il giardino dei Finzi-Contini>(1970)과 줄리아노 몬탈도의 <금테 안경 Gli occhiali d’oro>(1987)은 바사니의 대표작을 영화로 제작한 것이다. 또한 직접 출연한 발레리오 추를리니의 <가방을 든 여자 La ragazza con la valigia>(1961)와 낭송으로 참여한 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의 <분노 La rabbia>(1963)까지 총 일곱 편이다. 바사니는 마리오 솔다티와 많은 작업을 하였으며, 우리에게도 익숙한 비스콘티와 파졸리니 감독과도 함께 작업을 하면서 영화계와 활발히 교류를 했다. 이처럼 많은 이탈리아 작가가 영화와 문학에 경계를 두지 않았던 이유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그들의 공통 관심사가 일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학 작품을 영화로 제작하는 데에는 어려움과 파생되는 문제점이 많다. 이에 대해서 아이엔바움은 “합법적인 해후邂逅한 결혼이지만 물론 부정이 없지 않았다”라고 하며, 슈나이더는 이 작업의 결과물이 양자 간 오해에 의한 ‘혼종’이라고 한다. 원작에 대한 영화의 충실도에 대한 논의는 종종 문학과 영화 간의 관계에 관한 논의의 중심을 차지해 왔다. <핀치 콘티니의 정원>은 바사니의 동명소설을 데 시카 감독이 연출한 후기작으로 이 영화로 아카데미 외국어작품상, 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을 수상하며 그의 존재를 세상에 다시 부각시키며 재기하는 계기가 되었던 작품이다. 이 영화에 대해서 바사니는 자신의 작품을 영화화했다는 것을 삭제해 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조르조라는 주인공이 유대인 박해를 목격하고도 도덕적으로 성장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었다. 또한 바사니는 이 영화가 자신의 다른 작품들 특히 『금테 안경』을 부분 표절한 것 같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바사니는 데 시카의 영화에 대해 “페라라에 있는 내 집을 촬영 장소로 이용해 나와는 아무 관계없는  사건들이 거기서 일어난 것처럼 묘사하고, 사랑하는 내 아버지의 인생을 장난감처럼 갖고 놀 수 있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권력 남용이다. 내가 아무런 항의도 하지 않고 고스란히 당했다면 나는 작가도 아닐 뿐더러 인간도 아닐 것이다.”라고 언급했다.


<핀치 콘티니의 정원>


그의 언급에서처럼 작가라는 자부심이 강한 바사니는 ‘페라라 소설’이라는 연작을 헌정한 유대계 작가이지만, 강제수용소를 직접적으로 드러내 ‘증언 문학’을 한 프리모 레비와는 다른 방식으로 유대인 차별을 다룬다. 인간의 본성에 의해 드러나는 차별과 사회적 편견을 다루면서 그 결과로 야기되는 고독, 소외에 빠지는 인간의 나약함을 보여준다. 바사니 작품의 특징은 같은 인물과 유대인 이름, 사건, 거리, 카페, 장터 등의 장소가 교차되는 경우가 많으며, 특히 어디에서나 묘지의 존재가 언급된다는 것과 자전적 소설이라는 점이다. 바사니는 소설에서 극적인 효과보다는 자신을 페라라 유대인 공동체의 증인이자 기록자로 심리적이고 도덕적인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초기 작품 『금테 안경』에서는 ‘배척’이라는 주제로 동성애를 극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는 1938년 도입된 인종법으로 동성애자들이 박해를 당한 것이 유대인들이 겪은 배척과 상통한다고 보았다. 뿐만 아니라 사회 저변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겪는 의식과 유사하다고 봤다. 『금테 안경』에서는 ‘죽음’이라는 테마를 저변에 깔아놓았던 반면 『핀치 콘티니의 정원』에서는 ‘죽음’이 전반적으로 강하게 차지하고 있다. 소설에서 인물들은 소통 불가능이라는 장벽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죽은 삶을 살면서 스스로를 격리시킨다. 물론 불운한 유대인들의 이야기뿐 아니라 사랑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서 사랑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소멸되고 있는 사랑이다.

바사니는 자신의 작품 세계를 이렇게 요약한다. “예술은 삶의 반대, 정확하게 정반대에 위치한다. 하지만 왠지 예술은 삶을 향한 향수를 느낀다. 그리고 진정한 예술이라면 그 향수를 느껴야 한다.”

정란기 이탈리아영화예술제 & 이탈치네마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