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다이어리] 극장을 빠져나와 글을 정리하면서 어느덧 우리는 그들의 팬이 되어가고 있다

2013. 1. 31. 15:462013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Essay

에디터 다이어리

 

"시네마테크의 친구들영화제" 기간 동안 활동하는 에디터들의 일지를 소개한다. 일상적으로 극장을 찾아 영화를 보면서 들었던 짧은 생각들이나 시네토크를 정리하면서 떠오른 단상같이 자유로운 주제로 쓰여진 짧은 에세이가 주가 될 것이다. 영화제가 개막하면서 벌써 2주의 시간이 지났다. 에디터들은 이러저러한 일들을 하면서 어떤 생각들을 하고 있을까.

 

 

 

1월 26일 <세이사쿠의 아내> 관람. 예상보다 관객들이 웃음을 많이 터뜨려서 매우 놀랐다. 불길한 음악도 그렇고, 영화가 전체적으로 무서운 분위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나도 세이사쿠의 어머니가 ‘돈은 좀 있대니’ 할 때는 엄청 웃었다.

그 뒤 이어진 <세이사쿠의 아내> 시네토크 분위기는 정말 후끈했다. 김태용 감독님의 ‘썰’도 재미있지만, 재치 넘치는 관객 분들의 질문도 극장 안을 빵빵 터뜨렸다. 웃겼던 순간들에 대한 짧은 기록을 해보자. : “전쟁.”(정색) - 세이사쿠의 입장이라면 오카네를 용서할 수 있냐는 관객의 질문에 김성욱 프로그래머가 맥락이 중요하다며./ ‘모두가 궁금해 하는 그 질문’ 릴레이 - 그러나 감독님은 끝내 대답하지 않으셨다./ 양파 껍질 같은 남자네요. 그런데 껍질만 돌고 있네요. - 관객들이 감독님의 ‘개인적인 경험’에 대해 자꾸 묻자 비밀이 많은 남자라며./ “이게 그렇게 재미없나요?” “자신감 좀 가지시길” - 시나리오가 재미 없을까봐 두렵다는 김태용 감독의 ‘작은 마음’에 대한 김성욱 프로그래머의 일갈 혹은 새해 덕담. (지유진 에디터) 

 

 

 


올해 친구들 영화제의 첫 시네토크 녹취를 맡게 되었다. 관객 에디터들 중에서 시네토크 녹취의 처음을 연다는 것이 별일 아니면서도 은근히 부담스러웠다. 소리꾼 이자람 씨의 <페임> 시네토크였는데, 그녀도 친구들 영화제에 처음 참여하게 되어서 매우 떨린다고 했다. 그녀가 떨려한 만큼 나도 떨었다. 아이폰 녹음기능을 켜놓았는데도 제대로 녹음되고 있는지 여러 번 확인하곤 했다. 시네토크가 진행되는 동안, 노트북에다 대화의 내용을 옮겨 담긴 했지만 말은 원체 빨리 흘러가버리니 손가락 사이로 다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녹음이 잘 되고 있는지 노심초사했던 것이다. 생각보다 빨리 시네토크가 끝났고, 극장을 빠져나와 글을 찬찬히 정리했다. 그리고 나는 이자람 씨의 팬이 되었다. (배동미 에디터)

 

 

 


1월 6일과 9일에는 8회 <친구들 영화제> 리뷰 마감이 있었다. 에디터들은 각자 2편씩의 리뷰를 맡았다. 이번 영화제를 통해 새로 에디터를 시작하게 된 나를 포함한 일부 친구들은, 최종 마감 전 서로의 글을 도와주자며 의기투합했다. 그리하여 8일 오후 광화문의 한적한 카페에서 크리틱 모임이 열리게 됐다. 각자 인쇄해 온 자신의 글을 쭈뼛쭈뼛 꺼내며 누구의 글을 먼저 읽을 것인가로 짧은 실랑이가 있었고, 이내 미완의 한 원고를 시작으로 크리틱이 진행되었다.

에디터들은 "이 부분 좋아요!", "제 생각에 여기는….", "이게 그런 뜻인가요?" 같은 의견과 질문들을 교환하며 마감을 대비했다. 비평수업을 듣는 양 진지하기도, 누군가 툭 내뱉는 농담에 깔깔 거리기도 했던 풍경. 모 에디터는 모임이 끝나고 서점으로 가 본인이 녹취를 맡은 모 시인의 시집을 사기도 했다.  (김경민 에디터)

 

 

 

 


친구들 영화제가 개막하고 2주 정도 지난 지금까지 두 차례의 시네토크를 정리하였다. 두 번 다 전날 밤을 새고 체력적으로 힘든 상황에서 녹취를 진행하였는데, 그 와중에도 흥미롭게 받아들여지는 지점들이 있었다. 그 중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예전의 관람경험과 지금의 관람경험의 차이에 대한 질문이었다. 심재명 제작자는 30년 전에는 <안개마을>의 내레이션이 거슬리지 않았지만 지금 다시 보니 내레이션이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이야기했다. 또한 이해영 감독은 어렸을 때 <지옥인간>을 비디오로 보았다고 하는데, 비디오가 살릴 수 없던 색감을 이번 상영을 통해 처음 접하게 되었다고 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러한 답변들은 과거와 현재의 간극에 대한 또 다른 질문을 던지는 중요한 증언이다. 이러한 증언들에서 그들은 잠시 그들의 직함을 내려놓고 한 편의 영화를 좋아하는 한 명의 관객으로서 등장하여 시네토크에서 이루어지는 대화를 극장 밖으로까지 이어지게 한다. (박민석 에디터)

 

 


오승욱 감독님의 추천작 <황야의 7인>(1960)을 이번 영화제를 통해 처음 보게 되었다. 대학교 영화교양 강의에서 <7인의 사무라이>의 할리우드판 리메이크라고 이름으로만 접해봤던 영화를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한 셈이다. 흥미진진하게 지켜보다가, 영화의 마지막에서 율 브리너가 스티브 맥퀸과 함께 농부들을 바라보면서 던지는 대사에서 깜짝 놀라고 말았다. “Only the farmers won. We lost. We always lose.” 이 대사는 구로사와 아키라의 원작 영화에서도 그대로 나오는 대사 아닌가. 걸작으로 추앙받는 영화의 그 유명한 대사가 리메이크작에서까지 그대로 나올 줄은 전혀 예상도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무라이와 농민이라는 수직적인 계급차가 존재하는 상황이 아닌, 수평적으로 대등한 관계에서 서부의 총잡이들이 ‘우리는 졌다’고 말할 때 그 대사가 갖는 울림은 원작의 것과는 분명 다른 것이었다. 고뇌하는 ‘서부의 사나이’ 게리 쿠퍼처럼, 그들은 영웅도 아니고 생각보다 강인하지 않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하며 나는 알 수 없는 감정에 젖어들었다. 이건 끝나버린 서부극에 대한 애달픔일까? (송은경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