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한없이 건조한 레지스탕스 필름누아르

-장 피에르 멜빌의 <그림자 군단>

 

 

장 피에르 멜빌은 프랑스 영화의 역사라는 맥락에서 볼 때 비평가들이 정의하기 어려운 감독 중 하나이다. 그럴만한 사정은 있다. 미국영화를 추앙했던 누벨바그리언들이 직접적으로 자신의 영화들에 미국의 양식을 이식하는 것을 회피했던 것에 비해 멜빌은 미국식 장르를 프랑스 영화계에 전용한 ‘파리의 아메리카인’이었다. 멜빌의 노작들은 장르(필름 누아르나 하드보일드 범죄영화)에 대한 페티시즘이 미학의 경지로 승화된 사례를 제공한다. 차갑고 건조한 그의 범죄영화는 냉소주의와 비관주의, 어둠과 연결되는 장르의 특성을 양식화된 표현을 통해 제공(<바다의 침묵> <도박꾼 밥> <사무라이>)했다. 

 

<그림자 군단> 역시 이러한 배경 속에서 탄생한 작품이다. 조셉 케셀의 1943년 소설을 각색한 이 영화는 2차 대전 말기 프랑스 레지스탕스 조직 활동을 묘사하고 있다. 필립 제르비에(리노 벤츄라)가 이끄는 조직의 요원들이 체포와 구금, 고문, 탈출을 반복하는 과정이 별 다른 사건없이 건조하게 묘사된다. 케셀의 소설이 레지스탕스에 대한 것이었다면 멜빌의 영화는 저항 행위 자체에 대한 것이다. 정치적 행위로서의 저항이 아니라 실존적 양식으로서 저항 행위를 다룸으로써 그는 텍스트의 역사적, 정치적 맥락을 삭제한다. 프랑스의 역사적 상황을 배경으로 깔았지만 영화는 범죄 누아르와 스파이 영화를 교배한 형태를 띠고 있다. 게슈타포를 경찰, 레지스탕스들을 범죄조직이나 첩보원으로 바꾼다 해도 하등 이상할 게 없을 정도로 멜빌은 레지스탕스 스토리(멜빌 자신이 점령기 레지스탕스로 활동했다)를 범죄 누아르의 자장 안으로 밀어 넣는다.
 

어떤 장면들은 흡사 로베르 브레송의 영화를 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스타일에 대한 접근방식, 사운드, 특히 과묵한 인물들의 내면을 진술하는 나레이션은 노골적으로 브레송 풍이다. 극적이나 심리적이기를 거절하고 철저하게 현상적인 기술에 그치는 나레이션을 암송하는 인물들은 그들을 위해 만들어진 삶을 견디는 것처럼 행동한다. <그림자 군단>에 만연한 것은 심리적 동기화나 감정을 배제한 냉혹한 묘사, 침묵, 생략이다. 이를테면 펠렉스나 장 프랑소와에게 행해지는 고문의 과정은 생략된다. 필립의 조직원들은 미래가 없을뿐더러 과거도 없다. 필립은 자신이 엔지니어라고 말하지만 직업은 그의 임무와 어떤 연관성도 맺지 않는다. 장르의 존재론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을 따라 멜빌은 특정한 방식으로 입고, 말하고, 행동하고, 죽음을 맞는 인간을 묘사하는 것에 치중한다. 따라서 그들이 입는 옷과 중절모, 자동차, 총, 시가, 어둡고 한적한 거리에서의 달리기 따위가 더 중요하다. 

‘저항’이라는 세상의 요구를 묵묵히 받아들이면서 살아가는 인간들을 묘사하는 이 영화가 유일하게 다루고자 하는 테마가 있다는 그것은 ‘죽음’이다. 카리스마 넘치는 여성 조직원 마틸드(시몬느 시뇨레)의 처형 장면에서 이런 사정이 단적으로 드러난다. 대장은 타살도 자살도 할 수 없는 딜레마에 빠진 것으로 마틸드의 운명을 단정하고 그를 암살하지만 죽음의 순간 마틸드의 눈빛은 이와 같은 판단을 유보하게 만든다. 그녀는 정말 조직이 자신의 명줄을 끊어주기를 바랐던 것일까? 이 순간 <그림자 군단>은 언제나 죽을 수 있는 일에 종사하는 이들이 짊어진 실존의 부조리함을 다룬 영화가 된다.

장병원 /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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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망각의 새로운 가능성

-미셸 공드리의 <이터널 선샤인>

 

 

어느 날 아침 한 남자가 출근 대신 충동적으로 여행을 떠난다. 기차를 타고 바다를 찾은 그는 그곳에서 우연히 한 여자를 만난다. 남자는 지나치게 수줍어하고, 여자는 어딘가 들떠 있다. 그리고 그날 밤 얼어붙은 강 위에서 두 사람은 나란히 누워 밤하늘을 바라본다. 관객은 영화가 한참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이 두 사람이 과거에 이미 헤어졌던 연인임을 알게 된다. 그들은 서로의 기억을 잃어버린 채 자신들이 처음 만났던 장소에서 조우한 것이다. 다시금 사랑의 출발에 선 그 순간에 기억과 상처는 불쑥 되돌아오고, 인물들은 선택을 해야 한다. 변덕스러운 감정은 언제든 그들을 다시 고통 속에 몰아넣겠지만, 어쨌든 두 사람은 이 우연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그렇게 사랑은 다시 시작된다.

 

 

<이터널 선샤인>은 무엇보다 찰리 카우프만과 미셸 공드리의 공동 작업으로 관심을 모았고, 그 결과는 충분히 만족스러운 것이었다. 두 사람의 공통된 관심사(기억, 꿈, 불안, 무의식)가 바탕이 되었고, 카우프만 특유의 섬세한 플롯 구성은 공드리의 시각적 아이디어와 만나 시너지 효과를 냈다. 특히 기억을 삭제 당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기억을 지켜내기 위해 분투하는 모습은 애잔함과 함께 보는 이의 마음을 흔든다. 한편 겹겹의 플래시백으로 들쭉날쭉하고 복잡한 구성은 영화와 관객 사이의 변화된 상황을 예시한다. 상황과 공간들을 연결하는 방식에서의 촉각성은 기억을 시각적 재생이 아닌 접촉과 전이의 과정으로 옮겨놓는다. 이때 ‘기억’을 ‘영화’로 바꿔 말해도 좋을 것이다. <이터널 선샤인>에서 공간화된 기억, 인물 내부와 외부를 동분서주하는 과정은 영화와 관객 사이의 상호작용에 다름 아니며, 체화된 감각에 대한 강조는 특수효과 대신하는 특유의 ‘로우테크’로 이어진다.

 

이러한 감각들은 영화 안에서 기억의 파괴에 대응하는 것이며, 동시에 미셸 공드리가 보여주는 노스탤지어와 환상이 갖는 힘이기도 하다. 그의 영화에서 기억/망각, 현실/꿈, 실제/재연의 이분법은 더 이상 기능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관객은 더 이상 수동적인 위치에 머물지 않으며 적극적으로 영화에 개입하기에 이른다. 영화가 반복해서 얘기하는 니체의 경구는 망각에 보내는 찬사이다. 이때의 망각은 새로운 출발을 위한, 능동적이고 창조적인 능력을 의미한다. 기억은 망각의 극복이 아니라 망각이라는 구성적 작업을 통해 비로소 가능해진다. 그런 의미에서 <이터널 선샤인>의 기억 상실은 <비카인드 리와인드>에서 비디오 대여점의 죄다 지워진 영화 테잎들과도 같은 맥락에 있다. 망각과 지워짐의 과정은 파괴적이지만 동시에 유희의 공간을 열어둔다. 그곳에서 공드리는 지극히 사적인 기억과 환상에 의지해 소진되지 않고 여전히 남아있는 과거의 잠재력을 다시 불러들인다. <비카인드 리와인드>에서의 유토피아적인 거리 공동체나 <이터널 선샤인>에서 사랑이 다시 시작되는 그 순간처럼 말이다.

 

장지혜 / 시네마테크 관객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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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니콜라스 뢰그의 <쳐다보지 마라>


<쳐다보지 마라>의 초반부에 이런 문제가 나온다. 지구가 둥글면 왜 얼은 호수는 평평한 것인가(If the world is round, why is a frozen lake flat)? 영화 초반부에 배경으로 등장하는 호수는 미국의 온타리오 호수인데, 어떤 책에 따르면 이 호수는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3도쯤 구부러져 있다고 한다. 얼은 호수가 평평해 보이더라도 그게 진짜 평평한 것은 아니라는 거다. 보이는 그대로인 것은 없다(Nothing is what it seems). 이 문제는 대부분 물과 가까운 곳에서 전개되는 <쳐다보지 마라>의 공간을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는데,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이 문제의 답이 곧 이 영화의 주제라는 것이다. 보이는 그대로인 것이 없다면 보이는 것을 그대로 믿는 사람은 진실을 잘못 이해하게 될 수도 있고, 그로 인해 잘못을 저지르거나 위험에 빠지게 될지도 모른다.

 

영화는 딸인 크리스틴을 사고로 잃은 후 베니스로 간 존과 로라 부부의 이야기를 다룬다. 영화의 무대가 되는 겨울철의 베니스는 마치 ‘국에 빠진 것 같은’ 습하고 을씨년스러운 도시로 묘사되는데 주인공인 존은 이곳에서 교회 복원 작업을 하고 있다. 크리스틴이 사고를 당했을 때 존이 보고 있던 것은 교회 스테인드글라스를 찍은 슬라이드 필름이었는데, 공교롭게도 그가 자주 만지게 되는 유리와 물의 서로 유사한 몇 가지 속성들은 이 영화에서 나타나는 세계의 속성이기도 하다. 물과 유리는 빛을 반사해서 사물의 상을 비출 수 있다. 또 유리는 깨지는 성질이 있고, 물은 강도가 단단하지 않다. 물과 유리의 성질이 견고하지 못한 것처럼 이 영화의 세계도 불안정하기 짝이 없으며, 그 불안한 느낌이 관객에게도 전달된다.

 

영화의 첫 장면은 내리는 비 때문에 연못 표면에 파문이 일어나는 모습을 보여준다. 여주인공인 로라가 호수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보는 책에는 ‘부서지기 쉬운(fragile)’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다. 존과 로라 부부의 아들인 자니는 자전거를 타다 유리 조각을 깨는데, 이것이 앞으로 일어날 사건의 전주곡이 된다. 그들 부부가 기절하거나 사고를 당하는 장면을 보면, 사람만 쓰러지는 게 아니라 테이블 위에 있던 유리잔이나 병 같은 것들이 전부 다 떨어진다. 각목이 떨어지면서 유리가 산산이 부서질 때 곤돌라 위에 올려놓은 도구 및 유리 타일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이 장면들은 첫 시퀀스에서 아이가 익사하는 장면과 느낌이 매우 비슷하다. 온전하던 세계가 부서지고 모든 것이 아래로 가라앉거나 떨어지는, 지진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 초자연적인 관점 혹은 민속학적인 관점에서 물과 거울-유리가 이승과 저승을 잇는 통로가 된다고 볼 때, 이 영화의 근본적인 불안함은 두 세계를 구분하는 경계가 약하다는 데서 나온다. 영매는 통상적인 관념에 따르면 이 세상뿐만 아니라 다른 세상을 자유롭게 볼 수 있는 존재다. 세계와 세계 사이의 경계가 약하며 이에 따라 두 세계가 서로 어떤 영향을 주고받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더불어 이 영화의 세계는 확고한 물리적인 법칙에 따라 움직이지 않고 혼란스럽다. 시간의 혼란, 인과 관계의 혼란, 공간의 혼란은 관객에게 불안감을 안겨주며 이야기를 수수께끼처럼 만들고 있다.



먼저 시간의 혼란. 존과 로라 부부는 베니스를 돌아다니면서 몇몇 장소에서 기시감을 느낀다. 처음 와봤는데 언제 와본 듯한, 부부가 한 번씩 이런 감정을 느끼는데 나중에 그들은 그런 감정을 느낀 장소를 다시 찾게 된다. 그들이 전에 이 장소에 들렀던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 것은 나중에 거기 들렀기 때문이다. 다음 인과 관계의 혼란. 이 영화에서 벌어지는 몇몇 사건들은 기묘하게 연결되어 있다. 존이 식당의 한쪽 문을 열자 갑자기 다른 쪽 문이 벌컥 열리고 그로 인해 로라가 영매를 만나게 된다. 한쪽 문을 열었다고 다른 쪽 문이 열릴 리가 없지만 꼭 그렇게 된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마지막 공간의 혼란. 중앙에 큰 문이 있고 그 왼편 옆에 작은 문이 보인다. 관객들은 그 안이 욕실이며, 존이 곧 거기서 나올 것임을 알고 있다. 존은 그 문으로 걸어 나오는 대신 옆에 있는 작은 문으로 나온다. 영국에서 로라와 배비지 부부는 카메라와 가까운 쪽의 열려 있는 문으로 나오려다가 갑자기 방향을 바꿔 반대편 문으로 나간다. 자니가 깨진 유리에 손가락을 베였는데 존이 보고 있던 슬라이드 필름에 그 피가 배어나오는 장면도 있다.

 

물리적인 법칙이 이렇게 혼란스럽다면 내가 본 것을 확고하게 믿을 수 있을까? 이 영화에는 죽음을 상징하는 이미지들 또한 도처에 널려 있다. 아이는 죽기 전에 빨간 우비를 입고 빨간 장화를 신었으며 죽기 전에 가지고 놀았던 공은 빨간색이 섞인 것이다. 존은 안에 물이 찬 인형을 보면서 익사한 아이를 생각하는데, 베니스에서는 빨랫줄에 걸린 빨래조차도 죽어서 팔을 늘어뜨리고 있는 시신을 떠올리게 한다. 쥐의 빨간 눈과 시신을 인양하는 현장에서 아이들이 쓰고 있는 빨간 모자, 베니스가 위험에 처해 있다는 간판의 빨간 글씨, 사고를 당한 자니가 덮고 있는 빨간 이불까지. 보고 있으면 불길하고 불안해지는데, 이 영화가 재미있는 점은 죽음을 떠올리게 하는 이미지들을 노골적이지 않게, 아주 무심한 태도로 곳곳에 숨은그림찾기를 하는 것처럼 배치해놓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더 불길한 느낌을 받게 되는 것 같다.

 

<쳐다보지 마라>는 시선으로 이뤄진 영화라고 할 수도 있는데, 어떤 사물을 보여줌으로써 관객과 주인공으로 하여금 죽음을 연상케 하며, 등장인물들이 누군가를 지켜보거나 아니면 누군가 그들을 지켜보고 있다. 이 응시(凝視)하는 행위는 영화의 불길한 느낌을 가중시키며, 이 세계가 어떤 설명할 수 없는 힘, 사악한 힘에 의해 움직이고 있고 응시하는 자들은 이 설명할 수 없는 현상에 대한 관찰자라는 느낌을 남긴다. 반대로 관찰자가 아니라 음모자라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이 영화에서 사람들이 존과 로라 부부를 볼 때의 느낌은 단순히 존과 로라 부부가 이방인이기 때문에 응시한다는 느낌이 아니라 마치 죽은 자가 산자를 보는 느낌 혹은 그 반대의 느낌을 전해준다. 로라가 웬디와 헤더 자매로부터 딸이 곁에 있다는 말을 듣는 순간, 화장실에는 다른 여성이 분명히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평범한 그녀는 이 세 사람 사이에 벌어지는 일을 마치 경악하듯이 지켜보고 있다. 그 때의 응시는 화장실에 붙어 있는 여러 개의 거울을 통해 이뤄진다. 살인 현장에서 존과 로라 부부를 지켜보고 있었던 형사 반장은 존이 경찰서에 찾아왔을 때 창밖으로 존이 이야기하고 있는 자매가 지나가는 것을 보는데, 바로 그 자리에서 그녀들을 불러오는 대신 부하에게 존을 미행하도록 한다. 그의 행동에는 어떤 숨은 뜻이 있는 것 같고, 그 음험함과 위험한 느낌이 그의 시선을 통해서 관객들에게 전달된다. 그러나 그렇게 지켜본 것, 지금까지 눈으로 본 것을 믿을 수 없기 때문에 어떤 해석도 가능하게 된다. 존이 호텔에서 짐을 정리하고 떠날 때 쓰레기통에 들어 있던 로라의 사진을 꺼내는데, 그 분위기는 마치 로라가 죽어서 존이 베니스를 떠나는 것처럼 느껴진다. 형사 반장은 자매의 몽타주에 낙서를 하는데 그럴수록 그 몽타주는 점점 더 죽은 사람의 모습을 닮아간다. 웬디 자매는 죽은 사람인가, 아니면 존과 로라도 죽은 것인가라는.


한편 이 영화는 사운드는 사악한 느낌을 준다. 시체를 건져낼 때 발작적으로 터지는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 존과 로라가 부부싸움을 할 때 은밀하게 깔리는 아이의 울음소리 등. 이처럼 <쳐다보지 마라>는 즉각적인 공포를 조성하는 대신 불길함을 키워가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현대 공포 영화에서는 쉽게 보기 힘든 스타일을 갖고 있다. 특히 이 영화는 시각적으로 몹시 풍성하고 줌 혹은 슬로우 모션이 극단적으로 많이 사용되었는데, 이것은 쳐다본다는 행동을 극적으로 강조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번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 이 영화를 추천한 박찬욱 감독에 따르면 <쳐다보지 마라>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이 영화의 내러티브상의 빈약함을 지적한다고 하는데, 이런 결함과는 별개로 곳곳에 깔린 영화적 상징들, 미로 같은 베니스의 도시 구조가 선사하는 시각적인 아름다움은 몹시 강렬하다. 그리고 이 영화가 주는 불길하고 기이한 느낌도 쉽게 잊어버릴 수 없다. (홍성원 시네마테크 관객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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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시네필의 선택: 정성일 평론가의 추천의 변   

첫 번째 (상황). 2008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내건 슬로건은 ‘영년(zero year)’이었다. 그건 마치 내게 하는 말 같았다. 제로라는 무효의 선언. 다시 시작하겠다는 각오. 로셀리니가 영화 제목에 쓴 말. 그런 다음 고다르가 받아서 21세기에 반복했던 제목. 하지만 내게 그 의미는 다른 것이었다. 말 그대로 진공상태. 단지 길을 잃었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나는 텅 빈 상태였었고, 거의 매일같이 술을 마시는 것처럼 영화를 보았다. 너무 많이 보아서 어제 본 영화와 오늘 본 영화가 잘 구별되지 않았다. 종종 중간부터 보기도 하였고, 때로는 보다가 지쳐서 자기도 하였다. 나는 2008년 친구영화제에 슬픈 마음을 안고 마츠모토 토시오의 <수라(修羅)>를 백지수표에 썼다. 그때 내 상황은 비유 없이 아수라장이었다. 그 해 내내 준비했던 영화는 잘되지 않았다. 나는 할복자살하는 심정으로 이 영화를 그 자리에 온 영화의 친구들에게 소개했다. 아니, 그건 그냥 할복이라고 말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마츠모토 토시오라는 칼. 단숨에 창자까지 꺼내 들 수 있게 잘 만들어진 섬뜩한 날. 먹물처럼 배어 나올 피. 유혈 낭자한 소개. 나는 친구들이 모인 파티를 피바다로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도 내 마음을 이해해주지는 않았다. 모두는 아니지만, 그 중 몇몇은 재미있게 보았다. 심지어 악수를 청하는 사람도 있었다. 맙소사! 눈물을 흘리는 사람에게 청하는 감사의 악수보다 더 아이러니한 상황이 있을까.


두 번째 (행동). 그 이듬해 다행히도 나는 친구 영화제에 참석하지 않아도 되었다. 영화를 찍었다. 그건 내게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단지 영화를 찍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다. 만일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건 나를 오해한 것이다. 나를 붙잡은 질문. 대답을 구하려는 간절한 노력. 내게서 영화를 찍는다는 건 질문에 대답하는 활동이다. 말하자면 사랑의 다른 길. 훨씬 직접적이고 감각적인 길. 생각이 미리 자리 잡기 전에 작업하면서 고정적이고 기계적인 개념을 부수는 방법. 내가 책에서 읽은 의심스러운 구절들. 우리는 책에서 읽은 상투적인 구절들과 싸워야 한다. 아니,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개념이 담긴 영화 책이라는 유리병을 세상 속으로 집어던져서 깨버려야 한다. 어떻게? 나는 영화를 만드는 것만이 방법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므로 영화를 만드는 것은 내가 배움을 향해서 간절하게 집어던지는 액션이다. 로셀리니는 세상 속에서만 영화는 배움을 청한다고 말했다. 나는 그 말에 대한 믿음을 실천하고 싶었다. 차라리 내 존경을 실천하고 싶었다. <카페 느와르>는 나의 영화 액션이다. 우리는 이 영화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할 시간이 있을 것이다. 아니, 그 시간이 올 것이다. 미래의 관객이라는 기대의 지평.


세 번째 (선택). 나는 올해 열 편의 영화 제목을 썼다. 그중에서 세 편이 결정되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세 편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혹은 억지로 만들어내는 삼각형이 될 것이다. 대신 열 편을 고르면서 세운 원칙과 세 편에 대한 짧은 추억을 말하는 것으로 소개를 대신하겠다.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소개하다니! 그런 건 그냥 교과서에 맡겨놓으면 된다. 여기는 교실이 아니다. 우리가 구출해야 할 영화. 영화를 착취하는 기계들. 교실. 멀티플렉스. 아마도 그런 곳에서는 소개가 필요할 것이다. 어쩌면 별점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일을 하는 건 바보짓이다. 나의 호소. 우리는 영화를 소개하면 안 된다. 그저 그걸 보아야 한다. 보고 또 보아야 한다. 그런 다음 각자의 영화사를 창조해야 한다. 나는 그것을 앙리 랑글루아의 목록에서 배웠다. 랑글루아는 시네마테크의 시간표를 매일매일 짜면서 그걸 작가별, 혹은 주제별, 또는 장르별, 배우별, 시대별로 구분되지 않게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여기는 슈퍼마켓이 아니다. 우리 시대의 발명품 영화. 20세기의 타임머신.
 

변주곡, 혹은 엘레지. 김성욱 씨로부터 슬픈 이야기를 들었다. 어쩌면 2010년 친구의 영화제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말을 했다. 이유는 여러분이 잘 아는 그대로이다. 끔찍한 일이다. 우리는 다시 만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우정을 나눌 장소는 위기에 빠졌고, 아직 대안은 없다. 아마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나는 예술과 정치의 수상쩍은 구별을 항상 의심한다. 물론 시네마테크 친구들의 희생적인 노력 덕분에 우리는 그동안 아무 걱정 없이 영화를 보았다. 여기서 방점은 불행히도 ‘그 동안’이다. 하지만 이제 그 희생의 노력만으로 충분하지 않게 되었을 때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인가? 당신의 투쟁전선은 고작 해야 방안의 홈 씨어터인가? 보고 싶은 영화를 위한 당신의 저항은 불법다운로드인가? 우리가 믿는 정의를 옹호하기 위해서 해야 하는 행동을 결정해야 할 시간. 우리는 예술과 짝을 이루는 정치에 대해서 생각해야 한다. 사방에서 벌어지는 폭격. 점령구역들. 하지만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만 움직이기 시작하는 수수방관. 당신은 영화를 본다는 것 말고는 아무 이해관계도 없는 장소를 방어하기 위해서 (어떤 형식이건) 희생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것은 다시 입장의 문제이다. 그리고 입장의 효과(와 결과)를 생각해야 한다. 유명한 1902년의 정식. “막대가 나쁜 방향으로 구부러졌을 때, 그것을 바로 잡기 위해서는 즉 곧게 펴기 위해서는, 우선 막대를 반대방향으로 구부려야만 하며 따라서 그것을 쥐고 튼튼하게 반대방향으로 잡아당겨야 한다.” 누가 결정을 내리는가? 결정의 내용을 아무리 따져보아야 거기에는 대답이 없다. 핵심은 결정을 바꾸는 것이다. 혹은 결정을 내리는 자리를 바꾸는 것 이외에는 방법이 없다. 곧게 펴기. 하지만 어떻게? 우리는 이제 흐릿해진 생각을 명확하게 해야 한다.


세 편의 영화. 먼저 루이 푀이야드의 <뱀파이어>. 물론 이 영화는 ‘흡혈귀’와 아무 상관이 없다. 연쇄극으로 이루어진 이 영화의 어떤 버전이 이번 영화제에서 상영될지에 대해서 나는 아직 아무 정보도 없다. 나는 이 영화를 이번 영화제에서 진심으로 ‘공유’하고 싶다. 다소 무모한 말이긴 하지만 당신들과 마찬가지로 나에게도 ‘생애 한 편의 영화’가 있다. 물론 이 영화 제목은 내일 바꿀 수도 있다. 원래 ‘한 편의 영화’라는 건 그런 것이다. 나는 1993년 1월 마지막 토요일 클레르몽페랑의 파스칼대학 강당에서 밤 10시에 시작해서 밤새도록 상영된 루이 푀이야드의 <뱀파이어>를 처음 보았다. 그 전에 나는 이 영화를 책의 제목에서만 보았다. 그리고 아무도 내게 이 영화를 추천해주지 않았다. 나는 완전히 홀렸다. 아니, 그냥 넋을 잃었다는 말이 맞다. 최면상태. 아름답다거나 훌륭하다는 말로는 설명되지 않았다. 이건 위대하다거나 혹은 걸작이라는 말과는 근본적으로 어울리지 않는 결정이다. 그냥 영화 자체를 본 것 같았다. ‘아! 이것이 영화구나.’ 라는 탄식. 물론 그런 다음에도 쉬지 않고 영화를 보았다. 놓친 영화들을 찾아보았고, 새로운 영화들을 보았다. 많은 복원판을 보았다. 추천작들도 보았다. 하지만 어떤 영화도 자기의 자리를 차지할 뿐 내게 지금 이것은 영화, 라고 선언하지 못했다. 나에게 영화는 결국 <뱀파이어>이다. 나는 내 믿음을 의심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거의 십 년이 지났을 때 다시 보았다. 이번에는 뉴욕에서 보았다. 그때 결론을 내렸다. 나는 결국 이 사랑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마치 내 평생의 연인이 릴리안 기쉬인 것처럼. 그때 이 결정에서 릴리안 기쉬가 얼마나 연기를 잘하느냐는 문제와 아무 상관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물론 당신이 동의하건 말건 그건 내 관심이 아니다. 아마도 당신에게 영화라고 선언하는 또 다른 영화가 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놓고 경쟁할 생각이 없다. 다만 이 자리에서 내 사랑을 고백하고 싶을 뿐이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고백을 통해서 당신에게 내가 친구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하긴 여기가 아니라면 어디서 그 말을 할 수 있을까.




두 번째. 사샤 기트리. 아직 단 한 번도 여기서 사샤 기트리의 회고전이 없었다는 사실은 부끄러운 일이다. 게다가 거의 이야기도 되지 않는다. 언제나 르누아르. 언제나 브레송. 언제나 고다르. 나는 사샤 기트리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할 친구를 오랫동안 기다렸다. 하지만 불행히도 아직 만나지 못했다. 그러므로 이 선택은 친구를 찾는 나의 애절한 호소이다. 우리가 우정을 나누는 방식. 나는 사샤 기트리가 장 르누아르나 브레송만큼은 아니지만 마르셀 카르네나 줄리앙 뒤비비에보다는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혹은 장 콕토보다 본질적으로 시적이다. 사샤 기트리가 없었다면 장 으스타슈가 가능했을까. 앙리 랑글루아는 훨씬 더 확신을 갖고 프로그램을 썼다. “사샤 기트리는 미조구치 겐지, 빈센트 미넬리, 더글라스 서크, 로베르토 로셀리니처럼 중요하다. 이 말은 이상하다. 그렇다. 사샤 기트리는 영화사에서 그렇게 이상한 자리에 있다.” 내가 사샤 기트리를 처음 본 곳은 프랑스 문화원이었다. 그때 나는 사샤 기트리의 중요함에 대해서 열심히 설명했다. 나와 함께 영화를 보던 친구들은 동의하지 않았다. 나는 세대를 건너뛰어 이제 다시 당신에게 동의를 구한다. 하지만 사샤 기트리의 영화를 한 편 보고 그를 잘 알게 된 것처럼 말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내 꿈 중의 하나는 살아생전 사샤 기트리의 전작 회고전을 보는 것이다.


세 번째. 카르멜로 베네를 가장 먼저 언급한 사람은 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였다. 파솔리니는 경외감을 안고 베네를 ‘나의 위대한 동지’라고 불렀다. 그 다음은 고다르이다. 고다르는 베네의 영화를 본 다음 달려가서 로마에서 그의 연극 무대를 보았다. 질 들뢰즈는 카르멜로 베네에 관해서 한 권의 책을 헌사 했다. 하지만 시네필 들뢰즈가 카르멜로 베네를 말하면서 연극에 한정 지어 설명한 것은 좀 의외이다. 들뢰즈가 카르멜로 베네에게 바친 한 권의 책 『중첩』은 들뢰즈의 유일한 연극에 대한 책이(라고 나는 알고 있)다. 그런 다음 영화에 관한 두 번째 책 『영화 2; 이미지-시간’의 제 8장 ‘영화, 신체, 그리고 뇌, 사유』에서 짧게 다루고 있다. 하지만 들뢰즈는 카르멜로 베네가 이미지-수정체를 건설한 가장 위대한 시네아스트 중의 한 명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런 다음 들뢰즈는 여기서 장 으스타슈, 필립 가렐, 알랭 레네, 장-마리 스트로브와 다니엘 위예 그리고 미래의 민중영화를 이야기한다. 카르멜로 베네의 위치. 나는 좀 더 많은 카르멜로 베네의 영화를 보고 싶다.


인사. 그렇다. 우리는 영화에게 인사를 해야 한다. 더 많은 영화에게 인사를 해야 한다. 우리들의 두 번째 십 년. 우리들의 21세기의 두 번째 시작. (정성일_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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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감 백배의 시간표 이렇게 짜보세요!


한 해 영화제의 시작점이 된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대망의 막을 열었다. 아마 시네필이라면 상영작들이 발표되자마자 목록을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을 터이다. 말로만 들었던 푀이야드의 뱀파이어 시리즈를 비롯해서, 존 포드, 니콜라스 뢰그, 조셉 로지, 장 으스타슈, 오즈 야스지로, 장 엡스텡, 존 부어맨, 버스터 키튼, 더글라스 서크, 프리츠 랑, 칼 드레이어 등등. 그야말로 성찬이다. 그렇다보니 시간표 앞에서 형광펜을 꺼내든 자세가 사뭇 비장해진다. 더구나 다섯 번째인 친구들 영화제에는 모든 상영작을 보기로 다짐한 탓에 스케줄 짜는 일이 더 고민된다. 필자의 경우, 이제껏 친구들 영화제에 빠짐없이 참여하긴 했지만, 관람 목록은 듬성듬성 빈틈이 많았다. 미리 예매를 못했는데 매진이 되어버리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돌아서야 했던 적도 있고, 일정이 많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놓친 영화도 있지만, 실은 게으름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데 지난 친구들 영화제에서 놓친 영화들 때문에 작년 한 해 두고두고 후회하게 되고 나니, 올 해 만큼은 부지런을 떨어서라도 꼭 전작을 봐야지 단단히 마음먹는다. 이 거 한편쯤이야, 하는 마음으로 놓쳤다간 나중에 아쉬워할 순간이 꼭 한 번은 생기니 말이다. 괜한 너스레가 아니다. 사실 작년 친구들 영화제에서 타르코프스키의 <거울>과 마르코 페레리의 <그랜드 뷔페>, 펠리니의 <카비리아의 밤>을 놓치고 나서도 그랬다. 주변의 친구들이 <거울>을 보고 자신이 가장 아끼는 영화로 꼽을 때마다 뭐라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실은 난 영화를 못봐서...’라며 말끝을 흐려야 했고, 나중에 DVD로 <카비리아의 밤>을 볼 땐, 첫 장면에서부터 아차 싶었다. ‘아, 이 영화를 극장에서 봤어야 했는데!’ 종종 맛난 식사를 배부르게 하고서 <그랜드 뷔페> 얘기를 하면서 농담하는 틈에선 아쉬운대로 혼자 상상해가며 따라 웃을 수밖에 없었다. 비단 나의 경우만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제안해 본다. 친구들 영화제를 더 맛깔나게 즐길 수 있는 시간표 짜는 법. 관객들 저마다 영화를 볼 수 있는 시간대가 다를 텐데, 시간대 별로 ‘시네마테크 친구들 영화제’ 완전정복, 그게 가능할까 싶었다. 나름 고심하며 시간표를 짜보니 몇 편씩을 빼고는 거의 대부분이 시간대 별로 고루 배치되어 있었다(고민 고민하며 시간표를 짜셨을 아트시네마 관계자 분께 새삼 감탄을!). 

자! 그럼 당신은 어떤 타입의 시간표가 딱 어울리는지 한번 테스트해보시길..

                  ▶ 당신에게 맞는 친구들영화제 시간표 알아보기 테스트

테스트 결과, 당신에게 맞는 시간표가 A타입으로 나왔다면, 당신에겐 특별한 팁이 따로 필요없다는 얘기. 마음 내키는 대로 보고픈 대로 그야말로 골라보는 재미를 느끼시길. 원하는대로 짜면 된다는 말씀. B타입이라면 저녁시간대를 공략해서 보는 게 백배 즐기는 방법이고. C타입이라면 평일 낮 시간대를 공략하는 거다. D타입은 영화만이 아닌 영화를 가지고 소통을 즐기시는 분이니만큼 시네토크를 사수할 수 있는 시간표 짜기가 필수. 만약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아무리 영화가 좋다지만 생계를 저버릴 수 없는 자라면 그래도 걱정할 필요 없다. 직장인을 위한 주말시간대에도 적절히 시간표가 분배가 되어있으니 주말 시간대를 고수하면 거의 모든 상영작을 섭렵할 수 있다. 여기 내 맘대로 유형의 A타입을 제외한 시간표 몇 가지의 사례를 제시해본다.

친구들 영화제 완전정복 가이드

A : 내 맘대로

 
 
제안 없음. 당신이 원하는 대로 골라보는 재미 백배.

B : 평일저녁 공략

1월 17일 13:00 엄마와 창녀(김한민+윤종빈)
1월 17일 19:00 아파치 요새
1월 19일 19:00 네이키드(박찬옥)
1월 20일 13:30 뱀파이어
1월 21일 19:00 열혈남아(류승완, 주성철)
1월 23일 18:30 작가를 만나다(배창호)
1월 26일 20:00 사냥꾼의 밤(김성욱)
1월 27일 19:00 항해자
1월 28일 19:00 프랑켄슈타인 죽이기
1월 29일 19:00 트로츠키 암살(오승욱)
1월 29일 16:30 바람에 사라지다
1월 30일 15:00 아마데우스(안성기)
1월 31일 15:00 마태복음(김지운)
2월 02일 16:00 분노의 포도
2월 02일 19:00 동경 이야기
2월 03일 19:00 오데트
2월 04일 19:00 쳐다보지 마라
2월 05일 19:00 서바이벌 게임
2월 07일 15:30 디바인 대소동(이재용+전계수)
2월 09일 19:00 황야의 결투
2월 11일 16:30 카프리치
2월 11일 19:00 어느 사기꾼의 이야기(정성일)
2월 12일 19:00 어셔 가의 몰락
2월 16일 19:00 모호크족의 북소리
2월 17일 19:00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
2월 18일 19:30 철마
2월 20일 17:00 작가를 만나다(김정)
2월 20일 19:00 작가를 만나다(김정)
2월 23일 19:00 굽이도는 증기선
2월 26일 19:00 이유없는 의심(크리스 푸지와라)
2월 27일 14:00 말 위의 두 사람(크리스 푸지와라)
2월 28일 19:00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

C : 평일 낮 공략

 1월 19일 13:30 사냥꾼의 밤
1월 20일 13:30 뱀파이어
1월 21일 13:00 이유없는 의심
1월 21일 16:00 말 위의 두 사람
1월 22일 14:00 분노의 포도
1월 22일 17:00 항해자
1월 23일 18:30 작가를 만나다(배창호)
1월 24일 15:30 동경 이야기(이명세)
1월 26일 13:00 엄마와 창녀
1월 26일 17:30 열혈남아
1월 28일 16:00 쳐다보지 마라
1월 29일 13:30 네이키드
2월 02일 13:30 바람에 사라지다
2월 03일 13:00 아파치 요새
2월 04일 13:00 트로츠키 암살
2월 04일 15:30 아마데우스
2월 05일 13:00 마태복음
2월 05일 19:00 서바이벌 게임(봉준호)
2월 07일 15:30 디바인 대소동(이재용+전계수)
2월 09일 16:00 철마
2월 11일 14:00 모호크족의 북소리
2월 11일 16:30 카프리치
2월 11일 19:00 어느 사기꾼의 이야기(정성일)
2월 12일 14:00 굽이도는 증기선
2월 12일 16:00 프랑켄슈타인 죽이기
2월 12일 19:00 어셔 가의 몰락
2월 17일 16:00 황야의 결투
2월 19일16:00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
2월 20일 17:00 작가를 만나다(김정)
2월 20일 19:00 작가를 만나다(김정)
2월 23일 16:00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
2월 24일 16:00 오데트

D : 시네토크 사수

 1월 16일 15:00 쳐다보지 마라(박찬욱)
1월 17일 13:00 엄마와 창녀(김한민+윤종빈)
1월 17일 19:00 아파치요새
1월 19일 19:00 네이키드(박찬옥)
1월 21일 19:00 열혈남아(류승완, 주성철)
1월 23일 14:00 바람에 사라지다(최동훈)
1월 23일 18:30 작가를 만나다(배창호)
1월 24일 15:30 동경이야기(이명세)
1월 26일 20:00 사냥꾼의 밤(김성욱)
1월 29일 19:00 트로츠키 암살(오승욱)
1월 30일 15:00 아마데우스(안성기)
1월 30일 13:00 카프리치
1월 31일 13:00 항해자(관객들의 선택)
1월 31일 15:00 마태복음(김지운)
2월 02일 16:00 분노의 포도
2월 05일 19:00 서바이벌 게임(봉준호)
2월 06일 14:00 오데트(홍상수, 허문영)
2월 07일 15:30 디바인 대소동(이재용+전계수)
2월 09일 19:00 황야의 결투
2월 10일 13:30 뱀파이어1~10부(정성일)
2월 11일 19:00 어느 사기꾼의 이야기(정성일)
2월 12일 19:00 어셔 가의 몰락
2월 17일 19:00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김영진)
2월 20일 19:00 작가를 만나다(김정)
2월 20일 17:00 작가를 만나다(김정)
2월 23일 19:00 굽이 도는 증기선
2월 26일 19:00 이유없는 의심(크리스 푸지와라)
2월 26일 16:00 철마
2월 27일 14:00 말 위의 두 사람(크리스 푸지와라)
2월 27일 19:00 모호크족의 북소리
2월 28일 15:00 프랑켄슈타인 죽이기(크리스 푸지와라)
2월 28일 19:00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

E : 직장인을 위한 주말코스

 1월 16일 13:00 어느 사기꾼의 이야기
1월 16일 15:00 쳐다보지 마라(박찬욱)
1월 17일 19:30 아파치 요새
1월 17일 13:00 엄마와 창녀(김한민+윤종빈)
1월 22일 14:00 분노의 포도
1월 23일 14:00 바람에 사라지다(최동훈)
1월 23일 18:30 작가를 만나다(배창호)
1월 24일 19:30 네이키드
1월 24일 15:30 동경이야기(이명세)
1월 24일 13:00 트로츠키 암살
1월 30일 15:00 아마데우스(안성기)
1월 30일 13:00 카프리치
1월 31일 15:00 마태복음(김지운)
1월 31일 19:00 사냥꾼의 밤
1월 31일 13:00 항해자(관객들의 선택)
2월 05일 19:00 서바이벌 게임(봉준호)
2월 06일 14:00 오데트(홍상수, 허문영)
2월 06일 12:00 이유없는 의심
2월 07일 15:30 디바인 대소동(이재용+전계수)
2월 07일 19:00 열혈남아
2월 12일 14:00 굽이도는 증기선
2월 12일 19:00 어셔 가의 몰락
2월 17일 19:00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김영진)
2월 17일 16:00 황야의 결투
2월 20일 17:00 작가를 만나다(김정)
2월 20일 19:00 작가를 만나다(김정)
2월 21일 13:30 뱀파이어1~10부
2월 26일 16:00 철마
2월 27일 14:00 말 위의 두 사람(크리스 푸지와라)
2월 27일 19:00 모호크족의 북소리
2월 28일 19:00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
2월 28일 13:00 프랑켄슈타인 죽이기(크리스 푸지와라)

당신이 어떤 시간표를 골랐는지 사뭇 궁금해진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뭔가 2% 부족. 여기에 하나 더한 친구들 영화제 100% 즐기기 위한 추가 팁이라면. 하나, 매진되어 돌아서야하는 일이 없으려면, 주말 상영과 시네토크가 있는 상영은 예매가 필수. 둘, ‘작가를 만나다’나 <어셔가의 몰락>처럼 상영이 한 번 뿐인 영화들의 날짜도 기억해 두어야할 듯.  셋, 러닝타임 총 386분인 <뱀파이어>는 평일과 주말에 세 번 상영이 있으니, 종일 관람이 어렵다면 나눠 관람하는 것도 방법이겠다. 필자가 나름 고민하면 취향대로, 여건대로 짜맞춰본 몇 가지 시간표가 당신에게 도움이 되는 팁이길, 아울러 모쪼록 올해도 친구들 영화제에서 만난 영화 얘기로 일 년 내내 행복할 수 있기를! (장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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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ee 2010.01.18 10: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그래도 시간표 짜기 어려웠는데 너무 재밌네요..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