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일, <부드러운 살결> 상영 후 유운성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의 강연이 이어졌다. 유운성 프로그래머는 트뤼포의 초기작들 중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영화라며, 비록 개봉 당시엔 냉대를 받았지만, 이후에 재평가 받으며 트뤼포의 최고작 중 하나로 꼽히는 작품이라는 이야기로 운을 떼었다. 트뤼포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예외적으로 보이는 작품이기도 한 <부드러운 살결>에 대한 이야기를 비롯해 트뤼포 영화 세계 전반의 특징적인 면들을 짚어나간 이 날의 강연 일부를 옮긴다.

 

 

유운성(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영화평론가): 작년 미국의 필름포럼에서 <부드러운 살결>이 상영되었을 때, 짐 호버만은 이 영화를 두고 재평가되어야 할 영화라고 쓰면서, ‘가정domestic 서스펜스 영화’라고 표현한다. 개인적으로는 ‘친밀함intimacy의 서스펜스’라고 부르고 싶다. intimacy는 친밀함의 의미도 있지만 성적 의미도 갖고 있다. 이 ‘친밀함intimacy'를 가지고 트뤼포의 영화 세계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다.

 

친밀함의 서스펜스

‘친밀함’이라는 말을 정의한다면, 오직 둘 사이에서만 성립하는 관계라고 말하고 싶다. 둘 이외의 다른 어떤 관계가 끼어들거나, 보아서도 안 되고, 시각적으로든 언어적으로든, 어떤 식으로든, 둘 이외의 어느 누구에게도 노출되어서도, 알려져서도 안 되는 관계라고 생각된다. 문제는 이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을 때 두 가지 충동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내부적으로는 이 관계를 감춤과 동시에 알리고 싶어 하는 충동이 있고, 외부적으로는 그런 관계의 낌새가 있을 때 바깥의 사람들이 그 관계를 알고 싶어 하는 충동이 있다. 친밀함의 관계가 성립이 될 때, 그것은 굉장히 흥미진진한 영화적 소재가 되는데, 문제는 영화는 이 친밀함’ 담아내기에 굉장히 불편한 매체라는 점이다. 관계 외부의 듣는 사람, 듣는 기계 같은 것을 일체 허용하지 않아야하는데, 이미 카메라가 관계를 포착하는 순간 친밀함은 파괴된다. 영화는 친밀함에 굉장한 호기심을 갖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그것을 다루기 불편한 매체라는 것이다. 그래서 가장 친밀함의 관계를 맺고 있는 당사자들이 이걸 파괴하는 가장 폭력적이고 파괴적인 방식은 자신들의 성적인 관계를 직접 카메라로 담아내는 셀프포르노 형식이 될 것이다.

영화는 바라보는 것, 응시 없이는 성립할 수 없기 때문에, 영화가 아무리 친밀함의 공간에 호기심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고 그것을 영화적으로 하면, 결국은 관음증적인 형식이 될 수밖에 없다. 이는 트뤼포가 가장 좋아하는 히치콕 영화 중 하나인 <이창>의 두드러진 테마이기도 하다. 트뤼포는 영화가 친밀함의 공간에 다가가려고 하면 관음증적인 것이 되거나 그 관계를 파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굉장히 잘 알았던 감독이었다. <이창>같은 영화는 이런 공간에 다가가면서 사실은 그것을 무너뜨리고 있다는 의식, 죄책감이 있기 때문에 영화적으로 어떤 식으로든 변명이 필요해진다. 가령 <이창>의 제프리가 다리를 다쳐 깁스를 하고 있다는 설정은, 실체적 결함 자체가 그런 죄책감을 시각화한 것으로 보인다. 결말부에 가서 주인공이 나머지 다리까지 깁스를 한 것은 죄책감을 갖고 기어이 모험을 한 것에 대한 대가라고 할 수 있다.

트뤼포는 이런 식의 역설적인 구조를 꽤나 두려워했던 감독처럼 보인다. 트뤼포는 영화에서 베드씬 찍는 것을 꺼려했던 감독이었다. 친밀한 관계에 대해 호기심은 있는데, 패러독스도, 죄책감도 싫어했던 점들이 트뤼포 영화의 모순적인 태도들과 다양한 면모들을 만들어낸다. 트뤼포는 동료 누벨바그 감독들 중 어떤 이보다도 친밀함이라는 관계, 그 관계가 이뤄지고 있는 영화적 공간에 대해 깊이 관심 갖고 있던 감독이었다. 트뤼포의 연애영화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이 친밀함의 공간에 다가가면서 그것의 직접적인 재현을 피하려는 일련의 시도들로 정의할 수 있다. 그것을 피하기 위해 장르로 가거나 영화 스타일 자체를 전시하는 식으로 눈가림을 하는 방식을 취하는 것이다. 뭔가 보고 싶고, 관찰하고 싶은 건 있는데, 여기에 결부되는 죄책감은 피하고 싶다는 데에 트뤼포 특유의 유아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관음증적인 형식을 취하지 않고 어떻게 친밀함의 공간으로 다가갈 것인가. 사실 이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결국 죄책감만이라도 피해야겠다고 결심하면서 나오는 트뤼포의 세 가지 해결책이 있다.

 

트뤼포의 세 가지 도피법

첫 번째는 죄책감을 덜 가지는 상태에서 다가가기이다. 이 방식은 친밀함의 공간에 개입하거나 들어가려는 사람을 어린이와 어른 사이의 어딘가에 위치시키는 것이다. 이를테면, 부부의 침실에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아이처럼 말이다. 어떤 식으로든 트뤼포는 자신의 남자주인공을 그런 식으로 가장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런 인물이 어쨌든 영화에서는 성인으로 나타나니까 사회적으로는 무능하고, 성인의 특성 가운데 일부를 결여하고 있다는 점은, 다리에 깁스를 한 주인공이라는 히치콕의 물리적인 처리방식이 심리적이고 인격적인 방식으로 처리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특히 이런 점에서 트뤼포의 ‘앙트완 드와넬 연작’의 장 피에르 레오가 굉장히 트뤼포적인 페르소나로 자리매김할 수밖에 없다.

두 번째 해결책은 친밀함이 두 사람 사이에서 성리보디는 것이라는 전제 자체를 바꾸려는 시도이다. 친밀함과 유사한 감정으로 유지되는 삼각관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쥴 앤 짐>같은 영화의 토대를 이루는 구조로, <두 명의 영국 여인과 유럽 대륙>같은 영화로까지 이어진다. 하지만 이것은 시도가 그렇다는 것이지 성공하진 못한다. 결국은 두 명의 시선으로 지탱되는 친밀함의 공간과 그걸 바라보는 카메라에 대한 메타포로 삼각관계가 등장하는데, 친밀함의 원래의 전제를 억지로 감추려고 하는 것으로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그래서 영화에서 결국은 친밀함의 공간은 사실 두 사람의 것임이 확인되고 밝혀진다. <쥴 앤 짐>은 계속해서 쥴과 카트린, 짐과 카트린으로 오가고 결국 마지막엔 동반자살이라는 아주 가혹한 방식으로 친밀함이란 둘 사이에서밖에 성립될 수 없다는 전제를 확증하고 끝난다.

세 번째 방식은 친밀함의 순간이나 관계들을 장르 안에 위치시키는 것이다. 영화 장르라는 것은 카메라가 바라보는 기계장치라는 불편함으로부터 벗어나는 이런저런 시도들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가 죽음을 기록한다는 것은 불편한 일이고, 때로는 외설스러운 일일수도 있는데, 이런 죽음이 장르, 이를테면 범죄영화나 전쟁영화, 액션영화에서는 죄책감 없이 카메라가 죽음을 기록할 수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구애의 과정을 바라본다는 것은 굉장히 민망한 일이지만, 이런 민망함을 덜어줄 수 있는 장르가 스크루볼 코미디나 뮤지컬이 될 수 있다. 멜로드라마는 기본적으로 섹스와 그것의 실패를 낭만화하는 작업이다. 트뤼포가 어떤 식으로든 차용하고 있는 이 장르들은 친밀함의 공간에 다가가기 위한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트뤼포는 친밀함의 공간의 구조를 누구보다도 호기심을 갖고서, 죄책감을 덜고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던 탓에 말씀드린 이 세 가지 도피법을 오가며 작업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그래서 트뤼포의 필모그래피를 얼핏 보면 다른 누벨바그 동료들과 비교했을 때, 예술적인 연속성이 현저히 떨어진다고 여겨질 수밖에 없다. 비평가 시절에 이른바 작가정책의 주창자였던 트뤼포는, 자신이 감독이 되자 작가정책의 구원비평의 수혜를 가장 필요로 하는 감독이 되었다. 그 결과 샤브롤과 함께 가장 누벨바그적인 작가가 되었다. 고다르와 리베트는 아주 명료하게 극단적인 아방가르드 실험으로 갔고, 이른 태도는 사실 50년대 ‘카이에 뒤 시네마’ 시절에 내세웠던 ‘작가’라기 보다는 ‘예술가’의 형상이었다.

 

불편함의 정면 응시

<부드러운 살결> 같은 영화는 트뤼포 영화 경력에서 불편함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아주 드물고 희귀한 시도로 보인다. 불편함이라고 하는 것이 이 작품에 서스펜스를 낳는다. 이 영화 이전에 트뤼포가 만든 세 편의 영화 <400번의 구타>, <피아니스트를 쏴라>, <쥴 앤 짐>은 앞서 말씀드린 트뤼포의 세 가지 해결책을 차례로 제시한 영화들이었다. <부드러운 살결>은 세 가지 시도를 다 거친 다음 그것을 파기하고, 친밀함의 공간에 직접적으로 다가가는 방식을 취한다. 트뤼포는 이 영화에서 시도했던 것과 같은 불편함을 감당하기에는 여린 구석이 있었던 감독이었던 것 같다. 이 영화 이후에 적어도 관계에 있어서는 완전히 동일한 <부부의 거처>를 찍는데, 설령 부부관계와 연애관계에서 동일하다고 하더라도 <부드러운 살결>과는 완전히 상반된 것처럼 보인다. <부드러운 살결>에서 느꼈던 불편함을 털어내면서, 불륜 혹은 간통이 유머와 코미디를 통해 죄책감을 경감시키는 아주 잘 알려진 트뤼포의 방식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부부의 거처>는 황당한 조합을 띈다. 르누아르의 <랑주씨의 범죄>에서의 공간의 구조 안에서 자크 따띠의 영화를 연상케한다. <부드러운 살결>에서와 같은 트뤼포의 모험 또는 시도는 불행히도 한 번에 그쳤고, 프랑스 영화 안에서 이런 식의 대담한 방식으로 극도의 친밀함의 관계를 다루는 것이 계승이 되었다면 모리스 피알라의 영화가 아닐까 싶다.

<부드러운 살결>은 친밀함의 관계, 특히 불륜을 소재로 삼아서 이런 관계를 유지하는데 따르는 서스펜스를 담아내는 데 최선을 다한다. 영화에서 두 연인들이 친밀함의 공간을 성립시킬 수 있는 공간들을 찾아 헤매는데, 적어도 이 영화에선 결국은 호텔방이거나 둘의 일체의 사회적 관계가 단절되어 있는 낯선 시골의 모텔 정도 밖에 없다. 트뤼포는 만들면서도 이 영화가 히치콕적인 서스펜스가 될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트뤼포가 왜 히치콕이라는 감독을 그렇게 좋아했을까를 생각해보면, 히치콕의 영화가 궁극적으로는 섹스로 향하는 연애의 도정을 서스펜스 모험의 형식으로 가장 탁월하게 담아내어서가 아닐까 생각된다. 히치콕의 영화는 모험의 과정은 보여주지만 항상 성관계 직전에 끝나버린다. <부드러운 살결>의 초반에 리스본 호텔의 엘리베이터 장면을 보면, 굉장히 히치콕적인 방식으로 찍혀졌다. 주인공 라쉬네와 스튜어디스인 니콜, 니콜이 예전에 사귀었던 남자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는 장면에서 긴장감을 포착해내는데, 서스펜스를 담아내기 위해 엘리베이터가 올라갈 때의 시간을 실제의 시간보다 훨씬 길게 잡는다. 히치콕적인 서스펜스에서의 시간의 왜곡을 잘 활용하고 있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리스본 호텔의 엘리베이터에서 과거의 연인이었던 두 남녀의 공간에 침입해서 관찰을 했더 라쉬네는 영화가 진행되면 자신과 니콜과의 친밀함을 남들의 시선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애쓰게 있다. 이 영화는 <신나는 일요일>처럼 노골적인 것은 아니지만, 굉장히 히치콕의 <이창>같은 구조를 갖고 있다. 특히 라쉬네에게는 <이창>의 제프리가 하고 있는 것과 같은 깁스가 스토리와 스타일상 무려 두 개가 있다. 트뤼포가 이런 식의 직접적인 방식으로 친밀함 공간에 카메라를 들이대면서 죄책감을 경감시키기 위한 , 혹은 죄책감을 안고 이 영화를 찍고 있다는 것을 선언하는 메타포적인 깁스라고 할 수 있다. 첫 번째 깁스는 주인공 라쉬네가 갖고 있는 작가로서의 명성이 있다. 명성이라는 것은 <이창>의 깁스보다 훨씬 더 고약해서 자꾸만 타인의 시선을 끌어들여 친밀함을 방해한다. 두 번재 깁스는 스타일상의 선택으로 보이는데, 라쉬네 역할의 배우 장 드사이의 연기에서 표현적인 요소를 거의 박탈해버린다. 트뤼포 영화 중에서 <여자들을 사랑한 남자>의 주인공과 더불어 유독 가장 매력 없는 남자주인공이다. 이처럼 무색무취하고 매력 없는 인물이 있었나 싶다. 스타일상의 면에 있어서 이 인물에게 깁스를 해버리는 방식처럼 보인다. 그래서 아마 이 인물을 연기한 배우가 역할에 대해서도 불만이 많았고 실제로 트뤼포도 이 배우를 싫어했다고 한다.

 

이 영화를 좀 더 복잡하게 하는 것은 라쉬네라는 인물이 굉장히 친밀한 관계의 주인공이면서, 동시에 그 관계를 바라보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그 점은 이 영화가 뒤틀리는 계기가 된다. 오늘날로 보면 라쉬네라는 인물은 셀프 카메라 형식으로 자신들의 연애를 간직하기를 원하는 사람이다. 이런 점에서라면 트뤼포 감독 자신의 꽤 정확한 반영이기도 하다. 영화를 보면 라쉬네가 우연히 불륜의 관계에 빠져들었다기보다, 사실은 극단적으로 서스펜스를 유발할 수 있는 아주 친밀한 관계를 관찰하기 위해 여자를 만났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야외에서 카메라로 여자의 모습을 열정적으로 기록하다가 자동으로 놓고 자신도 함께 사진을 찍는다. 스스로 아내와의 불화를 만들어낼 증거를 기록하는 셈이다. 사실 이처럼 사진이라고 하는 것, 혹은 사진을 수집한다고 하는 것이 굉장히 트뤼포적인 행위라고 할 수 있다. 트뤼포 영화 안에서 그것은 꽤 중요한 계기가 될 때가 있다. 한편으로는 사진을 찍는 행위 그 자체를 통해서도 간접적으로 <이창>의 주인공과 연결된다.

트뤼포는 이 영화를 만들고 나서 왜 이런 식의 영화 찍기로는 더 이상 돌아가지 않았을까. 영화적 친밀함이라는 것이 항상 외설적인 것의 경계에 있는데 그 것이 경계에 머물기 위해선 친밀함 자체를 시각화하지 않는 한에서만 외설의 바깥에 머물 수 있다는 나름의 결론에 도달한 것 같다. 그런 친밀함을 담아내야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에 다가가는 것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는 것은 그건 영화 자체의 딜레마이기도 하면서 트뤼포의 다양한 연애영화들을 생성하게 만든 동기가 되었던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부드러운 살결>은 트뤼포 이후의 다양한 도피의 방식들로 다시 가기 전에 있었던 좀 특이한 사례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트뤼포가 연애, 영화, 관계에 대해서 접근하는 모든 강박관념, 불안, 죄책감, 서스펜스와 같은 것이 모두 담겨져 있는 영화로 보인다.

 

정리: 장지혜(관객에디터) 사진: 김아라(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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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기록을 넘어서

 

원하기만 했다면 트뤼포는 <이웃집 여인>을 극도로 사적인 영화로 만들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함께 살 수도 떨어져 살 수도 없는” 한 쌍의 남녀에 관한 이 비극적 이야기는 트뤼포의 과거의 사랑들을 토대로 했다. 특히 카트린 드뇌브와의 관계에서 얻은 아이디어가 많이 포함됐다고도 한다. 그러나 <이웃집 여인>는 개인의 역사를 넘어서 영화적 감동을 선사한다. “이웃집 여자와 얽히지 말라” 에릭 로메르의 격언 시리즈의 한편이라고 해도 어울릴만한 이 영화는 이야기만 놓고 보면 전혀 복잡할 것이 없는 통속극이다. 8년 전 고통스럽게 헤어진 두 남녀 마틸드와 베르나르가 결혼 후 이웃사이로 만나 지리멸렬한 사랑을 되풀이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그 이야기에 정서를 부여하고 그 정서를 통제하는 방식에 있어 트뤼포는 뛰어난 균형미와 연출력을 증명한다.

우선 극중 베로니크 실베르가 연기한 주브 부인을 내레이터로 내세운 선택이 탁월하다. 맨 처음과 맨 마지막에 덧붙여진 인터뷰에서 그녀는 마틸드와 베르나르의 상열지사를 어느 지방지에 난 기사마냥 전달하고, 그녀를 따라 관객은 6개월 전 사건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어지는 영화는 하나의 거대한 플래시백처럼 흘러가는데 그 구조와 효과가 <선셋 대로>의 그것과도 비슷하다. 그녀의 중립적인 목소리는 이 영화가 파토스 속으로 침몰하는 것을 막아준다. 드라마는 충분히 격정적이나 그 여파에 스러지는 일은 없다. 그 중용을 통한 성취에 대해 세르주 다네는 다음과 말한 바 있다. “<이웃집 여인>이 그처럼 성공적이고 따라서 감동적인 영화인 것은, 정열과 사상을 드러내는 것을 싫어하고 중용과 절충을 중시하는 인물인 트뤼포가, 이번에는 그 절충 자체를 영화로 찍고, 그것을 자신의 영화의 소재이자 표현 형식으로까지 만들려고 시도했기 때문이다.”

두 연인의 오랜 애증의 역사를 암시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트뤼포는 은근하다. 과거를 환기시키는 것은 마틸다의 팔목에 난 흉터나 오래된 흑백사진들과 같은 직접적인 단서들이 아니다. 얽히고설킨 시간의 작용은 두 연인과 무관해 보이는 한 장면에 탁월하게 포착돼있다. 주브 부인에게 편지를 전달하기 위해 우체부가 그녀를 찾아 헤매는 장면이다. 서사적으로 전혀 쓸모없는 기이한 장면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이리 옮겼다 저리 옮겼다 하는 우체부의 모습은 수많은 어긋남으로 삐뚤빼뚤해진 사랑의 행로를 연상케 한다. 그 우체부의 운동을 주시하는 베르나르는 알 수 없는 불길함에 휩싸인다. 주브 부인이 받아든 편지 또한 어긋난 시간의 침전물이다. 이와 같은 섬세하고도 간접적인 연출법을 통해 트뤼포는 자신의 역사를 초월하는 영화적 순간에 도달한다.

트뤼포는 자신의 삶을 정리하고 그것을 상연하는 데 열의가 높았던 감독이다. 평생 자신의 삶이 투영된 영화를 만들기도 했거니와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 그가 마지막으로 몰두했던 작업도 자서전을 쓰는 일이었다. 그만큼 그에게는 사적 기록과 공적 기록을 어떻게 합치시켜나갈 것인가가 중요한 문제였을 것이다. <이웃집 여인>은 그 노력이 원숙한 경지에 이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후경 / 씨네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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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식 레퀴엠

 

프랑수아 트뤼포의 후기 대표작 <녹색 방>이 만들어지기 한해 전인 1977년, 그에게 아버지와 같았던 앙리 랑글루아와 로베르토 로셀리니가 사망했다. 충격에 빠진 트뤼포는 죽은 이들과 계속 함께 하는 삶을 꿈꿨다. 그것이 그를 한때 심취했던 헨리 제임스의 세계로 이끌었을 것이다. 원작 <사자(死者)의 성단>의 각색을 그의 가까운 친구이자 동료였던 장 그뤼오에게 맡기며 그는 배경을 제1차 세계대전 직후인 1920년대의 프랑스로 옮기기로 했다. 그리고 일본 문학에서 사자 숭배와 관련된 참고 문헌을 찾고 성직자들에게 종교적 장면에 대해 자문을 구했다. 인간의 죽음, 특히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트뤼포는 이 영화에서 그 답을 구하고 싶었던 것 같다.

영화의 출발지는 무덤이다. 극장에 불이 꺼지면 제1차 세계대전의 뉴스릴이 펼쳐지는 가운데 주인공 줄리엥 다벤을 직접 연기한 프랑수아 트뤼포가 모습을 드러낸다. 10년 후의 그는 아내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친구를 위로하고 있다. 자신이 보살피고 있는 농아 조르주에게는 전쟁에서 죽은 병사들이 담긴 슬라이드를 보여주고, 다음날 자신이 부고 담당기자로 있는 글로브지의 사망한 구독자들로부터 반송돼온 잡지들을 보면서는 이상한 열정을 드러낸다. 그렇다. 이 수많은 죽음은 다벤에게 끝없는 절망이 아닌 비범한 열정을 유발한다. 혹은 그 둘을 같은 것으로 만든다. 오래전에 사고로 아내를 잃은 그는 그녀를 잊는 것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일이라 생각하며, 사자들에 대한 기억으로 그들과 자신의 삶을 방부하는 데 혼신을 다한다.

죽음의 그림자가 무겁게 내려앉은 이 영화는 그러나 섣불리 그 그늘에 잠기지 않는다. 다벤이 세실리아 망델을 만나면서 죽음은 조심스레 사랑과 몸을 섞기 시작한다. 오로지 죽은 자의 사랑받을 권리만 주장하는 그에게 그녀는 산 자도 사랑받을 권리가 있음을 일깨운다. 그러나 깨달음은 요원하다. 다벤은 사자들을 영원히 살게 할 기억의 성소를 짓는 일에 몰두하지만, 그곳에 밝힌 촛불이 실은 산 자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는 사실은 모른다. 그 무지가 보는 이를 안타깝게 하고, 또 마지막 장면을 경이롭게 한다. 앎을 넘어서는 구원의 순간이 숏과 숏 사이에 섬광처럼 다녀간 후 비로소 두 연인은 서로에게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 줄 수 있게 된다. 혹은 그럴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된다. 이 영화에 성직자로 출연하기도 한 연출가 앙투안 비테즈를 감동시킨 것도 바로 그 선한 결말이었을 것이다. 그는 <녹색 방>을 본 뒤 트뤼포에게 그 “제가 그 깊은 곳에서 본 것은 바로 선한 마음입니다”라고 편지를 썼다. 하지만 주변의 평가와 달리 상업적으로 이 영화는 트뤼포에게 큰 상처를 남겼다.

트뤼포의 사후에 <녹색 방>은 종종 그의 영화적 유언처럼 받아들여졌다. 아마도 영화 속에서 그가 맞이하는 결말 때문일 것이다. 동시에 이 영화는 그가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바치는 고별사 혹은 그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예배당이다. 실제로 그는 영화 속에 등장하는 예배당에 세상을 떠난 지인들의 사진을 모시기도 했다. 고독하고 불안했으나 선한 바탕을 잃지 않았던 트뤼포는 죽어서도 그들 곁에 머물기를 원했을 것이다.

 

(이후경 / 씨네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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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부친, 바쟁과 로셀리니, 그리고 배신과 속죄

 

트뤼포 자신이 직접 연기하는 <녹색 방>(1978)의 주인공 줄리앙은 부고(訃告) 전문 기자다. 부고 기사라는 게 불멸의 초상화를 그리는 렘브란트처럼 타인에 대한 깊은 연민이 없인 어려운 작업이다. 그런데 줄리앙은 편집장으로부터 ‘부고 기사의 대가’라는 칭호까지 듣는다. 죽은 사람은 그의 문장에 의해 부활의 명예를 누리기도 한다. 영화의 도입부, 줄리앙은 어느 정치가의 부고 기사를 쓰고 있다. 평소처럼 일필휘지로 내달리는 솜씨가 과연 대가의 풍모다. 그런데 그는 탈고를 하자마자 원고를 편집장에게 넘기며, 수정은 마음대로 하라면서 퇴근하려 한다. 편집장은 기사를 읽고, 얼굴이 사색이 된다. 급히 줄리앙을 불러 따지듯 묻는다. “당신은 죽은 사람을 두 번 죽이려합니까?”

 

 

우리는 기사 내용이 뭔지 알 수 없다. 다만 그 기사는 망자에 대한 예의가 아님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영화가 진행되며, 우리는 줄리앙의 설명을 듣는다. 죽은 자는 자신의 젊은 시절 절친한 친구이자 동료였는데, 자기에게 용서할 수 없는 배신을 저지른 탕아라는 것이다. 그 배신에 대한 분노의 표현이 부고 기사였다. 도대체 배신의 상처가 얼마나 깊었기에 대가가 사사로운 감정으로 공적인 기사를 망쳤을까.

영화가 발표된 뒤, 그 부고 기사의 인물, 곧 줄리앙에게 배신의 상처를 입힌 현실의 인물은 누구일까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영화는 헨리 제임스의 세 편의 단편을 각색한 것이니 당연히 허구다. 그러나 장편 데뷔작 <4백 번의 구타>(1959)부터 드러난 트뤼포 영화의 자전적 특성을 염두에 둔다면, <녹색 방>의 배신의 주인공에 대한 호기심은 자연스런 현상이었다. 적지 않은 영화인들이 고다르를 꼽았다. <중국 여인>(1967) 이후, 극좌파의 영화를 만들며 상대적으로 부르주아적인 장르 영화를 주로 만들던 트뤼포를 은근히 ‘경멸’했던 이유에서다. 그렇다면 여기서의 배신의 주체는 타자다.

그런데 나에게는 그 배신이 남을 탓하기만을 위한 테마일 것 같지 않다. <녹색 방>은 트뤼포가 46살 때 발표한 후기작이다(그는 52살에 요절한다). 배신과 더불어 강조돼 있는 ‘죽음’의 테마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이때의 트뤼포는 마냥 피 끓는 청년이 아니었다. 나는 그 배신의 주체가 자기 자신이고, 그래서 그 부고 기사는 자신에 대한 처벌이자 속죄라고 본다. 이유는 두 명의 유사 부친과의 관계 때문이다.

 

두 부친, 바쟁과 로셀리니

잘 알려져 있듯 트뤼포에게는 친부의 기억이 거의 없다. 이런 가족관계는 <4백 번의 구타>에 잘 드러나 있다. 트뤼포라는 이름도 양부의 것이다. 이 관계도 18살이 됐을 때 완전히 끝났다. 고교과정도 제대로 마치지 못한 트뤼포는 천둥벌거숭이처럼 사회에 내던져졌다. 고아나 다름없는 ‘영화광’ 트뤼포를 받아준 인물이 바로 앙드레 바쟁이다. 두 사람의 관계는 웬만한 시네필이라면 다 아는 내용이다. 바쟁은 그를 일정 기간 부양도 했고, 또 영화평론가로 키웠다. <카이에 뒤 시네마>에서 바쟁의 지휘 아래 ‘누벨바그의 청년들’이 다 모여 있을 때, 누가 봐도 가장 사랑 받는 인물은 트뤼포였다. 그는 사랑의 경쟁심도 강했다.

트뤼포는 문학박사이자 정치한 평론을 써내던 에릭 로메르로부터 글쓰기를 배웠다. 그러나 트뤼포는 로메르의 논리적인 평론보다는 도발적인 테마를 담은 에세이풍의 글로 자신의 명성을 쌓는다. 말하자면 추켜세우거나 ‘떡’을 만드는 게 트뤼포의 수법이다. 중간은 없는 그런 공격성 덕분에 트뤼포는 필명을 날린다. 그런데 문제는 트뤼포의 그 유명한 글, ‘프랑스 영화의 어떤 경향’(1954)이 발표된 뒤 불거졌다.

 

 

이 글은 ‘작가 이론’을 말할 때면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고전이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당대의 주류 프랑스 영화는 ‘문학의 하인 역할’이나 하는 구시대의 퇴물이라는 것이다. 영화는 일관된 미학을 지닌 ‘작가’에 의해 빚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트뤼포의 독단은 격심한 논쟁을 불러 일으켰지만, 누벨바그의 청년들은 대부분 트뤼포의 진영으로 모였다.

그런데 트뤼포의 주장, 곧 ‘작가이론’은 곧 이어 바쟁이 이끌던 <카이에 뒤 시네마>의 편집방향이 됐다. 사실 바쟁은 트뤼포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다. 바쟁은 ‘우상 숭배’의 위험을 염려했다. 그러나 이미 <카이에 뒤 시네마>의 편집권은 청년들에게 넘어간 뒤였다. 말하자면 철학의 부친살해가 일어난 것이다. 결국 이 일이 있은 뒤, 앙드레 바쟁과 청년들 사이의 관계는 과거와는 같을 수 없었다. 이 변화의 중심에 프랑수아 트뤼포가 있었다.

이럴 때쯤 트뤼포의 새로운 (유사)부친으로 등장한 인물이 로베르토 로셀리니다. <이탈리아 기행>(1954)이 발표됐을 때다. 이 영화는 이탈리아에서 개봉 당시 비평과 흥행 모두에서 참패를 맛봤다. 네오리얼리즘의 정신을 훼손한 의고적 작품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그런데 프랑스에서 반전이 펼쳐졌다. “모던한 영화를 보고 싶으면 바로 이 영화를 보라”며, 자크 리베트는 ‘로셀리니에게 보내는 편지’(1955)라는 평론을 통해 이 작품을 적극 옹호했다. 리베트의 뒤에는 트뤼포가 있다는 사실은 다 아는 비밀이었다. 사람들은 트뤼포를 로베스피에르로, 리베트를 생쥐스트라고 불렀다. 청년들은 마치 혁명하듯 펜을 휘둘렀기 때문이다.

로셀리니는 파리로 왔고, 트뤼포, 고다르, 샤브롤, 리베트, 로메르 등 청년들은 그의 곁에 몰려들었다. 이제 그들은 새로운 아버지를 찾았다. 바쟁이 펜을 쥐어줬다면, 로셀리니는 카메라를 들려줬다. 이들은 모두 감독 데뷔를 꿈꾸고 있었다. 로셀리니는 사도들을 이끄는 예수 같았다. 여기서도 가장 돋보이는 인물은 트뤼포였다. 다른 청년들은 각자 로셀리니의 지시에 따라 독립적으로 작업했지만, 트뤼포는 그의 조수로 발탁됐다. 대략 2년간 같이 살다시피 하며 시나리오 작업에 매달렸다. 트뤼포는 로셀리니를 ‘이탈리아인 아버지’라고 불렀다. 뒷날 트뤼포가 <400번의 구타>로 칸에서 감독상을 받을 때 로셀리니는 심사위원이었는데, 두 사람의 과거와 수상이 전혀 관계없지는 않을 것이다.

 

<녹색 방>, 속죄의 영화

한편 이럴 즈음 누벨바그의 청년들 사이에서 바쟁이라는 이름은 지워져갔다. 바쟁을 만나 영화를 본격적으로 공부하던 청년들은 이제 다른 아비를 찾은 것이다. 특히 로셀리니 옆의 트뤼포는 예수를 바로 옆에서 보좌하는 요한처럼 비쳤다. 거장의 총애를 받는다는 조건이 아마 청년을 들뜨게 했을 것이다.

누벨바그의 청년들이 곁을 떠나 밖으로 나돌 때, 바쟁의 기분은 어땠을까? 특히 자식 같았던 트뤼포가 다른 아비로부터 가장 사랑 받는 존재가 됐을 때, 바쟁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여기에 대한 특별한 미담은 별로 듣지 못했다. 트뤼포는 드디어 장편 데뷔작 <4백 번의 구타>를 찍는다. 그런데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첫 촬영이 있었던 날, 곧 1958년 11월 10일에 바쟁은 백혈병으로 죽는다. 트뤼포는 데뷔작을 “앙드레 바쟁과의 기억에 바친다”고 오프닝 크레딧에서 밝혔다. 그럼으로써 두 사람의 유사 부자관계는 영화사의 미담으로, 신화로 남았다. 그런데 그 헌정, 오로지 미담의 의미뿐일까?

 

후기작인 <녹색 방>을 보면 다른 의문이 생긴다. 바쟁에의 헌정은 흠모라기보다는 속죄의 행위처럼 보인다. <토템과 터부> 속 부친살해의 자식들이 집행하는 제사의 심리 말이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이는 범죄의 대물림을 끊기 위한 희생자의 영웅화 작업이자, 가해자의 속죄의 행위다. 말하자면 부친과의 관계를 끊었던 탕아, 트뤼포의 죄의식의 산물이 도입부의 헌정처럼 보이는 것이다.

트뤼포의 영화에는 대개 아버지의 존재가 지워져 있다. 부성이 강조된 대표적인 작품이 <야성의 아이>(1970)이다. 여기서도 트뤼포는 직접 주연으로 나오는데, 루소의 <에밀>처럼, 한 야성의 아이를 교육시키는 아버지 같은 역이다. 두 영화에만 트뤼포가 주연으로 등장하는 게 우연은 아닌 것 같다. <야성의 아이>의 부자관계에서 바쟁과 트뤼포가 떠오르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바쟁의 눈에는 버림 받은 소년 트뤼포가 ‘야성의 아이’가 아니었을까. 말하자면 <야성의 아이>는 바쟁과 자신의 관계를 되돌아보는 첫 속죄의 작품인 셈이다. 영화는 탈출했던 소년이 (유사)아버지의 곁으로 되돌아오는 것으로 끝난다.

<녹색 방>의 줄리앙은 죽은 아내에 대한 충절을 절대 배신할 수 없다. 그에게 배신은 최악의 죄이다. 그는 죽어서도 아내의 사당에 함께 있게 해달라는 유언을 남긴다. 이런 과도한 강조는 오히려 그의 콤플렉스를 더욱 상상하게 만든다. 그래서인지 나에겐 자꾸 아내의 초상화가 바쟁처럼 보인다. 그리고 초상화 앞에서 충절을 맹세하는 줄리앙은 배신을 속죄하는 돌아온 탕아, 곧 트뤼포의 분신처럼 보이는 것이다. 트뤼포가 진정으로 바쟁에게 헌정한 영화는 <녹색 방>으로 비치는 까닭이다.

 

(한창호 영화평론가)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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