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LA, 사립탐정 제이크 기티스(잭 니콜슨)는 묘령의 여인으로부터 수력 자원부의 수석 엔지니어인 남편 홀리스 멀웨이의 불륜을 조사해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제이크는 홀리스가 젊은 아가씨와 데이트하는 장면을 포착하고, 그가 찍은 사진은 신문에 대서특필된다. 당시 홀리스는 극심한 가뭄으로 인해 발생한 LA의 물 전쟁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얼마 후 홀리스의 진짜 아내인 에블린(페이 더너웨이)이 등장하면서, 제이크는 자신의 의뢰인이 가짜였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홀리스가 익사체로 발견된다. 자기도 모르게 함정에 빠졌다고 생각한 제이크는 홀리스의 죽음에 의문을 품고, 곧 에블린과 그녀의 아버지 노아(존 휴스턴)가 각기 다른 제안을 해온다.

실상 이 영화에서 '차이나타운'은 엔딩 신에만 단 한번 등장한다. 그러나 영화 내내 주인공들 사이에서 주문처럼 맴돌며 불길한 기억을 환기시킨다. 제이크는 예전에 차이나타운에서 근무하던 경찰이었고, 거기서 어떤 여자를 보호하려다 실패한 다음 경찰 일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평범한 불륜이라고만 생각했던 홀리스 멀웨이 사건을 통해 다시 한 번 과거의 악몽이 자신을 향해 촉수를 뻗쳐오고 있음을 직감한다. 그는 거기서부터 애써 달아나려 하지만 실패한다. "Cherchez la Femme(그 여자를 찾아내)." 모든 느와르 소설은 이 문구에서 시작한다. <차이나타운>도 마찬가지다. 영화엔 실체로서 등장하지 않는 제이크의 옛 여자, 홀리스와 함께 있던 젊은 여인, 에블린. 제이크는 영화 내내 이 세 명의 여성을 뒤쫓지만 그녀들은 자꾸만 미끄러져 달아난다. 그리고 가까스로 그녀들의 실체를 잡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그는 자기파멸의 지옥을 마주하고 있음을, 자신이 다시 한 번 차이나타운에 와있음을 깨닫게 된다. 누군가가 (혹은 무엇이) 보이는 대로 믿지 마라. 적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고, 과거는 되풀이된다. 추적의 끝은 언제나 시작점으로 귀환한다. 그 모든 비밀이 밝혀지더라도, 끝에 이르러선 힘없이 중얼거릴 수밖에 없다. "잊어버려. 여긴 차이나타운이야."


로만 폴란스키는 미국에서 만든 마지막 영화 <차이나타운>을 통해, 레이먼드 챈들러의 소설을 스크린으로 옮긴 그 어떤 영화들보다 더 챈들러적인 본질을 꿰뚫는 걸작을 완성했다. 모든 대사와 쇼트들이 영화의 충격적인 반전을 향해 차곡차곡 쌓여가고, 잭 니콜슨과 페이 더너웨이는 산산조각나기 일보 직전의 표정으로 LA의 가뭄 속을 헤맨다. 수수께끼는 단순하지 않은 방식으로 증폭되며 인과응보의 해결을 조롱하고, 오만하기 짝이 없는 창조주들의 죄악은 사막 위의 환영과도 같은 도시 LA에 피비린내 나는 악취를 심어놓는다. 느와르의 교과서라 불리는 <차이나타운>의 마지막 대사, 통렬한 비극을 단 한 문장으로 압축한 "잊어버려, 제이크. 여긴 차이나타운이야"AFI에서 선정한 '미국영화 역사상 가장 유명한 대사 100'에서 74위를 차지했다.

글|김용언 영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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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샤이닝>은 아버지의 폭력으로 인한 가족 집단의 붕괴를 다룬 영화다. 콜로라도 주 오버룩 호텔의 겨울 관리인으로 일하게 된 소설가 지망생 잭 토런스(잭 니콜슨)가 서서히 미쳐가면서 아내와 아들을 살해하려 한다는 단순한 이야기다. 이 작품은 큐브릭의 필모그래피 중에서도 가장 대중 관객들의 호흡에 밀착해 있다. 또한 공포영화로서 충격 효과와 서스펜스를 유발하는 데 있어서 단연 압도적인 기량을 보여준다. 영화의 리듬은 관객이 이야기에 완전히 몰입할 만큼 탄력적인 속도감을 드러낸다. 비주얼과 사운드의 조응은 거의 교과서적으로 보일 정도다.

영화는 원작 기본 플롯을 그대로 가져오되, 주인공 잭 토런스의 캐릭터를 좀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잭은 직업 윤리에 집착하지만 아내 웬디(셸리 듀발)에 대해 경멸감을 가진 가부장적인 사내이다. 잠재적 폭력성을 가진 잭은 과거 아들 대니(대니 로이드)의 팔을 잡아 끌어 어깨를 다치게 한 적이 있다. 이후 대니는 과거와 미래의 일을 내다볼 수 있는, ‘샤이닝’이라 불리는 특별한 정신적인 능력을 갖게 된다. 잭은 오버룩 호텔에 머물렀던 과거의 유령들과 조우하게 되며, 특히 두 딸을 도끼로 살해한 전임 관리자인 ‘그래디’의 충고를 듣고 가족을 파괴하려는 임무에 착수한다.

무엇보다 <샤이닝>은 스테디캠의 미학적 효과를 성공적으로 입증한 최초의 영화로 정평이 나 있다. 오버룩 호텔의 기나긴 복도와 울타리 미로의 끝없이 이어지는 갈래길은 스테디캠의 유동성을 실험하는 데 최적의 무대였다. 또한 <샤이닝>의 단순하면서 정교한 음향 효과는 텅 빈 공간의 정적과 극적인 대조를 이루며 관객의 심리적 쾌감을 증폭시킨다. 큐브릭은 이번 영화에도 꽤 많은 클래식 음악을 사용했다. 리게티, 바르톡, 펜데레츠키 등 20세기 동유럽 작곡가들의 음산한 음악은 신디사이저로 편곡되어 공포영화로서 비장한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샤이닝>은 문명화된 세계의 이면에 자리한 폭력 충동과 살인적이고 악한 인간 본성을 드러낸 작품으로 평가되어 왔다. 영화를 지배하는 푸른색과 붉은 색의 대조는 규칙과 책임감과 의무감이 강조된 문명 세계와 환상과 오컬트와 욕망과 본능이 교차하는 원시 세계를 드러낸다. 오버룩 호텔은 프로이드가 ‘두려운 낯설음(the uncanny)'이라 불렀던 감정을 자아내며 ’귀신 들린 집‘이라는 전통적인 하우스 호러물을 새로운 차원으로 이끌어낸다. 여기서 아버지-가부장의 폭력에 대항해 소수자인 여성과 아이와 흑인이 연대한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그러나 <샤이닝>은 단순한 ‘가족 시네마’가 아니라, 넓은 의미에서 미국 사회와 역사에 가해진 폭력의 알레고리이기도 하다. 오버룩 호텔이 세워진 지역이 원래 인디언들이 묻힌 곳이었다는 전제가 이를 대변한다. 미국은 인디언이 대변하는 약자에 대한 억압을 딛고 세워진 국가이며, 그 피의 역사는 폭력의 수행자이자 억압의 주체를 통해 긴 궤적을 그리며 자꾸만 되돌아오는 것이다. <샤이닝>은 공포영화 장르의 컨벤션을 재해석하고 있으며, 동시에 미국의 문명과 역사에 대한 비판적 드라마다.

by 한선희(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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