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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상영작 소개

윌 로저스의 마지막 작별 인사

[영화읽기] 존 포드의 <굽이도는 증기선>



존 포드의 1935년 작 <굽이도는 증기선>은 미국 남부 미시시피 강을 배경으로 한다. 영화의 주인공 닥터 존(윌 로저스)은 여객선에서 위스키를 만병통치약으로 속여 파는 장사꾼이다. 어느 날 친구들과 합심해서 폐어선을 복구시키고 선장이 되지만, 조카인 듀크(존 맥가이어)가 플리티 벨(앤 셜리)을 구하려다가 살인을 저지르면서 일이 꼬인다. 존은 조카를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다가 본의 아니게 보트 경주에 참여하게 된다.

 

이 영화는 ‘윌 로저스 삼부작’ 중 마지막 작품이다. 존 포드가 연출을 맡은 <닥터 불>(1933), <저지 프리스트>(1934)에 이어, 윌 로저스는 소시민들의 애환을 담아내는 캐릭터를 연기한다. 전반부는 비극적인 이야기지만 포드 특유의 유머러스한 상황설정과 윌 로저스의 순발력이 어우러진 후반부는 밝은 이야기로 이어진다. 이 영화의 유머와 휴머니즘은 종종 같은 해 발표된 존 포드의 또 다른 영화 <정보원>(1935)의 우울한 세계관과 비교되곤 한다.


 

영화는 늘 두 개의 세계가 대립하고 충돌한다. 과거와 현재, 이상과 현실이 충돌하고, 늪지대 주민들과 강변 주민들 사이에 다툼이 벌어진다. 대표적인 공간으로는 밀랍 인형 전시관이 있다. 존과 플리티 벨은 변호사 선임비를 구하기 위해 여객선 안에 밀랍 인형 전시장을 설치한다. 인형 중에는 서부 개척자 대니얼 분이나 남부 연합군 총사령관 로버트 리 같은 전쟁영웅, 그리고 제시 제임스 형제들처럼 악명 높은 악당들의 인형도 있다. 태그 갤러거는 이 밀랍 인형 전시장을 “이름, 외형, 신화, 상징 그리고 컨벤션이 실재가 되는 곳”이라고 해석한다. 인형에 부여된 역사적 인물들의 이름 때문에 관람객들은 위엄과 두려움을 동시에 받는다. 농부들이 박물관을 폐쇄하러 왔다가 제시 제임스의 인형을 보고 오금을 저리며, 로버트 리 장군의 인형을 보고 일동 거수경례를 한다. 영화는 이러한 오인의 순간들을 통해 역사적 인물들을 희화하고 풍자한다. 더불어 인형을 관람하는 농부들의 순박한 표정과 행동을 통해 극 전체를 온화하게 만든다.


나아가 포드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발생시켜 극을 이끌어간다. 보트 경주 후반부에 여객선에 연료가 떨어지자 선원들은 땔감이 될 만한 모든 것을 엔진의 불구덩이 속으로 던져 넣는다. 의자, 책상, 갑판을 떼어내는 것도 모자라 밀랍인형과 위스키까지 모조리 던진다. 죄다 연료로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다. 미국의 역사를 상징하는 밀랍 인형, 한 때 닥터 존이 만병통치약이라고 속여 팔던 위스키, 심지어 배의 일부를 뜯어내 원료로 쓴다. 이 장면은 파괴를 통해 에너지를 생산한다는 아이러니와 함께 스펙터클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무작정 때려 부수고, 그 파편들을 집어던지는 장면은 포드가 즐겨 사용하는 ‘던지기’ 액션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기도 하다. 하스미 시게히코는 막스 브라더스의 1940년 영화 <고웨스트(Go West)>에서 마차를 부수어 증기기차의 연료로 쓰던 장면에 비견하기도 했다.

 

이 작품은 영화사적인 비화도 몇 가지 가지고 있다. 삼부작 중 두 편은 폭스에서 제작되었는데 <굽이도는 증기선>만 RKO에서 제작되었다. 피터 보그다노비치와의 인터뷰에서 포드는 당시 제작환경이 변하면서 이 영화의 코믹한 부분이 제작자에 의해 상당수 편집되어 더 좋은 작품이 되지 못한 걸 안타깝게 생각한다 전했다. 한편 윌 로저스는 이 영화 촬영 후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했다. 때문에 로저스에게 이 작품은 본의 아닌 유작이 되었고, 그의 팬들에게는 로저스가 보내는 작별인사로 기억되는 영화로 남았다. (이도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