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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2.21 "이마무라 감독은 나에게 가장 큰 자극을 주는 분이다"

[시네토크] 봉준호 감독이 추천한 이마무라 쇼헤이의 <붉은 살의>

지난 20일 오후1시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봉준호 감독이 선택작인 이마무라 쇼헤이의 <붉은 살의>가 상영되고 상영 후에는 바로 봉준호 감독과 함께하는 시네토크가 이어졌다. “전석 매진” 으로 봉준호 감독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영화에 대한 즐거운 이야기가 오갔던 그 현장을 전한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붉은 살의>는 이마무라 쇼헤이의 60년대 초기작이다. 굉장히 압도적인 장면들도 많고 인상적인 영화였다. 오늘 영화를 추천하시고 관객들과 이야기를 나누러 온 봉준호 감독님을 소개해드리겠다.
봉준호(영화감독): 재미있게 보셨는지 모르겠고, dvd로만 봤었는데 프린트로 보니 좋았다.

김성욱: 최근 이마무라 쇼헤이 dvd 세 편을 사셨다고 했는데, 그 세 편 중 <붉은 살의>를 추천하시게 된 계기는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
봉준호: 작년에 크라이테리언에서 쇼헤이의 초기작 dvd 3편이 나왔다. <붉은 살의>, <일본곤충기> 그리고 <돼지와 군함>이다. 해외영화제 갔다가 dvd를 사왔는데 세 편을 다시 보니 훌륭한 영화였다. 기회가 되면 나머지 두 편도 소개드리고 싶다. 그러나 나는 '살의'라는 단어를 좋아해서 이 영화를 소개시켜드렸다.

김성욱: 보다가 감독님 영화 중에 <마더>가 생각났다. 누에가 기어가는 장면과 침 놓는 장면이 비슷한 것 같다. 사다코라는 캐릭터가 김혜자 씨랑 느낌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감독님에게 있어서 쇼헤이 감독이 어떤 흥미를 주고 영향을 끼쳤는지 궁금하다.
봉준호: 쇼헤이 감독의 영화를 본 순서가 뒤죽박죽이다. 감독님의 작품들이 우리나라에 개봉한 것들은 노년에 만드신 후기 작품들이다. <우나기>나 <간장선생>, <붉은 다리 아래 따뜻한 물>. 이런 후기작들을 먼저 접한 후에 그 전 작품들을 점점 거슬러 올라가는 느낌으로 봤다. 이번에 보신 <붉은 살의> 같은 초기작들은 뒤늦게 dvd로 봤다. 쇼헤이 감독은 나에게 김기영 감독님과 더불어 가장 강력한 자극을 주시는 분이다. 이 영화 보면서 <하녀> 생각이 났는데, <하녀>를 보면 주증녀 씨가 집에서 미싱을 밟고 있는데, 여기선 편직기를 짜고 있다. 그리고 이상한 느낌의 도서관 여자는 <하녀>에서 하녀가 주인과 잠을 자고 나서 하는 행동패턴과 비슷하다. 제일 좋아하는 두 분이 뒤섞인 느낌을 받으면서 속으로 즐거웠다. 나는 쇼헤이 감독님을 실제로 한 번도 뵙지 못했다. 2006년 깐느 영화제에 가있을 때 아프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바로 몆 주 후에 돌아가셨다. 부산영화제도 오셨고 한국영화에 출연 하신 적도 있다. 장동건 주연의 <2009 로스트 메모리즈>보면 나오신다. 워낙 좋아하니까 간접적으로라도 여러 가지 흔적을 잡아보려고 했던 기억이 난다. 아무튼 집에서 혼자 dvd로 영화를 보는 것 보다 여러 관객들과 같이 보니, 그야말로 그분을 만나는 느낌인 것 같다.

김성욱: <붉은 살의>는 진짜 대단한 장면이 많은 것 같다.  어떤 장면이 좋았는지 궁금하다.
봉준호: 다시 봐도 놀라운 장면이 많다. 일단 처음에 여주인공이 폭행을 당하고 나서 죽어야 한다고 결심하면서 기찻길에서 이상한 체조를 하는 그 장면은 고속 촬영된 슬로모션인데 상당히 마술 같은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린 사다코가 누에를 허벅지에 놓고 있는 장면을 보는데 그걸 또 밑에서 찍은 샷이 있다. 두 다리 사이로 내려다보는 어린 사다코의 장면도 잊혀지지 않는다. 쇼헤이 감독은 여자들의 강력함을 묘사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놀라운 장면의 중심에는 모두 여자캐릭터가 있는데, 사다코는 그런 캐릭터의 정점이다. 동서의 모든 영화사를 통틀어서 그런 것 같다. <붉은 살의> 인터뷰를 다시 봤는데 사토 타다오 라는 평론가가 배우를 캐스팅하게 된 계기를 물어보니 쇼헤이 감독이 덩치가 커서 여배우를 데려왔다고 한다. 유명배우가 아니어서 제작자들이 만류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과감하게 캐스팅을 했다고 한다. 사다코 역의 배우는 영화에서 본인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전무후무한 캐릭터를 보여준 것 같다.


관객1:
불안한 요소가 모두 사라진 후에 병원에서 남편이 부인을 몰아붙이고, 부인도 될 대로 되라는 반응을 한다. 그리고 규칙을 중시하는 집으로 돌아가는데, 이렇게 변화된 캐릭터들에 반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지금 진행 중인 영화작업이 궁금하다.
봉준호: 쇼헤이 감독 인터뷰 중 유명한 부분이 “나는 일본인들 개인의 허리 아래쪽에 관심이 있다. 그리고 일본사회의 허리 아래가 개인의 허리와 충돌하는 것에 관심이 많다.”라고 했다고 한다. 그 말이 본인의 영화세계를 집약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영화에서 위험요소가 제거된 후에 남자도 여자를 대하는 태도가 바뀐다. 잘못하면 남자의 내연녀에 대한 이야기가 드러나게 되니까 콧대가 죽어 눈치를 보는 것이다. 유산을 물려받고 안정되는 시기이니까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내 작업은 현재 시나리오를 고치고 있다. 미국작가와 각색을 하고 있다. 60퍼센트 이상이 영어 대사이기 때문이다. 캐스팅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캐스팅 관련기사는 모두 허구다.

관객2: 예전에 <복수는 나의 것>을 보았다. 마지막 장면에서 유골을 허공에 던지는데, 땅에 떨어지지 않고 멈춰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영화에서 옷이 허공에서 날아다닐 때 보면 영화에 귀신이 들렸다는 느낌이 드는데, 정지이미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만약에 남편의 정부가 죽지 않고 살았다면 언젠가 내가 진짜 부인이라고 이야기 했을 텐데, 그때 사다코가 어떻게 대처할지 궁금하다.
봉준호: 재미있는 질문인 것 같다. 내가 보기엔 이미 사다코는 막을 수 없는 여자가 되었고, 도서관의 여자가 차에 치이지 않고 사다코가 알게 되었다면 소심한척하면서 가볍게 누에를 터트리듯이 처치했을 것 같다. <복수는 나의 것>의 마지막에 사형당한 아들 유골을 던지는데 그게 멈춘다. <복수는 나의 것>은 79년 중후기의 영화고 이건 초창기인데, <일본 곤충기>에도 정지화면이 많다. 그게 트레이드마크처럼 되었다. 정지시킨 이미지에서 무슨 느낌을 받는지 모르겠지만 추측은 할 수 있을 것 같디. 재미있는 것은 화면은 멈춰있는데 사운드는 진행이 된다. <복수는 나의 것>에서도 뼈는 멈추고 거친 바람소리가 난다. 그것이 주는 묘한 감흥이 있는 것 같다.

김성욱: 움직임들이 슬로모션으로 이어질 땐 초자연적인 느낌도 있다. 영화의 전체에서 인물들의 물리적인 움직임은 정지된 장면과 대비가 되었다. 사진을 찍는 행위와 영화를 찍는 사람들과의 충돌이 느껴졌다.
봉준호: 쇼헤이 감독은 일본사회에 대한 다큐멘터리적인 터치로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다. 70년대에는 거의 다큐멘터리만 찍었는데, 영화 안으로 들어갈수록 표현적이고 초현실적인 느낌을 받는다. 길거리나 기차장면은 네오리얼리즘같이 사람들을 통제하지 않는데 반해, 실내로 갔을 땐 인물의 전경 후경 배치, 조명의 의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는데 그것이 제대로 먹힌다. 극단적인 광각렌즈를 쓰는 장면도 있는데 리얼하고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을 준다. 그리고 그것은 전체적인 스타일로 받아들여진다. 리얼한 터치와 조형적인 비주얼이 무리 없이 섞이는 것이 놀랍다.

관객3: 할아버지의 첩이었다가 자살을 한 분이 영화를 전반적으로 지배하고 있다고 본다. 영화 중간 중간 말이 나오는데, 처음엔 tv에서 나오는 말 인줄 알았는데 계속 중요 대목에서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할머니들이 나누는 이야긴데 알아듣기 힘들다. 일본영화에서 보면 정령들이 행동에 따라 인간의 운명에 간섭을 한다. 어린 사다코를 데리고 갈 때 누추한 할머니 네 분이 속삭이는데, 그들이 결국 영화 전체에 걸쳐 사다코를 그런 방향으로 끌고 가는 것이 아닌지 생각했다. 남편이 의심을 하면서도 “이 정도면 되었다”고 마무리 지을 때 웃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는데, 결국 정령들이 이끈 대로 된 것 같다. 그리고 사다코의 독백이 영화에서 하는 역할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마지막으로 벌레가 나오는 장면에서 어린 사다코가 누에를 자신의 허벅지에 놨을 때 시어머니에게 제지당했으나 마지막엔 사다코가 뽕잎을 가지고 누에를 유도하는 것에 대해, 사다코가 모든 운명의 주도권을 가지는 뜻이 아닌가 싶었다.
봉준호: 사다코가 마을에 시집 내지는 식모로 가는데 나무 뒤에 있는 할머니들이 입은 옷의 모습은 전체 톤과 분리되어있다. 다른 시대에서 온 것 같은 느낌이 난다. 이 영화 처음 봤을 때 중얼거림에 대한 자막이 안 나와서 감독의 주문인가 하고 생각했었다. 마침 일본어를 들으신다고 하니 의문이 풀렸다. 할머니들이 저주 비슷하게 중얼거린다는 느낌이 있는 거지 언어 자체가 개념을 지시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그것들이 나오는 시점이 간헐적으로 흩어져서 사다코 주변이 마치 저주가 맴돌듯이 나온 것이 과감한 사운드 사용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재미있는 것은 <맥베스>에도 이 영화 같은 저주가 있다. 다른 점은 <맥베스>는 저주대로 파국을 맞이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다코는 자기 욕망을 컨트롤 하는 모습까지 보여준다. 어렸을 때처럼 욕망이 드러날 때 벌을 주는 시어머니도 없고, 많은 숫자의 누에가 보인다. <맥베스>의 파국과 다르게 사다코는 살아서 끝난다. 게다가 스톱모션을 좋아하는 감독답게, 이 라스트는 진행형이다. 숏이 계속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마치 이 영화가 끝나도 사다코는 자기 욕망을 컨트롤 하면서 잘 살아갈 것처럼 끝난다. <맥베스>의 마녀처럼 네 명의 할머니들이 있지만 그것마저 돌파하면서 가는 느낌이 든다. 마지막으로 <붉은 살의>가 좋으셨다면 다른 쇼헤이 감독 작품도 봐주셨으면 좋겠다. 연구해 볼만한 감독님이 아닌가 생각된다.

(정리 : 정태형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 관객 에디터)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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