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크 리베트 <미치광이 같은 사랑> 상영 후 김성욱 프로그램디렉터 시네토크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이번에 ‘친밀한 삶’이라는 제목의 특별전을 하면서 소개하는 몇 편의 영화들이 굉장히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오늘 보신 리베트의 영화는 몬테 헬만의 <자유의 이차선>이나 필립 가렐의 영화, 찰스 버넷의 영화와 공명하는 부분이 있다. 모두 삶의 내밀함을 영화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는 라신의 연극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들을 제외하면, 사실 관객에게 명료하지 않은 것들은 대부분 없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자크 리베트의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일주일 후에나 열흘 후에 혹은 몇 주, 몇 년 후에 현실적인 삶과 연결되었을 때 성공할 수 있을 거라 말했는데, 그런 점에서 보자면 지금 이 영화에 대해 말하는 것이 조심스럽다. 감상을 해치지 않는 범위내에서 이야기하려 한다. 

 <미치광이 같은 사랑>은 68년 가을에 제작을 시작해서 69년에 소개된 된 작품이다. 68년은 리베트를 비롯한 많은 감독들은 랑글루아 사태 때문에 뛰어다니던 시기이자 칸 영화제에서 저지 투쟁을 벌이던 시기였다. 이 영화는 사십대 누벨바그라고 부를 법한 영화다. 1928년생인 리베트가 마흔을 넘기고 만든 영화로, 가렐의 <더 이상 기타 소리를 들을 수 없어>도 그런 사십대를 넘긴 남자의 사랑이야기였다. ‘누벨바그’라고 했을 때 젊은이들의 패기 넘치는 사랑이야기나 끓어오름의 느낌들이 있을 텐데, 이 영화들은 그런 것보다는 숙성된 사랑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숙성되다 못해 파산에 이르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미치광이 같은 사랑>에는 세바스티앙이 연출하는 연극이 진행되는 것과 동시에 세바스티앙과 클레르라는 남녀의 현실에서의 삶의 문제가 동시에 진행되는데, 이 둘의 관계는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지점이 없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연결되는 지점을 갖고 있다. 이 영화는 완성된 듯한 느낌을 주지 않는다. 출발점과 끝 지점을 장식하는 것은 라신의 연극인데 마찬가지로 우리는 라신의 연극이 완성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우리는 백색의 공간만을 볼 수 있다. 이 백색공간은 사각의 링 같기도 하고 흰 도화지 같은 느낌을 주는데 ,이것을 영화라고 생각했을 때는 백색 스크린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백색 스크린의 평면 안에 무언가를 넣는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목적만으로 보자면 흰 스크린에 무엇인가를 넣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고, 최종적인 결과물은 결국 보여주지 않는다. 간단히 말하자면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하는 작품이다. 


두 종류의 사람들이 영화에서의 결과를 중요하게 본다. 한 부류는 제작자나 투자자이고 마찬가지로 관객으로서 우리도 영화의 결과를 보는 사람들이다. 관객은 결과로서의 영화를 보는 것이지 개인적인 친분이 있지 않는 이상, 과정으로서의 영화를 보러 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영화에서 과정의 시간과 리듬을 담아냈다는 점은 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든다. 이 영화는 완성에 대한 강박이 없는 영화로 보인다. 이것은 몬테 헬만이나 필립 가렐, 찰스 버넷의 <양 도살자>의 경우에도 해당된다. 몬테 헬만은 자크 리베트의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 한 바 있고 <자유의 이차선>을 만들 때에는 리베트처럼 영화를 구성해나갔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영화들은 모두 자유롭게 영화를 만들면서 실패를 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영화를 만드는 행위로 인해서 몬테 헬만은 스튜디오에서 추방당했지만, 리베트는 반대로 자신의 영화를 새롭게 시작할 수 있었다. 이전까지의 리베트 영화들은 상대적으로 자신의 스타일을 제대로 확립한 것으로 평가받지 못했다. 트뤼포의 전기를 보면 당대의 최고 시네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트뤼포나 고다르 같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스타일로 알려지는 것에 비하자면 리베트는 자신을 알리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자크 리베트가 <미치광이 같은 사랑> 같은 영화에 도달해가는 데에는 크게 두 가지가 영향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1965년 무렵에 리베트는 ‘우리시대의 영화감독’이라는 TV다큐멘터리로 장 르누아르에 관한 다큐를 찍게 된다. 그 과정에서의 르누아르와 나눈 영화작업과 이야기들이 리베트의 영화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리베트는 배우와의 관계나 집단적으로 작업하는 과정들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됐고, 감화를 받았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가장 르누아르적인 영화를 만들겠다고 생각하고 만든 게 이 영화다. 


다른 한 가지는 리베트가 <수녀들>이라는 영화작업을 하면서 연출방식을 완전히 바꾸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수녀들>은 처음에는 연극으로 공연된 뒤에 같은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었는데, 이 작업에서 그는 굉장한 지루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연출방식을 바꾸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연출방식을 바꾸겠다는 것은 감독이 무언인가를 컨트롤하거나 크게 디렉션하지 않고 직접적인 개입을 자제하는 것이다. 


<미치광이 같은 사랑>을 보면 세바스티앙이 연극을 연출할 때 그런 방식으로 한다. 책 자체를 통독하면서 배우들이 직접 연극을 만들어나가는 방식을 취하는데, 리베트가 이 영화를 찍을 때 그렇게 만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가 공동적인 작업으로 진행되었다. 라신의 연극을 무대에 올리는 리허설 과정을 찍는 것과, 클레르가 연기를 중단하고 크리스티앙과의 관계가 파국적으로 끝나가는 기본적인 구성만을 해놓고, 영화의 매 순간마다 쪽대본을 만들어 즉흥적으로 구성했다. 시대적으로 1968년경에는 프랑스 영화에서 누벨바그 작가들이 개인성을 내세우는 것에서 후퇴하는 시대적 흐름이 있었다.  고다르는 작가의 개인성을  내세우는 것이 부르주아적인 것으로 보고, 자신의 이름을 지우고 지가 베르토프 집단이라는 공동작업 형태로 전환시했다. 리베트의 새로운 연출방식은 시대적으로도 조응하는 것이었다. 작가의 개인성의 후퇴라는 것을 통해서 영화에 들어갈 때 새롭게 발견하는 것은  ‘배우’의 존재성이다. 이 영화가 4시간 가량을 지속하면서 보여주는 것은 영화를 지탱하고 있는 두 명의 배우들이 보이는 특별한 퍼포먼스들이다. 특히 뷜 오지에라는 여배우가 보여주는 히스테릭하거나 다변적인 심리적 상태를 보여주는 연기는 정말 놀랍다.  

 

이 영화에는 두 층위의 연기가 있다. 하나는 라신의 연극을 위해 맡은 배역을 소화해나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크리스티앙과 클레르 역할을 두 배우의 퍼포먼스만으로 진행하는 것이다. 전자에는 캐릭터가 정해져 있다. 여기서는 라신의 희곡에 있는 배역들을 배우들이 자신의 몸과 발성을 통해서 재현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반면 후자의 경우는 배우의 물리적인 현존 안에서 그들의 소소한 퍼포먼스가 스스로 캐릭터를 구축해가는 것이다.  그래서 이 두 개는 완전히 다른 시공간 안에 놓이게 된다. 그리고 후자의 경우에는 전자의 경우보다 훨씬 시공간적 감각이 흐트러져 있다.


 이 영화에는 몇 개의 시간성이 있다. 운명적으로 주어진 시간이 있고(그것은 연극과 삶에서의 예정된 파국이다), 두 번째로는 영화가 진행되면서 표현되는 달력화된 시간성이 있다. 또 다른 하나는 이런 시간을 무화시키는 형태, 시공간을 무화하는 형태가 있다. 전체적인 시간과 공간이 흐트러진 형태의 느낌이 있는데,  이는 즉흥적인 배우의 퍼포먼스가 만들어내는 특유의 시간성이라 할 수 있다. 완성에 대한 강박성이 없다는 것은 배우들의 연기가 실패할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는 것이자 자유가 증가된다는 것이다. 한편으로 영화는 파국을 향해 가지만 사실은 이 속에는 여러 가지 가능성들이 있다. 영화는 공간적으로 제한되어 있긴 하지만, 그 안에서 그들이 표현할 수 있는 모든 부분을 담아낸다. 다양한 시도와 가능성들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영화가 보여주는 흥미로움이 있다. 이렇게 실패와 불완전한 시도를 담아내려는 시도가 리베트의 영화를 길게 만들었다. 허용될 수 있는 가능성의 범위가 담기기 위해서는 252분이라는 비교적 긴 시간성을 필요로 하게 된다. 이 영화 이후에 리베트는 <셀린느와 줄리 보트를 타러가다>를 만들었고, 12시간이 넘는 <아웃 원>이라는 영화를 만들었다.  <아웃 원>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몇년 전에 상영했는데, 꼬박 이틀 동안 상영했다. 전 세계에서 이 영화를 상영한 나라는 많지 않다. 마찬가지로 <미치광이 같은 사랑>을 스크린에서 본 관객들도 많지 않다. 

 


리베트는 연극적인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다. 하지만 연극을 영화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연극을 영화와 대비시키면서 영화에서의 연극성을 끌어온 것이다. 이 영화에서는 연극과 TV다큐멘터리, 영화가 함께 등장한다. 영화를 전체적으로 보면 연극 리허설이 진행되는 가운데, 이 리허설을 찍고있는 텔레비전 카메라와 그것 마저도 포함해서 촬영한 16mm 카메라가 있다.  그리고 둘의 삶을 담아낸 것은 35mm 카메라이다.  서로 다른 카메라가 연극과 삶의 픽션을 찍는 방식은 TV와 연극 그리고 영화가 크로스 되는 리베트 영화의 특징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연극을 재현해가는 것이 아니라 라신의 희곡연극을 무대에 올리는 과정 안에서 탐구를 하는 것이다.  서로 다른 카메라로 크로스 되는 방식은 현실의 사랑 속에서 라신의 비극을 되돌아보거나, 라신 연극이 현실의 사랑을 바라보는 어떤 시선이 되는  거울관계를 형성한다. 연극과 영화가 마주하면서 서로를 지켜보거나 비집고 들어가거나 날카롭게 잘라간다. 이런 거울의 상태는 서로 붕괴하는 지점에 도달한다. 연극과 연인의 사랑은 결국 깨져나가게 된다. 파국에서 제로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고다르도 거의 동일한 시기에 <즐거운 지식>에서는 ‘영화의 제로로의 회귀'를 <중국여인>에서는 '영화의 연극영년'을 이야기했는데, 리베트 역시 이 영화로 자신의 영화적 영도성으로 돌아갔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에서 연극은 완성되지 못했고, 사랑은 파국으로 치닫지만, 그래서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만, 리베트의 세계에서는 이 영화가 새로운 지점으로 출발점이다.

 

정리: 김고운(관객에디터) |사진: 주원탁(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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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아트시네마 '프랑스 영화의 황금기:1930-1960' 기획전 10월 12일부터 한달 간 개최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대표 최정운 www.cinematheque.seoul.kr, 이하 한시협)가 10 12일부터  11 13일까지 약 한달 여간 주한프랑스문화원의 후원으로 고전기 프랑스 영화들을 모아 상영하는 프랑스 영화의 황금기:1930-1960’ 기획전을 개최한다. 한시협은 매년 가을이 한창 익어가는 10월 경에 프랑스 영화들만 모아 상영하는 특별전을 열어 왔는데, 올해는 그 동안 간헐적으로 소개되고 했던 프랑스 영화의 고전기 작품들, 특히 1930년대에서 1960년대 이전까지의 작품들을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특별전을 연다는 계획이다.

이번에 한시협에서 집중 조명하게 된 1930년대에서 누벨바그 직전의 시기까지의 프랑스 영화를 흔히 ‘프랑스 영화의 황금기’라 말하는데, 이 시기는 마르셀 카르네, 줄리앙 뒤비비에, 장 르누아르 등의 시적 리얼리즘의 영화들, 점령기하의 프랑스 영화, 그리고 자크 베케르, 자크 타티, 로베르 브레송 등의 전후 프랑스 영화들이 나왔던 시기다. 하지만 이 시기의 영화들은 누벨바그 이후 현대 프랑스 영화들에 비해 한국에서 그 동안 집중적으로 소개될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고전기 프랑스 영화에 대한 활발한 논의도 적은 편이었다. 그런 까닭에 이번 기획전은 프랑스 영화를 역사적인 맥락으로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번 기획전에서는 프랑스 영화의 황금기라 말하는 프랑스 영화 고전기에 만들어진 프랑스 영화들, 장 르누아르, 장 비고, 마르셀 카르네, 줄리앙 뒤비비에, 장 그레미용, 사샤 기트리 등의 작품을 포함 총 21편을 영화를 상영한다. 특히 장 르누아르나 마르셀 카르네, 줄리앙 뒤비비에 같은 감독들의 영화는 한국의 영화 팬들에게도 큰 인기를 끌었고, 여전히 프랑스 영화에 대한 확고한 인상을 형성하기도 했던 작품들이다.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의 김성욱 프로그램 디렉터는 이번 특별전은 프랑스 영화의 미학적 성취가 무엇인가를 이해하는데 좋은 기회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프랑스 영화의 한국적 수용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 기획전 기간 동안에는 프랑스 영화의 고전기 작품들을 좀 더 깊이 있게 생각해보고 이야기할 수 있는 두 차례의 강연도 마련되어 있다. 이번 기획전의 주요 작가 중 한 명인 마르셀 카르네의 영화를 중심으로 시적 리얼리즘에 대하여 알아보는 강연과 로베르 브레송의 영화를 통해 프랑스 문학을 조명해보는 강연이 준비되어 있어 관객들에게는 소중한 시간이 될 것으로 보인다. 누벨바그 이전 세대의 프랑스 고전기 영화들을 통해 프랑스 영화사를 조명해볼 수 있는 프랑스 영화의 황금기:1930-1960’ 기획전에 대한 보다 상세한 정보는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 홈페이지(www.cinemathrque.seoul.kr)를 참고하면 되며, 맥스무비, 예스24 등 지정 예매처에서 인터넷 예매도 가능하다. (문의 02-741-9782)

 

★ 부대행사: 영화사 강좌

프랑스 영화의 황금기: 1930-1960’ 기간 중에는 프랑스 영화의 고전기 작품들을 좀 더 깊이 있게 알 수 있는 영화사강좌가 마련된다.

 

10 30() 15:30 <무셰트> 상영 후

브레송의 영화와 프랑스 문학│정의진 (상명대학교 프랑스어문학과 교수)

 

11 6() 15:30 <북호텔> 상영 후

마르셀 카르네와 시적 리얼리즘│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영화평론가)

 

* 영화사 강좌는 ‘프랑스 영화의 황금기:1930-1960’ 기간 동안 상영되는 작품을 본 관객들에게 참여 우선권이 있으며, 자리가 남을 경우 선착순으로 참여 가능.

 

■ 상영작 목록 (21)

익사에서 구조된 부뒤 Boudu Sauve' des Eaux / Boudu Saved from Drowning (연출: 장 르누아르)

1932 | 89min | 프랑스 | B&W | 35mm | 전체 관람가

 

품행제로 Zero de conduite / Zero for Conduct (연출: 장 비고)

1933 | 44min | 프랑스 | B&W | 35mm | 15세 관람가

 

토니 Toni (연출: 장 르누아르)

1934 | 100min | 프랑스 | B&W | 35mm | 15세 관람가

연출 : 장 르누아르 Jean Renoir

 

라탈랑트 L'atalante / L'Atalante (연출: 장 비고)

1934 | 88min | 프랑스 | B&W | 35mm | 15세 관람가

 

꿈을 꾸다 Faisons un reve / Let's Us Do a Dream (연출: 사샤 기트리)

1936 | 80min | 프랑스 | B&W | 35mm | 15세 관람가

 

망향 Pepe le Moko (연출: 줄리앙 뒤비비에)

1937 | 97min | 프랑스 | B&W | 35mm | 12세 관람가

 

이상한 드라마 Drole de drame / Bizarre, Bizarre (연출 : 마르셀 카르네)

1937 | 95min | 프랑스 | B&W | 35mm | 15세 관람가

 

북호텔 Hotel du Nord (연출: 마르셀 카르네)

1938 | 100min | 프랑스 | B&W | 35mm | 15세 관람가

 

인간야수 La Bete Humaine / The Human Beast (연출 : 장 르누아르)

1938 | 104min | 프랑스 | B&W | 35mm | 15세 관람가

 

이상한 빅토르 씨 L'Etrange Monsieur Victor (연출 : 장 그레미용)

1938 | 100min | 프랑스/독일 | B&W | 35mm | 15세 관람가

 

여름의 빛 Lumiere d'Ete (연출: 장 그레미용)

1943 | 113min | 프랑스 | B&W | 35mm | 15세 관람가

 

볼로뉴 숲의 여인들 Les dames du Bois de Boulogne / The Ladies of the Bois de Boulogne (연출: 로베르 브레송)

1945 | 86min | 프랑스 | B&W | 35mm | 15세 관람가

 

인생유전 Les enfants du paradis / Children of Paradise (연출: 마르셀 카르네)

1945 | 182min | 프랑스 | B&W | 35mm | 전체 관람가

 

잃어버린 천국 Paradis perdu / Four Flights to Love (연출 : 아벨 강스)

1940 | 100min | 프랑스 | B&W | 35mm | 15세 관람가

 

바다의 침묵 Le Silence de la mer / The Silence of the Sea (연출: 장 피에르 멜빌)

1947 | 88min | 프랑스 | B&W | 35mm | 15세 관람가

 

오르페브르의 부두 Quai des Orfevres / Quay of the Goldsmiths (연출: 앙리 조르주 클루조)

1947 | 105min | 프랑스 | B&W | 35mm | 15세 관람가

 

절름발이 악마 Le diable boiteux / The Lame Devil (연출: 사샤 기트리)

1948 | 138min | 프랑스 | B&W | 35mm | 15세 관람가

 

축제일 Jour de fête / The Big Day (연출: 자크 타티)

1949 | 86min | 프랑스 | Color | 35mm | 전체 관람가

 

쾌락 Le Plaisir / House of Pleasure (연출: 막스 오퓔스)

1952 | 95min | 프랑스 | B&W | 35mm | 15세 관람가

 

프렌치 캉캉 French CanCan / Only the French Can (연출: 장 르누아르)

1954 | 115min | 프랑스 | Color | 35mm | 15세 관람가

 

무셰트 Mouchette (연출: 로베르 브레송)

1967 | 78min | 프랑스 | B&W| 35mm | 12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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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르누아르 만년의 걸작 <탈주한 하사 Le caporal épinglé>(1962)는 2차 대전 당시, 독일지역에서 포로로서 수용된 프랑스 군인들의 생활을 그린다. 뉴스릴 필름을 통해 간략하게 당시의 상황이 설명되고 영화는 곧바로 수용소 내부와 그 주변 지역에서의 그들의 삶의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주된 인물은 파리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가족에게 돌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탈주를 시도하는 하사(장 피에르 카셀), 그의 절친한 친구이며 몽상가처럼 보이는 동그란 안경을 쓰고 다니는 바롤셰(클로드 라쉬), 그리고 가장 쾌활하면서도 현실의 씁쓸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인물인 파테(클로드 브라쇠르)다. 군인이 되면 이전의 신분이나 직업들은 지워진다. 전쟁터 혹은 수용소는 그들에게는 거의 유일하게 인간 대 인간으로 동등한 위치에서 만나는 장소가 된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전쟁이 끝나면 원래 자기의 자리로 돌아가야만 함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수용소 내부에서의 삶과 새로운 질서에의 적응의 태도에 있어서도 각각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각 캐릭터가 보이는 행태의 특징이 매우 중요한 이유다.



물론 수용소의 현실은 극도로 비참하다. 강제 노역이 행해지며, 탈주의 시도가 실패한 이후에는 가혹한 체벌이 이어진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적 에너지를 잃지 않는 르누아르의 영화답게, <탈주한 하사>는 가혹한 수용소의 환경에서도 사람들 사이의 인간적 연대와 따스한 우정을 발견해 낸다. 인물들은 결코 의기소침하지 않고 유머러스함을 잃지 않으며, 각자의 방식으로 수용소의 삶에 적응해 살아간다. 하지만 하사와 바롤셰를 통해 드러나는 르누아르의 또 다른 전언은 편안한 삶의 타성에 젖어 권력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어느덧 탈주의 시도를 멈추고 안락한 삶에 만족하던 하사는 독일 소녀와의 관계에서 애정을 느끼는 순간, 불현듯 그 사실을 깨닫는다. 인간적 존엄을 지키기 위한 자유에의 투쟁을 멈춰서는 안 된다는 것을. 하사는 자신이 아끼는 친구인 바롤셰를 깨우치기 위해 그의 멱살을 잡는다. 자신의 비겁함에 스스로 상처받고 일어난 바롤셰가 탈주를 시도하다 맞이하는 죽음의 순간. 외화면에서 총성이 들려오고 클로즈업된 하사의 얼굴이 부르르 떨린다. 르누아르에게 있어, 이것은 숭고한 죽음일지도 모른다.



영화에서 중심이 되는 것은 하사의 끊임없는 탈주 시도다. 그러나 그 다양한 탈주 시도는, 실상 그것이 목숨을 걸고 벌이는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유머러스하게 묘사되면서 영화에서 가장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순간이 된다. 왜일까? 르누아르에게 자유에의 열망은 곧 삶의 에너지이며, 현실의 비참함 조차도 그 긍정적 에너지를 억누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결국 하사와 파테의 탈주가 성공하는 순간도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계속되는 우연의 중첩의 결과다. 그들은 마침내 파리에 도착하고 파테는 두려워한다. 이제 탈주가 성공했으니 그들은 이제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야 하고 더 이상 친구가 될 수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 그러나 자유는 아직 완전히 획득되지 않았다. 세상 자체가 감옥인 까닭이다. 억압에 대한 저항은 계속되어야 한다. 단순히 물리적 자유만이 아닌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심리적 자유를 얻기까지, 끝없는 자유에의 열망을 잃지 말아야 한다. 이제 그들은 그것을 깨닫고 자신들의 자리로 돌아간다. 르누아르의 영화는 여전히 뜨겁다. (박영석 :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 관객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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