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상영 후 김곡 감독 시네토크 지상중계

 

지난 8월 10일 존 카펜터의 <괴물> 상영이 있던 날, 국내 최고의 카펜터 팬이라 직접 시네토크를 자청했다던 김곡 감독이 극장을 찾았다. 이날의 시네토크는 그가 존 카펜터에게 바치는 애정만큼, 카펜터와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던 자리였다. 그 이야기의 일부를 여기에 옮긴다.

 

 

김곡(영화감독): 제가 마치 이 영화를 만든 감독처럼 나오는 것 자체가 큰 영광이다. 제가 김성욱 프로그램 디렉터에게 연락하여 ‘우리나라 최고의 카펜터 팬은 나인 것 같다’라고 하면서, 예정되지 않았더라도 꼭 좀 초대해달라고 떼를 써서 나오게 됐다. (웃음) 근데 저는 이 영화를 만든 사람도 아닐뿐더러 이 자리는 GV도 아니고, 솔직히 제가 뭔가 대답해드릴 건 없다. 여러분처럼 한명의 팬으로 와 있을 뿐이다. 개인적인 경험을 말씀드리자면, 제가 존 카펜터를 처음 만난 건 국민학교 3학년 때였다. 당시 취미가 엄마가 외출했을 때 김선 감독이랑 같이 라면 끓여먹으면서 몰래 빌린 비디오를 보는 거였다. 그때도 좋아하던 작가가 몇 명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존 카펜터였다. 기억하기론 <괴물>을 보고 먹고 있던 라면을 반 넘게 남겼던 것 같다. 살이 갈라지고 하는 게 너무 충격이었다. 그런데 이 영화가 제 인생을 이렇게 사로잡을 줄은 몰랐다. 그 이후 저도 모르게 친구들한테 <괴물>이란 영화 봤냐고 묻고 다녔고, 애들이 그게 뭐냐고 하면 꼭 보라고 계속 말하고 다녔다. 그때 같은 시기에 본 영화가 <비디오드롬>(1983)이었다. 그것도 아마 같은 날에, 아니면 이틀간 연달아 봤던 걸로 기억한다. 그때부터 크로넨버그와 카펜터의 팬이 됐다. 국민학교 5학년 때 크로넨버그와 카펜터가 만든 영화를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제 유년시절은 몇 명의 작가에게 사로잡히게 되는데, 그게 존 카펜터, 데이빗 크로넨버그, 브라이언 드 팔마였다. 그중에서도 카펜터의 <괴물>이란 영화는, 그 영화가 아무리 욕을 먹더라도 마음속 깊이 나를 사로잡는, 매순간 나를 따라다니는 영화다. 그런 영화는 당연히 몇 편 안 된다. <괴물>은 그런 영화들 중 한 편이다. 그리고 만약 내가 도둑이 될 수 있다면 세상에서 훔치고 싶은 단 하나의 네거티브 필름은 <괴물>이다. 저한테는 우상 같은 영화고, 거의 종교나 다름없다. (웃음)

 

 

존 카펜터 감독은 UCLA 영화학교 출신이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각본가로도 활동했고, <다크 스타>(1974)라는 황당무계한 영화를 첫 번째 장편으로 만들었다. 이후 1978년 <할로윈>이라는 영화로 전 세계를 강타한다. <할로윈>은 촬영을 2주 만에 끝낼 정도로 빠른 속도로 찍은 영화다. <할로윈> 다음에는 <안개>(1980), <이스케이프 프롬 뉴욕>(1981) 등의 작품이 있다. 존 카펜터는 공포영화 전문작가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렇진 않다. 카펜터가 가장 존경하는 작가는 하워드 혹스다. 그리고 하워드 혹스가 제작하고 공동감독으로 이름을 올린 1951년도의 <괴물>이 있다.

혹스와 카펜터의 <괴물>은 존 캠벨의 <Who Goes There>이라는 단편 소설이 원작이다. 50년대 매카시즘 열풍 때문에 이런 소설들이 무더기로 나오기 시작한다. 혹스는 이 소설을 각색하여 영화를 만든 것이다. 카펜터는 혹스의 <괴물> 팬이었는데, 시나리오를 받고 고민을 했다. 혹스의 영화처럼 그대로 만들면 안 되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혹스의 <괴물>은 카펜터의 <괴물>과는 달리 믿음의 분기에 대한 성찰이 이분법적이었다. 외계인이 한명 떨어지는데, 그 외계인은 우리의 과학적인 발견이니까 보호해야 한다는 과학자 측, 그래도 죽여야 한다는 군인 측, 양자의 구도로 나뉜다. 전형적인 좀비적 구도다. 재밌는 건 혹스의 <괴물>은 괴물에 대한 연출이 굉장히 클래시컬하다는 점이다. 키 큰 거인처럼 묘사되는 게 전부다. 하워드 혹스와 크리스찬 니비는 공포물을 만들기보단 폐쇄 공간 드라마를 만들 생각이었던 것 같다. 카펜터의 <괴물>과 혹스의 <괴물>은 크리쳐에 대해서도 많이 다르다. 혹스의 영화는 아마 돈 시겔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것 같다. 혹스의 영화에선 크리쳐가 수동적인 식물로 묘사된다. 그리고 복제라는 개념이 없었다. 피를 빨리면 그냥 죽어버린다. 근데 존 카펜터는 많은 해석을 가해서 공기감염을 접촉감염으로 바꾸고, 식물에는 없는 흡수의 내장을 만들었다. 정리하자면, 혹스의 <괴물>을 원작으로 봤을 때 카펜터의 <괴물>에서는 인물들의 내분이 여러 갈래로 붕괴되고, 흡수, 동화, 피와 내장의 개념이 들어온다. 즉 카펜터는 인간의 분열에 더 집중하고, 인간의 분열을 가속시키는 복제 개념을 들여와 진정한 전염병을 만든 것이다.

 

이 영화에서 제가 가장 사랑하는 느낌은 눈에서 온다. 하얀색의 가장 차가운 눈, 우리의 시야를 불투명하게 가리고 모든 걸 희미하게 만드는 설원, 그곳에서 고립된 사람들. 이걸 제일 좋아한다. 그리고 가장 차가운 것 속에 가장 뜨거운 것이 있다. 대표적인 장면이 노르웨이 캠프에서 피가 얼어붙은 장면이다. 가장 뜨거운 것이 동결되는 순간, 그리고 그것이 녹는 순간, 그때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차가움이 인간의 불신을 이끌고 뜨거움이 괴물의 모방을 이끈다. <다크 스타>부터 최근작까지 카펜터의 영화는 항상 내부와 외부의 구도로 진행된다. 혹스의 영화에서 보는 것 같은 구도다. 내부에 갇혀있는 사람들이 있고 외부에서 무언가가 침입하는데, 둘 사이에 직접적인 접촉이 없어도 내부에서 뭔가 교란이 일어난다. 마치 뚜껑을 열지 않아도 냄비 안의 물은 흔들리는 것과 같다. 이것은 내부와 외부의 상호작용은 아니다. 밖에서 안으로 세균이 침투해오고 잔상이 남지만, 그것을 어떻게 추적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항체들이 서로를 파괴한다. 자가전염, 자가면역증세 같은 게 일어나는 것이다. 이건 매카시즘 열풍에 저항했던 많은 공포영화 작가들이 선호했던 구도이기도 하다. 여기선 심지어 밖에 뭐가 있는지조차도 몰라야 자가면역이 세진다. 항원 식별이 안 되니까 항체끼리 스스로 파괴하는 것이다. 맥크래디, 클라크, 차일즈의 삼파전에서 괴물은 그저 보조를 맞출 뿐, 직접적 원인은 아니다. 직접적인 원인은 인간의 불신이다. 존 카펜터는 까이에 뒤 시네마와의 인터뷰에서 이 영화는 에이즈나 바이러스에 대한 영화가 아니라 바이러스를 목전에 둔 인간성에 대한 영화라고 이야기했다. 자기가 진짜로 이 영화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건 ‘문제는 어디 있는가’, 즉 문제가 무엇인지가 아니라 문제가 어디 있는지를 못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대표적인 게 클라크 같은 경우인데, 클라크는 사람보다 개를 좋아하는, 따뜻하면서도 한편으론 적대적인 캐릭터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클라크는 사람이었고, 맥크래디는 살인자가 된 것이다. 하지만 자가면역에 빠진 면역계이기 때문에 법은 무너지고, 살인도 무색한 상황이다. 또한 차일즈라는 캐릭터도 재밌다. 맥크래디와 대립을 이루면서 끝내 살아남는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도 너무 좋다. 혹스의 원작 영화는 신나게 끝나는 반면, 존 카펜터는 우수에 찬 엔딩으로 끝난다. 이 영화의 마지막 대사는 이렇다. “조금만 기다려보자. 뭔 일이 일어나는지 보게.”

 

카펜터는 몽타주를 두 가지 종류로 구분한다. 하나는 빠르게 가면서 뿜어내는 소비에트 몽타주고, 또 하나는 어둠속으로 묻히게 하고 서스펜스를 주는 독일 표현주의 몽타주다. 그리고 자기가 <할로윈>에서 썼던 것은 독일 표현주의 몽타주라고 한다. <할로윈>은 존 카펜터를 전 세계에 알린 영환데, 살인이 일어나는 장면은 여타 지알로 필름과 비슷하다. 슬래셔 필름과 그다지 다를 바도 없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정말로 무서웠던 건 아무것도 안 일어나는 카메라였다. <할로윈> 같은 영화에서도 잘 드러나듯이, 카펜터는 진짜 공포의 성질은 단지 피가 많거나 잔인한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는 작가는 정말 별로다. 우리가 공포영화 거장이라고 생각하는 감독 중에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없다. 다들 심오한 피의 철학, 본다는 것과 안 본다는 것, 외부와 내부에 대한 철저한 존재론을 갖고 작업한다. 마리오 바바, 다리오 아르젠토, 존 카펜터 등의 작가들에게서 강력하게 나타나는 시간관이 있는데, 카펜터의 경우는 안 보인다는 것이다. <할로윈>의 마이어스가 딱 좋은 옌데, 안 보인다는 게 단지 어두워서 안 보인다는 게 아니다. 안 보이는 건 보이는 모든 것이기 때문에 안 보이는 것이다.

 

 

<할로윈> 바로 다음 작품 <안개>에서는 불투명한 안개가 나오는데, 거기에다가 존 카펜터가 추가했던 건 안개가 빛이 난다는 거였다. 안개는 너무 잘 보여서, 눈이 부셔서 안 보인다. 가장 불투명한 것이 뭔가를 숨기고 있지만 사실은 숨기고 있지 않은 거다. 왜냐면 그 자체로 발광하기 때문이다. 안개는 그 자체로 너무나 빛이 나고, 우리는 그 빛을 따라가야 악의 실체를 알게 된다. 이 관념이 카펜터의 후기작을 점령하는데, 영화의 가장 근본적인 속성인 ‘빛’에 악마가 숨어 다니게 된다. 존 카펜터의 인터뷰에 의하면, 인간에게 가장 크게 운명 지워진 건 우리는 우리의 신체 안에 갇혔다는 것이며, 그리고 진짜 악마는 어둠이 아니라 빛에 갇혔다고 하는 것이다. 괴물의 주제도 우리 시선 속에 있는 악마를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괴물은 우리 바깥에 있지 않다. 내가 저 괴물을 쳐다보는 순간 내 시선은 감염된 것이다. 어둡다고 생각한 것은 우리 시선 안쪽에 있다. 만약 이런 표현을 써도 된다면, 저는 이 개념을 ‘투명하다’, 이렇게 말하고 싶다. 투명하다는 건 안 보이지만 너무나 잘 보이기 때문에 안 보이는 것이다. 82년도는 카펜터에게 악몽 같은 해로, 관객도 비평가도 모두 <괴물>에 등을 돌린다. 이후 카펜터는 몇 년을 방황하고, 그 사이에 빛 속에 있는 악마를 표현하는 좋은 영화들이 나오게 된다. <프린스 오브 다크니스>(1987), <매드니스>(1994) 등이 그렇다.

 

존 카펜터는 다른 공포영화 작가들과 달리 피에 별 관심이 없었다. ‘우리가 사물을 어떻게 보는가, 그리고 우리 자신을 어떻게 인식하는가’라는 지각의 차원을 깊이 고민했던 작가가 존 카펜터다. <다크 스타> 때부터 그런 것 같다. 오히려 마리오 바바 같은 작가들이 피에 정말로 관심이 많았다. 두 감독의 피의 사용 방식을 비교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카펜터는 <괴물>에서 피를 단지 테스트의 용도로만 들여온다. 제작자 래리 프랑코와 존 카펜터가 프리프로덕션 단계에서 가장 공들였던 것이 피 혈청 테스트 장면이다. 반드시 잘 찍어야 한다고 굳게 다짐하고 들어갔던 장면이고, 혹스의 원작엔 없는 장면이다. 공포 영화에선 정말 드문 장면이기도 하고, 카펜터가 피를 쓰는 방식을 잘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생각이란 주제에 대해서 말하고 싶다. 카펜터를 사랑하는 비평가들도 버린 <저주받은 도시>(1995)라는 영화가 있다. 어느 날 시간이 정지하고 마을의 여성들이 동시에 임신하는데 태어난 애들이 다 외계인이다. 이 외계인들은 사람들의 생각을 조종한다. <화성인 지구 정복>(1988)에서도 외계인이 우리 생각을 조종한다. <투명인간의 사랑>(1992) 같은 경우도, 나의 존재를 정의하는 나의 생각이 투명해질 때 느껴지는 공포가 있다. 카펜터는 한 축으론 전염에 대해 다루지만 다룬 한 축으론 생각에 대해 다룬다. ‘내가 생각하는 나의 뇌란 무엇인가’라는 주제가 카펜터의 필모그래피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정리: 송은경(관객 에디터) | 사진: 김윤슬(자원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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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시네바캉스 서울’ 영화제가 시작된 첫 주 주말이었던 지난 7월 29일 오후, 존 카펜터의 <괴물> 상영에 이어 변영주, 이해영 두 영화감독이 진행자로 나선 세 번째 오픈토크가 열렸다. 이번 토크의 주제는 ‘우리 시대의 불안과 공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고 초대손님으로는 공포영화에 대한 식견이 풍부한 허지웅 영화평론가와 <습지생태보고서> 등의 작품으로 잘 알려진 만화가 최규석 작가가 함께했다. 그 날의 이야기를 일부 옮긴다.

 

 

변영주(영화감독): 오늘 이 자리는 구성이 재밌다. 공포영화 전문가 허지웅 평론가와 현재 공포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 이해영 감독, 그리고 공포영화를 잘 안 보고, 안 좋아하는 최규석 작가와 제가 함께 하게 됐다. (웃음) 최규석 작가님은 <괴물>을 어떻게 보셨는지.

최규석(만화가): 재밌게 봤다. 외계인 얘기는 왜 나오며 괴물들의 목적은 대체 뭔지, 안 풀리는 떡밥들이 너무 많아서 헷갈리긴 했다.

허지웅(영화평론가): 공포영화는 늘 그 시대의 가장 무서운 것들을 끌어온다. 존 카펜터의 <괴물>(1981) 이전에 하워드 혹스의 <괴물>(1951)이 한 편 더 있다. 이 두 영화는 둘 다 존 캠벨의 「거기 누구냐?」는 중편소설이 원작이다. 하워드 혹스의 영화가 다루는 것이 외부로부터 온 우리와 다른 것, 당시로서는 공산주의, 즉 레드 콤플렉스에 대한 메타포였다면, 존 카펜터의 영화는 우리 사이에 언젠가부터 같이 존재해왔지만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어떤 다른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피아를 식별할 수 없다는 것에서 오는 공포라고 할 수 있다.

이해영(영화감독):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그냥 좋아하는 게 아니라 존경한다. 초반에 괴물이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어떤 미지의 것에 대한 공포와 긴장감을 구현하는 데에 있어서 교과서적인 연출을 보여준다.

변영주: 이 영화에서 신기했던 건, 보통의 신체강탈자가 굉장히 공격적인 반면 이 영화에서의 변이된 사람들은 그렇지가 않다는 점이었다. 그들은 시치미를 떼거나, 자신들도 전혀 모르고 있다.

허지웅: 캠벨의 원작 소설에서 인물은 외계인에게 자기 몸을 뺏기고 나면, 자신이 외계인인지 아닌지를 알 수 없다. 그래서 내가 인간일지, 그렇다면 내가 스스로 인간임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이 무엇인가를 질문한다.

 

 

이해영: 최규석 작가님은 공포영화를 별로 안 좋아한다고 하셨다. 이런 식의 신체강탈에 관한 이야기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다.

최규석: 어렸을 때는 필립 K. 딕 소설 처럼, 과거 S.F.소설들에서 자기 정체성의 고민에 대한 이야기에 많이 공감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현실이 아닌 요소에 대해선 흥미를 느끼지는 못하게 되었다. 그리고 사실 영화를 보면서 놀래지 않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이 공포영화를 볼 때 느끼는 감정의 기복보다 훨씬 더 담담하게 본다.

이해영: 워낙 작가님의 만화가 현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이런 종류의 영화들은 작가님의 작품 성향과는 정반대에 있는 것일 수 있겠다.

최규석: 오히려 침입으로 인한 공포 같은 것 보다, 굉장히 작은 실수로 인해서 편하게 살고 있던 자신의 인생이 꼬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그런 것이 제겐 가장 큰 공포인 것 같다.

허지웅: 개인적으로 끔찍한 장면이 아니라, 어떤 상황이나 대사에서 공포를 느낄 때가 많다. <신체강탈자의 침입>(1956)에서 주인공이 마지막에 ‘그들이 여기에 있다’고 끊임없이 외치는 장면이 있다. 갑자기 화면을 향해 달려오면서 관객을 바라보며 소리 지르기 시작하는데, 너무 소름끼쳤다. 약간 초현실적인 느낌이었다.

 

 

변영주: 저는 타임슬립이 무섭다. 내가 가고 싶은 시대로 가면 상관없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는 공포다.

이해영: 요즘 유독 타임슬립에 관한 이야기가 많다. 지금 복고라는 코드가 여전히 효력을 발휘하고 있는데, 이 시대에 소외 받거나 결핍되었다고 느끼는 것을 과거의 낭만이나 추억으로 보상받고 싶어 하는 심리가 있는 것 같다.

허지웅: 원래 사람들이 불행하면 과거를 끄집어낸다. 반면 행복하면 미래에 대해 생각하고, 우리가 닿을 수 없는 공간, 우주 같은 곳에 가보자는 프런티어 정신으로 가는 경향이 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요즘 한국 사회는 굉장히 불행한 것 같다.

이해영: 타임슬립이라는 코드는 굉장히 슬픈 것이다. 현재를 해결할 방법이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허지웅: 70년대 후반 이전까지는 영화에서 괴물이 카리스마를 가진 독자적이고, 개별적인 존재였다. 그런데 70년대 후반 갑자기 좀비라는, 군중으로서의 괴물, 무리로서의 괴물이 나타났다. 그게 한 때의 유행으로 끝나지 않고, 여러 텍스트 속에서 변형되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는 부분이 의미심장하다. 사실 어느 사회든 괴물은 소수이기 때문에 지탄을 받게 된다. 그런데 만약에 괴물이, 좀비가 절대다수가 되고 나 혼자 사람으로 남게 된다면, 객관적인 입장에서 볼 때 누가 괴물일까. 이번 상영작 중 하나인 <지상 최후의 사나이>라는 영화는 그런 이야기를 담고 있다.

최규석: 카리스마적인 괴물이라고 한다면 위에서 군림하는 권력 혹은 외부의 적일 수 있는데, 이후에 누가 괴물인지 알 수 없게 되는 상황은 그만큼 민중들 사이에서의 신뢰 관계가 깨어졌기 때문에 우리가 뭔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주체가 아니라는 불신이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허지웅: <괴물>에서 피아식별이 안 되는 것에서 오는 공포도 그렇고, 그런 것들을 계속해서 더 많이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사실 우리는 주변에 적, 또는 적은 아니더라도 나와 생각이 너무 많이 다른 사람들과 뒤섞여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런 사람들이 느슨한 계율에 의해서, 이를테면 같은 정당이라는 이름으로 묶여버리고 그러다 이제 와서 어떤 식의 커밍아웃에 의해 굉장히 큰 분쟁을 만들어내게 된다.

최규석: 그런 것 보다는 좀 더 근본적인 형태의 공포인 것 같다. 어떤 지역사회에서 사람들이 모두 연결되어 있을 때가 아닌, 도시에 나와서 따로따로 살게 되면서 갖는 타인에 대한 근본적인 공포가 생겨난 것이다. 예전에는 우리는 같은 사람이라는 식의, 집단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가 존재했었는데, 그런 신뢰 자체가 깨져버린 상황이 아닐까.

 

 

허지웅: 그런데 그런 신뢰라는 것이 존재한 적이 있었을까.

변영주: 그런 신뢰라는 것은 없었다고 생각된다. 영화로 보면 <마더>가 굉장히 상징적으로 느껴진다. 공동체, 관계, 신뢰, 혈연이라는 것들이 폭력적인 것이고, 원시적이고 괴물 같은 것, 무서운 것을 야기한다는 것을 보여줬던 것 같다.

허지웅: 갈수록 공동체의 가치에 대한 신념을 현실에서 찾을 수 없기 때문에 계속해서 이야기 속에서 찾고 있다고 생각된다. 사실 <다크 나이트> 3부작 같은 경우도 내내 공동체에 대한 우려에서 출발해, 매번 어떤 신념이 깨어졌을 때 다른 신념으로 대체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그래서 좀비영화 같은 경우 급진적인 대안으로서의 공포물을 제시한 것이 아닐까 싶다.

 

허지웅: 이 영화의 특수효과는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하다. 이때까지만 해도 아날로그 특수효과를 사용했다. 얼마 전에 나온 <괴물>의 프리퀄 영화에서는 괴물을 CG로 처리했는데, 정말 너무 안 무서웠다.

이해영: 영화에서 시각효과의 날이 무뎌지기 시작한 건 영화인들이 CG가 만능이라고 믿기 시작했을 때부터였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의 시각효과는 실제로 어떤 물건을 만들어 놓고 찍은 것이기 때문에 가상의 그래픽이 절대 대체할 수 없다.

최혁규: 특수효과 보다도 디자인이 정말 훌륭한 것 같다.

허지웅: 특수효과와 디자인을 모두 롭 보틴이 담당했다. 상대적으로 이름은 덜 알려져 있지만, <로보캅>이나 <세븐>, <파이트 클럽> 등의 영화를 했었다. 훌륭한 장인이다.

최규석: 특히 개가 갈라지는 장면은 정말 인상 깊었다. (웃음) 보통 괴물이라고 하면, 원래 존재하는 생물의 디자인을 변형하거나 결합하는 형태로 만들게 되는데, 이 영화에서는 우리가 알고 있던 맥락과 전혀 다른 형태가 나온다. 창조적이다.

 

관객1: 이런 장르의 영화들에 대해 아는 바가 많지 않다. 혹시 추천하는 공포영화가 있나.

허지웅: 가장 좋은 건, 영화의 원작들을 찾아보면서 비교해보는 방식이다. 만약 오늘 존 카펜터의 <괴물>을 보셨다면, 하워드 혹스의 이전 작품을 찾아보시고, 두 영화의 원작 소설을 같이 찾아본다면 정말 재밌다. <신체강탈자의 침입>의 경우, 50년대 돈 시겔 감독과 70년대 필립 카우프만 감독의 버전이 있고, 최근에는 다니엘 크레이그와 니콜 키드먼이 출연한 <인베이젼>이 있다. 원작 소설인 잭 피니의 『바디 스내쳐』도 번역이 되어 나와 있다.

 

관객2: 최근 공포 영화의 경향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

변영주: 미야베 미유키의 신작 소설에서 주인공 여자아이는 원한을 가진 영혼이 누군가에게 들려져 있는 상태를 해결하는데, 그녀에게 어떤 힘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녀가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기 때문이다. 그 점이 굉장히 흥미로웠다. 일본사회는 이제 공포를 느끼는 것이 아니라 듣기 시작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하나는, 최근에 영미권 장르작가들의 단편을 모아 펴낸 책을 읽었는데, 종말을 묘사하는 방식이 특징적이다. 이전과 같은 거시적인 방식이 아니라 아주 내밀하고 사적인 방식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정리: 장지혜(관객 에디터) 사진: 황초희(자원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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