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이 암전되고 영화가 시작되는 순간 나는 온전한 긴장감으로 충만해지는데, 이 긴장감은 영화 속 인물들의 대사 하나하나를 다 기억하겠다는 나의 우스운 강박에서 비롯되었다. 때문에 영화를 보는 동안 어떤 순간에 와 닿는 대사들을 내내 상기하거나 어딘가에 적어두지 않으면 곧 잊어버릴 것만 같은 불안감에 시달리기도 하고, 그 순간의 강렬함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해 이어지는 화면을 아깝게 허비해 버리기도 한다. 대사의 개별성에 집착하게 된 이러한 습관 탓에 언제부턴가 나는 아주 미시적인 감상자가 되어버렸는데, 영화가 끝나고 나면 전체를 가늠하는 일에는 완전히 실패한 채 그 순간순간의 대사로 영화를 기억하고 마는 것이다. 그런 대사를 만나면 고유한 시간이나 기다림이 보인다고 해야 할까. 한두 줄에 농축된 타인의 삶을 내 것으로 온전히 편입시키고자 하는 이 욕망은, 내가 결코 입 밖으로 내어보지 못했던 말에 대한 눈물 나는 체험인 것이다.


지난 여름,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단 한 번 상영되었던 장 뤽 고다르의 신작 <필름 소셜리즘>은 나의 그러한 집착이 극에 달했던 영화였다.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이미 한 차례 놓쳤던 탓에 아쉬움이 있는데다, 언제 다시 개봉할지도 모르는 상황이기에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볼 수 있는 모처럼의 기회였다. 파편처럼 내던져지던 인물들의 대사와 자막은 몰이해를 위한 거대한 몽타주처럼 느껴질 정도였는데, 그럼에도 모든 자막을 죄다 받아 적고 싶을 만큼 좋아했던 영화였다. 영화가 끝난 직후 부정확한 기억을 되살려 메모지에 대사를 옮겨 적고, 집으로 돌아가서는 겨우 구한 영어자막으로 의미를 조합하며 장면들의 기괴함을 헤아리는 일에 열중했다. “이해란 어려운 것이에요”, “사느냐 죽느냐, 말하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확실히 be동사에는 현실이 없어요”, “뭔가를 쓰는 것을 배우기 전에 뭔가를 보는 것을 배워요”, “개인은 둘이 되길 원하고 국가는 독존을 원하죠” 등등. 이렇게 공들여 기억한 대사는 그 말이 쓰인 장면을 각별하게 보존시켜주는 최초의 매개로 남는다.


이러한 습관은 안일한 마음으로 영화 보는 것을 방지해주기도 하고, 또 영화를 여러 측면으로 기억하게 하는 수단으로 유용하게 활용될 때도 있다. 그러나 내가 아직도 이런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여전히 미시적인 방법으로 모든 영화를 대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 있게 부릴 수 없는 언어에 대한 패배감, 깊이 있는 경험의 부재에서 오는 동경 같은 것이 이상한 집착으로 발현되었다고 믿는다. 그럼에도 아직은, 무딘 생활을 견디는 가장 의미 있는 방법 중 하나로 내가 택한 영화의 체험이 이러한 끝도 없는 긴장의 연속이라는 게 좋다. 예고 없이 잘도 등장하는 대사나 문장의 강력함에 어쩌지도 못하고 다시 휩쓸리게 되더라도 말이다. 아주 오랜 시간을 돌아오는 영화들을 만나는 일, 그리고 그 영화들에 가장 아름답게 패배하는 일을 나는 바로 이곳 시네마테크에서 반복하고 있다.


글: 장미경(관객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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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hoimyeon 2012.02.08 15: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필름 소셜리즘>과 <카르멘이란 이름> 모두 두 차례씩 감상하며 나중엔 화면에 눈을 고정시킨 채 손등 위에 펜으로 메모하는 지경에 이르렀었다죠. 그 중 하나로 필름 소셜리즘에서 인상 깊었던 대사, "주름 잡힌 감상이 아니라 이상향이 우주를 잊게 하는 미소가 있어요". 어디서 텍스트로 읽는 고다르 영화 대본집같은 거 없으려나요..

자원 활동가 최미연 양(24)

작년 ‘시네바캉스’ 때부터 자원활동가로서 서울아트시네마의 여러 일들을 도맡고 있는 최미연(24)양을 만났다. 극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기대되고, 앞으로 보게 될 영화들이 기대된다는 최미연양은 요즘 날마다 극장에서 ‘논다’. 매일 이 공간에 놓일 수 있다는 게 너무 좋고, 운이 좋다고 말하는 최미연양의 시네마테크 이야기를 옮긴다.


어떻게 서울아트시네마를 알게 되었나?
2007년, 고3일 때, 친하게 지낸 언니에게 과외를 받았다. 언니를 따라 처음 서울아트시네마에 와서 영화를 봤다. 처음으로 혼자 영화를 보러왔던 건, 영화과에 진학하고 나서였다. 고다르 특별전을 봤는데, 그 때만 해도 고다르에 대해 잘 몰랐고, 영화를 보면서 거의 다 졸았는데, 그 졸았던 기억마저도 좋았다. 세상에 이런 영화도 있구나, 만약 영화의 화법이 이렇게 다양해 질 수 있다면 영화라는 것이 더 흥미진진한 것일 될 수 있겠구나 싶었다. 당시엔 고다르의 영화를 이해했다기보다 내게 어떤 관문을 열어주었던 거 같다.

고등학교 때는 어땠나?
청소년 관련 단체에서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입시에 대해 토론하는 모임도 하고, 청소년 언론에서 취재 영상을 찍기도 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집에 있는 걸 좋아했는데, 밖에서 활동하면서 대외적으로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를 통해 이야기 듣는 것에 매혹을 느꼈다. 진학을 결심하게 된 건 고3 때였다. 원래 엄마가 영화를 좋아하셔서 어릴 때부터 영화를 봤었지만 막상 영화과로 진학하겠다는 뚜렷한 생각은 없었다. 뭘 해야 하나 싶었는데, 한참 독서실에서 지낼 때 엄마가 생일 선물로 <씨네21> 정기구독을 해주셨다. 지금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형광펜으로 밑줄까지 그으면서 열심히 찾아봤었다. 내겐 영혼의 양식 같은 것이었다.

자원활동을 하게 된 계기는?
그 전에도 계속 마음이 있긴 했는데, 자원활동가라는 걸 빌미로 극장에 더 붙어있고 싶어졌다. 지난 해 ‘시네바캉스’ 때부터 자원활동을 시작했다. 그 전에는 서울아트시네마나 영상자료원 같은 극장들을 번갈아가며 다녔는데 이제는 정착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웃음) 친구들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작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 <북극의 제왕>을 보고나서 오승욱 감독님의 시네토크가 너무 재미있었다. 만일 시네마테크 전용관이 있다면 그 안에서 이렇게 밤새 영화 얘기할 수 있을 텐데 싶었다. 그러면서 전용관에 대해서 굉장히 절실해졌었다. 그렇다면 내가 뭘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되면서 관객회원도 가입하고, 자원활동도 결심하게 되었다. 시네마테크란 곳은 내겐 놀이터다. 밤새 있어도 지루하지 않을 것 같고, 만나는 사람들도 너무 기다려지고, 늘 같은 스크린이지만 다음엔 어떤 사건이 벌어질까 기다려진다. 어렸을 때 처음 영화를 봤던 극장인 중앙시네마가 폐관하는 것을 보면서, ‘여기만은 지켜야 한다’는 절실함이 더해졌다.

지금 지원활동가로서 하고 있는 일들은?
매주 토요일 수표대를 지키고 있고, 시네토크의 촬영과 편집을 하고 있다.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개막식을 앞두고는 ‘친구들’의 인터뷰 촬영 등 하이라이트 영상작업을 했다. 포지션이 있다고는 하지만 극장에 가면 항상 있는 사람이라는 게 너무 좋다. 친구들에게도 극장에 상주하고 있으니 놀러오라고 얘기한다.

자원활동을 하면서 힘든 점은 없는지?
좀 더 많은 인력들이 보충되었으면 하는데, 막상 힘든 건 잘 모르고 지낸다. 좋고, 재밌고, 하고 싶은 걸 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게 내가 아끼는 공간을 지키고 보듬을 수 있는 나만의 방법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이 때 아니면 못할 것 같다는 절실함이 있다. 지금 할 수 있는 걸 하자고 생각한다. 영화를 보는 것도 같은 맥락인 것 같다. 시네마테크의 특성상 지금 아니면 보기 힘든 영화들이 너무 많으니까.

앞으로의 계획은?
그때그때 충실하자는 주의이다. 일단 영화 옆에 붙어있고 싶다. 지난 3년 동안 내가 영화를 공부하고, 영화를 찍고 있다는 게 실감이 잘 나지 않았다. 내가 하고 있고 꿈꾸고 있는 것에 대해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영화를 보고 영화에 대해 얘기하거나, 글을 쓰거나 좀 더 구체적인 행동으로 옮기고 싶다. 학교를 졸업하고 난 뒤에 대해서는, 불안보다는 내가 온전히 만드는 시간들이 기대되고 재밌을 것 같다. 전에는 물에 손을 대고 따뜻하네, 차갑네 하는 정도였다면 이제는 좀 더 헤엄도 쳐보고 싶다.

인터뷰∙글|장지혜 관객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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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은 카르멘의 전성시대였다. 프란체스코 로지, 카를로스 사우라, 피터 브룩이 마치 경연이라도 하듯이 카르멘을 영화로 만들었던 것은 당시 비제의 오페라가 저작권 소멸상태가 됐기 때문이었다. 고다르 또한 작업에 착수했다. 다른 작가들과 달리 그는 비제의 오페라를 느슨하게 차용만 했을 뿐 그 유명한 음악을 쓸 생각이 없었다. 오토 프레민저의 <카르멘 존스>(1954)처럼 이야기를 현대로 옮겨왔고, 처음엔 이자벨 아자니를 주인공으로 염두에 두었다. 아자니의 바쁜 일정 탓에 당시 신인이었던 마루츠카 데트메르스가 최종적으로 카르멘 역에 캐스팅되었다(그녀는 국내에는 <한나의 전쟁>(1989)으로 잘 알려진 배우다). 고다르의 계획은 급진적이었다. 그는 음악을 따라가는 이야기, 혹은 음악이 이야기의 전체가 되는 영화를 구상했다. 카르멘은 음악 없이 존재할 수 없고, 음악이 카르멘의 역사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비제의 음악을 대신한 것은 엉뚱하게도 베토벤의 현악 4중주곡이다. 고다르는 비제의 음악이 바다와 밀접하게 연결된 지중해의 음악이라 여겼고, 자신에게는 그 바다가 브르타뉴의 해변에서 들었던 베토벤의 현악 4중주와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결합은 작위적인 것처럼 보일수도 있겠지만, 사실 1980년대 고다르의 성과중의 하나는 독창적인 사운드 몽타주를 고안하는 것이었다. 다이얼로그, 모놀로그, 음악, 효과음, 소음 등의 여러 가지 소리들을 과격하게 콜라주하는 것인데, 이는 나중에 <영화사>(1998)라는 작품에서 사운드의 거대한 리믹스 실험으로 만개한다.


이 영화는 사실상 내러티브나 주제와는 하등의 상관없는 서로 다른 두 가지 사건과 두 공간이 밧줄의 매듭처럼 연결되어 있다. 그 하나가 이야기의 층위를 그나마 가늠할 수 있는 카르멘을 둘러싼 이야기이다. 다른 하나는 음악가들이 베토벤 현악 4중주곡을 연주하는 장면들인데, 사실 연주장소가 어디인지 조차 알 수 없다. 게다가 베토벤의 음악은 거의 맥락 없이 몇 번이나 흘러나오다 끊어지는 것을 반복한다. 소리의 페이드인과 페이드아웃은 이미지와 불협화음을 만들고 오페라의 음악과 달리 이러한 음악은 극적인 상황과 필연적인 연결점이 없다. 인물과 그들의 상황을 설명해주는 역할도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은행 강도 장면에서 알 수 있듯이 음악의 진행과 강탈 시퀀스 간에는 기묘한 결합의 원리가 숨어있다(고다르는 배우의 연기지도를 하면서 언제나 ‘음악을 들으면 당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 것이다’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그 외에도 이 영화에는 다양한 소리들, 특히 타이프를 치는 소리, 인간의 몸이 사물에 부딪혀 발생하는 소리, 다양한 소음들이 음악 이상의 빈도로 영화에 출몰한다. ‘이것은 정당한 이미지가 아니다, 단지 이미지일 뿐이다’라 말하는 고다르에게 소리의 레벨에도 서열은 없고 중요한 취급을 받아야만 하는 중심 소리란 없다. 모든 소리는 이미지와 더불어 동등한 권리로 작품 내부에 삽입되어야만 한다. 게다가 이러한 소리들은 불협화음이나 변박자로 하모니와 리듬이 깨져 있는데, 그런 점에서 이미지와 소리의 배치의 중심은 비어 있다. 이는 영화의 제목이 상기시키듯이 ‘이름 이전에 무엇이 존재 하는가’라는 고다르의 질문과도 연결된다. 이름이 주어지기 전의 사물의 모습, 혹은 카르멘이라는 여성의 위대한 신화가 주어지기 전에 여자와 남자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를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 영화의 마지막 대사는 장 지로두의 ‘일렉트라’에서 빌려온 말인데, 그건 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아워뮤직>(2004)에서 고다르가 했던 말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영화는 빛으로 향해 그 빛으로 우리의 어둠을 비추는 것이다. 즉, 우리의 음악이다.

글/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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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에 고다르는 우리가 총체적 권력을 지니고 있는 온갖 형태의 수사학의 시기, 언어적 테러의 시대를 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고다르는 자신이 영화의 평범한 고용인으로서 말과 이름이 지배하기 이전의 사물에 대해 말하고 싶고, 아빠와 엄마가 아이에게 이름을 지어주기 전의 아이에 대해 말하고 싶다고 합니다. 이는 아직 이름을 갖기 전의 바다, 파도, 자유에 대해 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전(以前)에 대해 말하는 것은 기원으로의 회귀를 의미합니다. 구스타브 쿠르베의 논란적인 그림이 상기시키듯이 기원으로의 회귀는 세계의 기원, 미스터리의 기원, 불명료함과 순수한 나체의 지점으로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고다르는 <영화사>의 2A에서 사티아지트 레이의 <아푸의 세계>(1959)와 쿠르베의 ‘세계의 기원’의 이미지를 혼합하고 여기에 홀로코스트의 끔찍한 영상과 흑백의 포르노그래피 영상을 연결하는 과감한 몽타주를 선보입니다. 여기서 그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영화예술의 아름다움의 가능성, 혹은 그것의 유년성이 철저하게 유린당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세계의 몰락 이전을 보여주려 합니다. 그것은 아우슈비츠 이후, 체르노빌 이후, CNN의 공습이후, 9.11테러 이후에 잃어버린 세계와 시간을 되찾으려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아니 미래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려는 것입니다. 이후의 시간에서 이전의 가능성을 되찾는 것. 그래서 과거는 죽지 않았다, 아니 그것은 심지어 지나가지도 않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고다르에게 만약 영화가 현재의 예술이라면 그것은 과거의 현재(기억), 현재의 현재(직관), 미래의 현재(기대)라는 시간의 세 가지 종합이 이루어지기 때문인데, 이는 일종의 데자뷰의 시간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매 시대는 다음에 이어질 시대를 꿈꾼다고 말했던 이는 벤야민 입니다. 그는 새 것에서 자극받아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판타지가 사실은 근원적 과거와 이어져있다고 말합니다. ‘거기에 사물이 존재하는데 왜 그것을 조작하려 하느냐’라는 로셀리니의 유명한 말은 이미지가 항상 거기에 존재하고 있기에, 그 이전에 있었기에 이후에 도래하는 것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영화를 본다는 것에 대해서도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이미 거기에 있는 세계로 우리를 내던지는 행위이다. 영화적 체험이란 결국 데자뷰의 체험이기도 합니다. 혹은, 시네마테크에서 고전영화를 보는 것이 이미 데자뷰의 상태에 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이미 본 것’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새로운 관객에게는 ‘어디서 본 것만 같은’ 작품들이기 때문입니다. 영화를 보는 우리들 서로가 이미 어디선가 본 것만 같은 사람들이라는 기묘한 체험에 휩싸일 때가 있습니다. ‘2011년 시네바캉스 서울’에서 그런 데자뷰의 신비한 체험을 함께 했으면 합니다.

글/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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