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9일, 브라이언 드 팔마의 83년작 <스카페이스> 상영 후 배우 박중훈과 함께하는 시네토크가 이어졌다. 배우 박중훈은 관객들에게 인사를 전하면서 본인을 알파치노로 소개하여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또한 그는 <스카페이스>에서 알파치노의 쿠바 억양이 섞인 영어 대사를 완벽하게 외워 놀라움을 자아내기도 했다. <씨네21>의 주성철 기자와 함께, <스카페이스> 개봉 당시의 추억들로 시작하여 배우 박중훈의 연기관과 한국 영화에 대한 그의 생각까지 들을 수 있었던 그 현장을 전한다.


주성철(씨네21 기자): 바로 영화 얘기를 시작해보자. 이 영화를 언제 처음 봤는지 기억이 나는가.
박중훈(배우): 내 기억이 맞다면 고등학교 2, 3학년 때인 것 같다. 그때 봤던 극장이 종로3가에 있던 서울극장이었다. 나이 드신 관객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그 당시 극장개봉시스템때문에 서울 사대문 안에 있는 개봉단관 한 관에서 개봉했다. 한 관에 좌석이 1000석 정도였고, 하루에 다섯 번 상영하니까 5000천 명만 볼 수 있었다. 영화 표 사느라 장사진을 이룬다는 게 가능했던 때다. 좌석이 1000석이니까 굉장히 큰 화면으로 보면서 거의 실신을 했다. 연극부 생활을 할 때인데, 배우를 꿈꾸면서 살 때 알파치노를 큰 화면에서 마주하고 굉장히 큰 충격을 받았다.

주성철: 다시 보니까 음악이라든가 여러 가지로 장현수 감독의 <게임의 법칙>이 생각난다. 실제로 <스카페이스>를 많이 참고하셨다고 들었다.
박중훈: <게임의 법칙> 시나리오를 강제규 감독님이 쓰셨고, <스카페이스>의 시나리오는 올리버 스톤이 썼다. 시나리오를 받아보고서는 장현수 감독에게 제안을 했다. 카피를 하자는 게 아니라, 내가 브라이언 드 팔마와 알파치노를 좋아하니 혹시 감독님도 동의가 되신다면 알파치노와 브라이언 드 팔마에게 오마주 영화를 만들고 싶다, 해서 시작한 것이 <게임의 법칙>이다.

주성철: 50번 넘게 보셨다고 했는데, 그러면 매번 보실 때마다 좋아하는 장면이 바뀔 것 같다.
박중훈: 많이 봤다는 걸 강조할 때 100번도 더 봤다고 하는데, 나는 진짜로 50번을 넘게 봤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50번이고 실제론 한 70번 정도 본 것 같다. 대사도 거의 다 외웠다. 그런데 쿠바 억양이 강해서 영어 공부엔 도움이 안 됐다. (웃음) 어떤 장면이 좋으냐면, 토니가 성공해서 어머니한테 거드름피우고, 여동생은 오빠를 좋아해요, 하면서 오누이의 정을 나누고, 그런데 배경 뒤로는 노을이 지고, 주제음악의 멜로디가 피아노로 나오는 그 장면이 굉장히 가슴을 적셨다. 처음 봤을 땐 마약하고서 소리 지르고 쓰러지는 장면이 충격적으로 기억에 남았지만 자꾸 보면서는 정서적인 씬들이 기억에 남는다.

주성철: 알파치노 얘기를 하고 싶다. 다시 봐도 대단한 것 같다. 이보다 앞서서 <대부>에서 마이클로 나올 때는 절제되어 있고, 차갑고 지적인 이미지였다면 여기서는 무모하고 충동적이고 본능적인 캐릭터를 연기했다. 그리고 드 팔마하고 <칼리토>를 할 때는 선량하고 바른 삶을 사는 푸에르토리코사람으로 나오기도 했다. 알파치노에 대해서 다시 보게 되는 것 같다.
박중훈: 배우와 관객들 사이에선 ‘일정 거리 유지 질량의 법칙’같은 게 있는 것 같다. 튀어나오는 배우한테는 관객들이 도망가면서 매력을 느끼고, 숨는 배우에게는 쫓아가려는 매력이 있다. 이 두 매력을 갖춘 배우가 알파치노라고 본다. <스카페이스>에서는 비교적 튀어나오는 연기를 많이 했는데, 알파치노가 나오는 다른 영화를 보면 숨어버리는 연기도 한다. 그런 두 가지의 스펙트럼이 매우 넓은 배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배우로서 존경하고 위대하다고 생각한다. 또 하나 얘기하자면, 여백과 공백은 큰 차이가 있다. 여백은 참아낸 것이지만 공백은 부족한 거다. 그림에서 여백과 공백이 있다면, 연기에서는 ‘포즈’와 ‘마’가 있다. 호흡을 못 쫓아가면 마가 뜨는 거다. 하지만 알파치노는 포즈가 근사한 배우다. 알파치노 연기 특유의 포즈가 있는데, 다른 영화에서도 많이 나온다. 그 포즈가 정말 매력 있다.(일어나서 연기를 보여줌) 알파치노를 보면, 키 작은 사람이 혼자 이렇게 걷는다. 레스토랑에서 자기 아내랑 파국을 맞으며 돌아다니는 장면에도 이런 게 굉장히 많다. 죽을 때도 마치 연극무대에서 배우가 돌아다니듯 서성거린다. 그런데 사실 그게 굉장히 위험하고 굉장히 보기 거슬리는 행동이다. 잘못해서는 겉멋 든 배우처럼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알파치노는 배우 개인의 매력으로 ‘마’를 ‘포즈’로 바꿔버린다.


주성철: 알파치노를 떠나서 브라이언 드 팔마라는 이름 자체가 그 당시 굉장한 흥분을 불러일으켰다.
박중훈: 개인적으로 브라이언 드 팔마의 실패작까지도 마음에 든다. 백미는 <스카페이스>와 <칼리토>, 최근 <미션임파서블1>까지 포함해서. 드 팔마의 영화는 군더더기 없고, 저속한 표현이지만 한마디로 쌈박하고 힘있다.

주성철: “지금 관객들은 괴롭힘을 당하길 원하는데, 드 팔마는 여전히 관객을 유혹하려는 사람이다”라는 말이 기억난다. 말 그대로 장인 같은 감독이다. 빨리 신작을 보고 싶다. 또 <스카페이스>를 다시 보면서 생각이 난 건데, 코카인을 흡입하면서 콧잔등에 흰 가루 묻히고 있는 장면이 다른 영화들에게 많은 영향을 줬다. 그런 식으로 보면, 영화를 좋아하고 배우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모방하고 따라하고 싶은 욕구가 있을 것 같다.
박중훈: 사람이 누구를 좋아하고 마음속에 그리고 흠모하면 닮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 나 같은 경우엔 브라이언 드 팔마와 알파치노가 특정 행동에 영향을 줬다기보다 영화인생을 사는데 있어 큰 영향을 준 사람임에 틀림없다.

관객1: <스카페이스>의 알파치노 연기는 일종의 과잉처럼 보일수도 있는데, 캐릭터와 동화가 잘 되어 영역을 넘어선 연기가 됐다. 그런 연기를 하기 위해서는 메소드 연기처럼 자기를 버려가면서 연기를 해야 하는지. 아니면 행동 계획에 따라 철저히 계산을 해야 하는지 궁금하다.
박중훈: 말씀하신 전제를 보자면, 나는 알파치노의 연기가 과잉된 연기라고 보지 않는다. 다만 과잉된 인물이다. 과잉된 인물을 충실하게 연기한 것이지, 연기가 과잉된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또 여기 영화공부 하시는 분들에게는 충격적인 이야기가 될 수도 있지만, 영화 연기나 연출엔 법이 없다. 대학교에 영화과가 있는 것이 모순적일 정도로 영화는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연기법이 따로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다만 배우는 좋은 신체를 가지고 건강한 상태로 인물을 이해해야 한다. 연기의 사전적 정의는 ‘주어진 가상을 현실로 믿고 순간을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이다. <스카페이스>에서 알파치노가 어떤 연기법을 썼는지 분석한 적도 않았고 분석할 수도 없는 거라고 생각한다. 연기 이론이나 연기법 같은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관객2:
배우로서 연기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혹은 배우관이라고 하는 것이 있는지 궁금하다.
박중훈: 자기가 이렇다, 라고 배우가 보여주는 연기를 관객들이 믿는 순간, 공감하는 순간을 좋은 연기라고 한다. 배우가 그 상황을 믿지 못하면 아무도 믿지 않는다. 클로즈업으로 확대하면 실제 크기의 3000~6000배가 확대된다. 관객들은 그걸 어두운 곳에서 선명하게 본다. 배우의 연기가 겉도는지, 거짓말인지 금방 알아내는 거다. 연기에 있어서는 배우가 그 상황을 믿어야 한다. 가끔씩 생각했던 것보다 떨어지는 감독들이 있다. 그때부터 참 미치는 거다. 내가 못 믿는데 어떻게 연기가 되나. 그때가 제일 곤혹스럽다. 그럼 애매한 상태에서 연기를 한다. 그렇게 되면 아주 고통스럽다. 그런 느낌을 많이 받은 영화일수록 안 됐다. 그런데 현장에서 소름이 끼칠 정도로 믿기는 상황이다, 이러면 감독 말 들을 필요도 없다. 내가 느꼈으니까. 진짜는 그 마음을 가지고 있냐, 없느냐다. 물론 그걸 표현하는 방법은 배우가 찾아내야 하지만, 가장 중요한 근본은 배우가 감정을 느껴야하는 것이다.

관객3: 원작도 봤는데 브라이언 드 팔마의 <스카페이스>가 더 좋았다. 이런 영화를 좋아하면서 갱스터 영화에 대해 가지고 있는 고민이 있다. 폭력적인 면이 나오는 와중에도 기본적인 도덕관념이 있느냐의 문제가 있다. 그런 지점에서 이 영화는 어떤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나.
박중훈: <스카페이스>는 한 인간의 욕망의 끝을 굉장히 강한 서사로 그린 것이다. 그런데 만약 그런 주제 의식이 선명하게 느껴지지 않는 경우에는 폭력적인 영화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는 의미전달이 잘 되어 폭력적인 묘사가 용인이 된다. 한마디로 선정적으로 이용하느냐의 차이다. 다른 예를 들면, 성인 남녀가 육체적인 관계를 갖는 것은 삶의 한 부분인데 그것이 확대되어 강조되는 경우는 에로 산업영화라고 하지 않나. 폭력도 개연성이 있다면 받아들일 수 있다. 그리고 <스카페이스>에서는 토니 몬타나가 형벌을 받는다. 가족을 잃고 스스로 파멸의 길로 접어 들어간다. 권선징악을 당한 거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도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관객4:
영화를 공부하는 건 아니지만 영화 산업에서 일을 하고 싶다. 사소한 것들부터 시작해서 국내 영화 산업이 더 잘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박중훈: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한국영화를 사랑하지 말라는 것. 애국심으로 봐주면 얼마나 지겹고 귀찮은 일인가. 그걸 봐줘야 할 이유가 없다. 두 번째는, 재미없는 영화는 철저하게 외면해야 한다는 것. 조금만 잘못되면 바로 지적해야 한다. 영화인들을 그렇게 몰고 가야 한다. 한국 영화는 절대 애정을 갖고 보면 안 된다. 그냥 영화로 보면 된다. 물론 내가 나온 영화도 포함해서 자유롭게 채찍과 당근을 주길 바란다. 다만 배급에서 독과점이라든가, 제도에 대한 논의라든가 하는 것들은 애정을 가지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

주성철: 정말 오랜만에 순도 100퍼센트의 영화를 본 것 같다. <뜨거운 오후>의 알파치노가 생각난다. 요즘엔 그런 연기가 없어서 그립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부탁드린다.
박중훈: 스무 살에 배우로 데뷔해서 27년 동안 40여 편의 영화를 찍었다. 그 긴 세월동안 가장 많이 내뱉은 단어가 ‘관객’이다. 영화는 관객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관객이 있어야 존재하는 게 영화다. 오늘 이 자리에 오신 분들 중 <스카페이스>가 궁금해서 오신 분들, 옛날 향수를 다시 느끼고 싶어서 오신 분들, 저에 대한 관심이 있어서 오신 분들, 어느 분들이든지 전부 다 감사드린다.

정리|송은경 관객 에디터 사진|최용혁 자원 활동가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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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s 2012.02.24 15: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984년 피카디리극장에서 50분정도 분량을 삭제한 채로 개봉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