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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전/오시마 나기사 회고전

오시마 나기사 정치영화의 원점

[영화사강좌2] 오시마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영화적 화두, ‘정치’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오시마 나기사 회고전’을 맞아 전후 일본 영화사에 혁명적 바람을 일으킨 거장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작품 세계를 탐구하는 영화사 강좌를 마련했다. 지난 20일 저녁, <일본의 밤과 안개> 상영 후에는 그 두 번째 시간으로 변성찬 영화평론가의 ‘오시마 나기사 정치영화의 원점’이라는 주제로 강연이 있었다. 그 현장의 일부를 이곳에 옮겨본다.


변성찬(영화평론가): 오시마 나기사의 <일본의 밤과 안개>를 처음 본 것은 2003년 오시마 나기사 회고전 때였다. 처음 이 영화를 보았을 때 나기사의 다른 영화들에 비해 매우 생경하다는 생각을 했다. 다른 영화들에서는 관능성을 쉽게 느낄 수 있었지만, 여기서는 전혀 그런 것을 느끼기 힘들었다. 인물들이 치열하게 사상 투쟁을 하는 것은 알겠지만, 왜 저렇게까지 치열한지도 의문이 들었다. 당사자들만이 가지는 근본적인 위화감이 있었지만, 그런 격렬함이나 이런 활동들에 대한 시대적 배경의 이해가 안 되어 감정이입이 힘들었고, 더욱이 근본적으로 나기사 감독은 수많은 쟁점들이 쏟아지는 것 속에 어디에 위치한 것인지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이해할 수 없어서 힘들었던 경험이 생각난다.

나기사 감독 개인을 놓고 보면 세대적으로는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구세대라고 할 수 있다. 1950년대 초반에 학교를 다녔는데 그때는 일공이 무장투쟁노선을 취하던 시기이다. 나기사는 노선전환시점에서 졸업해서 쇼치쿠영화사에 들어갔는데, 구세대였고 학생운동을 했지만 정작 <일본의 밤과 안개>의 전체적 관점은 신 좌파학생 쪽에 있다. 사토 다다오라는 평론가는 나기사의 영화에 대해 신좌파입장에서 구좌파를 비판하며 신좌파에 힘을 싣는다는 평가를 했는데, 저는 이런 것이 ‘절반의 진실’같은 것이라 생각한다. <일본의 밤과 안개>를 본 것은 세 번째지만, 나기사 감독은 수많은 문제제기 입장들 속에서 어디에 자신을 위치하는가에 대한 판단을 분명하게 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안보투쟁세대에 등장하는 오타라는 인물이 공감이 잘 안가는 인물이기도 하다. 오타라는 학생이 주류파라면 비주류파인 다른 학생들이 오타라는 인물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게 된다. 영화를 보다보면 다 옳고 다 맞는 것 같게도 보이고, 좀 혼란스러운 지점들이 몇 군데 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영화 마지막 장면, <일본의 밤과 안개>는 나까야마라는 인물의 일장연설로 영화를 끝맺는데, 그 순간 문제제기하던 모든 인물들이 정지된 동작을 하는 것이 핵심이다. 나까야마라는 인물의 사운드가 약해지며 묻혀지는 태도를 취하고 있는데, 영화에서 나기사가 하고 싶었던 것은 신좌파에 힘을 싣는 것보다 영화 마지막에 보여주는 나까야마같은 인물, 그러니까 공허한 일장연설에서 뿜어져 나오는 욕망이 아닐까 생각된다. 욕망의 정치에 관한 이야기랄까 뭐 그런 생각이 든다. 나까야마의 주변인물들이 보여주는 것은 욕망의 공허성이다. 나기사는 운동을 했지만 비주체성 또는 공허성, 이런 것들에 거리를 두고 지내었고 결국 이것들을 그려내는 것이 영화에서 나기사 감독이 가장 하고 싶어 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이런 측면에서 60년대 나기사의 다른 영화들, <교사형>, <백주의 살인마>에서 보여주는 욕망과는 상충적이면서도 보안적 관계에 있다 생각한다. <백주의 살인마>에서는 빈농출신 의 병적욕망, <교사형>에서는 일본서는 소수자인 남성주체의 욕망, 둘 다 강간살인범에 관한 이야기로 하층계급출신들의 병적욕망을 그린다. <일본의 밤과 안개>는 거리두기와 냉정한 방식으로 인물을 묘사한다면 <백주의 살인마>나 <교사형>은 병적 섹슈얼리티를 굉장히 공감하고 최대한 이해하려는 방식으로 풀어내려간다. 나기사 감독의 영화를 욕망의 정치학이라 할 때, 그는 영화에서 이것을 자연적이고 보편적인 것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자신이 놓인 위치에 따라, 혹은 개인은 사회나 국가체제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고, 그렇기에 그건 근본적으로 정치적이라는 거다. 이게 오시마 나기사의 전체 영화를 관통하는 영화적 화두라 생각한다. (정리: 강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