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새로운 작가 전략' 기획전에 맞춰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는 이번에 상영하는 데뷔작들을 만든 감독님들과 함께하는 두 차례의 포럼을 마련했다. 그 두 번째 자리가 지난 3월 27일 오후에 ‘지속 가능한 영화 제작에의 질문’을 주제로 열렸다. 최근 2년 사이 동안 데뷔작을 선보인 김기훈, 박진성, 백승화, 신수원, 장건재, 오영두, 홍영근 감독 등 8명의 작가들이 패널로 참여하고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의 진행으로 열린 이날 포럼에서는 데뷔작을 선보인 이후 다음 영화, 또 그 다음 영화를 지속적으로 만들기 위한 이들의 고민과 전략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 현장의 일부를 여기에 옮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이번에 ‘한국영화, 새로운 작가 전략’이라는 타이틀과 연동하여 두 차례의 포럼을 마련했는데 ‘지속 가능한 영화 제작에의 질문’이라는 주제로 8명의 작가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겠다. 데뷔작으로 극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새로운 방식의 기획, 혹은 새로운 방식의 작가 전략을 고민하는 것이다. 이는 서로 다른 생각과 고민을 갖고 있는 개별적인 작가들의 영화가 어떤 특정한 시기에 모여 하나의 연대비행을 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도 갖고 있다. 오늘 이 자리에서는 데뷔작을 만들며 어떤 환경 속에서 어떤 영화에 대한 기획들을 하게 됐는지, 그리고 앞으로의 작업을 지속해 나가기 위한 자구책은 어떤 것들인가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박진성(영화감독): 관객으로서 원래 장르영화, 그 중에서도 공포영화를 굉장히 좋아한다. 개봉된 웬만한 공포영화는 모두 보는 편이고, 그게 즐겁다. <마녀의 관>에는 인형극 이야기가 나오는데, 제가 아주 어렸을 때 TV에서 일본에서 하는 분라쿠라는 인형극을 보고 굉장히 충격을 받았다. 인형을 조종하는 사람들을 가리려는 어떠한 시도도 없이 오히려 그것을 즐거운 경험의 일부로 활용하는 것이 무척 놀라웠다. 그런 기억과 함께 어렸을 때 읽었던 <마녀의 관>이라는 작품이 결합되어 이런 영화가 나오지 않았나 싶다. 1억 미만의 예산에 비해 효과가 볼만하게 나왔다면 다행이지만, 여러 가지로 요령이나 눈속임 같은 것을 적극적으로 사용했던 것 같다.

김성욱
: 또 다른 공포영화인 <이웃집 좀비>의 경우 특이하게도 집단창작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집단을 구성되게 된 과정은 어떤가? 
오영두(영화감독): 사실 창작집단이라기 보다는 영화를 만들고 나니 이름이 필요했는데, 제 아내가 망고스틴을 좋아해서 그냥 그 앞에 키노만 붙여서 키노 망고스틴을 만든 것이다. (웃음) 일단 저와 장윤정 씨는 부부사이고, 홍영근 씨는 군대에서 만나게 되어 쭉 같이 지내다가 작업을 하게 되었다. 류훈 씨는 <텔 미 썸딩>이라는 영화를 할 때 처음 만났는데 뒤에 다시 만나서 같이 작업을 하게 되었다. 처음부터 의기투합해서 뭔가를 해보자고 한 것은 전혀 아니고, 그 시기에 다들 일이 없어서 집에 있다가 만들게 된 경우라서 크게 계산을 했던 부분은 없다. 저희는 정기적으로 모여서 뭔가 한다거나 하지도 않고, 캐주얼하고 심각하지 않은 관계다. 옴니버스 형식 역시 처음부터 그런 기획을 했던 것이 아니라, 류훈 씨와 시나리오 작업을 하다 투자가 잘 되지 않아서 집에서 간단하게 단편을 찍되 그것을 한 대여섯 편 묶으면 개봉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막상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아이디어들이 굉장히 많이 나왔다. 그 중에서 좀비 아이디어를 채택하게 된 것이다.
홍영근(영화감독): 정말 영화를 좋아하기 때문에 같이 모여서 노는 식구들이 영화 한 번 만들어 보자고 시작한 것이다. 참여하고 싶으면 적극적으로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고, 아이디어도 공유하고, 언제든지 개인적으로 다른 영화를 준비하면 도와줄 수도 있고. 일종의 품앗이 같은 개념이다.

김성욱
: 김기훈 감독의 경우에는 <이파네마 소년> 이전에 다큐멘터리나 실험적인 영화들을 만들었다. 그런데 첫 번째 장편 데뷔작은, 완전히 장르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일종의 청춘 로맨스물이다.
김기훈(영화감독): 개인적으로 영화 마니아로 감독의 영감이나 동기를 받은 것이 아니라 영화가 갖고 있는 종합 예술이라는 매체적인 특성 때문에 영화를 좋아하게 되었고, 공부하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기존에 있는 장르나 관습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내가 매체 안에서 표현할 수 있는 부분들을 포괄적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계속 영화 작업을 하고 관객들을 만나면서, 관객들은 역시 영화를 장르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영화 장르나 관습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렇게 고민하다가 시나리오를 쓰게 된 것이 스릴러 작품이었다. 그런데 1년 정도 시나리오를 쓰다 보니 너무 지겨웠다. 칙칙한 스릴러의 서스펜스만 생각하다보니 더 늙기 전에 샤방샤방한 멜로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성욱: 조금 경우가 다르기는 하지만 장건재 감독의 <회오리 바람>도 일종의 청춘물이다. 청춘영화라는 특정한 카테고리의 영화를 만든다는 생각이 강했을 것 같은데.
장건재(영화감독): 사실은 전에 준비하던 시나리오도 일종의 성장물이었다. 그리고 이 영화를 준비하기 전에는 소설을 각색해보고 있었는데 잘 풀리지 않았다. 그 와중에 원래 제가 갖고 있었던 <회오리바람>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중편 규모의 시나리오를 버전 업 시켜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고등학생들의 이야기, 그리고 개인적 체험이 아주 많이 반영된 이야기인데 기본적으로 관심이 있었던 형태의 이야기였다. 수많은 데뷔작들이 감독 스스로의 어린 시절이나 청춘기를 그리는데 그런 영화들을 개인적으로 좋아했다. 작은 규모로 자신의 이야기를 첫 장편으로 만들면 스스로 어떤 면에서 충족이 될 것 같은 생각이 있었다. 사실 <회오리바람>은 처음 생각했던 것 보다는 제법 꼴이 갖추어진 영화로 나온 편이다. 사실 기획을 할 때는 <이웃집 좀비> 감독님들께서 말씀하셨듯이 주어진 조건에서 찍을 수 있는 영화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했다.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계절감 같은 것들을 염두에 두었고, 시나리오와 제작까지 오랫동안 준비를 하는 방식이라기보다는 쓰고 바로 찍을 수 있는 방식으로 만들어보자는 게 최초의 기획이었다.

김성욱
: 신수원 감독님의 <레인보우> 역시 자전적인 요소가 강한데, 동시에 음악이 부분적으로 매개되어있고 영화를 만든다는 자각이 포함되어 있다. 전체적인 장편 극영화로 맞춰나가면서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은데.
신수원(영화감독): 34살에 영상원에 들어갔으니 굉장히 늦게 영화를 시작한 편이고, 그 이후로 충무로 생활을 오랫동안 했다. <레인보우>는 제작방식이 독립영화이긴 하지만 영화 자체는 상업영화 같다는 이야기도 동시에 듣고 있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인 것 같은데 저는 애초에 영화사에서 작가로 영화를 시작했다. 그러다가 시나리오가 투자사에 팔리면서 감독 명함이 두 번 정도 생겼었다. 2006년에 충무로에 붐이 일면서 많은 영화들이 제작될 때 제 영화도 들어가게 될 줄 알았는데 그게 안 되었다. 그 이후에 바로 거의 쓰나미처럼 신인 감독들이 데뷔하기 힘든 상황이 왔는데, 써두었던 고등학생 밴드에 대한 시나리오를 들고 그나마 돈이 있다고 소문이 난 영화사로 갔다. 재미있게 보셔서 일단 계약을 하고 다시 감독으로 준비를 하게 되었는데 그 영화사 역시 상황이 안 좋아졌고 결국 다른 데 가서 그 시나리오로 만들어보겠다고 하고 1년 후에 그곳을 나왔다. 그런데 나와 보니 제가 있었던 영화사는 거의 섬 같은 공간이었다. 다른 영화사들이 줄줄이 문을 닫는 가운데 감독들에게 월급까지 줬다. 그런 상황을 전혀 몰랐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다시 돌아갈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1년 정도 그 시나리오를 혼자 다시 고쳤다. 당시가 막 2009년이 된 시기였는데, 올해 안에 영화를 찍겠다고 스스로 마지노선을 정한 거다. 그렇게 시작했고 작업을 준비하면서는 그냥 자유롭게 열어두었다. 그리고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내 이야기를 써보자는 생각을 했다. 첫 번째 작품을 하면서 생긴 한 가지 원칙은 의미 없이 수정하지는 않겠다는 거다. 앞으로 상업영화를 찍고 싶은 생각도 있고 독립영화를 찍고 싶은 생각도 있지만 어떻게 되든 스스로의 기준이 생긴 것 같다.

김성욱
: 또 다른 음악영화인 <반드시 크게 들을 것>의 백승화 감독은 원래 음악을 하시는 분으로서 음악 다큐작업을 했는데 어떻게 작업을 시작하게 되신 건지.
백승화(영화감독, 뮤지션): 저는 하는 일이 두 개인데 영화랑 음악이다. 취미도 두 개인데 영화랑 음악이다. 그냥 자연스럽게 음악 다큐를 찍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음악을 하니까, 좋아하고 몸담고 있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또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음악 다큐나 음악 영화에 만족하지 못하고 목마른 부분이 있었다. 다 별로 재미가 없었다. 그런 이야기를 한 번쯤 해보고 싶어서 시작한 것 같다. 저는 인터뷰 할 때마다 스스로 근본이 없는 놈이라고 이야기 한다. 영화를 전공한 것도 아니고 음악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좋아서 하는 것들이기 때문에 오히려 크게 부담을 가지고 만들지 않았다. 꼭 개봉을 해서 보여줘야겠다는 생각도 없었고 만들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었다. 음악과 영화가 다른 점이, 음악은 사실 적은 돈으로 혼자서도 할 수 있지만 영화는 큰돈이 드는 작업이다. 누군가 투자를 해주고 그걸로 작업을 하는 경우라면 그냥 즐기는 걸 넘어서서 더 잘할 수 있는 걸 찾아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 경우에는 음악 다큐가 잘할 수 있는 것이었고, 음악 영화도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다음 영화로 음악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 잘할 수 있는 것 먼저 해보려고 준비하고 있다.

김성욱: 신수원 감독님의 표현대로 요즘의 상황은 데뷔 감독들에게 엄청난 쓰나미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이전보다 장편 데뷔를 한다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 상황인데, 결과적으로만 보자면 여기 계신 분들은 그래도 장편 데뷔를 했으니 어떤 의미에서는 선택된 위치에 올랐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사실은 그 자리가 갖는 어려움도 있을테고, 동시에 어떤 제도 안에 들어간 것으로 그것이 작동하는 틀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될 것 같다. 관객들과 만날 때는 또 다른 고민이나 느낌들이 있었을 것 같은데.
장건재: <회오리바람>을 기획하고 민들 때는 이 영화를 시장에 소개하자는 생각이 더 컸다. 그래서 이 영화가 만들어지고 나서 영화제들로 유통되는 것에 대해서는 사실 조금 의아하게 생각했었다. 그래서 프리 프로덕션 때나 시나리오를 쓸 때, 회의 할 때도 손익분기점을 넘긴 비슷한 규모의 영화 몇 편을 롤 모델로 삼고, 그런 영화에 참여했던 분들께 이런 저런 고민을 하며 전략을 짜보았다. 사실 영화제로 너무 유통이 되면 어떤 아트하우스용 영화처럼 비쳐지게 될 것 같았고, 저는 그것을 그리 원하지 않았다. 관객들과 만나고 싶다는 강한 욕망이 있었다. 영화가 완성된 후 이야기를 하자면 마케팅과 배급이 이루어지는 과정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부분이었다. 그래서 독립영화의 장점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던 부분인데, 직접 제작과 연출을 했기 때문에 이 영화가 극장까지 가는 과정을 볼 수 있겠구나, 하는 공부하는 자세가 있었다. 고민스런 부분은 배급이다. 당시에 멀티플렉스들의 상영 시설이 디지털 영사 시스템으로 바뀌는 시기였기 때문에 파일로 배급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배급 비용을 조금 줄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했지만 그렇지도 않더라. 또, 이전에는 독립영화 편수가 지금보다는 적어서 독립영화 전용관 같은 공간에서 관객들과 조금 더 지속적으로 만날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마저도 어렵다. 10개관에서 10명씩 보는 것 보다는 1개관에서 100명의 관객과 만나는 것이 조금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오영두
: 개봉관이 8, 10, 15개관 되더라도 교차상영 시스템 자체의 문제가 심각하다. 저는 이번에도 영화를 하나 찍었는데, 장건재 감독님 말씀대로 단관이나 한두 개 상영관을 쭉 가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교차상영을 하게 되면 특정 시간에 맞춰 특정 극장에 가야 하는데, 그보다는 차라리 어느 극장에 가면 그 영화는 볼 수 있는 것이 훨씬 낫다. 계속 상영해줄 수 있는 환경이 더 필요한 것 같다. 또 지금 상업영화도 그렇지만, 마케팅비의 개념 자체가 과거와 너무 달라졌다. 전에는 사람들이 영화를 찾아서 보지 않았나. 하지만 지금은 길을 걷거나, 집에서 TV를 보거나, 극장에 가면 또 다른 영화들의 광고를 볼 수 있다. 그것 자체가 다 돈인데 그렇게 광고를 뿌리는 영화들이 굉장히 많기 때문에 반대로 그럴 수 없는 영화들은 다 묻히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관객들은 더 이상 영화를 찾아서 봐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되고, 소위 자본의 논리로 조금 더 가게 되는 현상이 생기는 것이다. 그런 상황 자체를 우리가 바꿀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작은 영화들의 꼭 개봉관이 아니어도 100인치, 200인치짜리 스크린을 놓고서라도 지속적으로 상영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본다. 또한 국가의 공적지원이 필요한 것 같다.
박진성: 말씀하신대로 촬영하고 개봉 준비할 때까지는 사실 그것만 목표로 삼고 달려오다가, 막상 <마녀의 관>처럼 전국 2개관 개봉, 전국 관객 수 500명, 이렇게 되면 이게 괜찮은 건가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그런데 제가 고민이 너무 부족했던 것 같다. 지속 가능한 영화 제작이라는 것의 단초가 도대체 뭔지 모르겠다. 나라에서 더 많은 지원을 해줘서 해결이 되는 문제인지조차 사실은 자신이 없다. 정부 지원이 많아지면 어떤 부분에서는 기초가 잘못 되어서 극단적으로는 부패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사실 더 많은 지원이 주어져서 제가 혜택을 보면 좋겠다는 속마음도 있지만, 원칙적으로 생각하면 그게 해답이 될까 하는 의구심이 생긴다.
김기훈: 앞선 감독님들 말씀에 많이 공감했다. 저 혼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역시 다들 비슷한 고민들을 하면서 영화를 시작하고 만들었구나 싶다. 자연스럽게 배급의 문제로 고민들이 귀착되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우리가 감독으로서 포괄적인 전체 시스템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게 버거운 일이기는 하지만, 지금의 선순환 구조로는 지속 가능한 영화 제작이 사실상 힘들 것 같다. 데뷔작을 만들면서 체험적으로 느낀 부분이고, 어떤 것이든 간에 한국영화에 지금 상당한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보다 저예산영화나 독립영화를 배급하는 것이 더욱 어려워지고, 그 영화들 끼리 더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극장개봉에 모든 수익을 의존해야 하는 것 자체에도 문제가 있다. 창작자들의 고민을 대변해줄 어떠한 조합이나 단체도 없다는 것도 문제다. 지금 시스템이 계속 유지된다면 어떤 결단을 해야 할 것 같다. 시스템 안에서 그냥 그런 영화를 만들든지, 자신의 색깔이 확실히 할 수 있는 영화를 시스템 밖에서 만들든지.


백승화: 사실 마케팅과 배급에 그렇게 많은 돈이 드는 줄 몰랐다. 장편 개봉을 하면서 저 역시 처음 그런 방식이나 시스템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그냥 지속적으로 영화를 만드는 것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은데, 먹고 사는 게 지속되어야 한다는 것이 문제일 것 같다. 사실 이런 논의를 한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은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꼭 영화뿐만이 아니라 다른 문제들 역시 쉽게 달라지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고, 예전부터 논의들은 계속 있어왔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다양하게 생각했으면 좋겠다. 저는 다음 작품으로 음악 영화를 하다 보니 투자를 받아야 한다. 그래서 공동체 라디오 같은 곳에서 시나리오로 라디오 드라마를 진행하다가 사람들이 들을만한 것이 되면 투자자나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어떨까 하는 식으로 여러 가지 생각을 해봤다. 만드는 사람 역시 끊임없이 다른 방법들을 고민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성욱
: 데뷔를 하신 분들이니 차기작에 대한 고민이 있을 거다. 지속가능한 제작이 어떻게 가능할지, 끝으로 데뷔 작가로서의 향후 전략이나 차기작에 대한 계획을 듣고 싶다.
오영두: 어차피 지금뿐만이 아니라 영화 시장 안에서 늘 힘들었다. 예나 지금이나, 독립영화나 상업영화나 힘들다. 물론 그 안에서 살아남는 사람이 있고 죽는 사람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단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하고, 끊임없이 꿈틀거리면서 영화를 만들어내는 것이 최선이 아닌가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상업영화로 올라가서 어느 정도 성공을 이루었을 때, 할 수 있는 일들이 있고 바꿀 수 있는 힘이 될 때, 잊지 말고 무언가를 바꿀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도태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저예산에서 시작을 했다가 50억짜리 영화를 찍고 나면 다시 또 60억을 찍으려고 6, 7년 정도를 마냥 기다리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명함만 감독이지 영화를 10년 이상 찍지 않는 감독이 되어버리는 경우도 많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가진 베이스를 잊지 않고, 왜 영화를 시작했는지 잊지 않고, 계속 영화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고 소중하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영화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백승화: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해주신 것 같다. 말씀하신 것처럼 계속 만들면 되는 것 같다. 그냥 자신이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것을 계속 하다보면 어느 순간 자신이 원하는 것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김기훈: 사실 신인감독들이 대부분 시나리오 작업을 굉장히 오래한다. 예전에는 계약을 하고, 진행비를 받으며 진행했지만 이제는 그런 경우가 드물어진 상황이고, 그런 면에서 계속적으로 생존하기 힘든 점이 분명히 있다. 이런 부분은 충분히 제도적으로 개선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영화라는 것이 시스템 안에서 작동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내부의 창작의 의지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 지속적으로 영화를 하려면 배급이나 부가판권, 기타 여러 가지 어떤 방식으로든 저변 확대가 필요한 것 같다.


장건재
: 저는 여전히 저예산 작업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예전에 <낙타들>이라는 영화를 연출하셨던 박기홍 감독님으로부터 들은 조언이 생각난다. 스스로의 영화에 대한 주체로서의 권리를 행사한다는 점, 저작권이나 판권의 문제에 단순히 창작자나 예술가로서의 태도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세일즈를 하는 사람의 마음가짐, 또는 마케터로서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개인적으로는 비전 안에서 자기 시스템을 고민해가면서 일단은 각개격파를 해나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정리: 박예하 시네마테크 관객 에디터)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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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토크] 백승화 감독의 ‘반드시 크게 들을 것’

지난 27일 저녁, 음악 다큐멘터리 <반드시 크게 들을 것>을 상영 후 다큐를 만든 백승화 감독과의 시네토크 시간이 마련되었다. 음악 하는 밴드들에 대한 편견을 깨고 즐기는 모습들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감독의 의도처럼 관객과의 대화도 자유분방하게 진행됐다. 가벼운듯 하면서 진중함이 묻어난 활기 넘쳤던 그 시간의 일부를 전한다.


허남웅(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원래는 다큐멘터리를 찍을 생각이 없으셨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반드시 크게 들을 것>을 만들게 되었는지?
백승화(영화감독, 뮤지션): 특별한 계기는 없었다. 개인적인 작업을 하려던 중에 인천에서 지원을 받아서 인천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찍었어야 했다. 그런데 루비살롱이 인천에 있었고 사장님이랑 친했다. 저희도 거기 소속이었고 해서 음악 다큐를 찍게 됐다. 꼭 개봉을 염두에 두고 작업을 했던 건 아니다. 개인 작업하기 전에 쉬면서 다음 것 준비하자 이런 생각이 컸던 것 같다. 그런데 이게 인디신 얘기이지 않나. 나중에는 사명감 같은 게 생기더라. 처음에는 바람직한 교육적 다큐멘터리도 생각했었는데 루비살롱이 모텔촌에 있고 거기 계신 분들은 그리 좋은 분들이 아니시다. (좌중 웃음) 바람직하신 분들이 별로 없어서, ‘밴드에 초점을 맞추자’로 바뀌었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밴드 다큐멘터리가 됐다.

허남웅: 한국에서 음악 다큐가 몇 작품이 있었는데 아쉬웠던 게 홍대 인디밴드들이 ‘음악을 하면 힘들다’는 점을 부각시킨 게 많았다. 그런데 <반드시 크게 들은 것>은 힘든 것 없이 유희, 즐겁게 사는 삶을 다룬다는 점에서 색다르게 느껴졌다.
백승화: 한국에서 나왔던 다큐멘터리나 음악 영화들이 마음이 안 들었다. 밴드에 대한 이미지가 배고프고 라면 먹고 그렇지만 꿈을 찾아서 가니까 라면 먹고 살아도 된다고 나오는 게 보기 싫었다. 힘든 것도 당연히 맞지만 굳이 힘든 것만 소재로 쓰여야 하나 그런 생각도 들었다. 건강하고 밝은 모습으로 보여주고 싶어서 일부러 과하게 한 것도 사실 좀 있다. 좀 우울한 면도 많은데 영화 내에서는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없어서 얘기를 안 했다.

허남웅:
처음에는 루비살롱에 대한 유익한 내용을 담고 싶다고 하셨는데, 루비살롱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면서 인디밴드들의 삶을 내부인의 시선으로 보여준다는 의미도 있다. 한편으로는 타바코쥬스가 게으른데 게으름에 대한 질책은 아니지만 좀 더 열심히 해보자 이런 여러 가지 의도를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큐멘터리가 갖고 있는 즉흥성 때문에 더 많은 얘기가 나오게 됐는지 아니면 처음부터 그런 의도가 있었는지?
백승화: <반드시 크게 들을 것>을 크게 보면 갤럭시 익스프레스와 타바코쥬스 두 얘기로 나눌 수 있는데 어느 정도는 계산된 것이다. 갤럭시 익스프레스는 어떤 밴드인지 알고 타바코쥬스가 어떤 밴드인지 아니까. 갤럭시 익스프레스는 무대 위에서 가장 멋있는 밴드고 무대 아래에서는 멋있는 게 없다. (웃음) 무대 아래에서의 멋없는 것까지 보여줄 필요 있나 싶어서 무대 위의 모습이나 허세에 가까운 멘트들 위주로 담았다. 또 환상일 수도 있지만 록스타 하면 떠오르는, 무대 위에서 멋있는 모습과 달리 무대 아래에서는 자유분방하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움직이고 어디에 얽매이지 않는 모습이 있지 않나. 거기에 타바코주스가 제격일 거라고 생각했다. 타바코쥬스도 큰 무대에서 공연한 장면이 있지만 굳이 영화에선 안 넣었다. (무대 아래의 모습 위주로 넣다보니) 타바코쥬스의 게으른 모습이 투영이 된 것 같다. 하다보니까 루저 얘기도 하고 여러 가지로 많이 생각하시더라. 갤럭시 익스프레스는 상을 받고 잘 되고. 타바코쥬스가 해체를 했다 말았다 그런 과정들은 사실 말씀하신 다큐멘터리의 즉흥성에 기인해서 나온 얘기라고 할 수 있겠다.

허남웅: 밴드 멤버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궁금하다.
백승화: 집에서 편집할 때 몇 명이 봤다. 특히 타바코쥬스 멤버들이 저게 뭐냐 했었다. 저건 빼달라 이런 식으로. (웃음) 갤럭시 익스프레스는 굳이 빼달라는 말이 없었는데 타바코쥬스는 굳이 저런 모습까지 비춰줘야 하나 하는 반응을 보였다. 특히 기욱이 형은 엄청 부끄러워했다. (웃음) 그런 모습들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보여진다는 게 부끄럽지 않나. 극장이나 영화제에서 상영될 때는 부끄러워하기도 하고 좋아하기도 하고 그랬다. 빼달라고 해서 뺀 장면은 없다. 욕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너무 사람을 망쳐놓는 것 같아서 그것만 뺐다. 원래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닌데 영화 속에서 너무 나쁜 사람처럼 나오는 것 같아서.

허남웅:
그런 점이 내부자이기 때문에 드러낼 수 있는 지점이라고 생각하는데 반면에 내부자이기 때문에 힘들었던 지점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내부자이기 때문에 유리했던 점 또는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가?
백승화: 이 다큐멘터리의 가장 큰 미덕은 같은 멤버로서 촬영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외부에 계신 다른 다큐멘터리 하는 분이셨으면 담지 못했을 장면이나 감정들을 담아낼 수 있었던 게 장점이었다고 생각한다. 단점은 너무 사람들이 저를 무시해서 (웃음) 촬영할 때 찍히는 사람인데 뭔가 해야 할 게 있는데 ‘뭐하는 거냐’ 이런 식으로 촬영 내내 진지하게 말하려는 게 없었다. 카메라 갖다 대면 웃기게만 하고, 농담만 하려고 하고. 그런 것이 좋은 면도 있었지만 단점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나 스스로 열심히 안 하게 되는 것도 없지 않아 있었다. 맨날 술 마시던 사람이 카메라 들고 있다고 달라지는 게 없었다. 제가 다른 분을 찍었다면 열심히 찍었을 것 같은데 이 형들은 찍다보니 게을러졌다고 할까. 카메라 놓고 술 마시기도 해서 놓친 장면도 많고. 스스로 불성실하게 한 점도 많았던 것 같다.

허남웅: 음악다큐를 만들면 외국에서는 음악 자체에만 집중하는데 한국 같은 경우는 이면과 생활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서로 다른 것 같다. 외국 음악 다큐 중에서 인상적으로 본 작품이 있다면 무엇이 있는지?
백승화: <반드시 크게 들을 것> 하면서 제일 많이 참고했던 것은 <이것이 스파이널 탭이다>라는 페이크 다큐였다. 실존하지 않는 가짜 밴드의 투어를 따라다니면서 가짜로 만든 다큐멘터리다. 그것도 재밌게 봤고 롤링 스톤즈의 라이브를 담았던 <샤인 어 라이트>의 공연 장면도 많이 봤다. <애비로드 라이브>라고 BBC에서 라이브로 만든 공연 장면도 많이 봤었다. 음악 영화 같은 경우에는 <24시간 파티 피플>이 기억난다. 다 가짜 다큐멘터리들인데 그런 것들을 좋아했다.

관객1: 연습 장면이 있을 거라는 기대를 했는데 아쉬웠다. 또 뮤지션들이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하는 공연을 치르려면, 그만한 인풋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이 뭘까 이 영화를 보면서 많이 찾았다. 타바코쥬스에겐 그것이 알코올인가 싶기도 했는데 어떤 것이 긍정적인 인풋인가?
백승화: 저희에게 연습하는 것은 일상적이고 특별한 일이 아니다. 연습 장면을 넣는 것이 자연스러울지도 있지만 별로 필요성을 못 느꼈다. 공연으로 대신하는 게 맞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풋은 사이즈가 큰 문제이다. 밴드마다의 문제이기도 하고 인디 신 전체의 문제이기도 하다. 밴드들이 공연할 때 에너지를 내뿜기 위해서는 그 원인이 있을 텐데 밴드마다 다르다. 오기일 수도 있고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일 수도 있고 록 스타가 되고 싶은 욕망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런 게 에너지로 발산되는 것 같다. 인디신 전체의 면에서 관객 분들이 인풋으로 도와주시는 건 관심으로 도와주시는 것밖에 없는 것 같다. 말로 설명하려니 잘 모르겠는데 뮤지션이나 관객이나 서로에게 바라는 것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관객들이 뮤지션한테 원하는 것과 뮤지션이 관객에게 원하는 것이 맞지 않은 게 많다고 생각한다. 공연 안 보시는 분들도 이유가 있을 테고. 그렇다고 뮤지션이 관객들에게 맞춰줄 수는 없지 않나.



관객2: 영화의 주제를 위해서 두 밴드가 비교돼서 편집된 것 같은데 감독님의 실제 의중은 어떠셨는지 궁금하다. 록 음악을 대중들에게 알리고 싶으셨던 건지, 밴드 생활을 알려주고 싶으셨는지?
백승화: 교차편집으로 타바코쥬스와 갤럭시 익스프레스를 보여줬던 것은 비교하려는 생각은 아니었고 갤럭시의 일련의 생활과 공연들, 타바코쥬스의 그런 모습들을 그냥 교차로 나열해서 보여주는 식이었는데 결과가 갤럭시는 상 타고 우리는 해체하고 해서 비교하는 게 생겼다. 일단 비교할 목적은 없었고 처음 다큐멘터리를 할 때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가닥이 잡히면서 이런 방향으로 찍어야겠다는 생각한 것은 있다. 밴드 음악에 대한 선입견들, 밴드 생활에 대한 선입견들이 신파지 않나. 울면서 라면 먹고, 내 꿈을 위해서 라면 먹고 배고프다 그런 것이 싫어서 그런 선입견을 깨고 싶었던 게 있었다. 음악하는 친구들이 좋아하는 다큐였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나중에는 사명감 같은 것이 생기는 바람에 인디신에 뭔가를 해서 도움 줘야겠다는 생각까지 들기도 했고. 밴드 음악이 그렇게 많은 분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재미없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지루하고 어려운 것도 아니라는 걸 보여드리고 싶었던 것 같다. 잘 모르시는 분들한테는 선입견을 깨고 재밌게 다가갈 수 있게 하고 싶었다. 동시에 음악 하는 친구들도 좋아할 만한 걸 만들고 싶었다. 음악영화 나온다고 해서 보면 이상할 때가 많았다. 재미도 없고 왜 찍었는지 모르겠고. 공연 장면을 찍는다고 해도 영화도 아니고 뭔가 이상하게 찍은 것 같고. 다큐 만들려고 했던 건 음악 하는 친구들한테도 보여주고 싶었고 대중들한테도 하고 싶은 말이 있었고 그랬던 것 같다.

관객3: 감독님에게 로큰롤은 무엇인지?
백승화: 로큰롤이 무엇인지 별 생각이 없었는데 개봉 전에 인터뷰를 하거나 GV 같은 것을 하면서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사실 이 영화의 주제이기도 하다. 로큰롤은 장르를 명명하는 의미도 있지만 어떤 장르에서건 뮤지션들은 로크롤이라고 외치곤 한다. 잘 놀자 그런 의미인 것 같다. 서로 잘 놀고 즐기는 것이다. 사람 돈 버는 것도 잘 놀고 잘 먹으려 하는 것 아닌가. 말 붙이기에 따라 다를 수도 있다. 삶이 무엇이냐 이런 것처럼 답은 많이 있지만 정답은 뭔지 모르겠다. (정리: 최용혁 시네마테크 관객 에디터)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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