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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0주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Review

[리뷰] <공포의 역사> - 두려움과 낯섦, 불안과 공포


공포의 역사 Historia del miedo / History of Fear

2014│79min│아르헨티나, 프랑스, 독일│Color│DCP│15세 관람가

연출│벤자민 나이스타트 Benjamín Naishtat

출연│조나단 데 로사, 타이타나 히메네스, 미렐라 파스쿠알

이 영화의 특이한 점은 어떤 카테고리로 묶을 수 없는 독특한 비전을 가졌다는 것이다. 감독 개인의 내면적인 투시의 힘이라고 할까, 그런 것들이 다소 거칠지만 매우 실험적이고 급진적인 형식의 필터를 거치며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두려움과 낯섦, 불안과 공포



<공포의 역사>는 2014년 전주국제영화제 국제경쟁부문 대상작이다. 자세히 밝힐 수는 없지만 심사위원들 사이에서 이 영화의 수상을 두고 논란이 없진 않았다. 심사위원장을 맡았던 정지영 감독이 특히 이 영화를 적극적으로 옹호했는데 나는 수상 결과를 보고 그의 젊은 감각에 놀랐다. 그와 반대로 이 영화가 시상식 날 영예의 대상을 받고 극장에서 그 영화를 관람한 일반 관객들은 심지어 분노를 표하기까지 했다. 영화의 스토리는 끝까지 줄기가 잡히지 않고 명확히 제시되지 않는 등장인물들의 불안과 공포를 지켜보는 일은 지루한 것이었으며 심지어 이게 영화냐고 사석에서 항변하는 이도 있었다. 이 영화가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상영됐을 때는 반응이 더욱 끔찍했는데 소수의 열광적인 지지와 다수의 혹평을 받으며 영화제 경쟁 출품작 중 현지 데일리에 평점을 실은 저널리스트들로부터 최하 점수를 받았다.




다른 프로그래머가 섭외한 이 영화를 나는 영화제 기간 동안에는 보지 못했다. 그 와중에 감독과는 몇 번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대화를 나눌 일이 있었다. 수줍어하는 영민한 젊은이였다. 첫 장편영화를 만들고 자신에게 찾아온 행운을 감당하지 못해 즐거워하는 눈치였다. 전주가 내 집처럼 편안했다고 말하는 그를 보며 겉보기와 달리 외교적인 구석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공포의 역사>를 시상식 날 본 후 그 말이 뜻하는 바를 알 것 같았다. 내러티브로 아무 것도 지시하지 않는 무심함, 서로 상관 없어 보이는 부에노스아이레스 한 외곽 마을 사람들의 개별적인 에피소드가 나열될수록 쌓여가는 불안감, 극적 사건이 전개되지 않는데도 탱탱하게 유지되는 긴장감으로 채워진 <공포의 역사>는 불행한 폭력의 역사를 겪었고 지금도 현재진행형으로 내면화된 그 폭력적 질서를 살고 있는 젊은 감독의 절망과 용기를 증거하는 작품이다. 낯선 나라에서 충분히 편안해 보였던 이 젊은 감독이 고국 아르헨티나에 대해 느끼는 그 도저한 두려움과 낯섦의 기원은 어디서 온 것일까. 그는 자신이 사는 현실을 사회학적으로, 정치적으로, 심리적으로 분석하지 않는다. 이것이 <공포의 역사>의 새로움이다. 명쾌하게 구획지어 관찰하는 대신 슬금슬금 그 사회의 인간들을 다 잠식해 버린 끝갈 데 없는 불안과 공포의 양상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다. 답을 내릴 수 없는 지점에서 출발해 더 모호해지는 지점까지 밀어붙이는 그의 상상력의 질긴 탄성에 호감을 갖게 된다. 이 감독이 앞으로 만들 작품도 만만치는 않을 것이다.


김영진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