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짧고 굵은 아시아단편영화제]


“영화는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 ‘가족의 아시아’ 섹션 상영 후 우샤오펑, 홍의정 시네토크



신정아(모더레이터) <우리 형>의 우샤오펑 감독은 국립타이페이예술대학교에서 영화 연출을 전공했고, 지금은 영화감독 겸 포토그래퍼로 활동을 하고 있다. <서식지>의 홍의정 감독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과 런던 필름스쿨 영화과를 졸업하고 많은 단편과 장편 시나리오 작업을 했다.

<우리 형>의 엔딩 크레딧 마지막에 가족에 대한 감사의 말이 있다. 먼저 우샤오펑 감독이 이 영화를 만든 배경에 대해 듣고 싶다.


우샤오펑(감독) <우리 형>은 나의 아버지와 장애를 가진 큰아버지의 실제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젊을 때부터 아버지가 큰아버지를 모시고 살았는데, 이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영화를 만들었다.


신정아(모더레이터) <서식지>는 통일한국을 미리 만나보는 영화다. 새로운 가족의 구성이 이루어지는데 감독님은 통일한국의 미래를 어둡게 보고 있는 것 같다. 이 영화의 배경을 처음에 어떻게 설정했는지 듣고 싶다.


홍의정 통일에 대해서 늘 부정적으로 생각한 건 아니다. 다만 통일의 밝은 부분이 있다면 언제나 그렇듯 그림자에 가려진 힘든 상황이 분명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관객1 <서식지>에서는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구성한다. 각자의 견해차 때문에 다투기도 하고, 또 언제 싸웠냐는 듯 서로 협조하며 함께 생활하는 모습을 보면서 마치 다른 종의 눈으로 인간의 서식지를 관찰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어떤 이유로 ‘서식지’라는 제목을 붙였는지 감독님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홍의정 이 영화에 나온 세 명의 캐릭터가 모두 내 모습이다. 해외에서 생활할 때 한국에 있을 때는 알지 못했던 나의 편견을 알게 되기도 했고, <서식지> 속 중국인의 역할을 했던 적도 있다. 그래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였을 때 의견이 다르더라도 가까이서 서로 돕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영화를 만들었다. 우리 세대는 더는 한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지 못한다. 어딘가로 이동하면서 새로운 가족도 만들고 친구도 만들고 동료도 만들어야 되지 않나 하는 생각에 서식지란 제목을 붙였다.




관객2 <우리 형>에서 남의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장애인 형이 다른 여성과 결혼을 하려 하는데, 감독님은 이 결정을 지지하는지 물어보고 싶다.


우샤오펑 큰아버지의 병원에 갔을 때 큰아버지를 돌봐주는 어떤 여성분과 주고받은 생일 축하 카드를 본 적이 있다. 그 카드를 보고 큰아버지도 어쩌면 누군가를 만나서 감정을 나누고 결혼을 하고 싶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큰아버지는 실제로 결혼을 하진 않았다. 나는 물론 그 결정을 지지하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영화에서는 희망적인 결말을 만들어 보았다. 영화는 일종의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홍의정 지적 장애인 캐릭터를 묘사할 때 어떤 윤리적 기준을 가지고 작업을 했는지 궁금하다.


우샤오펑 장애를 과장해서 보여주기보다는 작은 장면들로 설명하고 싶었다. 예를 들어 컵에 물을 찰랑찰랑하게 담는 장면을 통해서 그들의 감정을 보여주려 했다. 굉장히 순수하고 천진난만한 동시에 그들이 비장애인보다 자신의 애정을 표현하는 데 훨씬 더 용감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관객3 <서식지>에서 카메라가 대부분 집 안에 머무르기 때문에 통일된 상태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소품에 많은 신경을 썼을 것 같다.


홍의정 가까운 미래로 설정했기 때문에 미래적 느낌의 소품이 필요하진 않았다.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것과 오래된 것들을 섞어서 쓰고 싶었는데, 예산 문제 때문에 현재의 물건들을 더 많이 쓸 수밖에 없었다.


신정아 이 영화들을 보며 현실은 고단하지만 영화는 희망을 품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도 두 감독님의 작품들이 계속해서 만들어지기를 바란다.



일시 11월 17일(토) ‘가족의 아시아’ 섹션 상영 후

정리 송재상 프로그램팀

사진 목충헌 자원활동가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