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토크

우습고, 비열하고, 진짜 사람 같은 사람들

- 윤종빈 감독이 말하는 마틴 스콜세지의 ‘좋은 친구들’

 

지난 1월 26일 오후, 서울아트시네마의 로비는 마틴 스콜세지의 <좋은 친구들>(1990)과 이 영화를 선택한 윤종빈 감독과의 시네토크를 찾아온 사람들로 가득했다. 윤종빈 감독은 <좋은 친구들>을 서른 번도 넘게 봤을 정도로 좋아한다며 영화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 흥미로웠던 현장을 전한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영화평론가): 마틴 스콜세지의 <좋은 친구들>을 여러 번 봤다고 했다. <좋은 친구들>에서 어떤 면들을 좋아하는지, 그리고 오늘 또다시 보면서 어떤 것들을 새로이 생각하게 됐는지.

윤종빈(영화감독): 23살 때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내가 마피아도 아니고 이탈리아 사람도 아니지만 왠지 그 세계는 진짜 그럴 것 같아서 충격을 받았다. 두세 번 보니까 영화에 플롯도 없고, 장르적인 면도 거의 없다는 게 들어왔다. 그런데도 두 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을 힘 있게 끌어갔던 게 신기했다. 그리고 계속 보다보니까 음악이 들어왔다. 이 영화는 사운드트랙이 굉장히 훌륭하다. 기존에 있던 곡들을 삽입한 건데, 그 장면의 정서에 맞거나 부딪히는 방식으로 많이 사용한 것 같다. 그리고 또 재밌는 건, 이 영화엔 어떠한 멜로드라마적인 순간도 존재하지 않고, 영화에 나오는 인물에게 이입할 수도 없고, 그 사람들의 내면을 보여주는 순간도 없는데 왠지 그 사람이 어딘가에 존재하는 진짜 인간인 것처럼 착각이 들게 하는 것이다. 그러한 점들이 이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들이다.

 

김성욱: 내면을 보여주지 않고 인물을 그려나간다는 점에서 보면 이 영화는 내레이션을 쓰고 있지만 전통적이지 않은 다른 방식으로 쓰는 것 같다. 짧긴 하지만 부인의 내레이션도 나온다. 내레이션보다 오히려 코멘터리 같은 느낌이 강하다. 방금 인물의 내면을 보여주지 않으면서 인물들이 그럴듯하게 느끼게 해준다고 말했는데, 정확하게 어떤 부분들이 그러한가?

윤종빈: 가령 이 영화와 비슷하다고들 하는 <대부>(1972)는 멜로드라마적인 면에 많이 기대고 있다. <대부>의 세계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멋있어 보이기도 하고, 착해 보이기도 하는 순간들이 존재한다. 그런데 이 영화엔 사람들이 시종일관 우스꽝스럽고, 비열해 보이고, 그런데도 사람 같다. 그런 것들이 배우들의 연기에서도 많이 드러난다. 헨리가 폴리의 식당을 찾아가서 잘못했다면서 우는 장면에서 헨리의 그 표정이 너무 불쌍하고 인간적으로 다가온다.

 

김성욱: 이 영화는 인상적인 촬영 방식을 보여준다. 이 영화를 얘기할 때 꼭 언급하는 장면, 헨리가 카렌과 데이트를 하면서 코파카바나 클럽으로 내려가면서 맨 앞자리까지 들어가는 장면이 하나의 컷으로 길게 촬영됐다. 마치 다큐멘터리적인 촬영 방식이다. 그런 식의 촬영이 내용과도 밀접한 관련을 맺는 것 같다.

윤종빈: 내용은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것 같지만 촬영은 매우 스타일리시하다. 무빙이 많고 테크닉이 굉장히 많이 들어간 영화다. 그런데 영화에 빠지게 되면 그런 스타일을 인지하기 힘든 것 같다.

 

 

김성욱: 어떤 장면을 인상적으로 기억하는가?

윤종빈: 대부분의 장면을 다 좋아하는데 에릭 클랩튼의 ‘Layla’ 후반부가 나오면서 사람들이 핑크색 차 안에 죽어 있는 게 드러나는 장면이다. 일순간 화면이 정지하고, 음악이 흐르고, 죽은 사람이 나오는, 굉장히 영화적인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영화는 니콜라스 필레지라는 마피아 갱단의 자서전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다. 그런데 영화 속에 나오는 에피소드들이 너무 리얼해서 어디까지가 진짜고 어디가 각색이 됐는지가 진짜 궁금하다. 가령 헨리, 지미, 타미가 마피아를 묻으러 가다가 칼 가지러 집에 들렀는데, 엄마한테 붙잡혀서 밥을 먹고, 엄마는 난데없이 그림을 보여준다. 머리로는 상상할 수 없는 에피소드인 것 같다. 끊임없이 봐도 이 영화가 참 좋은 게, 전형적인 씬들이 거의 없다. 항상 뭔가를 비틀어낸다. 지미가 새벽에 식당에서 나오면서 잠복하다가 잠든 FBI를 깨우는 장면도 참 재미있다.

 

김성욱: <대부>도 그렇고 <범죄와의 전쟁>도 일종의 범죄자의 공동체를 그리고 있다. 그런데 <좋은 친구들>의 조직은 좀 묘한 구석이 있다. 이 영화의 패밀리는 그렇게 인위적이지도 않고 인정으로 뭉쳐있다는 느낌도 별로 없고, 돈이라는 커넥션에 의해 뭉쳐져서 <대부> 1편에서 보이는 가족적인 느낌과는 굉장히 다르다. 게다가 주인공은 마피아로 보자면 일종의 진골이 아니기에 정통 시칠리 마피아의 세계에 들어갈 수 없다.

윤종빈: <대부>는 영화가 좋고 나쁜 것과 상관없이 리얼한 것과는 좀 거리가 먼 것 같다. <대부>의 패밀리는 약간 과장되고 판타지가 있는 패밀리 아닌가. 얼마 전 스콜세지 인터뷰집을 봤는데 <좋은 친구들>, <비열한 거리>(1994) 얘기 할 때는 그냥 자기가 살던 동네가 진짜 그랬다고 하더라. 이태리 이주민들이 모여서 정말 못사는데, 다 갱들이 있고, 갱이 없으면 생활에 불편함을 겪는다고 했다. <좋은 친구들>은 왜 마피아를 할 수밖에 없는지, 집단을 합리화시키는 명분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는다. 주인공이 자기가 갱스터 되고 싶은 이유는 줄을 서기 싫고 돈을 벌기 위해서라고 말하는데 쿨하고 재밌는 화법인 것 같다.

 

관객1: 영화 안에서 우스꽝스러운 장면들이 많은데 그럼에도 폭력성은 늘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이 영화에서 가장 심한 폭력이라고 보는 부분은 어디라고 생각하시는지.

윤종빈: 이 영화에서 가장 폭력적인 장면은 두 씬이 있다. 식당에 찾아온 헨리에게 폴리가 돈 몇 천 주고 관계를 끝내버리는 장면, 그리고 지미가 헨리를 불러서 누구를 죽이고 오라고 부탁하는 장면. 그 장면에선 배우들의 표정도 굉장히 서늘했던 것 같다. 물리적 폭력도 무섭겠지만 좋게 지내던 관계들이 한순간에 탁 끊어지는 게 싸늘하면서도 무서웠다.

 

관객2: 관객의 입장에서 이 영화엔 그렇게 폭력적인 장면이 많아 보이진 않았다. 그런데 <범죄와의 전쟁>은 보기에 약간 불편했다.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 영화가 묘사하는 폭력의 수준이 어느 정도가 적절하다고 보시는지 궁금하다.

윤종빈: 기본적으로 피나 신체가 절단되는 것들을 직접 보여주는 걸 좋아하진 않는다. 영화마다 다른데, 드라마가 있는 영화라면 표현하는 형식들이 주제를 뛰어넘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항상 한다. 담담하게 수위를 많이 줄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관객3: 스콜세지는 최근까지도 영화를 찍고 있는데, 스콜세지의 다른 영화들 중에 무슨 영화를 좋아하시는지 궁금하다.

윤종빈: 스콜세지 영화는 거의 대부분 다 좋아한다. 스콜세지가 만든 영화들 중에서 정말 좋아하는 영화는 <카지노>(1995)가 마지막인 것 같다. 그 이후보단 이전 영화들이 더 좋은 것 같다. 최근에 본 <휴고>는 좋았다.

 

정리: 송은경(시네마테크 관객에디터) | 사진: 김윤슬(시네마테크 자원활동가)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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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민, 윤종빈 감독과 함께한 으스타슈의 <엄마와 창녀> 시네토크


1월 17일 서울아트시네마에선 무려 4시간 가까운 상영시간에 달하는 장 으스타슈의 <엄마와 창녀>(1973)를 인터미션도 없이 상영 후 이 영화를 친구들의 선택으로 꼽은 김한민, 윤종빈 감독과의 시네토크가 진행됐다. 3시간 40분 동안 서너 명의 등장인물들이 각자의 방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전부인 영화. 이미 작년 11월에 일찌감치 이 영화를 선택했다고 하는 김한민, 윤종빈 감독은 왜 이 영화를 고른 것일까. 언뜻 보면 대조적이지만 은근히 잘 어울리던 두 감독의 마치 ‘시사토론회’ 같던 그 현장을 일부 옮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 오랜만에 이 영화를 온전하게 다시 봤다. 게다가 젊은 장 피에르 레오를 보니 새롭다. 이 영화는 2003년에 서울아트시네마가 소격동에 있던 시절에 ‘장 으스타슈, 필립 가렐 특별전’을 개최할 때 처음 한국에서 상영한 바 있다. 이후에 DVD를 갖고 있어 몇 번 보긴 했지만 집에서는 온전하게 다 본 적이 없었다(웃음). 7년 만에 필름으로 다시 보니 좋다. 오늘 거의 4시간에 달하는 영화를 추천해주신 두 감독님을 모시고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겠다.
윤종빈(영화감독) : 나도 이 영화를 2003년 선재에서 봤다. 그 때는 상영 중간에 한 번 쉬었었는데 안 쉬고 보니까 더 색다르다. 그리고 여전히 감동적이다. 영화를 많이 보지는 못하지만 꼽으라면 베스트 5위 안에 들어가는 영화다.
김한민(영화감독) : 나는 사실 윤종빈 감독이 추천해서 봤다. 제목도 <엄마와 창녀>고 해서 재밌겠다싶어 DVD로 먼저 본 다음에 함께 나오게 되었다. 영화를 보면서 내가 치열하게 영화에 대한 감성을 다듬던 대학시절, 대학원시절의 영화적 감성이 다시 올라오더라. 밀란 쿤데라가 얘기했던 팽창된 영혼의 순간을 느꼈다. 보고 나니 담배와 술이 확 땡기더라.



김성욱 : 지난 해 말에 영화가 잘 안 돼서 우울한 김한민 감독을 만나 술을 마시러 간 적이 있는데 윤종빈 감독도 자리를 함께 했었다. 그 때 윤 감독이 <엄마와 창녀>를 굉장히 좋아한다며 지금 시대에 한번 쯤 다시 틀어도 좋겠다고 해서 이번 영화제에 두분을 초대하게 됐다. 윤종빈 감독의 영화 <비스티 보이즈>와도 상당히 많은 관련성을 느꼈다. 이 영화에서의 알렉상드르와 하정우 씨 같은 경우가 상황이 좀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오늘 보면서 어땠나.
윤종빈 : 내가 좋아하는 감독들이 홍상수, 에릭 로메르, 장 으스타슈, 존 카사베츠 그런 감독님들이다. 그 감독들의 영화의 형식이라든지 세계관은 다 다르지만, 그들이 영화에 갖고 있는 믿음은 현실이 딱 깔끔하게 정리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현실은 거대 담론으로 해석되지 않는 것이라는 전제도 갖고 있다. 그래서 영화가 열려 있고, 어떤 결에 얽매이지 않으며, 느린 호흡으로 전개하면서도 인간의 풍부한 모습과 그 시대의 공기를 잘 전달한다. 나도 <비스티 보이즈>에서 그런 것을 해보려고 했는데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잘 안 된 것 같다. 하지만 계속 그런 것들을 염두에 두고 만들려고 한다.

김성욱 : 이 영화는 얼굴과 음성, 그리고 음악으로만 진행되는, 액션이 많지 않은 영화다. 얼굴과 말하는 것으로 네 시간을 끌고 가는데 김한민 감독의 영화는 액션도 많고 극적 전개가 많으니 좀 경우가 다르다. 이런 영화는 어떻게 생각하나.
김한민 : 사람들이 우리 두 사람을 보고 영화 스타일도 다르고 성격도 다른데 어떻게 친해졌느냐고 물어본다. 그런데 실제로 영화 이야기를 나눠보면 비슷한 영혼을 갖고 있고, 교감할 수 있는 지점이 많다. 나는 윤종빈 감독이 부럽고 장 으스타슈도 부럽다. 영화를 계속할 수 있고, 자신이 보는 세상의 본질을 자기 스타일의 영화로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게 부럽다. 가장 큰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내 영화의 경우에는 그런 지점에 있어서 장르적이고 짜인 작업이기도 하고, 상업적인 고민 등으로 인해 닫혀 있는 것 같다. 영화를 볼 때 외적인 현상이나 스타일로 볼 것인가, 아님 주제로 볼 것인가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후자의 측면에 있어서는 나도 조금 ‘의식적인’ 감독이라고 스스로 평가한다. 농담 삼아 프로그래머님에게 “작가를 말하다”에 나는 왜 안 불러주는지 물어본 적이 있다(웃음). 실제로 <용서받지 못한 자>, <비스티 보이즈>, <베티 블루>, <나쁜 피> 이런 영화들을 보면서 내가 영화를 그렇게 안 만든다고 해서 그런 영화에 공감 못한다는 건 아니다. 오늘 이 영화를 보면서 느낀 건 이 영화가 순간을 포착해내고, 자신의 삼각관계를 행복하게 바라본다는 거다. 저런 찰나의 순간, 아름다운 순간들이 내 젊은 시절에 있었던가. 없었다면 저런 시절이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이게 내 영화의 에너지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새로운 것들을 돌이켜보는 자리가 된 것 같다.

김성욱 : 예전에 필립 가렐이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종종 영화가 삶을 구제해준다고 말하는데 으스타슈의 죽음을 돌이켜보면(장 으스타슈 감독은 81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영화가 한 사람의 삶도 구제해주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끔찍한 사건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던 적이 있다. 가슴 아픈 일이다. 이 영화는 68혁명의 좌절 이후의 73년의 시대의 공기를 담고 있다. 윤종빈 감독도 그런 걸 좋아하는 듯한데.
윤종빈 : 이 영화랑 비슷한 걸 꼽자면 386의 후일담인 <경마장 가는 길>같다. 이 영화를 다시 보면서 확신이 드는 건 겉으로 남녀의 연애, 섹스 얘기를 하고 있지만 본질은 68혁명 이후 사람들의 공황상태와 그 시대의 공기를 담으려고 노력했다는 것이다. 영화 속 대사로 영화의 본질을 얘기할 때나, 68혁명 당시 “살고 싶었다” 같은 얘기, 베로니카가 울면서 하던 얘기도 그렇고, 대사에 소우주가 담겨 있다는 생각을 했다.

김한민 : 나는 마지막 장면에 의문이 들었다. 마지막에 레오가 바래다줄 때 마리는 혼자 계속 음악을 듣고 있다. 그리고 다시 바래다준다. 만약 홍상수 감독님이나 윤종빈 감독이라면 거기서 끊었을 것 같은데 그 뒤에 결혼 얘기와 토하는 것까지 나온 다음에 끝난다.
윤종빈 : 나는 그게 핵심이라고 생각했다. 처음 볼 때는 왜 이렇게 길게 갈까 했는데 마지막에 에디트 피아프의 노래가 또 나오는 걸 보니 회귀하는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성장하는 게 아니라 똑같은 과정으로 회귀한다는 느낌말이다. 그래서 이 음악을 틀어주는 죽은 시간이 이 영화에서 미학적으로 가장 파격적인 선택이 아닐까.

김한민 : 노래를 길게 끄는 건 좋은데, 그 뒤의 에필로그 같은 프로포즈와 토하는 장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윤종빈 : 레오가 바로 찾아가서 얘기하면 되는데 그렇게 안 한 이유를 생각해보면, 레오의 행위에 원래 그런 게 많기도 했다. 가다가 말고 돌아오는 그런 해위. 그래서 나는 이게 회귀라고 생각했다. 변하지 않는 것, 일테면 <해변의 여인>에서 고현정의 차가 유턴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맥락에서 동질감을 많이 느꼈다. 한편으로 쟤 저렇게 살면 안 된다는 생각도 했다.

김성욱 : 장 으스타슈가 이 영화를 직접 들고 모로코에 가서 밤새 사람들이랑 진지하게 얘기했다고 하더라. 오늘도 이 영화에 대한 서로 다른 생각을 갖고 얘기하면 8시간, 10시간씩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늘 긴 시간 영화도 보고 시네토크에도 참석해주신 관객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정리 : 김보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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